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사조,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 7년 5개월간 장기 담합 적발
옥수수 가격 오를 땐 신속 인상, 내릴 땐 최소 인하 지연 꼼수
'법 위반 행위 금지'와 함께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부과 시정조치
[배석환 기자]=식품, 제지, 철강 등 제조업 전반에 원재료로 쓰이는 전분과 전분당(이하 전분당)의 국내 판매 가격을 장기간 담합해 온 독과점 제조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폭탄을 맞게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 이하 공정위)는 국내 B2B(사업자 간 거래) 전분당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4개 제조사(대상, 사조씨피케이,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가 7년 5개월 동안 가격 담합을 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7,475억 7,8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과징금 액수는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금액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액은 ▲대상 2,341억 4,100만 원 ▲삼양사 2,103억 4,000만 원 ▲사조씨피케이 2,001억 3,200만 원 ▲씨제이제일제당 1,029억 6,500만 원 순이다.
원가 오를 땐 '신속 인상', 내릴 땐 '지연 인하'… 치밀한 꼼수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4개 전분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전분당 품목의 판매 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합의하고 실행했다.
이들은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하는 국제 옥수수 가격이 상승할 때에는 원가 부담을 신속하게 거래처에 전가하기 위해 판매 가격 인상을 합의(8회)했다.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담합을 통해 가격을 최대 73%까지 끌어올리며 부당 이득을 챙겼다.
반면, 국제 옥수수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거래처의 압박을 피하고자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5회)으로 합의를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협상력이 강한 대형 실수요처의 가격은 낮춰주면서도, 소규모 실수요처나 대리점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우체국 동행 이행 확인까지… 철저했던 담합 점검
이들의 담합은 임원급 모임에서 큰 틀의 목표가격을 정하면, 팀장급 모임에서 가격 변동 근거, 품목별 인상액, 적용 시점, 공문 발송 순서 등을 구체적으로 짜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래처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가격 변경 공문을 발송할 때도 순차적으로 시차를 두고 발송하기로 합의했으며, 실제 합의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 회사를 직접 방문해 공문 내용을 확인하고 우체국까지 동행해 발송 여부를 점검하기도 했다.
또한 거래처와의 가격 협상 시에는 해당 업체와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주관사'가 협상을 주도하고, 나머지 전분사들은 합의된 금액보다 일부러 높은 가격을 제시(비주관사 조력)해 거래처가 목표가격을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독자적 가격 재결정' 등 강력한 시정명령 부과
공정위는 이들 업체의 담합 행위가 시장 경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최종 소비자의 물가 인상을 초래했다고 판단해 강력한 제재를 내렸다.
이번 조치에는 향후 금지명령 외에도, 담합 전 경쟁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각 전분사가 전분당 제품의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이 포함됐다.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린 것은 과거 밀가루 담합(2006년, 2026년)과 인쇄용지 담합(2026년)에 이어 역대 네 번째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 전분당 시장은 지난 20여 년간 4개 사의 과점 체제가 굳어져 담합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며, "이번 조치가 국민 체감 물가가 높은 식료품 등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독과점 사업자들의 부당한 가격 인상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