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바느질이 갖는 의미가 점차 퇴색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는 남성이기에 바느질과 그다지 연관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어릴적 자다가 깨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바라본 어머니는 힘든 자세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지요.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기다리는 초조함이 담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의 모습은 으레 가정에서 이뤄지는 그러니까 어머니가 행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바늘에 실을 꿰어 이뤄지는 바늘과 실의 오묘한 관계 이런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웠습니다. 특히 유교적 성향을 지녔던 과거 가정 분위기상 말이죠.
현대 사회에서 그다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느질이겠지요. 궁핍함에서 탈피해서인지 구멍난 양말을 꿰어 사용하기 보다는 그냥 버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해진 옷에 덧해 다시 사용하는 빈도가 급격히 낮아지니 바느질은 그냥 예전 우리 어머니가 행했던 그런 구시대 유물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가정에서도 바느질하는 광경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 현대 사회이지요.
저는 요즘 가죽 공예를 배웁니다.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동물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만 저는 이름을 남길 그런 위인이 되지 못하니 그래도 가죽 공예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가죽 공예의 기본은 바로 바느질입니다. 여성들에 비해 남성이 바느질에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태어나 바늘과 실을 손에 잡아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제 어릴때 부엌에 들어가면 핀잔을 들었던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요즘 가죽 공예를 배우며 바느질에 대한 엄청난 사실을 깨닳을 수 있습니다. 바느질은 단순한 가정속 허드렛일이 아닌 생활에 아주 긴요하고 필수불가결한 기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른바 명품이라는 가죽 제품들이 각광을 받는 것은 바로 수공예로 진행되는 바로 그 바느질의 효력이라는 것입니다. 한땀 한땀 속에 깃들여진 노고와 희생이라는 것이지요. 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바느질을 할 때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아닙니까. 그 한땀 한땀이 모여 명품 제품이 되는 것이고요. 우리 어머니들이 만들주신 그 모든 것이 바로 명품이었겠지요. 그때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바느질속에 희생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요즘 절감합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언급하신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아픔이라는 의미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우리 어머님들이 늦은 밤 엄청나게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며 바느질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마도 숱하게 찔리고 피도 많이 흘리셨을 것입니다. 가정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없이 그 바느질을 존재하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요즘 세계 정세나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바느질 정신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바느질은 특정 물질과 다른 물질 그리고 성격이 다른 것끼리 이어주는 역할도 하지요. 정말 그 두가지 물질이 맺어질까 할 수도 있지만 바느질은 그런 우려를 해소시키지요. 바느질이 이뤄지면 만나기 어렵고 융합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사안이 굳게 맺어지는 것 아닌지요. 정치나 사회 문화 종교 등 많은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늘질에는 아픔과 희생이 동반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은 당연하고요. 끈기와 각오가 무엇보다 필수적이지요. 손에 입을 조그만 상처는 기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느질이 멋지게 이뤄지면 그런 아픔과 상처는 생각보다 싶게 치유되는 것이 바로 바느질의 매력이자 신비로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죽공예를 배운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어쭙지않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 하루 바느질을 배워가며 어머니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희생과 고단함... 나아가 수작업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가는 수공예 장인들의 노고를 새롭게 느껴봅니다.
2023년 11월 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