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DA 박가영 오너 셰프,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저자
호주에 10년째 거주하며 3개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현직 셰프이자 레스토랑 오너로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이민을 계획하고있는 한국 청년들을 위한 책을 썼다. 작년 한국에서 책이 출간된 이후 많은 문의를 받았고 대부분이 호주에서 취업 또는 창업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었다. 호주에서 창업을 계획할 때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을 꼽자면 언어장벽으로 인한 행정처리 문제, 높은 인건비와 임대료에 대한 걱정, 직원채용과 관리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장벽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템을 선정하는 작업이 불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호주는 한국보다 70배가 큰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도시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등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각각 특징이 뚜렷하다. 특히 멜버른은 호주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식문화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호주 내에서 요식업의 유행이 가장 먼저 시작되고 저무는 곳, 멜버른은 새로운 음식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해외기업들이 호주 전체 시장을 공략하기 전 멜버른을 테스트 도시, 스타트라인으로 정한다.
한국에서 창업을 해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하는데 콘셉트 선정과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타지에서 하려니 더욱 막막할 것이다. 이에 지난 10년간 호주 요식업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식의 도시 멜버른에서 한식 창업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중국계와 호주 현지인을 타깃하라!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우선 타깃층을 정해야 한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고 마케팅 루트가 확보되어 있는 교민사회를 먼저 공략할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현지인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시드니와 비교해 교민수가 적은 멜버른에서는 교민사회만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어서 보통은 양쪽 모두 또는 현지인을 타깃으로 한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은 현지인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호주인만이 아니며 크게 둘로 나뉜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다문화 국가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서구 영어권 국가인 호주, 그 중에서도 멜버른이 속해있는 빅토리아주는 유럽계 이민자만큼 중국 등 아시아계열의 현지인이 많다. 인구조사에서도 아시안 이민층이 상당한 비율을 나타내며 도시 중심부일수록 젊은 중국인의 수가 높다. 중국계는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까지 다 포함된 광범위한 문화권으로 멜버른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중국 문화권의 소비자들은 유행을 따라가려는 성향도 강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강력한 바잉파워를 가지고 있다.
현지인을 타깃으로 개발한 한식 퓨전 메뉴
자료: 해당 업체 웹사이트
호주 혹은 유럽계와 중국 문화권의 소비자들은 선호하는 메뉴가 상이하여 한 가지 콘셉트로 두 문화를 포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레시피를 정할 때, 호주인들 입맛에 맞추려면 한국보다 더 짜게 하되 산미가 강하고 바삭한 식감을 줘야 하는데 중국인들 입맛에 맞추려면 달콤하고 자극적인 맛으로 제공해야 인기가 있다. 멜버른에서는 호주인이 아니고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성공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절대 과언이 아니다.
한줄 Tip: 메뉴 및 레시피 개발 시, 교민뿐 아니라 중국계 이민자들의 입맛을 반영할 것
2. 협력하고 공생하라!
한국에서도 카멜레온 존이 트렌드라고 ‘트렌드 2019 (김난도 저)’ 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호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임대료로 인해 업체들간의 공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어색하지만 맥락만 통하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현지 소비자들의 성향이 공생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미용실에 작은 방을 만들어 네일숍을 숍인숍 형태로 재임대 하는 정도였는데 최근 공생관계로 서로 윈윈하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곳들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멜버른 시내에 있는 한 카페는 매장 중간에 카페가위치해 있고 같은 공간에 주류를 판매하는 바, 가죽 공예실, 이발소가 경계도 없이 공존하고 있는데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바, 가죽 공예실, 이발소가 공존하는 카페
자료: 해당 업체 웹사이트
이 외에도 대형 훠궈 음식점 옆에 작은 공간을 두고 매운 훠궈를 먹고 나와서 쓰린 속과 입을 달랠 수 있는 달콤한 밀크티를 판매하거나레스토랑과 한 건물에 있는 바가 협력해 기다리는 손님 혹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을 자연스럽게 옆집으로 안내하는 등 공생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으로 호주 커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카페를 운영 중인 강병우 바리스타와 한얼 바리스타는 같은 브랜드로 콜드브루 커피를 함께 런칭해서 팔고 있는데 그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카페 세 곳에서 해당 콜드브루커피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멜버른 업체들의 협력하는 모습은 이제 공존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누구도 그 흐름을 피할 수 없음을느끼게 해 준다.
한줄 Tip: 호주의 높은 고정비를 공유할 동지를 찾아 윈윈하기
3. 맛 유행의 흐름에 올라타라!
전통적으로 호주인들은 매우 개방적인 듯하면서도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멜버른의 경우 시내에 이민자들이 많고 젊은 층의 비율이 높아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온 특이한 음식들이 끊임없이 유입된다.더 개방적인 계층의 사람들이 새로운 유행을 받아들이면 소극적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팔로워가 되어 해당 문화를 소비하게 되는 것은 멜버른도 세계 다른 도시와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지에서 해장을 위해 찾는 음식은 베트남식 쌀국수였다. 줄을 서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정도였는데 워낙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베트남 현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부터 간편식으로 만든 귀여운 프랜차이즈까지 베트남 쌀국수집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3년 후에는 해장을 하러 가는 곳은 일본식 라멘집이 되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을 비롯해 저가 라멘집이 멜버른 시내에 문을 열었다. 3년 정도가 지난 지금, 일부는 살아남아서 건재하고 대부분의 라멘집은 사라졌다.
멜버른에서 유행하는 마라탕 맛집
자료: 해당 업체 웹사이트
2019년 현재는? 라면도 쌀국수도 잘 찾지 않는다. 지금은 매운 마라탕의 시대이다.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직접 재료를 담아저울에 나온 만큼 계산하고 즉석에서 끓여주는 곳이 멜버른 시내 주요 거리에 분점을 냈다. 불과 1년 사이에 모방한 음식점도 엄청나게생기고 있다. 쌀국수, 라멘, 마라탕 사이에 말레이시아 락사가 잠시 고개를 내었다가 들어갔고 완탕면도 잠시 흥했으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어떤 아이템 하나가 성공을 해서 유행하고 그것이 팽창하여 과잉 공급이 되면 사그라드는 현상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주기가 훨씬 길고 유사 브랜드가 위로 올라오는데도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한줄 Tip: 대세음식을 찾아라, 한국보다 유행의 속도가 한 박자 느리지만 오래감
4. 현지화인가 오리지널인가? 콘셉트를 정해라!
내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곳은 멜버른 시내 작은 코리안 타운으로 불리는 곳 Healeys Lane에 위치해 있다. 우리 팀은 모던 코리안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고 벽을 하나 공유하는 형태로 붙어있는 이웃집은 한국식 선술집 콘셉트의 식당이다. 우리는 확실하게 현지화를노렸다. 한식을 해체한 후 현지 문화에 맞게 다시 재결합했다. 부담스럽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고급진 타파스와 어울리는 칵테일과와인, 현지어로 완벽한 의사소통과 호주식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에 반해 옆 레스토랑은 완벽한 한국스러움을 고수하고 있다. 토속적인 메뉴와 반찬 제공, 푸짐한 정과 서툴지만 친절한 서비스를 유지한다. 각각 6년 차, 8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두 한국 레스토랑은 각기 다른 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분점을 내기도 했다. 확실한 현지화와 확실한 정체성 유지의 좋은 예라 하겠다.
멜버른 Healeys Lane에 나란히 위치한 서로 다른 콘셉트의 한식당
자료: 직접 촬영
많은 창업자들이 어떻게 현지화를 할까 고민할 때 중국, 베트남, 일본, 한국, 인도를 그대로 가지고 올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중국계 사업가들이 시도를 하는 방법인데 중국 이민자들을 상대로만 장사를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호주와 같은 다민족국가에서는 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일식집, 한국인이 인정하는 한식집으로 소문이 난 곳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이민자들사이에서도 유명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드와 콘셉트를 정할 때 오리지널리티를 살릴 것인지, 혹은 그것은 좀 포기하더라도 심리적 문턱을 낮춰 현지인들이 접근하기 편하도록 현지화에 집중할 것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개 다 욕심을 내다가 둘 다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멜버른에서 현지화에 완벽하게 성공한 아시안 음식 프랜차이즈 업체로 베트남의 쌀국수와 월남쌈, 반미 샌드위치를 패스트푸드로 변화시킨 매장이 있다. 단순해서 주문하기 쉽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며 채소가 많아 건강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현지화에 성공해 멜버른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음식점을 참고해 브랜딩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식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거나 현지 흐름을 읽는데 자신이 없다면?완벽히 오리지널리티를 내세워 한국을, 서울을, 부산을, 전주를 호주로 가지고 오는 것도 방법이다.
한줄 Tip: 완벽한 오리지널 또는 현지화로 성공한 브랜드 벤치마킹 필요
호주에서 한식 붐은 이제 시작, 도전하라!
호주에서 한식은 특정 매니아층이 즐기는 별미,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흥미로운 음식에서 시작해 이제는 대표적인 외식 메뉴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몇 년간은 잠시 스쳐 지나는 유행이겠지 생각했었고 그 후에는 타지 오래 살다보니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가 스스로 의심도 해보았으나 아니었다. 실제로 현실이 그렇다. 한식당을 운영해본 경험으로 비춰보면 호주 멜버른에서 만큼은 객관적으로도 인기가 뜨겁다. 그리고 그 열기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다.
멜버른 센트럴역에 위치한 한국식 핫도그 매장
자료: 직접 촬영
10년 전 열 손가락에 꼽던 한식당은 지금 현재 100개가 훨씬 넘는다. 멜버른 시내의 대형 마트의 신선 정육코너에는 양념 불고기, 닭갈비, 신선식품코너에는 칼국수와 한국식 짜장면, 냉면이, 스낵코너에는 노래방 사이즈 한국 스낵이 있다. 유명 편의점에는 한국 컵라면이 있고 멜버른 시티 기차역에서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사먹는 호주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호주 미식의 도시 멜버른에는 새로운 음식과 문화에 마음이 열린 고객들이 있고 한국보다 유행의 속도가 한 박자 느리기 때문에 기회도 많다. 창업의 꿈을 도전해 볼만한 나라이다.
- 기고자 소개 : 박가영(35)
20대 중반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정착하여 10년간 멜버른에서 한식 레스토랑 세 곳을 창업하여 운영 중인 오너 셰프. 2018년 8월 이민 정착 성공 에세이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출판사 미래의 창)가 한국에서 출간된 바 있음.
※ 이 원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