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영화와 관련된 별별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지난번에 올린 육손이 이야기는 칭찬을 들었지만, 이번에 올리는 이야기는 읽으신 분들이 아무리 욕을 하셔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똥고집 이야기입니다.
"에이~ 고얀 놈."
노여움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할머니 말씀.
"싸가지가 저래 없는 놈은 첨 봤네~ 쯧쯧."
그 옆에 앉은 할머니의 딸인 아줌마 말씀
"쪼다같이 생긴 게 머리는 커가지고... 아이~ 재수 없어~"
그 아줌마의 고딩 딸 말씀.
그러나 저는 묵묵부답. 영화 화면만 뚫어져라 볼 뿐입니다.
물론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보니 귀는 온통 뒷좌석에 앉은 세 여자를 향해 열어두고 있었죠.
뻔뻔함으로 가장한 채, 못 들은 척하고는 있었지만, 제가 앉은자리에서는 연신 가시가 돋아나 제 엉덩이를 찔러대고 있었습니다.
휴... 가시방석이 바로 이런 걸 말하는구나... 뼈저린 깨달음이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냐고요?
삼대에 걸친 세 여자의 등쌀에 입 한번 벙긋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지만, 저도 사실 할 말은 많습니다요. 아~ 이 억울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하리...
국민학교 6학년의 어느 봄날.
구슬 팔고... 딱지도 팔고... 먹고 싶은 거 참고... 보고 싶은 만화도 안 보고...
코 묻은, 아니지... 피땀 어린 십 원짜리 몇 개를 며칠 동안 모아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요.
제 수지에 어찌 좋은 영화관을 갔겠습니까...
그저 두 편 동시상영하는 삼류영화관, 남도극장을 갔지요. 그때 한참 빠져있던 중국무술영화였던 거로 기억이 나네요.
혹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특석이 어딘 줄 아십니까?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그것도 다르긴 하겠지만, 그 당시 저는 2층 맨 앞줄 한자리만 있는 좌석을 확보하는데 목숨을 걸었습지요.
난간에 두 다리 턱 올려 걸치고 뒤로 편안히 기대어 앉으면, 앞에 영화감상에 방해되는 머리들도 없어 영화감상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저만 그리 생각하란 법은 없는지, 제 또래 아이들도 그 자리에 목숨 거는 아이들이 늘 몇몇 있었지요. 눈치 작전, 치열했습니다.
영화도 끝나기 전 미리 그 근방에 자리 잡고 앉았다가, 영화가 끝나면 잽싸게 그쪽으로 날아가서 앉았죠. 물론 다리 한 두 군데 멍드는 것 정도야 좋은 예술 감상을 위하여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대가 정도로 여겼지요.
그날도 앉은 사람이 일어나기 무섭게 그렇게 날아가서 그 자리를 득의만만하게 차지하고, 그때야 쓰려오는 촛대뼈를 달래주고 있는데... 이 무신 날벼락!
"야야~ 니 자리 좀 비키라. 그 자리에 할머니 좀 앉혀야겠다~"
너무나 당연히 비켜야 된다는, 그리고 비겨줄 거라는 데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는 아줌마. 힐끗 보니 할머니와 아줌마 고등학생 누나 세 명이 제 옆에 와서 서 있었습니다요. 아마도 할머니를 앞이 방해받지 않는 좋은 자리에 앉히고 싶은 효심에서 그런 말을 했겠죠. 그 당시만 해도 어른 공경하던 시절이니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투였습니다요.
그러나 앞서 애써 말씀 올린 것처럼, 저 또한 목숨 걸고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 자리 획득의 여운도 채 즐기지 못한 터였는데... 어찌 마음이 곱게 써지겠습니까.
아니, 도대체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그런 망발을???
피 같은 돈을 과감히 투자하여 예술 한편 좋은 자리에서 감상하려고 얼마나 벼르고 벼른 자리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뭉그적거리고 있는데...
"야야~ 비키라 안 카나. 안 들리나~ 얼른 비키라마~" 아줌마 말씀. 옆에 서 계신 할머니는 앉을 준비를 하시고...
안되지 안돼! 좋은 말로 해도 들어줄 똥 말 똥인데... 이렇게 자리를 비켜줄 순 없지. 암 없고 말고...
저는 13살 어린 나이에 사나이 명예를 걸고 외롭고 고독한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요.
"옆에 빈자리 많네예. 글로 가서 앉으이소~"
"머시라...? 니 방금 머라캤노? 옆에 빈자리 많다고??? 그라마 니가 가서 앉으마 안되나. 짜슥아~"
아줌마 목청이 소프라노로 변하데요. 그 소프라노 음성이 난반사가 되더니 극장 안에 가득 울려 퍼지더구먼요.
짜슥??? 총각님이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짜슥??? 그것도 딴 사람들 다 듣게???
에라~ 나도 이판사판이다~ 해볼 테면 해보셔~
옹고집. 아니... 저 안에서 잠들어 있던 똥고집이 발동되데요.
읽으시는 님들도 그러시겠죠?
아무도 머리를 안 끄덕이시네...
님들은 당연히 비켜 준다고요?
이런 입장인데도요???
이거 괜히 말한 거 같네... 가슴속에 그냥 묻어 둘 걸... 후회가 밀려옵니다.
"나는 못 비킵니다~ 알아서 하이소~"
그래도 저는 고집 있게 그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잠시 가슴속이 후련해지더구먼요.
그 후, 저는 제 바로 뒤에 앉은 그 세 여자님들로부터 제 평생 들은 욕의 반 정도는 그날 두 편의 영화가 끝나는 약 세시간여 동안 다 들었습니다요.
인터넷 게시물에 관한 법이 무서워 차마 옮겨놓을 수 없는 세 여자님들의 엄청난 욕의 홍수 속에서
조상을 욕보이고...
부모님을 욕보이고...
저는 시궁창에서 갓 건져낸 놈이 되고...
으악~! 자리를 비켜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명색이 13살 청운의 사나이로서 어찌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있으리요. 동시상영이라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어도 자리 뺏길까 봐 화장실도 못 가고...
똥고집 부리다가 참담하게 부서진 그날
똥고집 부리다가 욕이 배 따고 들어온 그날.
이제야 웃는 마음으로 그날을 돌아봅니다.
자~ 이제 마음껏 혼내주세요.
저는 제 귀가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쳤으니 벌 받을 준비 다 되었습니다요.
첫댓글 ㅋㅋㅋ 아이구
그 아줌니가 잘 못 했네요.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좀 공손한 말로 양보받아야 되는건데요.그래야 착한 마음님의 마음이 움직일텐데,
저 같아도 당연히 안 비켜 줄것 같습니다,
물론 자리가 없어 서서 봐야 된다면 양보 해 줄수도 있겠지만 다른 자리 다 두고 비키라니. 어른의 욕심이네요,
이건 마음님편 드는건 아니에요.
나이가 깡패라는 그런 우리나라 어른들이 가끔 있답니다.
갑자기 인천 해상에서 지진 났다는 재난 문자 경보음에 잠이 깻어요..
어쩐 일로 이 늦은 시각까지 잠을 못 이루셨나 했습니다.
지진 재난 경보였다니... 아무도 피해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래봅니다.
그래도 은근히 제편 들어주시는 것 같아 ㅎㅎ 외롭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대단히 잘 못했습니다.
양보를 윽박지르며 받으려 하다니요?
여자들의 언행이 심각하군요.
"마음자리"님 잘 하셨어요.
내 속이 시원합니다.
그 당시 눈으로 보면 마땅히
혼이 나야 할 일이었지요.
제가 한번 뿔뚝성질이 나면
고집이 세서. ㅎㅎ
그래도 제편 먹어주시니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그당시는 어른들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을 우숩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도 국가대표 에이매치 축구시합을 동생과 함께 다방에서 티브이로 보다가
내 동생 자리를 막무가내로 뺏으려는 어른에게 항의 하다가 몇대 맞은 적두 있었습니다
민주화가 된 지금은 어림없는 이야기 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어른들에겐 무조건 양보해야 올바른 사람 대접 받던 시절이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세상이 참 빨리도 바뀝니다.
우리가 어른되니 또 우리가 먼저
양보해야 옳은 어른되는 시절이 왔네요. ㅎㅎ
시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무조건적인 노인 우선의 행동은
한창 커가는 어린이에게 반발심을 일으키지요.
윽박지르는 어른의 모습이 잘 못된 것입니다.
그때는 어린이들을 새나라의 어린이
새싹들이라고 했지요.
그때를 내내 기억하고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이젠 잊으셔도 ~~~ㅎ
네. ㅎㅎ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일들이
시간이 자유로워지니 하나 둘
떠오르네요. ㅎ
우리 세대는 가치관의 혼동 속에
너무 극과 극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고,
자리 비켜 줄 마음이 초장엔 있더라도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마음 님처럼 오기로
버틸 것 같습니다. 잘 하샸습니다.ㅎ
항상 건강하세요.
욕 받을 준비 되어 있는데...
ㅎㅎ 다들 이해하신다니
며느리가 친정에 온 기분입니다. ㅎㅎ
잘했어요
"나는 못 비킵니다~ 알아서 하이소~"
멋집니다 ㅎ
오랜만에 듣는 경상도 사투리 좋아요 ~
"야야~ 비키라 안 카나. 안 들리나~ 얼른 비키라마~"
ㅎㅎ 당나귀 귀 소문내고도 살아 남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는 똥고집 부려셔도 됩니다.
저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ㅎㅎ
제 입장만 들으셨으니 그러실 겁니다.
그 분들은 또 그분들의 입장이 있었을 테니 ㅎㅎ 들어보면 제가 아주 고약한 꼬마일 수도 있어요.
특석을 고르셨군요.
안목이 어릴 때부터 남다르셨습니다.ㅎㅎ
고집에 똥이 붙어 이게 뭔 소리?
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내렸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고 혼 좀 내달라고
글 올렸더니 다 제편을 들어주셔서
ㅎㅎ 감사합니다.
할머니 가족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인데요.
고딩 딸마저 의식 수준이 그랬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 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당찬 꼬마 였었네요.
영화가 도시 변두리 꼬마가 역사와 세상을 만나는 멋진 수단이 되어 주었어요. 숀코널리가 나오던 007도 그때 보았지요. 엄청 놀라운 세상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