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는 당선 직후 “한나라당이 자꾸 자꾸 정권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나라 정치의 절대 값에 해당하는 삼대 상수에 의하여 당선되었다. 경상도, 기독교, 강남부자가 그것이다. 이 3대 요소를 변수라 하지 않고 상수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은 나라가 흥하든 망하든 그것은 자기들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 3대 상수의 압도적 지지로 이명박은 대통령으로 탄생하였다. 경상도는 신라 천년 왕국으로부터, 기독교는 한 세기 전부터, 그리고 강남 부자들은 1970년대 박정희 독재 정권 때부터 이 땅에 착근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기들 기득권 보호에 철옹성이며 자기들의 안위를 지켜 주는 정치권력과는 언제 어디서나 결탁한다. 그리고 자기들을 보호하는 외곽이 미국과 일본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현실 정치권에서 이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며 과거 10년을 잃어버린 10년, 좌파 정권 운운 하면서 드디어 이명박을 내세워 정권을 탈취하였다.
▲ 신라의 골품제도
이들은 지금 신라 성골과 진골과도 같은 존재들이며 신라의 정신을 금세기에 다시 구현해 내려고 한다. 이들에게서 과거 10년은 뼈저린 교훈이며 두 번 다시 정권을 내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의 다짐을 하면서 나온 말이 바로 이 당선자의 위의 발언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정신 상태는 신라의 병든 오그랑수 바로 그것이라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다시 외세를 끌어 들여서라도 자기들 기득권은 지켜야 한다는 그 꼼수 말이다.
신라는 민족끼리의 내부적 갈등과 통합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삼국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외교적 수단에 의한 통일이 결국 이 민족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다. 1000 년이 지나도록 잃어버린 고토는 다시 찾을 길이 없고 가망도 없어 보인다. 강대국의 힘을 빌려 통일을 할 때에 그 대가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신라 통일 하나의 교훈으로 족하다. 두 번 다시 우리 입에서 ‘외교적 통일’이란 말은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되거늘 당선자와 인수위는 지금 통일부를 없애서 외교부에 흡수하고 외교로 통일을 풀어 나가겠다고 서슴없이 말을 내뿜고 있다.
▲ 부시방한 반대및 무기강매 중단시위 - 불타는 성조기-숭미사대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주국가
영어로 걸사표 써 올려라!
외교부와 통합하여 ‘외교통일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한미관계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려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한미동맹이 잘 되면 남북관계도 좋아질 것이라” 했다. 이는 당나라와의 관계가 잘 되면 통일이 잘 될 것이라는 말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이에 대하여 손낙구 민주노동당 비대위 대변인은 “민족내부의 특수 관계를 다룰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에 편입하여 남북관계에서 민족내부 주도 역할을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 영어나라만들기 정책은 미합중국의 주정부되겠다는 발상이자 한글말살 정책과 다름없다
영어 교육만 하더라도 이 문제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경덕왕은 당나라의 압력에 못이겨 한자로 모든 지명과 인명을 바꾸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부터 우리말 지명이 하나 둘 사라지고 만다. 앞으로는 이젠 영어로 지명과 인명이 바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영어 교육문제를 단순히 언어 교육 차원에서 이해하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소치이다. 신라가 통일 전후에 자행한 정책을 보면 이명박 당선자의 그것과 일란성 쌍둥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이끌어 나가려는 나라 방향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걸쳐 신라가 한 것을 그대로 모방해 나갈 것이다.
▲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지휘통제권은 현재 실질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지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회수마저 미국과 재협상을 하겠다고 한다. 이건 완전히 신라가 당나라에 구걸한 걸사표의 재판일 뿐이다.
‘걸사표’란 병력 동원을 구걸하는 상주문을 말한다. 사표(師表)는 병력을 동원할 때 임금에게 올리는 표(상주문)다. 제갈량의 출사표가 잘 알려져 있다. 신라는 553년 고구려와 백제가 조여들어오자 당나라에 도움을 구걸하는 소위 걸사표를 작성해 보낸다. 그 이전까지는 없던 일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고구려가 독립 연호인 영락을, 그리고 신라도 건원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대 굴욕적인 외교가 원래부터 우리 민족의 숙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사대주의의 유전인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년 전작권 환수 논의 중단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한나라당 2차 방미단 단장 이상득 부의장(이명박 당선자의 친형)은 2007년 9월 20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 중국에 죽지 않으려고 조공도 바치고 책봉도 받아가면서 살아남지 않았느냐"면서 "(미측 인사들이 만나기) 귀찮다고 해도 국익에 필요하면 귀찮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형난제란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는 마치 김춘추와 김유신이란 처남.남매가 당나라에 구걸 외교를 한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 수나라의 300만 대군을 수몰시킨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도
608년 신라 지도층은 수나라에게 고구려를 쳐달라고 출병을 요청하는 걸사표를 작성하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권4 신라 본기 진평왕편 30년 조의 기록이다. 14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08년 대한민국의 한나라당은 미국을 향해 동족인 북한을 쳐 달라고 혹은 막아 달라고, 전작권을 제발 가지고 있어 달라고 걸사표를 던졌다. 이것이 두 걸사표의 대차대조표이다. 멋진 영어로 잘 된 걸사표 한장 써들고 워싱턴 다녀오시라!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거든 그런 짓 하라. 그 순간 우리는 당신을 민족의 역적으로 볼 것이다. 아래는 사대 매국노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의 글이다.
신라여, 그렇게 꼭 했어야만 했나?
수나라 문제가 중원을 통일하자 그 5년 뒤인 진평왕 16년(594년) 신라는 조공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굳건한 군사동맹과 유대관계를 맺는다. 이는 수 문제가 고구려를 치겠다고 위협한 서한을 고구려에 보낸 직후이다. 물론 문제의 1차 공격(598년)은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문제의 뒤를 이은 수양제가 2차 공격을 시도한 것은 607년이다. 이 희소식(?)에 희희낙락한 신라 지도층이 611년 걸사표를 작성한 것이다.
신라의 걸사표를 받은 다음 해인 612년 수나라는 30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략한다. 그 당시 300만 대군이란 엄청난 수다. 이만한 대군을 이끌고도 도저히 자기들 혼자의 힘으로는 고구려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수나라에게 신라의 걸사표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 세계 최고대전으로 기록되야 할 수나라와 당나라의 300만 대군을 격파한 연개소문과 을지문덕 장군 영정-후손들은 이러한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던 조상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나라와 민족을 망국으로 이끌 사대주의는 청산되야 하며 민족공동체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주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노선으로 통일시대 열어야 한다
그러나 고구려는 굳세게 맞서 수나라 대군과 싸웠으며 당당하게 이들을 다 격퇴하였다. 수양제가 어떤 수모를 당했고 당태종이 어떤 말로를 맞이했는가는 잘 아는 역사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는 그로 인해 멸망하고 이어 등장한 당태종은 한 눈을 잃는 수모까지 당한다.
한나라 방미단의 한 의원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나라 가운데 야당이 이처럼 미국에 찾아와 외교를 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일본이나 호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이제 2월이면 노무현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내 놓고 사대 외교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 김원웅 의원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10월 24일 "21세기판 모화(慕華)주의자들이 동맹과 예속을 분별하지 못하는 서글픈 사대주의로 나라 망신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날 사대주의에 찌든 지배층이 조선의 안위와 중국의 안위를 분별 못하고 자주적 인식을 결여해 병자호란을 자초했다"며 "자국 국익에 충실한 외국군 장성 등에게 전시작통권을 되받아가 달라고 애원하는 건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 않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상득 부의장의 위 '조공 외교' 발언에 대해 "그러면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도 바보짓을 했단 말이냐"며 "살아남기 위해 일본의 식민 지배를 환영한 이완용도 지하에서 '나도 당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우리는 지금 지난 대선 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미국을 돌아다니며 한 말들을 귀를 의심하면서 듣고 설마 집권을 하더라도 그렇게야 될까 하고 했는데, 지금 인수위 주변과 당선자 자신이 한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악몽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되고 한 반도에 남은 이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차라리 악몽으로 시달리더라도 이 한나라당 정권 창출 꿈이었으면 한다.
김춘추, 고종, 이승만 그리고 이명박
한나라당의 걸사표는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까지이고 그 유전 인자는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비굴한 굴욕 외교는 대를 잇는다. 1894년 2월 전봉준의 농민 혁명이 삼남 일대를 휩쓸고 드디어 북상해 올라오자 임금은 밤중에 중신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병조판서(현 국방장관)는 “전세가 호대하여 우리나라 군대로는 초멸할 수 없으니 청병(淸兵)을 청차(請借)하면 곧 일전으로 파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뢴다. 21세기 대한민국 전직 국방장관들의 발언들과 어쩌면 이렇게도 닮은 것인지. 작전권 회수 맡아달라고 아우성치던 전직 국방장관들, 그들의 소리는 차라리 미군이여 내 재산 지켜달라는 소리 같이 들릴 뿐이다.
▲ 의왕(의친왕)의 아들인 이석씨가 최근 공개한 고종황제 가족사진. 사진은 1915년 창덕궁 인정전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부터 의왕, 순종, 영왕, 고종,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의왕의 왕비 덕인당 김씨, 의왕의 아들 이건, 고종 왼쪽의 어린이는 딸 덕혜옹주다.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꼭 닮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중신회의를 주재하던 고종은 “외병은 초청하지 않겠으나 우리나라 조신 중에는 도시 호령을 발하고 명령을 시행할 자가 없으니 청나라 원세개로 하여금 전주 등지로 하왕케 하여 순변사와 초토사의 군대를 지휘케 함이 좋겠다”고 말한다. (김의환, 『전봉준전기』, 159쪽) 병조판서와 임금의 대화는 그들이 이미 썩은 고목이고 사대주의가 체질화되어 자기 말을 객관화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 방미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동포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만난 인사들로부터 한미동맹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는지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전여옥 최고위원은 "(그동안 만난 미측 인사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보고 모든 게 끝났다고 느꼈다고 했다” 면서 “특히 대북 인식에서 한미 간 차이가 벌어지는데 대해 (그들은) 한국인만큼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줄줄이 대를 잇는 사대 굴욕 외교는 이렇게 점철되고 있다.
외교로 통일해선 알 될 진정한 이유
그러면 고종이 청병을 청한 결과 과연 나라의 안위가 유지되었던가? 결코 아니다. 조선이 청나라에 통수권을 청하자 일본이 상관하며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1894년 청일전쟁이 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의해 궤멸 당하고 만다. 일군은 총구를 남에서 북으로 돌려 조정으로 올라와 민비를 시해하고 결국 우리 국군통수권은 모두 일본군에 넘어간다. 그 다음 결과는?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방, 1918년 고종 사망(고종도 일본의 시해라는 것이 정설임).
외세를 끌어들인 최대 피해자는 결국 고종 자신이었다. 고종과 민비는 앞다투어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그들은 결국 그 외세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서서 죽을지언정 외세을 다시는 끌어들여선 안 될 이유이다.
이러한 사대주의 유전인자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그리고 그 후 이 나라의 정치인들의 피 속에 용해되어 흐르고 있다. 한나라당 방미단은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실무관계자,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등 의회 관계자, 한국문제 전문가 등과 접촉하고 허드슨연구소에서 세미나를 개최해 그들의 입장을 전해 듣는 등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과연 그들이 바라는 대로 우리 역사가 그렇게 답을 줄 것인가? 이승만이 어떤 경우를 당했는지 살펴보자. 사대 굴욕 행각이 자랑이 되어 버린 한심한 무인지경이 되어버렸다.
▲ 맥아더와 이승만의 포웅(대한민국의 군작전 지휘권을 미국에 넘긴 이승만은 일제하 미국위임통치안을 임시상해정부에 제출하여 단재 신채호 선생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은 바 있다
이승만은 1950년 7월 15일 전시 작전권을 대전에서 미국에 넘겨주면서 “...본인은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이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는 바이며...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라고 했다. 한국은 이승만이 말하는 '영광' 속에 반세기를 살아왔다. 이승만은 국회 동의도 국민들의 의사도 물어봄이 없이 종이 한 장으로 이 모든 것을 대신하였다. 우리 군의 작전권이 미국에 넘어 간 과정은 이러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두 달 후에 자신에게 돌아왔다. 전세가 반전하여 인민군이 밀리기 시작하자 이승만은 의기양양하였고 기세등등하여 통일이 다 되어 북을 당장이라도 접수할 태도였다. 그러나 보라. 1950년 11월 25일 혜산진과 청진까지 올라간 미군은 38선 이북 수복지구에 군정을 실시할 준비를 하였다. 이승만은 수복지구가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될 줄로만 알았는데 느닷없이 ‘미군정’이라는 말이 나오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국토회복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1950년 10월 15일 평양을 방문하기를 원했으나 미국은 이승만에게 대통령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문하라고 통보했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어처구니없는 결과인가. 아무리 철저한 기독교 감리교 장로요 미국 신봉자인 이승만도 이 순간만큼은 사대주의자의 초라한 처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이 겪은 비애를 본 것이 불과 얼마 되었다고 이승만은 같은 과오를 범했을까?
이승만이 작전권을 넘겨준 부메랑은 참혹했다. 작전권을 건네준 단 두 달 만에 그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외교의 천재라던 이승만이 왜 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이승만은 결코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정권 안보와 안위에만 안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통성 없는 친일 매국노들이 포진한 정권, 사대주의 정권의 유지가 이승만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림을 클릭하면 내용을 상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서명발의하지 않는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제일 많았다
지금 한나라당의 속에는 이런 유전자가 그대로 전수되고 있음을 위 한나라당 의원들의 언행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앞으로 얼마나 이명박 정권이 계속될지 모르고 그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른다. 글/김상일(전 한신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과정사상연구소) 사진.그림자료/윤복현
▲ 김상일 전 한신대 한국철학 교수
“한반도 문명은 상반된 성향을 보이는 좌뇌와 우뇌가 조화를 이루는 문명입니다. 서양, 중국, 인도 등의 좌뇌편향적 문명보다 훨씬 건강하지요.”
이성과 감성이 조응하는 한국문화의 특징을 ‘한’의 개념어로 설명해온 김상일(67ㆍ사진)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최근 출간한 <뇌의 충돌과 문명의 충돌>(지식산업사 발행)에서 뇌 이론을 통해 문명사를 해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제임스 애슈브룩이 <두뇌와 신념>(1988)에서 좌ㆍ우뇌의 특성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신학의 특징을 비교ㆍ연구한 이래 발전해온 ‘뇌의 양반구 이론’을 한층 흥미롭게 전개한다. 김 교수의 뇌 이론은 문명사의 균열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 힌트를 줄 수 있는 일종의 방법론적 비유다. 그의 주장은 뇌의 좌반구가 언어적ㆍ수학적ㆍ분석적 성향을, 우반구가 직관적ㆍ비언어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좌ㆍ우뇌가 나뉘듯 우랄알타이산맥을 분기점으로 서양과 동양이 나뉘고, 만리장성을 경계로 동북아시아의 동서가 분리되고, 한반도 북쪽은 함경도와 평안도가, 남쪽은 호남과 영남으로 나뉘지요. 각 부분을 살펴보면 모두가 좌뇌와 우뇌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소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그의 뇌 양반구 이론은 ‘부분은 언제나 전체를 닮는다’는 프랙털 이론을 연상시킨다. 좀더 나아가면 동양의 우반구적 특성을 열등하게 본 서구의 제국주의 논리, 특정 지역의 우반구적 정서를 열악하게 취급하는 지방색의 논리 등 문명의 크고 작은 균열도 뇌 양반구 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문명의 갈등을 치유하는 것은 상보적 특성을 지니기도 하는 좌ㆍ우뇌의 조화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가령 동북공정 같은 중화주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 유효하다. 중국문명은 만리장성을 경계로 각각 좌ㆍ우뇌적 특성을 지닌 화하계ㆍ동이계 문명으로 나뉘지만, 동북공정은 모든 동북아 문명을 화하계의 창조물인 것처럼 만들려는 기획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의 역사이론을 바로잡는 데는 역사 그 자체로 대응하는 차원도 필요하지만 양뇌이론 같은 자연과학의 방법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김 교수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밀이 뇌 속에 있습니다. 뇌가 조화롭듯이 우리도 서로 화목하고 조화롭게 살아야 합니다”라며 말을 맺었다. 그는 한신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2006년 가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 과정사상연구소에서 유기체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첫댓글 이뻥박의 진실을 청문회를 열어 전국민에게 알린 후 탄핵하는 길이 국민과 국가가 사는 길 입니다.
비극이 코앞에 다가온것도 모르고 미친것들이 권력만 휘두르면 다야? 디진다.하늘을 가릴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심한 인간들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