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국내외 각종 지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가와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고 이에 반해 CDS 프리미엄 및 외평채 가산금리는 치솟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CDS 및 외평채 시장이 취약하여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고 신용평가 회사들이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신용평가회사는 주로 과거 자료로 신용평가를 하는 반면, 시장에서 결정되는 스프레드는 미래 예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측력이 더 높다. CDS 프리미엄은 일종의 보험료로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운전자의 보험료가 올라가듯이 부도 위험이 높은 국가의 스프레드는 상승한다. 국가와 일반 회사를 직접적으로 비유할 수 없지만 부도 직전 AIG의 CDS 스프레드보다 한국의 스프레드는 지금 두 배 정도 높다.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가고 있을까?
지금도 정부는 세계 6위 외환보유국으로 사정이 10년 전에 비해 양호하다고 하나 사정은 지금이 오히려 더 심각하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보여준 국제수지 동향과 지금의 국제수지 동향은 매우 유사하다. 96년 직전에는 경상수지가 적자였지만 자본수지의 증권투자와 기타수지는 흑자를 유지했다. 이때 증권투자의 흑자는 외국인의 증권투자 유입액이 많다는 의미이고 기타수지 흑자는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경상수지 흑자폭은 줄어들다가 올해에는 적자를 시현하고 있다. 이는 무역수지의 악화에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조기유학 및 해외관광 등 서비스수지 적자에 더 기인하고 있다.
또 자본수지의 증권투자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 및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로 적자를 보이고 있고
유일하게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인 기타수지가 흑자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은 2005년부터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대외차입 중 단기차입이 2006년에 이미 10년 전 외환위기 수준인 43%에 도달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지금의 위기는 달러 가뭄에서 비롯되고 있다. 세계 6위 외환보유국이라고 하니 달러가 우리나라에 쌓여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무역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에 증가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많은 이유는 해외로부터 차입을 하여 외환보유액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빚을 얻어 외환보유액이 많지 우리가 외화를 벌어 외환보유액이 많은 것이 아니다. 또 은행들이 달러 차입을 할 수 있다면 문제가 풀리겠지만 지금 은행의 해외차입 통로는 막혀 있다. 국가가 은행에 대해 채무보증을 해 주겠다고는 하나 국가가 보증을 해도 해외차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제 외환보유액으로 은행의 단기차입을 상환해 주는 처방이 내려졌지만 달러가 들어올 구멍이 없는 가운데 곶감만 야금야금 빼먹다가 곶감이 떨어지면 이제 거리로 내몰릴 일만 남았다.
금융업은 위험을 먹고 사는 업종이기 때문에 위험관리가 금융업의 요체다. 작금 국내은행이 외화가 부족해 국가의 보증이 필요하고 원화가 부족하다고 은행채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위험관리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다.
무엇으로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하나? 한국은행이 이자율을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대처방안으로는 위기의 내성만 키울 따름이다. 나라 안팎의 위기심리를 잠재우려면 달러 가뭄을 해소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달러 가뭄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미국과 정치적인 타협을 보든지 아니면 외교력을 발휘해 통화스왑을 할 수 있는 길을 하루 빨리 뚫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연되면 될수록 우리는 위기의 그림자가 아니라 위기의 실체와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10년 전 상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또 위기의 저승사자는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