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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0년간 농사만 지은 농사꾼입니다. 서른네 살에 깨달았어요. 밥을 사고 팔지 않는 농사꾼이 되어야겠다.
그 이후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랑할 만도 하지 않나요? (웃음)"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는 것은 나눔입니다. 함께하는 삶이에요.
함께 해야 재밌잖아요! 어릴 적에 우리는 놀이를 하였고, 요즘 얘들은 게임을 합니다.
놀이에는 나눔이 있어요. 남을 이기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게임은 어떻습니까?
나누는 삶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이 사진을 보세요. 여름에 밥이 세균 때문에 쉽니까? 아니에요.
세균이 달라붙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때 쉬는 거예요!
땅은 뭇 생명을 맞아들이는 일을 합니다.
씨앗을 뿌리면 뿌리부터 제일 먼저 내립니다. 그다음이 이파리와 꽃이에요.
진흥청에서는 거름 땅에서 잘 자라는 씨앗만 줍니다.
저는 퇴비 없이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그런 씨앗을 뿌립니다.
뿌리가 깊이 발달해 있으면 흐린 날에도 태풍이 불어도 메뚜기가 먹어도 (메뚜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습니까?)
문제가 되질 않아요. 땅이 내게 주는 게 뭔지를 알면 농사짓는 거 얼마나 쉬운지 몰라요.
귀농학교에서 뭘 가르쳐달라는데 이것만 알면 가르칠 게 없어요."
"의・식・주란 말은 틀린 것이에요. '食・住・衣'가 맞아요. (식・의・주도 아니고) 밥이 가장 중요해요.
밥은 ‘받든다’라는 뜻입니다. 밥이 첫 번째니까 나눠야 해요. 밥을 나누고 나면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정신이 생겨요."
바로 이때, 우리 사모님 밥상을 내어주십니다.
아~
어찌 받들어야 할지 모를 이 소중한 밥상 앞에 할 말을 잊습니다.
"밥은 내 님을 내 안으로 맞아들이는 겁니다.
그 길을 살리는 길로 갈 것이냐, 저버리는 길로 갈 것이냐.
흰 쌀은 저버리는 길이에요. 자녀들에 저버린 것을 먹일 것이냐? 온전한 것을 먹일 것이냐?"
"밥은 150번 씹어서 드세요.
우리 집의 밥은 일부러 뜸을 들이지 않은 거친 밥입니다. 씹고 또 씹어서 녹여서 드세요.
밥은 내 님을 맞아들이는 거라고 그랬죠?
님은 녹여야 하잖아요. 그래야 하나가 되잖아요? (아!)"
한원식 선생님 댁에서 밥 모심 하는 법을 잠시 소개할게요.
우선 첫 숟갈은 물김치로 목을 축입니다.
그리고 밥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고 150번 이상 씹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씹을수록 단맛이 나며 살살 녹아 굳이 삼키지 않아도 넘어갑니다.
현미, 흰콩, 검은콩, 조, 옥수수, 흑미, 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곡물이 담겨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일단 입속에 음식물이 있으면 숟가락은 내려놓습니다.
밥을 다 먹은 다음에 반찬 한 가지를 넣고 음미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여 마음을 모아 느낍니다.
밥과 반찬을 섞어 먹는 데 익숙한 저는
따로따로 한 가지씩 맞아들이며 먹는 게 쉽지 않았어요.
150번 씹느라 턱이 아파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 집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그래요.
일이 고통이냐 놀이냐 그것이 문제예요.
우리에게 농사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것입니다.
먼동이 터서 해 질 녁까지 말 그대로 삼매경에 빠집니다. 씨앗 뿌릴 때는 설렙니다."
"저는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음양의 이치를 말하며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맞나요? 저는 온도의 이치로 봅니다.
겨울에 나무가 자랍니까? 여름에 곰이 여름잠을 잡니까?
움츠림과 펼침입니다.
새벽에는 우리 몸이 어떻습니까? 움츠러듭니다. 밥은 펼침입니다.
일은 펼침입니다. 그래서 일을 한 후에 밥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펼쳐질 때 밥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펼침과 펼침의 조화입니다.
어제 먹은 밥이 아직 소화가 안 되었는데 어떻게 또 먹습니까?
넘침은 고통을 부릅니다. 쓸데없이 먹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가 깨집니다.
지금 여러분과 나도 밥이 있어서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이 친구들도 제 아이 잘 키워보겠다고 모였습니다. 한 말씀을 해 주시죠."
"다른 거 없어요. 밥 모심만 잘하면 돼요."
낮 12시 반이 넘어 시작한 밥 모심.
시간이 어찌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듭니다.
(얘기 끝나고도 상을 치우지 않는다고 사모님께 혼도 나고)
이날 선생님은 총 열한 시간이나 말씀을 하셨다네요.
대단한 체력과 열정.
"병을 우리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앓이' 아닙니까? 안다는 거예요.
내 몸에 있는 것을 잘 내보내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풀어주셨어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케 하리라'라고 하셨잖아요.
네 안에서 '앎'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너를 살린다는 말씀이에요.
아픔 그 자체가 나를 살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흐름이 좋지 않을 때 아픈 거예요. 흐름을 트이게 해 주는 것이 앓이입니다.
흐름이 막히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러면 얼이 빠져요. 어울림이 안되는 삶이 되는 거예요."
출발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준이 엄마는 결국 이렇게 앓이를 합니다.
선생님 댁에서 앓이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물이 아닐까요.
그 선물 잘 받고 제대로 앓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장일순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한 말씀을 해 주시지요."
"어느 날 사경회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뵈었는데 '통'의 말씀을 하시는겁니다.
그날을 계기로 목사님과 가까워졌는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장일순 선생님을 꼭 뵈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고 제가 그랬죠. '농사꾼은 저밖에 없습니다.'
'네 말이 한마디도 그른 게 없다.'라고 하시며 장 선생님께서 다 들어주셨어요."
"병석에 계실 때였어요.
제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라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시며
세상이 칼로 너를 찌를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선생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칼을 빼 들고 피를 닦는 상대방에게 “나를 찌르느라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었겠느냐.”라고 위로해 주는 삶, 그런 삶이 바로 너의 삶이라고 풀어주셨어요. “지금 네가 사는 삶이 그런 삶이지 않냐.”라고 말씀하셨어요.
"88세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다리를 못 쓰셨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왜 드십니까' 그랬죠. (웃음) 밥은 살 사람이 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굶으셨어요. 그런데 굶으신 지 3일 만에 뒷간 출입을 하시는 겁니다. 나들이도 하시고요.
그래서 '어, 이제 사실 분이니 잡수셔야겠네' 그랬죠. (웃음)
다음엔 보식을 시작했어요. 단식하면 어린아이처럼 깨끗한 몸이 됩니다.
그 이후 장모님은 순환 단식을 하셨어요. (엿새 먹고 하루 굶고, 닷새 먹고 하루 굶고)
그렇게 석 달을 하니 밭을 매러 다니셨답니다. (웃음) 그래서 이제 일부러 굶읍시다! 그랬죠.
6일 동안 단식하니 몸이 날아갈 듯하셨다네요. 그렇게 하고 나서 한 달은 과일만 드셨어요.
지금은 3천 평 밭을 혼자 다 지으세요.
장모님을 모시려고 오시라 했었는데 지금은 장모님이 우리를 모십니다. (웃음)"
"저희 어머님도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시고
평생 열심히 농사짓고 사시는 데 백미만 드십니다. (웃음)
왜 선생님처럼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시는 걸까요?
그 차이가 대체 뭘까요 선생님?"
"아 아마 이걸 겁니다.
5살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당신 혼자 다 해야 했어요. 가진 것 없고 아프고.
그때 저의 할머니께서 기도해 주셨어요. ‘잘 되게 해 주라’가 아니라 '바르게 살게 해 달라'고요.
참나무는 그루터기에도 숨은 눈이 있어요. 그래서 죽은 것 같았던 나무에도 새순이 돋아납니다.
할머니의 그 기도가 내 안에 (참나무의 숨은 눈처럼)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술도 하시고 담배도 하세요. 뭐든 과하지 않게 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즐겨 태우시는 이 곰방대 덕에 많이 웃었습니다.
(아침에 눈 떠 이부자리 속에서 태우시는 담배 맛이 그렇게 좋다고.
월매 삼인방도 탄생했구요.)
"암 환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일 년에 손님이 천 명 정도 오신다네요.)
제가 그럽니다. '나는 못 살립니다. 하지만 잘 죽게 할 순 있어요.' 그러다 살릴 순 있지만 (웃음)"
"넘치게 저버리고 먹는 삶 속에서는 펼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엔 농사도 놀이가 아닌 게임이 됩니다."
일은 놀이입니다.
삶이 곧 놀이가 됩니다.
[밥 짓고 밥 먹는 몸]
더듬거리며 까만 밤에 들어오느라 볼 수 없었던 좁다란 앞뜰에는 가을걷이한 곡식들이 널려 있다. 아기 손바닥만 한 옥수수, 땅콩, 땅심을 받아 머리에 얹은 붉은 흙 색깔 수수, 붉디붉은 가슴을 다 내보인 고추, 단맛이 든 대추 알, 녹두와 팥, 메주콩도, 야무진 토종밤도 윤기 나게 모여있다. 참 곱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색색의 곡식들은 신명 난 농부의 가슴이며 몸인 듯싶었다. 집 모퉁이 한쪽에 거위와 토종닭들이, 집 마당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비탈에는 토종 벌통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갈꽃을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울 삶을 이루면서 느릿하고 한가로이 가을 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쌀로 밥을 지어 먹어야지. 아침은 몸에 쌓아둔 기운을 소비하는 시간인데 밥을 먹으면 되레 무기력해져. 점심 전까지는 일하고 움직여야 해.” 한시도 비워두지 않고 배 채우기에 허둥거리는 동안, 밥은 습관에 따라 끼니를 그저 때우는 것이 되고, 결코 제 몸이 될 수 없는 것을 삼키는 셈이다.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고 밭일에 함께 나섰다. 폭 좁고 길쭉한 밭은 땅콩을 심었던 곳이다. 여기에 우리 밀 씨앗을 뿌린다. 농사의 원칙 중 하나는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이다. 함께살이가 깨지고 죽기 때문이다. 밭에는 땅 위 생명과 땅 아래 생명이 함께 어울려 숨을 쉬고 있다. 골을 파서 씨앗을 땅속에 묻지 않는다. 밭 위에 씨앗을 그냥 슬슬 뿌리고, 퇴비를 만들거나 발효시키지 않은, 여름내 말려둔 풀을 지게로 날라 그 위에 덮는다. 그것은 마른풀 밑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밭에서 해야 할 몫을 남겨두는 일이다. 발효된 퇴비를 직접 뿌리면 지렁이가 제 몫을 잃는다. 사람이 다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고 교만한 일이다. 농사는 지렁이, 미생물과 함께 짓는 것이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 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속 함께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질은 하지 않아.” 너무 잘하려는 의욕 때문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가난한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고, 자기 몸까지 죽이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래서 밭에서 난 곡식들은 값을 매겨 팔지 않는다. 씨 뿌리는 일을 하지만 씨앗의 심부름을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심부름 잘하면 벼와 곡식들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이미 만물이 함께 가고 어우러져 오고 감이거든. 그런데 값을 치르는 거래가 되었어. 절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거래가 이루어지니까 물질과 세상에 종속이 되는 거야.” 종속되지 않는 방법은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에 깃들고, 자연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배추가 깨우쳐준 함께 사는 삶]
한원식 님은 농사를 18살부터 배웠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 할 정도였어.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도 있었어. 농사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 축사, 원예, 논농사도 두루 배웠어.”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수입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34살 무렵부터 유기농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그 길로 관행농을 접었다. “돈 벌기 위해서 농사짓는 걸 포기했어. 그러니 결국 그동안 끌어다 쓴 빚을 갚지 못할 형편이 되었지.”
이듬해 유기농 배추를 많이 심어서 빚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배추는 정말 잘 자랐고, 값도 한창 오른 때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져 배추밭은 싹 쓸려갔고, 허망한 마음만 남았다. 그런데 그 난리에도 한쪽 구석 몇 포기가 살아있는 것이 보였다. 갈아엎는 곳에는 숨통이 없어 배추가 뿌리부터 죽어갔고, 갈아엎지 않은 곳에는 숨통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에 이듬해 땅을 갈아엎지 않고 배추를 두 배로 심었다. 예상대로 배추는 잘 되었는데, 이번에는 배추 가격이 하락했다. 팔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때 한원식 님은 자신이 못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되물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어. 자연에는 돈이 필요 없지 않은가. ‘벼와 곡식은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뿐이지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돈은 허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 한원식은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먹는 걸 바탕으로 밀 농사, 벼농사, 다양한 곡식들을 지어 자급해서 사는 방식으로 전환했지.” ‘땅을 갈아엎지 않는’ 자연 농법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다 쓸어간 밭에서 만난 ‘배추’는 인생을 바꿔 준 스승이었다.
[밥 모심, 똥 모심]
모든 일은 ‘밥 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밥이 몸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일이니,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 점심시간, 이 집 안주인 안혜영 님이 단감과 찐 옥수수 바구니를 상위에 얹으셨다. 쌀로 지은 것만이 밥이 아니고, 계절 음식 하나 하나를 다 밥으로 여긴다. 무엇이든 공손히 모시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옥수수를 오래 씹으니 고소한 단물이 고였다. 이어서 마늘쫑, 호박 무침, 김치, 마른 김, 미역국, 민물조개를 삶아 무친 것, 태어나서 처음 본 호박 꽃찜, 그리고 푸성귀가 소쿠리 가득 밥상에 올라왔다. 순무, 무청, 배춧잎, 갓, 민들레, 쇠무릎, 카프리, 꼬들빼기… 가장 특별한 음식은 현미에 여러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현미를 기본으로 팥, 옥수수, 메밀, 율무, 통밀, 보리, 밤, 잣, 조, 검정깨, 수수, 콩 등이 들어갔다. 현미와 다른 곡식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이 밥상의 모든 음식은 ‘백오십 번’ 정도 씹어야 한다. 반찬은 반찬대로, 푸성귀는 푸성귀대로 신선하고 생명 어린 빛깔을 느끼며 그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들여 멥쌀(현미)을 씹고 또 씹어 몸을 이루는 거야. 흰쌀은 오래 씹으면 무력해져. 흰쌀은 깎아 내고 쪼개서 절반을 버리는 거야. 멥쌀에서는 싹이나. 아름다운 것은 자라나지.” 현미를 먹으면 절반만 먹어도 된다. 통째로 먹어 힘이 넘친다. 흰밥은 보기엔 좋지만 둘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깎아 내서 절반을 버린 셈이다. 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먹을 곡식을 다양하게 하면 각각 소비하는 양도 최소로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된다. 지극한 ‘밥 모심’은 나눔의 실천이고, 생명을 나누는 일이다.
밥 모심은 똥 모심으로 이어진다. 인디언 천막집 닮은 이 집 뒷간에 앉으면 아래쪽 논밭이 보이고 먼 산이 안긴다. 뒷간은 한 해 농사를 짓는 기본이 담긴 곳이다. 뒷간에 부려놓은 똥은 거름이 되고, 풍성하고 기름진 논밭이 되어 충만한 곡식을 키워내고, 그것은 다시 밥상에 올라 나와 너의 몸이 되고 마음과 생각이 되고, 삶이 된다. 충만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마음공부가 따로 없어. 똥을 잘 누면 되지.” 똥이 밥이 되고 다시 몸이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똥을 저버리는 삶에는 함께살이가 깃들 수 없다.
똥 장군에 똥 담아 지게에 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흔들 춤 저절로 나고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뿌릴 때마다 너울너울 춤추며 멀리 퍼지네
멀리 퍼진 똥 냄새 땅에 잠길 때 벌거숭이 지렁이 잠을 깨우네
옆에 자던 새싹들 같이 잠 깨어 지렁이 새싹들 한 마음 되어
하늘 양식 내렸다고 소리치면서 흔들 춤 너울춤을 함께 추네
건너편 바람이 춤을 추네 (한원식, 똥 풀이)
온갖 풀과 열매와 곡식에 아무런 차별이 없고, 내 것 네 것이 없다. 사는 일은 어우러지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것을 모시고 받들며 사는 일이다. 밥 모심, 똥 모심, 일 모심, 잠 모심… 모심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몸에 생긴 병도 모신다. 병은 우리말로 ‘앓이’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라는 말이다. 앓이를 모신 몸은 스스로 몸의 균형을 이루어 탈이 난 것을 풀어준다. 그러면 앓이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앓이’를 몰라보면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해 싸우려고만 한다. 밥이 바르면 ‘앓이’를 대적하는 의학으로부터 해방된다. “우리 몸에 병이란 것은 없어. 통증은 몸이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그건 신호야. ‘앓이’는 몸의 독을 풀고 피를 맑게 해 주지. 더 이상 ‘앓이’가 할 일이 없으면 슬며시 나가는 거야.”
출처 : 농부 한원식 인터넷 검색

첫댓글
부처님의 日中食이란?
부처님의 식사법으로 알려진 일중식(一中食)은 “하루에 한 번 먹되, 반드시 정오 이전에 끝내는 식사”를 뜻합니다.
핵심 기준은 ‘몇 시에 먹느냐’가 아니라 ‘정오(12시 전)에 끝내느냐’입니다. 그래서 현재 시각으로 환산하면 보통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범위: 오전 10시 ~ 11시 30분 사이
늦어도 마감: 정오(12시) 직전까지
기준선: 태양 기준의 정오(해가 가장 높은 시각 이전)
불교 율장(계율)에서는 “정오 이후에는 음식 섭취 금지”가 기본이라서, 현대 시간으로 딱 고정된 시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대신 수행 환경에서는 보통 아침 일찍 시작해서 늦어도 늦은 아침~이른 점심 사이에 한 번에 식사를 끝냅니다.
정리하면, 오늘날 감각으로는 👉 “브런치~이른 점심 한 끼를 12시 이전에 끝내는 식사법”이라고 보면 가장 가깝습니다.
부처님은 日中食을 오전 10시 30분~11시 30분 사이에 하셨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도 인도처럼 熱沙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으니 試圖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人命在天이네요.
https://youtu.be/CZIQxS7TxZ0?list=PLsX6ir-8lLVFtl1De1BNnEJPh7lxwLF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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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正法과 定法이라는 것이 있을까?
https://youtu.be/ncMkEfJRu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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