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합리성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 하버마스와 브뤼헐
현실에는 소실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네덜란드 화가 브뤼헐(Peter Bruegel, 1525~1569)의 그림 〈농가의 결혼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둘 다 식탁에서의 만찬이라는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두 그림이 식탁의 광경을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상반된다고 할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식탁의 모습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화면의 정중앙은 예수의 미간이며, 천장의 격자무늬 횡선들과 양쪽 벽에 있는 사각틀들의 윗면을 일직선으로 이어서 연장하면 정확하게 예수의 미간에서 하나로 만난다. 이는 소실점(vanishing point)이라는 원근법 장치에 의해서 정확하게 짜인 결과이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서 엄격하게 구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의 모든 부분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관객의 눈 또한 불가피하게 소실점으로 귀결되고 만다.
브뤼헐, 〈농가의 결혼식〉 The peasant wedding, 1568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1495~1497
소실점이 특정한 인물(주인공)에 맞춰진 〈최후의 만찬〉과 달리 〈농가의 결혼식〉은 보는 이의 시점이 한 인물로 수렴되지 않고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일상의 광경을 치밀하게 구성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소박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하버마스는 거창한 구호나 관념적인 추상으로서의 이성이 아닌 바로 브뤼헐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합리성에 주목한다. 하버마스의 사상적 목표는 억지스럽고도 강제적인 방식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개인들이 합리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브뤼헐의 그림에도 형식적으로는 분명 소실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소실점은 〈최후의 만찬〉에서처럼 특정한 한 명의 인물에 맞추어지지 않는다. 결혼식 이후 피로연이 펼쳐지고 있는 시골의 소박한 광경을 담은 〈농가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시골의 농가처럼 자유로움이 넘쳐흐른다. 우리의 시선은 화가가 정해놓은 한 점으로 수렴되지 않고 자유롭게 화면 곳곳을 탐색할 수 있다. 이 그림이 주는 가장 큰 자유로움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묘사에 있다. 결혼식 피로연인 만큼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신랑과 신부를 한눈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화면 정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화관을 쓰고 있는 통통한 여성이 신부인데, 신랑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분분하다. 신부로부터 좌측 세 번째 자리에 앉아서 그릇을 든 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남자가 그나마 가장 유력하게 신랑으로 추정될 뿐이다. 레오나르도와 달리 브뤼헐은 일상생활의 풍경을 치밀한 체계로 구성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소박하게 기록하고 있다.
미술사학자 스베틀라나 앨퍼스(Svetlana Alpers, 1936~)는 네덜란드의 풍경화에 나타난 특징을 ‘묘사의 기술(art of describing)’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한마디로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와 달리 네덜란드의 풍경화는 일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인위적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레오나르도의 그림보다는 다소 산만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일상을 묘사한 브뤼헐의 그림일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자유롭고도 산만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뤼헐이 그린 시골 피로연의 풍경은 자유롭고 산만해 보이는 와중에도 통일감이 있으며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닌다. 이 그림에서는 인물들 모두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결혼식 피로연’이라는 공동의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즉 자유로운 결사를 이룬다. 이처럼 일상은 체계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산만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행동이나 사물들 역시 나름대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비판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보를 잇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가 주목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나 관념적인 추상으로서의 이성이 아닌 바로 브뤼헐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합리성이다. 하버마스는 우리의 일상세계를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세계(Lebenswelt, the world of life)’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진정한 이성능력이나 합리성은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와 같은 인위적인 체계의 구성 능력에서가 아니라 얼핏 비체계적이고 난삽해 보이는 생활세계 속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하버마스의 사상적 목표는 억지스럽고 강제적인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방식으로 개인들이 합리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란 단순히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통합적 체계가 아닌 공동체를 이루는 개인들의 소통적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체계를 의미한다. 하버마스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세계가 소통의 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 생활세계에 내재한 합리성이라는 잠재력을 해방시키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실에는 소실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