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관련된 물리 이야기가 벌써 세 번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충전기의 출력량에 따른 충전시간 계산을 벽콘센트와 완속충전기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남은 이야기인 급속충전방식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급속충전기는? 크다!
급속충전 방식은 그 이름답게 전기차 충전방식 중 제일 빠른 속도를 자랑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장 큰 전류를 사용하거든요. 한국의 표준사양 급속충전기에 공급되는 전력은 무려 50kW에 달합니다. 50kW라니, 잘 가늠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약 열다섯 가구 또는 6층 상업건물이 한여름에 에어콘 마구 돌릴 때 사용하는 전력량이라면 이해가 될런지요. 네, 급속충전기는 이 정도의 대전류를 단박에 공급해 배터리를 채웁니다. 빠를 수밖에요.
급속충전기는 실물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 놈의 덩치 때문에요. 마치 자판기마냥 커다랗습니다. 워낙에 대전류를 소비하는 장비이다 보니 벽에 매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무게도 상당하기 때문에 예외없이 튼튼한 콘크리드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 모습입니다.
급속충전 방식은 나라별로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식은 세가지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급속충전기가 이 세 가지를 지원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그래서 굵은 케이블이 세 개씩 매달려 있습니다. 각각의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속충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급속충전은 80%까지가 효율적
죄송하지만 잠시만 지난 시간 복습입니다. 충전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하는 충전량을 기억하시는지요? 전기차 배터리는 충전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최대전류 상태에서 전압을 높이는 CC(Constant Current: 정전류) 모드로 충전을 합니다. 그리고 충전이 일정 수준 이상(대부분 80% 전후)에 도달하면 전압을 유지하되 전류량을 줄여 나가는 CV(Constant Voltage: 정전압) 모드로 전환하게 됩니다. 압력은 유지하되, 전력의 총량을 줄여 나가며 배터리가 받아야 할 부하를 낮추는 것입니다.대전류를 쓰는 급속충전은 배터리 보호에 매우 신경을 씁니다. 충전기와 차량이 끊임없이 통신을 하면서 배터리의 상태와 온도를 확인하고, 차가 그만 달라고 하면 즉시 충전량을 줄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급속충전은 80%까지는 빠르게 진행되지만, 그 다음부터는 급속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충전속도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 급속충전기는 80%까지만 채운 뒤 더 이상 충전이 안되도록 설정되어 있었지만, 가능한 주행거리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사용자들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94%까지 채울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습니다. 단, 공공장소에 설치된 급속충전기는 1회 충전시간을 40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다음 차례의 충전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요.
DC콤보 방식
정확하게 말하자면 CCS(Combined Charging System) 또는 SAE 콤보(combo)라고도 부르는 급속충전 방식에서 5핀짜리 type1 커넥터를 쓰는 방식입니다. 이 커넥터는 생긴 게 좀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5핀짜리 완속충전 포트 아래에 커다란 핀 두 개가 더 붙은 모습이거든요. 이 커다란 핀 두 개는 45kW짜리 직류가 통하는 양극(+)과 음극(-)을 담당합니다.
직류라니? 넵, 직류입니다. 모든 배터리는 직류만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력망을 통해온 교류를 직류로 바꾸어 집어넣어 줘야 합니다. 급속 충전기의 덩치가 큰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전류를 변환할 수 있는 대형 컨버터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럼 코드셋이나 완속 충전기는요? 표준 전기차에는 교류 7kW를 받아서 직접 직류로 바꾸는 컨버터가 이미 탑재되어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요.
또 질문이군요. 왜 50kW가 아니고 45kW냐구요? 급속충전은 50kW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 정도의 전류가 공급됩니다. 이걸 그대로 충전에 다 쓸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가 못한게 문제지요. 과전류가 흐를 경우에 대비해 충전기는 수전용량에서 항상 10%의 여유를 남기고 처리합니다. 그러니 실제 충전기가 쓸 수 있는 전류는 45kW가 상한선입니다. 급속 충전기를 연결했는데, 충전기 화면에 표시되는 실제 전류는 45kW 선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걸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때문입니다.
그럼 DC콤보로 충전할 때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예로 드는 차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아이오닉 EV, 28kWh의 배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급속충전이니 80%만 충전하는 것으로 가정하겠습니다.
28kWh x 0.8 ÷ 45kW = 0.498hour =30min
계산상 30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오는군요. 실제로 20도의 기온에서 아이오닉을 충전할 경우 80%까지 약 33분이 소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계산과도 얼추 맞습니다. 고속도로를 200km 달린 뒤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에는 딱 적당한 시간이지만, 아직 주유소와 비교하기에는 멀었습니다. 급속충전의 최종 목표는 주유소만큼의 편리함을 갖추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DC콤보는 계속 충전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현대 코나EV를 필두로, 100kW로 충전할 수 있는 차가 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금년부터는 100kW를 지원하는 DC콤보 전용 충전기가 국내에 설치되고 있구요, 해외에는 150kW급도 나왔다는군요.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 리가 없습니다. DC콤보 표준을 이끄는 기업 연합체 차인(CharIN e. V.)이 최종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수치는 350kW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아이오닉 EV를 충전한다면?
28kWh x 0.8 ÷ 350kW = 0.064hour=3.8min
계산상 3.8분이 나옵니다. 실제 이런 초(超)급속충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와 컨버터의 성능개선은 물론이고, 몇 대만 늘어놓아도 수메가 와트(MW)에 달하는 전기를 보낼 방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350kW 충전이 현실화된다면 충전이 주유와 다를 바 없어지는 시대가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DC콤보 방식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충전방식이 될 것입니다. 산업부가 이 방식을 한국산업표준(㉿)으로 권고하고 있거든요.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입니다만, 국가가 운영하는 충전망이 향후 DC콤보로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전기차를 팔아야 하는 업계도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17년 현대 아이오닉 EV는 기존 충전방식이였던 차데모를 버리고 DC콤보로 변경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차데모 방식
CHAdeMO(CHArge de Move)는 말 그대로 이동하며 충전한다는 뜻 외에도 일본어로 차라도 한 잔?(お茶でも?)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충전을 할 수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의 이름입니다. 이름에서 보듯 일본에서 표준화된 기술이며, 닛산을 필두로 한 일본 자동차 기업'만' 사용 중입니다. 초기에 급속충전의 표준화가 불확실하던 때 현대차와 기아차도 잠시 사용했지만 현재는 기아 쏘울EV가 차데모를 쓰는 유일한 차입니다. 앞으로 국내에서 판매될 전기차 중 이 충전방식을 쓰는 차는 닛산의 2세대 리프밖에 없습니다.
차데모는 최대 63.5kW의 직류 충전을 지원하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앞서 DC콤보와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충전량은 45kW에 머뭅니다. 그래서 2017년 이전 제작된 차데모방식의 아이오닉 EV를 충전할 경우 충전속도는 DC콤보 방식과 완전히 동일한 30분 가량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차데모진영의 최대경쟁자는 DC콤보진영이며, 급속충전의 왕좌 자리를 놓고 맹렬히 경쟁 중입니다. 차데모는 이미 작년 말 150kW 충전방식을 발표했으며 현재 350kW 방식의 완성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충전표준이 DC콤보로 기울고 있는 지금, 차데모는 일본 회사만 쓰는 또 다른 갈라파고스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AC3상 방식
AC3상은 2012년 르노에서 만든 급속충전 방식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유럽에서 많이 쓰는 J1772 type2라 부르는 7핀짜리 충전 커넥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걸로 완속충전도 같이 합니다. 커다란 충전핀이 따로 달린 별도 급속포트를 쓰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름 그대로 교류(AC) 3상(3phase) 전류를 그대로 차에 부어넣기 때문입니다. 다른 충전방식과는 다르게 AC3상 방식은 직류변환 없이 교류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배터리가 교류를 사용할 리는 없으니 어디선가 직류 컨버팅이 되어야 할 텐데요. 이 방식을 쓰는 차들은 OBC(Onboard Battery Charger), 그러니까 차에 내장된 배터리 충전장치가 컨버터의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충전방식은 최대 43kW 출력(AC 380V, 63A)을 지원합니다. 이 방식을 지원하는 가장 최신 모델, 35.9kWh로 배터리를 증량해 한번에 213km를 달릴 수 있게 된 르노삼성 SM3 Z.E.로 충전시간을 계산해 보겠습니다.
35.9kWh x 0.8 ÷ 43kW = 0.668hour = 40min
흠, 딱 40분이 나오는군요. 급속충전은 40분만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배터리가 남아있는 실제 상황에서는 80%가 넘는 배터리를 채우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국내에서 이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시판 전기차는 르노삼성의 SM3 Z.E.와 테슬라의 모델 S입니다. 다만 테슬라의 차가 AC3상 방식의 급속충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충전기가 43kW를 줘 본들, 차가 그걸 못 받거든요. 테슬라 모델S에 내장된 직류 컨버터의 용량은 16kW입니다. 이걸로 40분을 충전하면 얼마나 충전이 되는 걸까요?
16kW x 0.67hour = 10.72kWh
테슬라 차량이 AC3상 급속충전기를 제한시간 40분동안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충전량입니다. 현재 판매 중인 모델 S 100D의 전비는 4.51km/kWh이므로 이것을 계산하면
10.72kWh x 4.51km/kWh = 48.35km
40분 충전하면 48km를 달릴 수 있는 정도가 충전될 뿐입니다. 차데모 충전기를 테슬라 차량에 쓸 수 있게 해주는 전용 어댑터가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이것을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충전기에는 어떠한 형태의 연장선도 판매·유통을 금지하도록 한 산업부 규정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테슬라는 나름대로의 급속충전 방식이 따로 있군요. 테슬라 고유의 급속충전 방식, 수퍼차저는 전기차의 물리 4편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