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물릴 때도 됐을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달리 대안이 없으니 오늘도 호두과자를 싣고 천안ic에 오른다. 수원에서 잠시 지체가 있었지만 월요일답게 양재 초입까지는 무사통과.
이런 곳에서 어찌 40년 넘게 살 수 있었을까.
일 년에 몇 번 올라가지 않는 서울, 그 남쪽 관문인 양재를 지날 때면 늘 드는 생각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하염없이 눈만 껌벅거리는 낭만배달부의 상경 이유는 딱 2가지. 노부모님 또는 소프님을 뵈러 갈 때다.
오늘의 이유는 소프님.
장마와 관련한 긴급 안내문자가 빗발치던 며칠 전. 단톡방에도 번개에 대한 긴급 공지가 떨어졌다. 옴마푸 녹화 후 소프님과의 식사라는.
남산2호 터널을 지나며 2천원 어치의 시간을 벌었지만 시간&상황이 애매하다. ‘안녕히 계세요. 두 분~’ 부모님을 뵙기엔 시간이 빠듯하고, 아르떼tv로 가자니 남는 시간에 뻘쭘한 상황이 예상된다. 결국 애꿎은 모교에 덤터기를 씌운다.
30년만이다.
번잡한 세브란스/정문을 피해 운동장 쪽 입구로 들어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 파킹.
많이 변했다. 졸업 후 마지막 방문이 92년이었으니 당연하다. 이런 길이 있었나? 경사를 따라 공대~이과대 뒷길을 통해 백양로로 나와 본다.
‘아, 금호아트홀이 교내에 있었구나.’
‘중도와 학생회관은 그나마 여전하네.’
영국 스타일의 정원이 딸린 본관을 둘러본 후 내심의 목적지였던 윤동주 시비로 향한다. 시비 주위엔 간이 테이블 포함 모던한 의자가 놓여있고, 주변 수목은 좀 듬성해진 느낌이다.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꼭 다시 와보고 싶었던 곳.
84년의 이곳에서 낭만배달부는 길쭉한 등받이 벤치 위 학보를 덮고 누워 오수를 즐겼다. 잎새 사이로 쪼개진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면 부스스 일어나 시비의 주인에게 숙박비 대신 ‘동주형, 쏘리~’ 죄송한 인사 한번 꾸벅 올리고 강의실로 향했다.
타임머신에 적신호를 울리게 한 건 해밀-방장님과 사랑님의 톡.
“아아~ 녹화가 곧 시작됩니다. 방청하실 분은 모여주세요.”
덕지덕지 달라붙은 감상을 애써 걷어내고 충정로로 향한다. 스튜디오가 있는 11층에 도착하니 급 컨디션 난조가 온 방장님과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사랑님이 복도에 앉아 뭔가를 속닥거린다. 녹화 후 식사장소 때문이리라. 복집/보쌈집/치킨집... 음의 기운이 성한 서소문 인근의 식당들이 죄다 22시 이전에 영업을 마친다니 머리가 좀 아플 것이다.
옴마푸 스튜디오는 30여 평.
옴마푸 녹화장은 경제뉴스가 진행되고 있는 대형 스튜디오를 따라 둥글게 돌아가는 복도 끝에 위치했다. 묵직한 문을 여니 어둑어둑하다. 천장엔 영화 <메트릭스>의 AI 로봇을 연상시키는 조명기구가 L6- 어쩌구 알파벳+넘버를 단 채 매달려있고, 그 아래 7-8명의 스태프들이 각자의 역할대로 분주히 움직인다. 녹화는 크게 두 파트로, 연주와 인터뷰.
순서는 연주부터.
옴마푸 시즌2의 세 번째(?) 게스트는 미소가 순둥순둥한 피아니스트 김수진(스포 방지) 님. 시청자들이 듣게 될 음악은 모짤- 2곡. 첫 연주는 NG 없이 슝~, 두 번째 연주는 성에 안 찼던지 한 번 더! 좁은 녹화장에서 갈 곳을 잃은 음들이 조명기구에 부딪히고 소품에 부딪히고 마지막으로 앞에 앉은 아네모네/단심/인호 님 옆통수에 부딪힌 후 귀에 꽂힌다. 최-상위 클래스의 연주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듣게 될 줄이야!
게스트와의 인터뷰.
연주 녹화를 마치자 스태프들이 더욱 분주해진다. 소프님&게스트가 환복을 하러 간 사이 소파를 들이고 다탁을 들이고... 먹고 살기 힘들기는 방송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분주한 틈새에서 낭만배달부는 소프님이 벗어둔 신발에 주목한다. 시즌2 1&2화에서 소프님이 신었던, 아라비안나이트의 자스민 공주가 신었을 법한 그 신발이다. 아, 이것이로구나. 찰칵!
아아아아~ 부르르르~ 아아~ 부르르~
검정 투피스 차림 소프님의 목 푸는 소리에 깜놀한 것도 잠시. 노랑나비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은 게스트가 등장하자 인터뷰가 진행된다. 대본 없이 진행된 인터뷰지만 호스트와 게스트의 쿵짝이 맞아 목을 축이는 두 번의 컷을 제외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메인 피디의 엔딩 선언에 그간 숨을 죽인 채 보릿자루로 구겨져있던 방청객들의 박수가 터진다. 어서 와! 녹화장은 처음이지? 피곤하실 소프님이 오히려 다가와 방청객- 식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다. 따스하다. 녹화장의 한기에 돋은 소름을 누그러뜨릴 만큼.
애프터장소는 결국 강남.
‘감자탕집’으로 연상되는 부산스러움에 살짝 걱정이 앞섰으나, 자정 가까운 월요일답게 한산해 마음이 놓인다. 역삼동으로 이동한 식구는 소프님 포함 9인으로 테이블 2개를 차지, 뼈찜과 뼈탕을 주문한다. 소프님 테이블에 놓인 탕이 끓자 국물이 튄다. 소프님 투피스가 검정이 아닌 하양이었으면 어쩔~
매콤해 보이는 뼈 한 덩이를 소프님께 드리자, 답례인 듯 뼈 덩이가 국물에 잠긴 탕 접시를 주신다. 공들여 발라내 딱히 씹을 것도 없는 돼지-뼈를 후비면서도 신경은 온통 소프님께로 향하는데, 가슴 철렁한 미소와 함께 한마디 하신다.
“감자탕집에서 모이는 팬클럽은 우리가 유일할 걸요.”
아, 비루한 낭만배달부는 삼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기에 소프님 바로 옆자리에서 수저질!
“들어가십쇼~”
후배가 되시는 매니저님 차량에 올라서도 마지막까지 식구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던 소프님께 남은 식구들은 90도 깍두기 인사 후 가깝게는 잠실로, 멀게는 일산/수원/평택/천안...으로 뿔뿔이 귀가하며 2023 0724 번개를 마무리하다.
-긴 녹화에 힘드셨을 소프님&게스트님&매니저님. 고생하셨습니다.
-옴마푸 최초로 방청을 허용해주신 스태프님들, 감사합니다.
-이틀 후 출국인 인호님, 반가웠습니다.
-컨디션 난조에도 끝까지 자릴 지켜주신 방장님, 사랑합니다.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식사하신 사랑님, 많이 드셨죠?
-도망가시려다 발목 잡힌 단심님, 죄송했습니다.
-반가웠던 아네모네&최후보루님, 또 뵙겠습니다.
-참석 못한 식구분들, 아쉬웠습니다.
첫댓글 자세한 후기 역시 낭만님이세요
만니뵈어 좋았고요 호도과자 감사합니다
드뎌 먹어보네요
이제 가시면 언제? 설마 또 12년 후는 아니겠죠?
이 글을 읽고 나니.... 못 간 아쉬움이 80% 없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 20%는 어디서 찾으실랑가. ㅋㅋ
@낭만배달부 그건 가심속에 있다가 곧 사라지겄쥬~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벙개를 참여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곧 졸업이시니 금방이지 않을까요?
저 뼈두조각 완전 맛있게 잘 발라 먹었어요~ 아 완전 제 스탈^^ 마늘쫑도 👍👍👍👍 회장님이 저 잘먹는다고 칭찬
아, 그런 스탈 좋아하시는군요. ㅎ
소수정예부대 같은 든든함이 묻어납니다~
팬들을 진심으로 대하시는 소프님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 👍👍👍
소수정예. 싫어요. 다수정예를 주세요~
후기 감사합니다. 식사까지 같이 하셨다니 좋습니다~~
돼지 뼈다귀를 핥는 내내 봉섭님 생각만 했습니다. ^^
@낭만배달부 ㅋㅋㅋㅋㅋ
낭만님의 필력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날의 모습을 다시 재현해 놓으셨네요. 저 낭만님을 뵈어서 기뻤습니다. 호두과자도 집사람이랑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ㅎㅎ
-야심 시각에 촉박 귀가를 방해하여 심히 송구했습니닷.!
-전 호두과자 함꼐 먹을 집사람이 없어 심히 민망합니닷!!
벙개 저도 가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뵙고 싶었는데ᆢ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