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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 언약은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A)의 선교 신학을 가장 잘 나타낸 문서이다. 로잔 언약을 통하여 복음주의 선교 신학은 총체적 선교 신학으로 열매를 맺었다. 특히 복음 전도 및 선교에 있어서, 영혼 구원과 사회 구원을 이원화하고 그중 개인 구원의 문제에만 함몰되어 왔던 기존의 이원론적 선교 신학을 벗어나, 전인 구원이라는 선교적 총체성을 추구했다. 이것이 로잔Ⅰ 대회에서 로잔Ⅲ 대회까지 이루어진 복음주의 선교 신학의 주된 흐름이다.
로잔Ⅰ 대회 이전의 흐름(1966-1974. 6)
로잔 대회 이전에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세 번의 대회를 통하여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 대회들을 통해 채택한 성명서를 살펴보면,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고뇌한 흔적은 보였지만, 뚜렷한 신학적 입장을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휘튼 선언(The Wheaton Declaration, 1966. 4)
우선 1966년 4월 미국의 일리노이주 휘튼에서 ‘복음주의 해외 선교회’와 ‘교파 해외 선교회’ 소속의 102개의 선교부의 대표가 주축이 되어 채택한 “휘튼 선언”을 보면, 그 초안에서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주 보수적인 성격의 성명 초안이었다. 그러나 이 초안을 미리 입수한 비(非)서구 교회의 대표들은 이에 반발하여 여러 분과위에서 격한 토론과 연설을 하였으며, 총회에서는 결국 다음과 같은 몇몇 조항을 덧붙이는 데 성공했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달리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자주 세상 문제들과 정직하게 부딪혀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성경적 원리들을 인종 차별, 전쟁, 인구 폭발, 가난, 가정 붕괴, 사회 혁명 및 공산주의와 같은 문제들에 적용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모든 복음주의자가 전 세계 인종의 평등, 자유 모든 형태의 사회 정의를 위하여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싸울 것을 촉구한다.
이 휘튼 선언은 루벤 로레스(Ruben Lores)가 이 대회가 끝난 직후에 말한 것처럼, “과거의 그릇된 두려움을 쫓아버리고, 또 많은 복음주의자가 사회 활동을 자유주의 신학과 동등시하게 만드는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는 일에 큰 도움이 되는 대회였다”라는 평을 받았다. 사실 이 대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복음주의자들이 신학화 작업을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게 해준 대회였다.
(2) 베를린 세계 복음 전도 대회(The World Congress of Evangelism, 1966. 10)
그러나, 이런 휘튼 선언에 대한 보수적 반동은 곧 일어났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을 중심으로 한 선교 대회가 1966년 10월 베를린에서 열렸다. 이 세계 전도 대회는 전 세계 100여 국의 대표 1,111명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서 빌리 그래함은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주요 과제로 되돌아온다면, 교회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어떤 다른 것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인간의 사회적, 도덕적, 심리적 필요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종래의 보수적 확신을 재차 단언하였다.
이 대회는 복음주의 진영 내의 같은 우파인 아서 존스턴(Arthur Johnston)조차도 “서구적인 조직과 표현이 지배적이었던 대회였다”라고 인정했으며, “교회의 유일한 선교적 사명이 복음 선포임을 확고하게 주장하긴 했지만, 사회 활동을 위한 신학적 기초는 세우지 못한” 대회였다.
(3) 시카고 선언(Chicago Declaration of Evangelical Social Concern, 1973. 11)
1966년 4월과 10월에 모인 앞의 두 대회의 대립적 성격은 그 후 약 7년간 세계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 1973년 11월의 추수 감사절 워크숍에서 나온 “복음주의적 사회적 관심에 대한 시카고 선언”(Chicago Declaration of Evangelical Social Concern)을 통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선언은 이후에 로잔 언약을 향해 진일보할 수 있는 신학적 토대가 되었다.
이 선언서는 “본질상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삶을 전적으로 주장하신다”라는 확언과 함께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지 못한 잘못”에 대한 고백을 표명하며, 그 부분에 대해 “회개하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불의에 맞서는 제자도 정신을 발휘해 줄 것”을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요청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모임 직후,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빌리 그래함은 자신의 변화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따라서 나는 최근에 발표된 복음주의적 관심에 대한 시카고 선언의 대부분에 동의한다. 나는 우리가 사회구조의 변화를 잘 알아서 우리가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세 대회는 결국 ‘로잔 언약’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던 복음주의자들이 어떻게 일치를 향해 나갔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일들을 배경으로 전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는 비로소 로잔 언약을 통해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란 쟁점에 대한 보편적이며 기초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로잔Ⅰ 대회와 로잔 언약(1974. 6)
150개 국가와 135개 교파의 대표 2,473명과 1,000명의 참관인이 참석함으로써 「타임」(Time)지가 “기독교 역사이래, 사도 시대 이후 최대의 광범위한 기독교 집회”라고 평한 ‘세계 복음화에 관한 국제 대회’는 1974년 6월 16일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되었다. 참석자들의 관심이 대회 중에 제기된 여러 토론 주제 중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쟁점에 가장 크게 쏠렸기 때문에, 이 토론은 결국 총회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조항이 “로잔 언약”에 포함되었다.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하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 우리는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하여 참회한다. …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제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중, 조종남 옮김)
한마디로, 로잔 언약은 ‘교회의 선교’를 ‘복음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수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으로 축소하려는 모든 시도’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또한 그동안의 복음주의 진영 안에 명백하게 반영되었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보수적 태도에 대한 회개가 이루어졌다. 한편, 이 정도의 선언에도 비(非)서구 교회의 대표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소위 ‘급진적인 제자도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소위 제3세계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은 “로잔에 대한 반응”이란 문서를 폐회 당일 총회에 제출하였는데, 이 문서는 총회 석상에서 즉각 500여 명의 찬성 서명을 받았으며 의장인 존 스토트의 열렬한 환영을 받아 로잔 언약의 부록으로 채택되었다. 이 문서는 소위 ‘총체적 선교’란 개념을 창출하였으며, 로잔 언약의 성격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인 강력한 문서였다.
로잔Ⅰ과 Ⅱ 대회 사이(1974. 4-1989. 7)
(1) 검소한 삶에 대한 복음주의의 헌신(An Evangelical Commitment to Simple Lifestyle, 1981)
이후 1979년 10월의 인도 마드라스 대회와 1980년의 남미 복음화 대회는 이 총체적 선교 개념을 더욱 지지했으며, 그 결과 ‘로잔 위원회 신학 및 교육부’와 ‘WEF 신학 위원회 윤리 및 사회 분과’는 1981년 “검소한 삶에 대한 복음주의의 헌신”을 발표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 위원회는 ‘교회가 하나님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설 것을 요청’했으며, ‘정의롭고 책임성 있는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2) 휘튼 선언(1983)
로잔 대회 이후의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의 신학적 토론은 1982년의 그랜드래피즈 회의를 거쳐, 1983년 휘튼 선언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두 정리되고 일치됨으로써, 그간의 긴 신학적 갈등과 논쟁은 종결되었다. 휘튼 선언은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와 ‘사유 재산권’, ‘무기 경쟁’, ‘국제적 불의’를 지적하며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다시 강조하였다.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미래적이고, 사회적이며 개인적이고, 물질적이면서 영적’이라는 총체적 개념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르네 빠디야(Rene Padilla)의 말처럼, “오늘날 대부분 복음주의자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만 힘쓰고, 육체적인 필요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은 “인간의 필요에 반응하는 교회”라는 성명서를 휘튼 대회에서 채택하며, “인간의 생활 전체를 하나님의 변혁시키는 권능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또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오직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요, 정치나 다른 활동에의 참여가 그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지라도, 우리는 비(非)참여 그 자체가 바로 기존 질서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반드시 악한 사회 구조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그 구조를 지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되어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정치적 참여의 불가피성을 확언했다(1983년 휘튼 선언 1장 3항).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기반에 기초하여 복음주의 교회의 새로운 총체적 선교 개념을 창출하였다. 특히 필리핀과 남미 등 비(非)서구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비(非)서구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H. Coon, R. Padilla, O. Costas, R. Sider, A. Kirk)은 총체적 선교 개념을 가다듬고 내용을 채우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1989년에 치러진 로잔Ⅱ 대회의 마닐라 선언에 반영되었다.
▲스위스 로잔 ⓒPixabay
로잔Ⅱ 대회와 마닐라 선언(1989.7)
1989년 7월에 필리핀 마닐라에 로잔Ⅱ 대회로 모인 170여 나라 출신의 3,0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은 마닐라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의 서문에는 세계복음주의협의회가 일련의 신학적 발전을 하게 된 공로가 “지난 15년 동안 복음과 문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검소한 생활 양식, 성령, 중생과 같은 주제로 모인 소규모의 신학 협의회”에 있음을 천명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로잔Ⅱ 대회에서 ‘총체적 복음’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이 나오게 만든 15년간의 신학적 주제 중 다수가 사회 문화 변혁에 관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이 선언문 제1부 21항의 신앙고백 중 9항을 보면, “우리는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므로 개인적이든 구조적이든 모든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면서 이 예언자적 증거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을 고백한다”라고 적혀있다. 또, 제2부의 12개 항목의 주제 선언 중 4항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선포는 그의 나라에 용납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예언자적인 지적을 하도록 요청한다. 우리가 개탄하는 악은 제도화된 폭력, 정치적 부패, 사람과 땅에 대한 온갖 형태의 착취, 가정 파괴, 낙태, 마약 유통, 인권의 유린과 같은 파괴적인 폭력을 의미한다. … 참된 선교는 언제나 성육신적이어야 한다. 참된 선교를 위해서는 겸허하게 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사회적 현실, 비애와 고통, 그리고 압제 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희생 없이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우리는 로잔Ⅰ과 Ⅱ사이에 비(非)서구 지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온 총체적 선교 개념이 수용되어 로잔Ⅱ 대회에서 문서로 만들어진 사실을 볼 수 있다. 로잔Ⅰ 대회가 언약이라는 형태의 내부적 문서를 채택한 데 비하여 로잔Ⅱ 대회는 선언이라는 더 적극적인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하였다.
로잔III 대회와 케이프타운 서약(2010)
2010년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제3차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세계 각국의 복음주의 신앙인들의 숫자에 비례하여 대표단을 선발했는데, 총 4,000명의 대표단이 선발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100년 전에 열렸던 에든버러 선교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비(非)서구 지역의 대표권과 발언권이 크게 신장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교회는 원래 무려 230명의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는데, 중국 공안 당국이 공항에서 이들의 출국을 저지함으로써 극소수의 대표들만 참여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다. 이 일에 대해 로잔 대회의 의장인 더그 버드셀은 “이는 마치 브라질이 빠진 월드컵과 같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대회 전체는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진행되어 “케이프타운 서약”을 그 열매로 하나님과 온 세계 교회 앞에 드릴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특히 “회개에 따라오는 온전함과 순종으로의 부르심”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박해나 다른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백성들의 불순종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고 반성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권력과 교만, 인기와 성공, 부와 탐욕의 우상에 빠져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하나님의 선교를 훼방하는 일을 중지하고 겸손하고 온전하고 단순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하였다. 이것이 케이프타운 서약 가운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한 전언이었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케이프타운 서약은 ‘총체적 선교’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복음 전도와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기존의 입장을 창조 세계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까지로 더욱 확장하여 강조하였다.
총체적 선교는 복음이 개인들과 사회와 창조 세계에 대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분별하고 선포하며 살아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사회와 창조 세계 모두는 죄로 인해 깨어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는 구속적 사랑과 하나님의 선교에 포함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포괄적 선교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서약, 7a)
2) 케이프타운 서약은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다. 동시에 억압받는 자, 국외자, 굶주린 자, 고아와 과부들을 돌볼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 이 사회의 정치적이거나 법적인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그러한 책임을 부여하신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 율법과 예언자들, 시편과 지혜서들, 예수님과 바울, 야고보와 요한에 의해 – 실천적인 사랑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반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자비와 긍휼의 행위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반대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는 곳마다 악과 불의를 고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열정을 공유하는 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 실패하며,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들을 대신하는 연대성과 옹호를 포함하여 정의를 촉진하는 데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끊임없는 기도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전쟁의 차원으로서 악에 대항하는 이러한 영적 전투를 인식한다. (서약, 7c)
3) 케이프타운 서약은 사랑의 계명을 연합과 연결하여 세상의 모든 분열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을 강조한다.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확신하는 표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질적인 분열의 장벽들, 인종과 피부색, 사회계층, 경제적 특권이나 정치적 노선의 장벽들을 넘어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때 나타난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수치스러운 극단적인 물질적 불평등으로 심히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모든 이들을 위한 상호관계와 충족함이 있어야만 된다는 바울의 교훈과 열망을 부정한다. 우리는 때때로 선교를 위한 우리의 열망에 해독을 끼치는 경쟁을 규탄한다. (서약, 9a)
4) 케이프타운 서약은 총체적 선교를 그리스도인의 의무로써 확증하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복음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한다. 이 둘은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우리의 교리들,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들이다. …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전체성 가운데 우리를 변혁시켜야만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통전적 선교(integral mission)는 복음의 선포와 복음의 증명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나란히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삶의 영역들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것처럼, 통전적 선교 안에서 우리의 선포는 사회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변혁하는 은혜에 대한 증거를 담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 참여는 복음 전도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무시한다면 세상을 섬기라고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가져갈 아무것도 없게 된다. (서약, 10c)
케이프타운 서약은 그 전문(Preamble)에서 이미 “우리는 좋건 나쁘건 간에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과 전 세계적으로 변하는 정치 경제적인 힘의 균형에 충격을 느낀다. 전 세계적인 빈곤, 전쟁, 질병, 생태학적 위기, 기후 변화와 같이 우리가 직면하는 변화들은 우리에게 슬픔과 불안을 초래한다”라고 21세기의 선교적 상황을 정리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 분석이 그 자체로 총체적이며 여기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대답도 또한 총체적으로 정리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로잔III 대회의 선언문인 케이프타운 서약은 더욱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을 잘 인식한 총체적 선교 보고인 동시에 실행을 특별하게 강조한 실천적인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로잔Ⅲ 대회 이후의 한국 교회의 과제
이와 같은 전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들의 동향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와 기독교 선교 단체들은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의 이러한 흐름과는 동떨어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지난 80년대 이후 급변했던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맞이했으며, 그 결과 한국 사회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력은 지난 30년 동안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사회에 대한 접촉점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 전도의 협소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과 청년들과 학생들이 교회에 실망하여 등을 돌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과 선교 단체들이 극복해야 할 점들은 무엇일까? 우리 복음주의 선교 단체들은 80년대 전반에 기독교 세계관 확립 운동을 기축으로 한 ‘균형 잡힌 기독교’의 수준에만 머물러서 ‘총체적 기독교’로 나아가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의 한계요, 동시에 전기의 개혁주의적 근본주의보다는 후기의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의 경향에 더 뿌리 깊이 서 있는 한국 교계의 폐쇄성, 교조성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점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신학적 폐쇄 및 고립화에서 탈피’해야만 한다.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세계복음주의 진영 내에서도 가장 우파적이다. 또한, 그동안의 한국의 대다수 교회가 미국의 자본주의적 상업주의 신학의 성격을 띤다고 비난받는 교회 성장 신학에만 매달려 물량주의적 교회 성장을 열렬히 추구해 왔었다. 한국의 복음주의적 선교 단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직 ‘구령 전도’와 ‘기독교인의 개인적인 인격 성숙’만을 목표로 한 미국 중산층 교리의 틀에 맞춘 협소하고 빈약한 복음 전도와 제자도 개념을 근거 삼아 선교 활동을 해왔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로잔 언약에 참여한 서구와 미국의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비(非)서구지역의 신학자들도 포괄하는 전 세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교회가 애써 확립한 총체적 선교개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제는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과 선교 단체들이 편협한 신학적 입장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성경 신학적 기반 위에 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를 주축으로 한 선교 신학과 선교 방법론을 가지고 총체적 선교를 수행해야만 한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이원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과 정의’를 함께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신학의 자주화’이다. 물론, 이것은 계시적 보편성과 교리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과거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 단체가 교육하는 내용은 한국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왜 그토록 아름다운 신앙적이고 교리적인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그 보편성에 기초하여 한국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 예를 들면, 극단적인 이념 분쟁의 문제, 남북통일 문제, 전통문화와 세속 문화에 관한 입장,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문제, 노동에 관한 문제,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관한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문제,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정착에 관한 문제 등등에 대하여 신학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서구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관념적 명제들에만 매달리는 결과만을 양산해 내고 말았는가?
한마디로, 한국의 신학이 서구의 신학에 뿌리 깊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보아 알겠지만, 그동안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변화의 가장 중요한 추동 세력은 예전에 제3세계라고 불렸던 비(非)서구 지역에 속한 주체성 있는 신학자들이며 그들의 단합된 목소리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저들은 각기 자기 모국의 교회가 부닥친 문제를 신학화하면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가 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요청에 답변하는 가운데 세계 신학은 서구 일변도의 신학적 주제들을 벗어나면서, 새로운 교회의 현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또 그에 따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세계 신학은 그 다양성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전한 신학과 교리적 기초에 서 있되 창조적인 신학 작업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만, 한국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이 시대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제1차 세계 복음주의 로잔 대회(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그 유명한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이 체결되었다. 제2차 마닐라 대회(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마닐라 선언(The Manila Manifesto)이 채택되었다. 제3차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케이프타운 서약(The Cape Town Commitment)을 결과물로 만들어 냈다.
이처럼 언약(Covenant), 선언(Manifesto), 서약(Commitment)으로 표현되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귀중한 문건들이 우리 세대 복음주의의 총체적 신앙고백으로 남게 되었다. 이 유산을 지금(Now), 이곳에서(Here) 적용하고 실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과 선교 단체의 시대적이고 선교적인 과제일 것이다.
이문식 광교산울교회 목사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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