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 뒤쪽에는 망막이 있는데, 망막은 ‘retina'로 ’그물‘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 ‘retus'에서 온 말이다. 망막은 영화관의 스크린과 같은 기능을 하는데, 눈으로 들어온 빛이 선명한 상을 맺도록 하여 빛에 민감한 신경세포가 망막에 맺힌 상을 감지하고 이 신경세포들이 신호를 생성하면 그 신호를 뇌의 신경세포까지 전한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쳐다보면 장면의 영상이 망막의 수용체를 자극하여 복잡한 신경 활동을 일으키고 이 결과로 장면에 대한 지각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눈에서 오는 메시지는 먼저 시각피질이라는 두뇌 뒤편의 영역으로 보내지며, 거기서 두정엽의 경로와 측두엽의 경로를 따라 중계된다. 측두엽은 개별적인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고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하며, 두정엽은 외부 세계의 공간적 배치를 분간하여 공간 속을 움직이거나 대상을 향해 손을 뻗거나 날아오는 것을 피하거나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왼쪽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가? 이 그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무런 형태를 느끼지 못하고 흑백의 명암만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얼룩으로 지각하는데, 이는 감각 자극을 하나의 정신적인 지각상(percept, 지각된 자극의 정신적 표상)으로 형상화하거나 조직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재인(recognition)은 전에 경험한 적이 있는 어떤 것과 다시 마주쳤을 때 느끼는 친근감을 근거로 하여 기억을 환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무의미한 얼룩 그림을 일단 ‘소’라는 정신적인 지각상으로 형상화하게 되면 이후에는 이 그림도 ‘소’로 재인할 수 있다.
-<언어와 인지>(임혜원 지음)
잎, 줄기, 뿌리의 도관(물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속적인 물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잎에서 증산작용을 하면 줄기 속의 도관 내 물이 빨려 올라가면서 뿌리까지 연속적으로 연결된 물기둥이 위로 이동한다. 이때 어린뿌리 주변의 토양에 있는 무기양분(inorganic nutrient 또는 mineral nutrient)은 물에 녹아 있는 이온의 상태로 수동적으로 물과 함께 뿌리 속으로 들어간다. 뿌리 표면을 통과한 무기양분은 수평 방향으로 피층(cortex)을 지나 중앙에 있는 도관을 향해 이동하는데, 먼저 내피(內皮, endodermis)에 도달한다.
<문답으로 배우는 조경수 관리지식>(이경준)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다음 문장을 보며 생각해보자.
“이는 감각 자극을 하나의 정신적인 지각상(percept, 지각된 자극의 정신적 표상)으로 형상화하거나 조직화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봤는데, 누구는 글로 정확히 표현하고, 누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저자의 말처럼 ‘정신적인 지각상’으로 ‘형상화’하거나 ‘조직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형상화나 조직화는 언어화를 말하는데, 왜 그것이 사람마다 다를까? 아니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잘 해낸다는 것은 전달과 소통을 말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늘 말하지만 매일 써보면 된다. 언어는 정신적 지각상의 영역으로 뭉개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질서 있게 만들려면 자꾸 표현해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빨리 이 과정에 익숙해질까? 사물이나 풍경을 볼 때 선(line)을 그으며 보면 좋다. 개별적인 모든 사물은 분명 외곽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물들이 놓여 있는 풍경은 대부분 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뭉개져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을 그으며 그것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선을 따라 사물을 보면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 비교가 되기에 설명이 선명해진다. 그 다음으로 색과 명암을 보면 된다. 그래야 역시 비교가 되어 설명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객관적인 환경에 대한 묘사는 길게 하기가 어렵다. 집요한 관찰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정신의 영역에 넣어 놓고 감정을 바로 이입시켜 감정의 언어로 사물들을 그려낸다. 그러다 보니 글이 불분명해진다. 처음에는 다 괜찮다. 자꾸 쓰다 보면,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기 글을 들여다볼 줄 알면,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뇌에 부하가 덜 걸려 글쓰기가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 문장을 또 보자.
“재인(recognition)은 전에 경험한 적이 있는 어떤 것과 다시 마주쳤을 때 느끼는 친근감을 근거로 하여 기억을 환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쓰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의식적 관심과 관찰은 글쓰기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좋을 글이 써질 것이다. 원리는 그렇지만 나도 힘들다. 글쓰기, 참 좋지만 어려운 길인 것 같다.
다음 문장을 보자.
“잎, 줄기, 뿌리의 도관(물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속적인 물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인식의 출발은 우리 몸이 혈관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다. 이런 사고가 인지언어학이다. 그래서 언젠가 식물은 도관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나올 수 있다. 의문이 내 삶의 즐거움이다. 막나가는 것은 아니고 균형적인 의문이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칼 세이건의 말이다. 세상을 인식해나가는 훌륭한 방법 같다.
첫댓글 본문에 나오는 왼쪽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