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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과 삶 속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과수원에 가서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 참 신기하죠.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기 위해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찡그리지 않는단 말이죠. 올해 정말 사과를 많이 맺어야 하는데 하면서 애써 힘을 주지도 않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뿌리가 올라온 그 뿌리 속부터 올라온 그 생명력으로 공급받게 되고 때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해야지 사랑해야 돼 참아야 하는데 용서하라 하는데 용서해야지 내가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되는데 이상하게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성경을 읽어보니까 이거 해야 된다 이거 해야 된다 이거 해야 된다. 그동안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왜 예수님은 사랑이라 하셔서 사랑을 더 해야 되는지, 왜 예수님은 자꾸 참으라 참으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지, 왜 예수님은 막 화가 나 죽겠는데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점점점점 많아지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부터 함께 나누게 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은 그 열매에 대한 이야기죠. 우리가 같이 한번 갈라디아서 말씀을 읽어봅니다. 시작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 성경은 이것을 누구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의 열매라고 말씀합니까?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까?
답이 나와 있죠. 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열매는 누가 맺는 거예요? 내가 맺는 겁니까? 성령이 맺는 겁니까?
질문이 너무 어렵죠. 성령의 열매는이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열매를 맺을 때 내가 맺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맺는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5장 5절 말씀도 같이 읽어봅니다. 시작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는 포도나무요. 나는 누굽니까?
주님 그 나는 여기 나는 나 말고 나는 포도나무요. 해서 나는 누구예요?
우리 주님 하나님 너희는 가지라 가지는 누구예요?
우리죠 나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음이 먼저라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 열매라는 거예요. 가지는 열매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나무에 붙어 생명을 공급받기 시작하면 어느 때가 된 시각 열매는 맺혀지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9주 동안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텐데 저는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하나씩 더 얹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랑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더 참으십시오. 그렇게 가서 그렇게 절제하십시오라는 숙제를 드리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죠.
여러분 이렇게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더 얹어 여러분들의 신앙을 무겁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9주 동안 동일하게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 붙어 계십시오라는 거예요.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신다 하셨으니 내 안에 성령께서 붙어 있는 우리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만들어내지 못해도 사랑이 흘러가게 되는 것이고요. 상황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 우리 안에 샘솟듯 솟아나게 되는 것이고, 참기 어려웠던 사람을 조금씩 품게 됩니다. 내 힘으로 다스리지 못했던 것까지 조금씩 절제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었구나. 예수님께 붙어 있으니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번 9주 말씀은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나는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잘 맺고 있는가
이것을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내 안에 일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그것을 통해서 발견하게 될 거예요. 사랑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기쁨이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있게 되는구나 등등등 이것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내 안에 성령님께서 계셔서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 나는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맺었지 내가 이것밖에 못 맺었네. 앞으로 이렇게 더 열심히 맺어야겠다 평가하고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 꼭 기억하셔서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고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삶,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주님께 붙어 있을까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시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오늘 그 첫 번째 열매를 만나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을 맺게 되죠. 첫 번째 사랑은 하는 것보다 먼저 받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니다. 시작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여러분 이 구절을 자세히 한번 보십시오. 사랑이 흐르는 길이 보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께로, 예수의 사랑이 우리에게로, 우리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간다라는 사실을 보게 되죠.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꾸 마지막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저 사람 사랑해야지 내가 참아야지 내가 용서해야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의 것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빈 잔으로 다른 사람의 잔을 채울 수 있습니까?
내 안에 사랑이 메말라 있는데 계속 사랑을 퍼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 지치고 만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랑하라 말씀하시기보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에도 말씀합니다.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우리가 사랑함은 뭐 때문에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먼저 사랑하시는 분이 누구라고요?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고 성경은 일관성 있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잘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렐루야.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해 보여주셨다. 이 말 속에는 우리가 괜찮아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는 게 아니에요. 내가 믿음이 좋아졌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는 게 아니죠. 여전히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여러분 이 사랑을 잘 보여준 사건이 베드로 사건이죠. 베드로가 예수님께 큰 소리 칩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자신 있게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됐죠.
아마 베드로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다 끝났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 쳐놓고 이게 뭐라 이거밖에 안 되는 나는 이제 하나님과 끝, 예수님과도 끝.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를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지 요한복음 21장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시고 말씀하신 것이죠. 와서 조반을 먹어라. 실패한 베드로에게 먼저 따뜻한 밥 한 끼를 우리 주님이 준비해 주셨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사명을 맡기셨다.
여러분 베드로는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놓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한두 번 실망시킨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거든요. 하나님한테 하루에 몇 번씩 실망을 시켜드리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는 하나님 실망 안 시켜드리고 정말 믿음으로 정말 멋지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말하기가 부끄러울 때가 참 많죠. 내가 한 번 하나님 실망시킨 것 아니고 수도 없이 하나님을 실망시켰는데 오늘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어요?
넘어지기도 했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도 했던 나의 삶. 기도보다 걱정을 더 많이 했던 것이 나의 모습이었는데,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서 있다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그만큼 사랑하셨다는 증거인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것만큼은 꼭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할렐루야 우리 한번 이렇게 선포합시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시작 더 크게 한번 해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를 우리가 고백할 줄 알아야 돼요.
물론 이것이 내 마음 가운데 부담으로 다가오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죠. 목사님 저는 제가 잘 압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랑받기 힘든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는 얘기죠. 그럴 때마다 제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여러분 그런 마음이 찾아올 때 자신의 모습을 자꾸 보지 마시고 십자가를 보십시오. 여러분 십자가는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인 것이죠.
내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받은 것이 아니야. 그래서 여러분 내가 사랑받을 존재인가를 막 계산하고 따지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므로 사랑의 시작은요. 더 사랑해야지라는 결심이 아니라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 반드시 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물이 가득 찬 잔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에게 사랑이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이고요. 기다림을 받아본 사람들이 기다릴 줄 아는 거예요. 품어주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 품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사랑이라는 것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이 차고 넘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이것이 성경이 우리 안에 맺어주시는 첫 번째 열매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서 먼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에 매주 나오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하는데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문제 아니겠어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왜 예수 믿습니까?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기 위함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했어요.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자기 생명을 통째로 내어줌까지 사랑했어요. 그 사랑을 알아다오라고 말씀하시는 게 성경이에요. 그 사랑을 우리는 충분히 알아야 돼요. 야 내가 내 자녀를 누구에게 내어줄 수 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독생자들을 내어주셨다. 내가 내 생명을 누군가를 위해서 어떻게 드릴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해서 그 생명을 주셨다. 이 사랑이 내 안에 채워지고 채워지고 절절히 느껴질 때에 내가 정말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죠.
바라기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날마다 거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요. 사랑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우리는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죠.근데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면 그다음에는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그렇죠 물이 어디엔가 채워져서 흘러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여서 썩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흘러가면 어떻게 돼요?
흐름과 동시에 주변이 생명력 있게 되는데요. 그 물로 인해서 죽어가던 것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죠. 사랑은 내 마음에 담아두시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주신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많이 채워야 돼요. 내 그릇 안에 가득 채워 넘치도록 채워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크구나라는 것을 자꾸 채워주셔야 돼요. 그리고 그것이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가 통로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이 12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12절 말씀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여기에서도 순서를 잘 보셔야겠죠. 서로 사랑하라가 먼저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가 먼저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임할 때 가능한 거죠.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될 존재가 맞아요. 그래서 기독교의 본질이죠. 서로 사랑하라 이것을 우리는 추구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서로 사랑해야지 해서 하면은 그것이 힘들고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 사랑의 충만함이 내 한 가운데 임할 때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먼저 받은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요 마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요한일서죠. 3장 18절은 말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죠.
그러나 행함과 진실함은 언제 나옵니까?
내 안에 사랑이 채워서 흘러갈 때, 즉 사랑에는 결국 손과 발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의 이야기를 알죠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길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보았어요. 레위인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어요?
그들은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어떤 사마리아인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사마리아인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 거죠. 이 마음이 생겼어요. 사랑의 마음이 채워진 거죠. 그런데 불쌍히 여기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부의 내용을 보면 그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주막으로 이동했습니다. 비용을 지불해 줬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손과 발이 된 것이죠. 마음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마음이 흘러나와서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싸매어주고 태워주고 주말까지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지불하는 수고가 그에게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얼마 전 네팔의 큰 재난이 일어나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모두 경악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다 잃어버렸고 고통 가운데 있는 모습을 우리 모두가 보았죠. 우리도 2주 전에 금요 성령 태 집회를 통해서 그들을 위해서 또 기도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아주 멀리 있는 자들이죠. 사실 그들을 잘 모릅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죠.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참 안타깝다 그러고 끝낼 수 있어요. 내 가족이라든지 지인 내가 아는 사람이면 다르겠지만
사실 여러분 네팔에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안타깝다. 화면을 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랑의 열매를 맺으시면 달라지는 거죠. 그들의 아픔이 남의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기도의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내가 가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저들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죠.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네팔이 아니어도 다른 것도 그렇지만 가까이에 있는 주변의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창한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중요한 거죠. 아픈 사람에게 보내는 짧은 문자 한 구절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이죠. 외로운 사람에게 먼저 전화 한 통 걸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으로 흘러가게 되는 거죠. 고통받는 이웃에게 작은 것 나눠줄 수 있는, 그러니까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도관은요 물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닙니다. 들어온 물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가 사랑의 원천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수도관이 되어서 그 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수도관과 같은 것이 우리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번 한 주 여러분 내가 더 사랑해야지 애쓰기보다 이렇게 기도하셨으면 좋겠어요. 주님 주님께 받은 사랑이 오늘 나를 통해 필요한 누군가에게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게 어렵지는 않지만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까 저 사람을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사랑해야지 애쓰지 말고 기도하시자고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길 원합니다. 나를 통해서 그 사랑이 흘러갈 수 있도록 내 안에 충만하게 하시고, 충만함이 차고 넘쳐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시옵소서. 그리고 한번 내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 곁에 이미 사랑이 필요한 한 사람을 예비해 두셨는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대단한 일을 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히시는 성령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랑 안에 거할 뿐 아니라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사랑은 경계를 넘어 흘러야 된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고 사실 하기 쉽지 않은 거예요. 사랑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는 한 가지 어려운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어디까지 사랑해야 됩니다. 쉽게 말해 누구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요.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해요. 말이 잘 통합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사랑하는 거 비교적 쉽죠. 저 사람이 나에게 호의적인데 왜 못해요? 나도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거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때로는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 사람은 나하고 완전히 결이 달라 성경적이지도 않고 물론 그렇죠.
세상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살겠습니다. 너무 나하고 맞지 않아. 저 사람은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야.
여러분 그때 사랑의 물이 흘러가는 그 앞에 저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흘려보내야 됩니까라는 높은 둑이 하나가 생기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구별하잖아요. 이 사람에게는 사랑이 흘려보낼 수 있어. 근데 저 사람이 나에게 너무 모질게 했어. 나를 너무 속상하게 했어. 그러면 물이 하나님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내가 저 사람 사랑해도 됩니까라는 둑이 생겨요. 그러면 가다가 물이 막혀버리는 거죠. 흘러갈 수가 없다라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늘 우리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사람들이 가까이하기 꺼려했던 세리를 찾아갔어요. 당시에 사람들이 매우 싫어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를 찾아갑니다.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을 나눠서 일부러 그에게 찾아갔다는 거예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진리의 기준을 없애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걸 잘 기억하셔야 돼요.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거예요. 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동시에 죄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기에 놀라운 은혜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진리를 붙드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서로 반대되지 않다는 거 내가 진리를 붙들었으니까 이 사람은 사랑하고 이 사람은 사랑하지 말아야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예수님 안에서는요. 여러분 진리와 사랑이 함께 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진리와 사랑을 함께 가셨던 것이 내려오시다가 포스터를 주보를 미리 보셨다면 이번 토요일 날 동성애 퀴어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몇 년째 지금 계속 오래 됐죠. 그거 할 때마다 대구 경북 지역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대회를 합니다. 올해도 예정이 있죠. 그래서 자꾸 연락이 와요. 참여해 달라고 문자도 오고요. 저런 우편도 오고요.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서 참여하자 좋은 취지로 저도 좋게 생각합니다. 참여하실 수 있는 분들은 참여하셔서 좋은 목소리를 내시는 거 저도 찬성하고 필요하시다면 하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참여 여부 이전에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먼저 좀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를 분명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걸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저 모습 저 행동 동의할 수 없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조롱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 그것도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5장 44절을 통해서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시작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러분 모든 것에 동의하고 동의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장한 것은 사랑해야 된다 기도해야 된다. 이 차이가 중요한 것이죠. 사랑은 모든 것을 옳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그러니까 여러분 잘못됐다고 우리는 말해야 돼요. 동성애는 성경적으로 잘못됐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셔야죠.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이건 확실하게 우리가 말해야 돼요. 그러나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 돼. 그 자리에 서서 미운 감정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적어도 하나님 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우리도 세상 기준과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는 적어도 소리를 낼 때에는 그를 향한 온전한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금요일날 우리는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토요일날 가서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훨씬 더 중요해요. 우리가 가정과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경적 가치관이 바로 세워지는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동시에 그곳에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진리를 붙드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품는 예수님의 마음도 우리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 주님은 기도하셨어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요.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에게 흘러가는 사랑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흘러가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사랑이 지금 우리 안에도 흐르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 사랑이요. 우리가 예수 믿고 주님께 붙어 있는 자들이라면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좀 생각해 보시면 예전 같으면 미워했던 사람을 위해서 한 번이라도 기도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있는 거죠. 예전 같으면 판단부터 했던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 저 사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라고 우리가 기도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그것이 있다는 거 그걸 여러분 작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을 대접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라기는 예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경계를 넘어 더 멀리 흘러가는 그러한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번 주에 더 사랑해야지 이를 악물지 마시고 가지는 열매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안에 하십시오. 계속해서 반복해 말씀드립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십시오. 주님께 붙어 있으십시오. 주님과 함께하십시오. 그래서 흘러가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예수 믿고 직분 있고 내가 목사인데 적어도 이 정도 사랑은 해야지 그러면 그게 얼마나 큰 짐인 줄 아십니까?
그거 안 되면 속상하고 그거 안 되면 화나고 이것밖에 안 되나 하나님 저는 그것밖에 안 된다. 늘 이런 패턴으로 살아가야. 그러나 여러분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는다. 그러면 나의 삶 가운데 그 사랑이 흘러가고 벽이 생겼던 그 벽이 허물어지면서 경계를 넘어 만나는 이들, 또 나와도 맞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흘러가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고 예수 믿는 사람,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가져야 될 귀한 사랑의 마음.
여러분 원리를 아셨으니까 살아가려고 애쓰지 마시고 이번 주 한 주 동안 주님께 열심히 붙어 있어 주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채워주시기. 여기 가도 주님 사랑 저기 가도 주님 사랑 가는 곳곳마다 사랑이 채워지고 채워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내 옆사람이 가족들에게 교회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이들에게 나하고 정반대되는 얄미운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가는 큰 축복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