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산악부에서 산과 인연을 맺은 그. 산이 좋아 히말라야를 넘나들던 그에게 한 친구가 구식 카메라 한 대를 건넸다. 그는 그 카메라로 히말라야 오지에 사는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의 오지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와 사진으로 여행 에세이 《손끝에 닿는 세상》을 펴내면서 여행작가라는 이름도 달았다. 지난해 9월에는 히말라야 아이들 사진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한국판) 국제사진 공모전에서 인물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지난 3월 9일부터 4월 4일까지 삼청동 미음갤러리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요즘, 자신의 피사체가 되어온 히말라야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히말라야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2006년부터다. 중국 천진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포르투갈까지 가려다 팀원들 간의 갈등으로 파키스탄에서 머물 때였다.
“8000km를 달려 파키스탄에 왔을 때 팀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죠. 사람에 대한 신뢰로 고민해 보긴 처음이었어요. 혼자 파키스탄에 남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밧을 헤매 다녔는데, 힘들었죠.”
하지만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낭가파르밧을 내려와 파키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 들렀는데 그곳 꼬맹이들이 너무 맑고 예뻤어요. 녀석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답답하던 마음이 좋아졌죠. 히말라야 아래 사는 꼬마들과 사진이 제게 다시 꿈과 희망을 준 거였어요.”
그가 “안타까웠다”며 말을 이었다.
“참 험한 곳이에요. 분쟁이 끊이지 않고, 가난에 찌들려 있으니 문화나 교육에 대해서는 기대하기 어렵죠. 그곳에 사는 꼬마들이 시간이 흘러 성장하면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 사회적인, 경제적인 환경 때문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야 제게 다시 희망을 찾아준 꼬마들 보기가 편할 것 같았어요.”
그는 앞에 놓인 소주잔을 비웠다. 다시 채운 소주잔도 금세 비웠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게 여행의 기쁨을 알게 해줬어요. ‘제 꿈을 채워준 이들의 꿈은 뭘까?’ 문득 궁금했어요. ‘당신들의 꿈은 뭔가요?’라고 물었죠. 질문에 답한 사람의 99%가 ‘아이들이 저보다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나은 교육을 받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절실했어요. ‘1년 벌이라야 200달러가 채 안 되는 처지여서 아이들에게 학용품은 고사하고 책조차 사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어요. 자신들처럼 될까 봐 미안하고 안쓰럽다고 하더군요.”
가슴이 찡했다. “그럼 내가 필요한 것 다 갖다주겠다”고 호기도 부려봤단다. 하지만 고물 카메라 하나와 배낭에 넣어온 몇 벌의 옷이 전부인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08년 6월, 그는 히말라야 메루피크 북벽 등반 원정대를 따라나섰다. 원정대와 동행한 포터(짐꾼)들에게 파키스탄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을 던졌다. 파키스탄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함께 원정간 형들에게 파키스탄 이야기를 했지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 짐을 나르는 포터들의 꿈 이야기도 했어요. ‘그들의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죠. 형들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리곤 십시일반 돈을 모아줬어요. 그 돈을 손에 쥐고 1주일을 걸어 베이스캠프를 내려와서는 영어로 된 책 150여 권을 샀어요. 100㎏ 넘는 그 책을 짊어지고 포터들의 마을인 인도의 산골 다다스로 향했죠. 그것으로 작은 도서관 1호가 만들어졌습니다.”
도서관 1000개를 세울 때까지 이 일 계속할 것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파키스탄 산골 마을에서 호기로 약속했던 것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았다. ‘작은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공연을 하기로 했다.
“2008년 11월에 친구와 후배를 모아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작은 도서관을 위한 첫 번째 공연을 했어요. 성공이었어요. 저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제게 책이며 장난감, 학용품을 보내왔어요.”
260여 권의 책과 수많은 장난감, 학용품이 모였다. 그는 이 물건들을 들고 네팔의 포카라 사랑고트 마을로 향했다. 현지에서 구입한 책 150여 권을 더해 총 400여 권의 책을 짊어지고 산길을 올라가 도착한 사랑고트에 두 번째 작은 도서관을 선물했다.
“아이들 얼굴을 보면 야~, 아~ 죽이죠”라고 그는 감탄사로 말을 잇는다.
2009년에는 지인들에게 ‘행운의 편지’를 썼다.
“‘세상의 끝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행운을 나눠주세요’라는 내용으로 보냈죠. 정말 행운의 편지가 되더군요. 편지를 받은 분들이 주변 분들에게 작은 도서관을 알려주셨고, 직접 책을 보내주셨어요. 순식간에 600여 권의 책이 모였어요.”
그렇게 모인 책과 현지에서 산 영어사전까지 900권을 짊어지고 네팔 산골 마셀 마을에 세 번째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래?’라고 묻기에 ‘1000개의 도서관이 만들어질 때까지’라고 한 거예요. 1000개란 상징적인 거죠. 1만 개가 될 수도, 900개가 될 수도 있죠. 도서관 숫자에 상관없이 제 몸이 성하다면 언제나 이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 1월 중순,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작은 도서관을 위한 그의 두 번째 공연이 열렸다. 예상을 넘는 이들이 찾았고, 꽤 많은 책이 현장에서 모아졌다.
“네 번째 도서관으로 갈 겁니다. 네팔이 될 것 같아요.”
그가 다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곤 웃는다. 그는 정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다. 의료보험 하나 만들지 못했다. 그런 그가 히말라야 산속 아이들의 꿈을 위해, 자신을 보고 웃어주는 꼬마들을 위해 가진 것 이상을 내놓고 돌아온다. 자신의 생활은 마이너스가 될지언정.
“100만 원을 가지고 떠났다가 돌아올 때면 늘 마이너스 잔고더라고요. 하하하. ‘밥이라도 좀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책 살 돈, 학용품 살 돈을 줄이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내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아직 젊어서 그런지 돈보다는 마음이 편한 게 좋아요. 돈을 돈처럼 쓸 곳을 찾았다는 게 행복한 거죠.”
그와 함께한 1시간 30분 동안 소주 두 병이 비워졌다. 몽롱한 취기보다 푸근한 온기가 몸 전체를 감쌌다.
“아이들의 꿈이 자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사진 : 정익환
사진 제공 : 김형욱(월드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