아야야. 손이 시리다 못해 곱아든다. 건전지를 꺼내 카메라에 갈아 끼는 시간은 극히 짧다. 그 짧은 동안에도 벌써 손가락이 얼고 있는 것이다. 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손을 재게 놀린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돼. 생각은 했지만 카메라 뚜껑을 벗기는 순간 건전지 두개가 배낭 안으로 떨어진다. 반쯤 얼은 손가락으로 건전지를 집어든다. 다 닳은 건전지는 배낭 뒷주머니로 새 건전지는 카메라 안으로. 간신히 끼운 카메라를 치켜든다. 오서산 정상, 정암사쪽으로 이어지는 길과 저 멀리 보이는 정상의 데크는 눈부시게 희다. 눈 덮인 길을 가운데로 하고 능선 양쪽은 갈색투성이.
사진을 찍는다. 서둘러 찍고 나서 도로 배낭속에 넣는다. 배낭 안에는 보온병이 들었고 그 안에는 뜨거운 생강물이 들어있지만 마실 시간이 없다. 이미 열시 사십분이 넘었으니까. 보온병을 열고 뚜껑을 여는 그 동작도 힘들다. 장갑 낀 손으로는 뚜껑을 열 수 없고 맨손은 여간 시리지 않다. 이미 경험이 있다. 뚜껑을 열고 물을 따르는 동안 얼마나 춥던지 손가락이 구부러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보온병에 담긴 물은 뜨거워 마실 수가 없어 식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물이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추위에 떨게 된다. 올라오는 동안 옷은 이미 흠뻑 젖어 모자는 물론 겉옷까지 젖어 있다. 그 상태로는 대번 얼어든다. 땀에 젖은 옷은 추위를 막아주지 않는다. 내가 움직여 몸을 데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상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촉박해서이기도 하다. 지금도 저 아래서 사람들은 나를 기다릴 것이다. 투덜거리거나 묵묵히.
야호~소리를 지른다. 늘 고요히 내려갔지만 오늘은 소리를 지른다. 정상까지 올라오는 길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길을 헤치고 올라와서도 아니다. 눈꽃이 피운 절경에 반해서도 아니다. 가끔 눈보라가 날려 시야를 가리우는 덕분에 황홀경에 젖어서도 아니다. 오늘 산이 준 선물때문이다. 아니다. 오늘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찾아온 결과가 쌓여서일 것이다.
작년(벌써 작년이다. 감개무량하다고 해도 좋다. 이곳에 온 지 벌써 9개월째인 것이다.) 12월 4일 첫눈이 내린 이후 오서산 정상에 몇번이고 올라왔었다. 정암사쪽으로 세번, 내원사 쪽으로 두번, 시루봉 쪽으로 두번, 능선쪽으로 두번, 그 중에 한번은 남편과 함께였다. 산에 오르는 일은 매번 힘들다. 경사 급한 시루봉 쪽, 오늘 택한 코스는 더더욱 힘들다. 그 힘듦이란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과 찢어지는 듯한 종아리의 통증으로 나타난다. 매번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서산 정상을 찾는 이유는 뭘까.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산은 틀림없는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쉽게 말하면 나를 비우는 일이고 달리 말하면 무아지경이다. 오르면서 나는 나를 잊는다. 한걸음 한걸음의 힘듦이 작은 나를 잊게하고 펼쳐지는 풍경들이 나를 빨아들인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을 논하면서 몰입의 조건을 8가지 이야기한다. 그 중에는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기, 명확한 목표, 즉각적인 피드백, 걱정거리에 대한 망각, 상황 대처에 대한 자신감, 눈치와 자아의식의 소멸이 있다.
산에 오르는 행위는 힘들다. 경사가 심한 곳이라면 더 힘들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익숙한 산에 오르는 일은 그 산에서 일어날 법한 일에 대해 지산감을 갖도록 만든다. 지리에 익숙하니 염려가 없고 각각의 장소에 도달하는 시각이 익숙하니 언제 돌아서야 하는지 잘 안다. 게다가 정상이 보이지 않는가. 몰입의 조건 8가지 중 6가지가 산에 오르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산에 오르는 일은 장기적인 과업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산에 오르면서 등반 시간을 줄이는 행위는 장기적인 과업에 해당하고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목표는 더더욱 장기적인 과업이다.
게다가 매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음에랴. 산은 다르다. 계절마다 분명히 다르고 매일 올라도 다르다. 처음 오서산을 오르던 때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무리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도, 발바닥에 못이 생기도록 아프게 뛰어내려갔어도 십분씩 늦어 눈총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돌아와서는 팔이 붓고 다리가 저려 한동안 혼났다. 그랬는데 이제는 다소 여유가 있다. 정시에 도착하거나 정시가 약간 못되어서 도착하는 것이다.
산행에서 십분, 십오분을 줄인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평상시 십분은 차한잔 마실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산에서의 십분, 십오분은 그야말로 의미가 크다. 산은 언제나 같다. 거리는 변함없고 힘듦도 변함없다. 그러나 자주 오르면 시간은 틀림없이 줄어든다. 몸도 달라진다. 틀림없이. 그 노력으로 이제는 숨도 차지 않고 다리도 째질듯이 아프지 않다. 그건 체력이 차오르고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오늘, 머리가 맑아지고 있는 것이다. 머리의 맑아짐, 줄곧 기다려 왔던 일이다. 두통에 시달렸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무거웠던 것도 아니다. 무언가 항상 불안했다. 책을 읽으면 어지러웠고 모니터를 대하다가 일어나면 어지러웠다. 시야는 멀쩡하지만 나 자신이 흔들리는 느낌에 불안했던 것이다.
아직 낫지 않았구나 하는 실망감이 엄습했고 혹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어딘가에 있었다. 항암주사 후유증이려니 해도 오래도록 집중할 수없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인데 그 느낌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9개월, 아니 집에 있을 때부터 계산한다면 얼추 2년이 되어간다. 수술을 하고 나서 바로 오르기 시작했으니.
산에 오른다는 것은 내게 보여주기 위한,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표현이다. 내가 바뀌고자 하는 노력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 노력을 내 몸이 인식했다. 아니다. 몸은 진작에 인식했다. 다소 아프지만 견딜만하고 내가 그 아픔을 문제 삼지 않으니. 머리가 인식했다. 깊숙한 곳에 있는 나의 무의식이 인식했고 인정했으며 그 결과로 오늘의 맑아짐이 있는 것, 그래서 야호가 나왔다. 산이 준 그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셈이다. 야호, 야호, 야호다. 틀림없는 야호다.
첫댓글 이러다가 새로운 산악인이 한 사람 탄생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살면서 내 머리가 맑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몰입. 난 새해에 무엇에 몰입해서 내 머리를 맑게 할지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겠어요.
지금 몰입하고 계시잖아요. 사람은 창조적인 일을 할 때 몰입한다고 합니다. 수동적인 일, 받기만 하는 일에서는 몰입이라는 단어를 거의 쓸 수 없는 거지요. 영어 원어로는 flow예요. 지금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재발견>을 읽고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내가 나에게 고마워 할 일이네여~ 축하합니다. ^^ 십 분을 위하여~^^
고맙습니다. 십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그 십분을 위해 몇년을 바치기도 하지요. ^^
희야님 수술하신지가 벌써 2년이 되었나요??? 병원다니실때 글을 올리신거 보면서 부터 희야님 글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하여튼 울 희야님은 심신이 대단하신 분인것 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밤도 편안한밤, 포근한밤 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_*
요즘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별로 없어서 몰입과 먼 거리에 있습니다. 다시 몰입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