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최초의 영화는 벤허였다. 아마 한 5살쯤에 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로마군이 지나가는 길에 벤허의 여동생이 기왓장을 떨어뜨리는 장면과 마지막 마차 경주대회 장면.
그 후 여러 번 그 영화를 더 볼 기회가 있어서 그 영상은 좀 더 구체화되었지만 아직도 어릴 적 그 장면의 감동은 생생하다.
그 후로 나의 영화 보기 역사는 화려했다.
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 영화를 보면서 이루어졌고, 영화를 보기 위한 나의 인내와 극기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하루에 10원씩 받던 용돈을 아끼려면 난 학교 앞의 오뎅집과 뽑기집, 만화가게를 눈 꽉 감고 지나쳐야만 했다.
가끔은 내 딱지와 구슬을 파는 아르바이트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영화를 보고 오면 난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내가 본 영화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더 실감 난 목소리와 포즈로 그 영화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었다.
그 아이들 중에 육손이라 불리던 아이가 있었다.
한 손의 엄지 손가락 옆에 전혀 힘이 없는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아이. 늘 또래 애들이 놀려댔지만 그 아이는 그래도 열심히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아이는 나 보다 일곱 살 정도 어린아이였는데, 내 영화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들어주는 팬이었다.
다음에 볼 영화를 공고한 어느 날, 그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히야, 나도 그 영화 보고 싶다..."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금방 대답은 안 했지만 그 당시 그 아이가 한 다섯 살 정도였으니 영화 값을 안 치르고도 데리고 갈 수 있는 나이였다.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그 주 토요일이 되기 전에 나는 드디어 영화볼 돈 50원을 만들 수 있었고, 그 꼬마의 소원대로 같이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드디어 김희라가 주연을 맡은 액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꼬마는 영화 보는 내내 나에게 뭔가를 말했다.
영화를 보여줘서 너무 고맙다...
나도 영화 속에 저 아저씨처럼 날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주고 싶다...
우리 엄마 아빠도 영화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김희라가 곤경을 겪을 때는 눈물을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난 뭔가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내가 이 꼬마의 형이라면 정말 잘 데리고 다닐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보니 육손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먼 길을 걸었으니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흔들어 깨워봤지만 잠이 깊이 들어 꼼짝도 안 했다. 하는 수 없이 그 꼬마를 둘러업고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라 길은 조금씩 어둑해져 가고, 난 등에 땀이 베이는 걸 느끼며 걸음을 빨리했다.
한참을 걸려서 동네에 도착하니 동네는 난리가 나있었다. 육손이 엄마와 아빠뿐만 아니라 많은 동네 어른들과 골목친구들이 육손이를 찾는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간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어른들이 달려와서 나에게 채근을 했다. 불쌍한 아이 데리고 어디 갔다 왔냐고...
큰형에게 크게 혼나는 것으로 그날의 사건은 끝이 났다.
그다음 날, 육손이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눈물을 글썽이시며 나에게 고맙단 말을 하러 오셨단다.
육손이가 그 서툰 말솜씨로 나에게 영화를 보여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형이 보여주었고, 오는 내내 형이 업어준 것 같다고... 말했었나 보다.
그 아이가 영화를 보고 와서 너무 행복해한다고 그 아이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고맙다란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어제 화내서 미안하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셨다.
전 날 큰형과 동네어른들께 혼이 났었지만, 그래서 우울했던 마음들이 다 풀려 나갔다.
그 아이 어디 살고 있을까?
수술은 했겠지...?
얼굴도 기억 못 하지만, 혹시라도 만나면 내가 아는 별명, 육손이라 불러도 화내진 않겠지...?
첫댓글 내 친구 동생중 한명이 육손이있어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육손이가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간단하게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데, 그 당시는 쉽지 않았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거듭 읽었습니다.
제가 다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엄지 척! 합니다.
육손이 아이...
지금은 어느 하늘에서 위 옛일을 떠올릴까요?
지나간 시간들이 꿈처럼 흘러도 위와 같은 아름다운 옛이야기는 두고 두고 기억해야겠지요.
독자한테도 감동을 주니까요.
착한 아이였으니 잘 살고 있겠지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옛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름문학의 출품에서 부터
마음자리님의 정 많고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본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어린시절을 그렇게도 많은 기억을
남겨 두었는지요.
지난 일들이 추억이 되어 기억 저장고에
남겨두신 마음자리님은
세상살이가 긍정으로 살아가는
힘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육손이,
글 잘 읽었습니다.
별 욕심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때가
현재의 삶에 위안이라도 되듯
자꾸 되새김질하며 살다보니
오래 기억에 남게 되었나 봅니다.
언제나 읽어주시고 관심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콩꽃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마 그후로도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지요.
그저 일찍 수술해서 놀림없이
잘 섞여 살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손이도 마음님 못지않게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였는 모양입니다.
가난하나 꿈이 많고 감성 풍부했던 육손이
어디서라도 잘 살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글 잘 읽었습니다.
잘 들어주면 더 이야기하고 싶듯
육손이는 제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었지요.
그래서 데리고가서 보여주면 더
좋아하겠구나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동네 나와서 노는 것이 일상이라 그렇게 어른들을 놀래킬 줄은 몰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손가락 성형은 별 어려운 일 아닐텐데
예전에는 그냥 지내던 시절이었지요.
자라면서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았으려나 다 지난 시간이 되었는데도
걱정이 드는 마음입니다.
꼬마아이가 하는 말이라고 흘려듣지 않고 그 아이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게 해주어서 정말 잘 하셨습니다.
살면서 얼마나 커다란 체험이었고
얼마나 소중하고 잊지 못할 유년의 기억이 되었을까요.
육손이 엄마의 마음만큼 제 마음도 감사함이 넘칩니다.
맞습니다. 요즘은 별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그 아인 그렇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천진하고 맑은 아이였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의 그 고운 심성이 육손 아이에겐 또 다른 꿈을 꾸게 했을지도 모름니다. 고작 다섯살인 아이가 영화보여 달라고 할 정도면,아마 좀더 커서는 수술하지 않았을까싶네요.
멋진 어른으로 자라서 마음자리님을 잊지 않고 기억 할 것 같습니다.
저처럼 영화보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을까요?
일찍 수술해서 마음 다침없이
멋진 어른으로 자루성장했기를
바라봅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지금쯤 그 사람도 마음자리 님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의술이 발달한 지금은 태어나자 마자 수술로 해결할 수 있어서 육손이가 별로 보이지 않지만
우리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육손이가 있었습니다.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 하나가 더 있어서
아이들로부터 놀림감이 되곤 했는데 당사자는 큰 상처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땐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을 놀리곤 했었는데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를 왜 다 커서 알게 되었을까요?
다른 동네에 살때 얼굴과 피부가 온통 하얀 여아가 있었는데, 그 아이만 나오면 아이들이 놀라 도망가곤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 또한 마음이 참 아픈 일인데...
초등학교 5학년 어린소년이 하는 행동이
어른같아서요.
골목대장에 때론 애어른같은 맘자리님을
저번날에 헤도네 님이 체 게바라에 비교를
조금 의아 해 했거든요.
(저는 체 게바라를 한때 엄청 좋아해서
우상였던 적도 있었어요)
근데말예요 육손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헤도네 님이 사람 하나는 잘 보는 구나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귀한 행동을
할 수있는 거죠.(저는 절대로 못 하거든요)
감동 그 자체예요.
제가 5060카페에 발을 깊숙히 들여 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이기도합니다.
저는 그런 큰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소소한 행복을
가지려고 애쓸 뿐이지요. ㅎ
늘 칭찬이 넘치셔서...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육손이에 대한 제 마음과 꼭 같으시네요.
읽고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감있어 훈훈한 글입니다
어릴때 부터 책이나 영화를 좋아했다는 말이 수긍됩니다
풍부한 감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이든 영화든 만화든, 이야기가 있는 것은 다 좋아했어요. 제가 그러니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고요. ㅎㅎ
아이가 아이를 업고 먼 길을 걸었네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5 살에 영화 입문이라시니 빠르긴 하네요.
벤허를 저는 중학교 때 단체 관람했어요.
남자 주인공을 태운
말이 수레를 끌고 달리던 장면만 생각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또래 평균치 정도 되지만, 어릴 적엔 키가 커서 맨뒷줄에 앉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어요. ㅎ 그래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저도 어린 시절 큰 언니 따라 영화관에 가는 것이 가장 은밀한 즐거움이었요.
마음자리님이 행한 선행들. 그 육손이가 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제 어릴 때 영화를 좋아하니 누나들이나 큰형이 영화보러 갈 때 저를 가끔 데리고 갔었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육손이를 데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가끔씩 아는 측근들
잔나비띠 엄마들에
그런아이 확률이
몇프로??
있더라구요...
수술해서 잘사는
집안에 한명 있습니다..
좋은일 인정이💝💝
많으셔서 감사 합니다!!
모두가 배려 사랑 이지요.
역시나 추천이많아서
5번째 네요 ㅎㅎ
지금은 오십대 후반이 되어있을
그 아이. 모쪼록 잘 살고 있기만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