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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 다윗과 골리앗
북태평양 북위 30도 부근 심해
“아직도 못 찾았나 ?”
“깨끗합니다.”
8000톤급 대한제국 잠수함 사령부 소속 041시리즈 후기 잠수함인 0419번 함이 태평양 심해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2102함 위치는 ?”
“추정 위치 남서쪽 70킬로 지점입니다.”
“완전히 사막에서 바늘 찾기 군”
함장은 벌써 열흘째 부상과 잠수를 거듭하며 일본 사세보 항을 출항한 이래 목표물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총 15척의 자매함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과 마찬가지로 목표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끼이익”
“함장님 ?”
소리장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자, 급히 함장을 불렀다. 단 한번 들려온 소리에 불과했지만,
소리장은 이 소리가 조타기가 움직일 때 들리는 소리라는 것을 직잠했다.
“조타기 소리입니다. 추정 위치 북쪽 10킬로미터”
“좋았어. 12방향으로 전속력 항진. 항진하면서 서서히 부상한다.”
해도를 집어 든 항해사는 목표 추정위치에 마크를 하고 0419함 위치와 목표의 행동반경을 그려냈다.
일정한 항로가 없는 목표는 추정위치에 도달하는 동안 어디로 움직일 지 몰랐다.
30분 동안 15노트로 움직이던 489함이 서서히 속도를 죽이며 수면위로 잠만경을 내밀었다.
“뭐야 ? 아무것도 없잖아. 부상”
적잖이 실망한 함장의 명령에 함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부장이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중기관총 총신과 거치대를 들고 수병들이 달려나가 갑판에 설치된 포반에 올려놓았다.
이어 탄박스가 운반되고 탄이 연결되었다.
“기관총 설치 완료”
“함장님 10방향에 목표물입니다.”
“좋았어”
두 척의 범선이 10시 방향에서 일본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자
함장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갑판 철수. 추격한다.”
속도의 차이때문인지 잠수함과 범선의 거리는 20여분 안에 공격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망원경으로 목표를 확인한 함장은 지체없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1번 2번 발사관 개방”
“발사”
단 한발만으로도 전열함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대구 중어뢰 2발이 목표를 향해 긴 항적을
내며 소리없이 다가갔다. 30노트로 움직이는 대구는 목표까지 불과 1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030 방향으로 미속 접근 3번 발사관 개방”
만일을 위해 3번 발사관을 개방한 함장이 느긋하게 잠만경을 바라보며 흐릿한 웃음을 보였다.
작은 구멍을 통해 보이는 범선은 이제사 어뢰를 발견했는지 방향을 이리저리 틀며 춤을 추고 있었다.
범선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소리장은 기분 나쁜 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잠수. 최대각”
갑작스런 최대각 잠수 명령에 잠수키를 잡고 있던 막리상사가 잠수키를 쭉 밀었다.
최대 잠수각 45도로 함수가 쏠리며 앞으로 기울자 미쳐 대비하지 못 한 부장이 허우적 거리며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다.
“퐁퐁퐁”
“발악을 하는 구만”
범선에서 함포를 쏘아대는 지 이내 수면위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커다란 폭음과 함께 소리장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명중”
“그래 이 맛이야. 급속 부상한다.”
잠시 후 수면위로 잠수함이 튀어 오르고 수병들이 목표물을 구경하기위해 갑판으로 몰려들었다.
중어뢰 대구에 직격당한 범선은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쓴 체 모든 돛을 내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000톤급 범선에 0419함이 천천히 다가가자 대한제국 교육 사령부 소속 온양함 선원들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기분 좋게 답례를 한 0419함 수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어 댔다.
“사령부에서 이상한 명령만 내리지 않았어도 고래하고 놀고 있을 놈이 자랑이다.”
“무슨 소리야. 이상한 명령이라니. 잡히니까 괜한 변명이야.
귀환하면 약속대로 동생하고 자리나 마련하라고.”
“얼어죽을. 미화가 너 같은 놈을 좋아하기나 한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사령부 통신이나 잘 수신해. 미친놈.”
단거리 통신기기를 이용한 온양함과 0419함 선장간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온양함을 비롯한 이번 훈련에 투입된 모든 잠수함과 수상함에게 훈련중지와 이동 명령이 내려졌지만,
유독 0419함만이 그 통신을 접수하지 못하고 바닷속을 헤매고 다녔다.
0419함과 연결이 되지 않자, 훈련을 총괄하고 있던 2102함에서는 온양함에게 0419함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온양함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느라 물속에 소리발생기를 집어넣고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어뢰 공격을 받은 것이다.
“함장님 ? 작전지휘본부에서 통신입니다.”
무슨 영문인지 알길 없는 함장은 본부장이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 지나 사태를 파악한 함장은 씩 웃어보이며 온양함 함장에게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이긴 건 변하지 않았어. 약속은 약속이라고. 미화에게 매일 이 오빠의 무사귀환을
빌어달라고 전해나 줘라. 정화수 떠놓는 것 잊지 말라고 해. 난 바빠서 이만 간다. 잠수”
멋적은 함장은 서둘러 잠수를 명하고 갑판을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픈 마음에 잔뜩 몰려나와 큰소리로 떠들던
수병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갑판에 난 3군데 출입구로 수병들이 빨려 들어가자 삽시간에 갑판이 텅 비었다.
“이동명령 이다. 자카르타로 전속 항진한다. 늦둥이라고 놀림 받겠군. 부장! 최단 거리를 잡아.”
“네. 알겠습니다.”
“동해함대와 041잠수함 전체가 이동하다니. 그럼 우리집은 누가 지키누 ?”
뒤늦게 명령을 접수한 0419함이 자카르타를 향해 가는 도중에도, 자카르타에는 속속 동해함대 소속
수상함과 잠수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인도양을 통한 유럽의 항로를 막기위해 집결하고 있는
함대로 인해 자카르타는 개항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기3959년(1626) 초여름 서울 천군부 원정군 위원회
천군부내에서 실세중의 실세로 손꼽히는 원정군 위원회 위원들이 하나 둘씩 천군부 본관 4층에
마련된 원정위원회 직속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벽면이 열리자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의 대형 평면 지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30센티미터 정사각형 2278개로 구성된 대형 지도에는 아프리카와 인도, 동남아 일부와
쥬신 대륙 동부 해안을 제외하고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검은 색 점선으로 표시된 통신로는 서울을 기점으로 청진을 거쳐 베링해를 지나 쥬신 대륙 서안을
타고 내려가 파나마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와 일본을 거쳐
대만 마닐라 자카르타에서 호주로 이어졌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러시아부로 연결된 통신로는 천인성에서 이스탄불로 그리고 수에즈로 이어지고,
모스크바에 다다른 통신로는 스몰렌스크를 거쳐 민스크에 이어졌다.
전 지구가 대한제국 영향권 안에 들어올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였다.
“의장님이십니다.”
원정군 위원회 의장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위원들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의장을 맞이했다.
천군부 상부 조직인 위원회에서는 계급이나 상하구분이 적용되지 않았다.
위원들은 위원으로 있는 한 계급에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의장을 마지막으로 의원 전원이 참석한 회의실에는 특이하게도 의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중앙에 긴 타원형의 회의탁자 둘레에 있는 대략 1미터 50센티미터 크기의 발표대 앞에
서 있었다. 발표대 위에는 오늘 회의 안건으로 보이는 문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작전 명, 신들의 전쟁이 최종 승인 되었습니다.
앞으로 천군부는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이번 작전의 중추인 지상군 투입에 앞서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럽 정세분석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있겠습니다.”
천인단 외교부와 정보부서 그리고 천군부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보사령부와 각 군의 정보부서에서
올라온 정보를 취급하는 원정군 위원회 정보위원이 발표대를 끌고 지구도가 그려진 벽면으로 다가갔다.
지휘봉을 들어 올리자, 회의실이 어두워지며 지구도에 불빛이 들어왔다.
“기억을 상키시키기위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중해 해전에서 참패한 이래 터키의 해군력이 급속도로
위축되어 서 지중해에 대한 재해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라한 황후가 지중해 함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로리앙 사태를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터키 원정군의 고전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밀라노 공의회에서 결정된 연합군 조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찰스 1세와 프랑스의 루이 13세가 손을 잡고 이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세력을 끌어드리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이 유럽에서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 건데 연합세력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조직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확인된 것은 아직 없습니다.
한가지 좋은 소식은 스웨덴에서 우리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외교문서를 전달해 왔습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아직 답변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 해외 공작실에서 모종의 작전을
수행 중이어서 그 결과를 본 연후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보위원이 보고를 마치고 지휘봉을 탁자에 올려놓자 다시금 회의실이 밝아졌다.
잠시 뒤로 물러서 다른 위원들의 질문을 기다렸다.
“파리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습니까 ?.”
“외교부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확인 해 줄 수 없다는 답변뿐 입니다.”
“유럽의 최대 위기군요. 북에서는 우리가 치고 내려갈 거고, 남쪽에서는 터키와 싸우느라
여념이 없고, 프랑스는 내란으로 혼란스럽고 말입니다. 로리앙에서 특수여단 병력을 철수 시킨 것이
못 내 아쉽군요. 신항이 조금만 빨리 풀렸어도 철수 시키지 않았을 텐데요… ”
의장은 아직도 로리앙에서 2101전단을 철수시킨 것을 못 마땅해 하고 있었다.
지중해를 이용한 보급로에 안전성을 의심하는 위원들로 인해 손쉬운 철수를 결정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가용 함대를 총 동원하는 대서양 봉쇄작전을 시작으로 신들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1군단 병력을 계속 남진 시켜 오드리강 하구에 있는 스제첸까지 진격 시키는 것을 제외하면,
4군의 예상 진공로는 과거와 크게 달리진 것이 없습니다.
올해 안으로 폴란드를 접수하고 스웨덴과 폴란드를 아우르는 진격로에 40만의 병력을 집결시킵니다.
발틱해와 유틀란트반도의 운하를 이용한 보급로를 확보한 이후 유럽과 본격적인 전면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때를 맞추어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 민심을 흔들어 놓게 됩니다.
상황이 무르익으면…….”
계속해서 이번 작전을 입안한 위원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최종 점검 단계이기에 간과한 것을 것을 우려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세히 설명해 나갔다.
“지중해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
주변에 예비병력을 대기 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
“지금 파견된 병력만으로도 터키의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더 증원된다면 자칫 터키제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키예프로 이동한 신속대응군의 작전 반경에
지중해가 들어가기 때문에 지중해 전력 증강을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 하지만 가능하면 예비 병력을 주변으로 미리 이동 시켜놓는 것이 만일을 위해
좋지 않겠습니까 ?”
여전히 한 위원이 작전위원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는 듯 이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5군 병력과 전략 기동군 일부 병력의 이동 배치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수에즈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는 말라카와 파나마밖에 없었다. 그곳도 모두 항해거리 보름이상이
걸리는 곳이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었지만, 내년에 예정된 기동 훈련을 조금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고아로 진출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
“고아항을 말입니까 ?”
“그건 완전히 새로운 작전이라….”
뜻밖의 제안에 작전위원이 말끝을 흐리며 의장을 바라보았다.
의장의 중재가 필요한 사항이기도 하거니와, 최고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할 사안이기도 했다.
북대서양
동파마나 기지를 출항한 대형 전투함 6척은 각기 2척씩 짝을 이뤄 카리브해를 지나 북대서양으로 북북진을 계속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배를 침몰 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파나마 함대는 아직 단 한 척의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북위 30도를 지나쳤다.
“이쪽이 원래 항로가 아니라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섭섭하군”
정한성 대령은 6000톤급 2415함 함교에서 사방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4409함에서 좀더 거리를 벌리라고 하지”
정한성의 명령이 접수되었는지 수평선을 넘나드는 4000톤급 4409이 2415함과 거리를 넓혀갔다.
레이더 사관들은 순번대로 돌아가며 24시간 주변을 감시했고, 함교와 선미에 배치된 견시병들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들이 나타나길 목놓아 기다렸다.
“부사령관님. 한시간 후면 발틱 함대의 작전 범위로 들어가게 됩니다.”
“좀더 올라가보자. 최대 교차범위까지”
북위 45도선을 경계로 그 위쪽은 발틱 함대가 파나마 함대와 똑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자칫 시비에 말려들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한성은 설정된 완충지대 끝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경계서 위아래로 30킬로미터의 상호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완충지대가 설정되어 있었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3시간을 북북진을 하고도 목표를 찾지 못한 정한성은 이내 함의 선회를 지시했다.
“선회 090. 되돌아 간다. 굴 앞에서 토끼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갑갑한 마음에 무작정 대양으로 나왔던 정한성은 별 소득이 없자, 동안에 건설된 식민지 항구인
뉴 암스테르담과 버지니아 근처에서 출항 하는 배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부사령관님. 그곳은 농무가 종종 출몰하는 지역입니다.
수심도 걱정되고 말입니다. 좀더 아래로 내려가심이….”
함장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싫어. 함장은 좀 쉬지 그러나 ? 야간에 나랑 교대해야지”
괜한 말을 꺼냈다 본전도 못 찾은 함장이 뾰루퉁해져서 함교를 내려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함장은 속에서 열불이 났어 궁시렁댔다.
“순양함이나 탈것이지. 나하고 무슨 철천지 원수가 졌다고. 에이”
경력이나 성격으로 봐서 2415함을 탈 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한성 대령은 계속 2415함을 타겠다고
우기고 나섰다. 북대서양 항로가 대부분 북위 40도에서 50도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기에 다른 함에
승선했다면 작전기간 내내 조각배조차 구경하기 힘들 것 같았기에 그랬음에 틀림없었다.
“함장님 함장님”
눈을 감고 있던 함장은 부관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다.
“내가 그새 깜빡 졸았나 ? 무슨 일인가 ?”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그래 ? 벌써 ?”
“네. 부사령관님께서 찾으십니다.”
장교식당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부사령관 혼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괜히 멋쩍은 함장이 눈을 내리 깔며 맞은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음이 상했나 ? 함교에 한번 올라오지 않고 말야 ?”
“아닙니다. 잠시 졸았나 봅니다.”
“그래 ? 자 먹지 !”
정한성은 숟가락을 들어 소고기 미역국을 입에 물었다 내놓았다. 깍두기 썰기로 썰어낸 안심
고기덩어리를 씹어 삼켰다. 밥 한 공기를 모두 국에 말고는 김치를 얹어 그냥 삼키는지 눈깜짝할
사이에 식사를 마치고 함장을 바라보았다. 겨우 반밖에 식사를 하지 못한 함장이 으레 그러려니
하며 천천히 숟가락을 놀려대며, 이것 저것 차려진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하루에 20가지 이상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필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 천천히 많이 먹으라고”
함장의 식 습관과는 다르게 정한성은 국에 밥 말아먹은 것을 좋아했다. 입맛이 없으면 냉수에 밥을
말아 먹곤 했는데, 숟가락을 들고나서 마칠 때까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반면 함장에게 30분의
식사 시간은 기본이었다. 또다시 함장의 잔소리가 시작되자, 정한성이 자리를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아무리 부하지만 식사도중 일어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옆에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장강바닥 30센티미터 파내는데 성공. 15년 동안 고작 30센티야. 김대성 초원이 갈수록 넓어져
황사가 많이 줄어들 듯. 만주 고분에서 고대 가람문자와 상형문자가 나란히 출토. 고고학자와
언어학자의 비상한 관심을 끌다. 뭐야 이번 작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잖아 ?”
대한제국일보를 한 장씩 넘기던 정한성이 기사 머리들만 대충 읽고는 신문을 접었다.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들로 가득찬 대한제국일보는 언제 보아도 재미가 없었다.
정한성 대령이 군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발행된 신문지면은 반절 이상이 천군의 활약상에 대한
것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군대 이야기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면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 아니고도 지면을 채울 소식은 넘쳐 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군부에서는 신문사에 보도자료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뭔가 ?”
“레이더에 이상한 물체가 잡혔습니다.”
“거리는 ?”
“ 북쪽 10킬로미터입니다.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추격해. 이상물체의 진로는 ?”
“북북동진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바로 올라가지.”
함교와 연결된 수화기를 내려놓은 정한성을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바라보았다.
밥그릇 밑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함장은 다 먹고 천천히 올라와. 먼저 가네”
정한성이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 식당 문을 열고 나가자, 마음이 급해진 함장이 밥그릇을 박박 긁어
한꺼번에 입에 몰아넣었다. 함교에 올라선 함장의 입이 연신 오물거렸다.
그런 모습을 힐끔 쳐다보던 정한성은 이내 눈길을 바다로 향했다.
“항해등 소등. 전속 전진. 4409함은 미속으로 따라오라고 해”
주위는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뉴암스텔담항을 출발해 암스텔담항으로 가고 있는 2200톤급 무장상선 게르에르호가 순풍에 돛을 달고
북북동으로 항로를 잡았다. 잉글랜드 출신 이사애 훌 선장은 선창 가득 싣고 간 화물을 팔아 챙긴
이익의 반을 운임으로 받았다. 그리고 부수입도 짭짤해서 이번 귀항은 어느 때보다 이익이 많이
남았다. 암스텔담에 모여든 이민자들은 대부분 가난자들이어서 뱃삯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 자들은 뉴암스텔담 부근 농장주들에게 10년 무임금 노동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배를 얻어
탈 수 있었고, 농장주는 선주나 선장에게 수수료를 지불했다.
“10명이나 죽어버려서 내돈 10파운드만 날아갔네.
다음 부터는 죽지 않을 만큼이라도 음식을 주던가 해야지. 흐흐흐.”
누가 들어도 소름이 돋을 만큼 한밤에 흘리는 훌의 웃음소리는 기괴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훌은
무임 승선자들에게 음식물 제공을 극도로 제한했고, 때론 선창 청소를 강제로 시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10명이 시름시름 알다가 죽어버렸지만, 그는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했다. 작은 나무 괘짝에 가득 찬 은하와 금화를 바라보던 선장이 후다닥 괘짝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선장님 ? 뒤쪽에서 뭔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
“뭐가 쫓아온다는 거야 ? 잘 못 본 것 아냐 ?”
“아닙니다. 꼭 생긴 것이 유령선 같습니다. 돛도 없는 것이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일등항해사의 말에 의아함을 느낀 훌 선장이 선실을 나와 일등 항해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면 배 같기도 하고 해무가 만들어낸
기이한 모양 같기도 했다. 이곳을 항해할 때면 나타나는 해무는 가끔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
선원들을 놀라게 하곤 했었다.
“심술쟁이 포세이돈의 장난이라고. 이런 거 한두 번 겪나 ?”
“분명히 뭔가 따라왔었습니다.아무렴…”
“알았네. 난 그만 들어가겠네.”
일등 항해사는 선수를 다시금 바라보았지만 농무가 덮쳐와 사방이 뿌옇게 흐려져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수십 번도 더 경험한 농무지만 왠지 뭔가 불쑥 튀어 나올 것 같아 항해사는 등골이
오싹해지자, 저절로 손이 목에 건 십자가에 올라갔다.
“젠장”
정한성은 레이더사관이 목표를 놓쳤다는 보고에 주먹을 탁 쳤다.
거의 다 잡은 사냥감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상항로를 산출해서 앞서나간다. 4409함을 호출해”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뭐라고 ? 통신기도 먹통이야 ?”
“네 그렇습니다.”
“자랑이다. 일단 항로를 북동으로 유지하고 속도를 반으로 줄인다. 선
미 항해등을 켜고 후미에서 따라오는 4409함을 계속 호출하도록. 바람이라도 불어야 할 것 아냐 ?”
육지와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한 정한성은 함의 진행로를 동쪽으로 치우쳐 잡고 추격을 계속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않는 성격답게 그는 이번 사냥감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45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칫 발틱 함대와 조우하게 되면 오인사격이….”
“거 재수없는 소리 그만하게. 생길 때처럼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야”
정한성은 농무가 순식간에 왔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날 밤 농무는 새벽이 되어도 걷히지
않았다. 밤을 꼬박 세운 수병들이 지쳐갈 무렵, 어쩔 수 없다는 듯 정한성이 다시 한번 진로 변경을
명령했다.
“젠장. 꼭 저 놈의 안개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 같군. 3시 방향으로 전속 이탈한다.”
남태평양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자카르타를 출항한 2102 항공모함과 6척의 대형 순양함이 폭풍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희망봉 부근에
정박한 체 인도양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려는 모든 선박들을 나포하거나 침몰시키는 무기한의 작전에
돌입했다. 사방 100킬로미터를 커버하는 희망봉 봉쇄작전에 투입된 수상함만 순양함 10척에 항공모함
1척 보급함 5척 그리고 잠수함 10척이 투입되었다.
“이제 한고비 넘겼군”
가끔 나타난다는 정체불명의 바다괴물에 의해 고아항을 출항하는 상선들에게 인도양은 죽음의 바다와도
같았다. 그 인도양의 끝 자락인 아프리카 남단에 진입해 들어가자, 카보 데 호르노스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포르투갈 왕국 상선 단을 이끌고 있는 호르노스는 휘하의 상선 20척에 인도 향료와 물품을
가득 싣고 리스본으로 가고 있었다. 1488년 디아스가 이곳을 처음 지나간 이래 줄곧 인도양을 오가는
상선들을 바라보던 희망봉이 얼마남지 않았다.
“신부님 !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려주십시오. 이번에도 무사히 인도양을 넘어왔다.
대한제국에게는 저주를, 포르투갈과 스페인엔 영광을”
대형상선에 타고 있는 예수회 소식 신부님이 호르노스에게 다가가 십자가를 손에 들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성스러운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신 우리 주 하나님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앞으로도 기나긴 항해가 남아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신부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올리자 에스페란샤호에 탄 모든 선원들이
무릎을 끓고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호르노스는 술통을 갑판에 가져와
선원들에게 살아났음에 감사하는 술잔을 들게 했다. 10여전 대규모의 해전이래 인도양에 대한 재해권을
상실한 유럽인들은 대한제국의 잠수함들의 공격으로 인해 침몰하는 상선들이 늘어나자, 궁여지책으로
대규모 상선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 이후로는 대한제국의 공격이 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 상선들은 이곳 아프리카 최남단 아글라스를 지날 때면 의례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었다.
“대규모 선단이 막 남단을 지나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2102전단을 지휘하고 있는 함대 사령관인 오중구 소장은 통신장교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표물이 점점 쳐놓은 그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순양함들에게 포위를 지시하고, 제비들을 날릴 준비를 마쳐놓게. 슬슬 움직여 볼까 ?”
5만톤급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두개의 프로펠라가 동축에서 실려오는 힘을 받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세차게 돌아가며 항공모함을 앞으로 밀어냈다. 이내 좌우에 배치된 순양함이 간격을 벌리며
다가오는 호르노스 선단을 향해 나아갔다.
“저게 뭐지 ?”
5307 함교 꼭대기에 달려있는 안테나가 수평선을 서서히 넘어오며 햇빛을 반사했다. 파도의 울렁임에
보였다 사라졌다 하던 모습이 점점 작은 물체를 만들어 다가왔다. 반사되는 햇빛에 눈길을 빼앗긴
한 선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상한 것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중앙 돛 위 쪽에서 사방을 주시하던
파수꾼은 눈을 감고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겨우 서너 잔 마셨는데, 눈에 헛것이 보이나 ?”
다시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지만, 신기루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5307함의 함교가
수평선을 넘어왔다. 곧 이어 함수와 함께 갑판에 장착된 함포의 모양이 망원경에 잡혔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대한제국의 전함과 모양이 비슷했다. 정신을 바짝 차린 파수꾼이 갑판과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자 선장실에 걸려있는 종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파수꾼은 일차 경고를 한 후
줄을 타고 갑판으로 내려와 술판을 벌이고 있는 선원들에게 고함을 지며 달려갔다.
“배가 나타났다. 배가 나타났다. 대한제국의 철선이다. 전투준비. 전투준비”
파수꾼의 외침소리에 술에 취한 선원들이 허둥대는 와중에도 상갑판과 하갑판의 대포가 끌려 나오기
시작했고,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잿빛 선체를 가지고 있는 5307함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갈매기 색깔을 하고 있는 5307함은 127미리 함포 3문을 전방으로 향하고 물개처럼 파도를
헤치며 당당히 다가왔다. 단 한 척이었지만, 호르노스가 받은 중압감은 너무도 컸다. 이제는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호르노스는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단에게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르노스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단 한 척뿐이라 맞서 싸워볼까 했지만,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연속 3발 포격”
블라지보스톡에서 일차로 건조된 순양함 10척 중 하나인 5703함은 80킬로미터를 수색할 수 있는
수색 레이더, 127미리 자동 함포 3문, 45미리 기관포 2문, 200미리 어뢰 발사관 그리고 사거리
30킬로의 대함미사일 해룡을 장착하고 있었다. 순양함이란 말에 걸맞게 50일간의 작전 수행능력을
가진 대한제국 대양 해군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었다. 5703함장인 이영수 대령은 상선 단이
흩어지려 하자 진로를 방해하고 도망치려는 의지를 꺾기위해 포격을 명령했다.
“꽈광 꽈광 꽈광”
연이어 일제 포격이 이어지며 아홉개의 물기둥을 만들어 댔다. 고폭탄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물결로
인해 물기둥 주변의 범선들이 크게 출렁거렸다. 어느새 하늘에는 제비들이 떠다니며 호르노스 상선
단을 감시하고 있었다.
“뒤쪽에도 철선이 나타났다.”
“전방에 또 다른 철선이 나타났다.”
호르노스는 계속해서 대한제국 함정이 나타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머리 위를 맴돌았다.
“펑펑펑 꽈광”
“불을 꺼라. 돛을 내려. 도망가긴 틀렸다. 적과 맞서 싸워라.”
5703함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라카스호가 불벼락을 뒤집어 썼다. 한껏 부풀어 있는 돛에
불이 옮겨 붙어 번져갔다. 카라카스호 함장은 이탈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류에 배를 맞긴 채
5703함과 거리가 가까워지길 기다렸지만, 대한제국군 함정은 1킬로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발포. 발포”
“펑펑펑”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던 선장의 명령에 우현포 20문이 일제히 발포를 시작하자, 카라카스호는
일순간 연기에 휩쌓여 모습을 감추었다. 사거리 3킬로미터를 자랑하는 함포는 1킬로미터 측방에서
기동하는 5703함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단 한발도 5703함을 가격하지 못하고
작은 물기둥만을 만들어냈다.
“쿠쿠쿠쿵 퍼퍼펑, 드드드드”
위협을 느낀 5703함에서 127미리 함포와 45미리 기관포를 떠난 포탄이 카라카스호 측면을
연속적으로 때렸다. 불기둥이 일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기더니 이내 함포에 노출된 측면이
너덜너덜해지며 바닷물이 거침없이 카라카스호 내부로 밀려들었다.
몇 차례의 포격을 받은 카라카스호는 급격히 기울더니 침몰하기 시작했다. 카라카스호를 시작으로
호르노스가 이끌던 20척의 대상선 단은 한 척씩 차례로 공격을 받고 침몰하거나 멈춰 섰다.
20분간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자 호르노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체 돛대에 백색 깃발을 높이 달았다.
“항복하려는 모양입니다.”
오중구 소장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포격연습이나 다름없는 해전을 감상하며 흐믓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전력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적의 속임수에 대비하라고 하게.
종선을 먼저 내려 접근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방심하지 말라고 하고…”
호르노스의 상선 단에서 붙잡힌 유럽인들이나 노예들은 희망봉 근처 “희망”이라는 해안가에
버려졌다. 전혀 기반시설이 없던 이곳에 버려진 2000여명의 포로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맹수나
원주민들에 의해 차례차례 죽어갔다. 대한제국에서 이곳에 기지를 건설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단기3959년(1626) 초여름 민스크 부근 유럽 원정군 지휘부
폴란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병합하라는 명령을 받은 4군 사령관 김상태 대장은 겨우내 묵혀두었던
기기들의 정비가 끝나는 시점을 기해, 전 군에 진격명령을 하달했다. 발틱함대의 지원을 받으며
기계화 사단 4111 사단이 리가 항을 출발하면서 시작된 폴란드 점령전은 포병대대의 엄호를 받으며
4군 1군단 기병사단이 빌뉴스로 이동을 시작하고, 민스크에 있는 5군단 병력을 주축으로 한 본대가
브레스트로 움직이면서 본격화 되었다.
“버섯 요리도 먹음직했어 안 그런가 참모장 ?”
지휘차량에 올라타던 김상태 대장이 겨우내 먹었던 버섯 요리를 생각하며 농담을 던졌다.
한동안 보급로가 폭설로 단절되면서, 5군단 병력은 버섯을 질리도록 먹여야 했다.
5월까지 아침이면 서리가 내리는 곳이라 대지는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버섯 전골은 먹을 만 했습니다. 그래도 쌀이 동나기 전에 보급로가 뚫려서 다행이었습니다.
빵 쪼가리에 버섯크림을 먹을 뻔 했습니다. 아슬아슬 했습니다.”
“그랬지. 올해는 사정이 좀 좋아지겠지. 철도가 스몰렌스크까지 연결되면 한결 수월해질 거야.
그만 가지. 한달 안에 브레스트에 도착해야지 ? 4군단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쉽군.”
“우크라이나가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폴란드 원정에 참가하고 싶은 모양입니다만 그들을 보내달라고 할까요 ?”
“당한 만큼 복수하고 싶은 모양이겠지. 나야 좋지만, 천군부에서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눈치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필요 할 수도 그래서 4군단이 임시 훈련소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일 거고”
지휘차량이 부르릉 거리며 겨울을 보낸 임시 막사를 떠나가자, 4700 전차여단 소속 3 대대가
원정군 사령부를 엄호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본대의 주력인 5군단 병력 4만 5천명은
앞서 출발한지 오래고, 6군단과 2군단 보병사단이 후방을 엄호하며 지휘부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원정군 지휘부가 이동을 시작하자 뒤에 남은 두개의 보병사단은 보급로와 통신로를 개척하며
본대를 뒤따라갔다.
폴란드의 대부분의 병력은 바르샤바 부근에 집결되어 있었기에 최소한 며칠간은 그들을 막아 설 적이
없었다. 성문을 굳게 닫고 농민들을 모아 결사항전을 외쳐댔지만, 5군단의 화력과 병력을 단 한시간도
막지 못했다. 한 개 연대급이나 대대급이 저항군을 분쇄하는 사이에도 다른 부대들은 계속해서
바르샤바를 향해 움직였다.
“4121사단에서 전문입니다. 빌뉴스가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천군부에서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원정분 본대가 민스크를 떠난 지 하룻만에 승전보가 들어왔다. 시작부터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김상태 대장은 빌뉴스가 항복했다는 것이 어째 이상했다.
항복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들었다.
“그래 ?”
“네. 소영주가 내민 조건을 외교부가 수락함으로써 무혈 입성하게 되었답니다.”
“식충인줄 알았더니 외교부도 일을 하긴 하는 구만.”
김상태 대장은 외교부에서 폴란드 북부에 대한 외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민스크 다음으로 큰 도시가 저항 없이 대한제국의 손아귀에 들어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빌뉴스 영주를 비롯한 북부 지방 영주가 바르샤바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새롭게
영주회의가 구성되었지만, 영주회의는 이전과는 정 반대로 지그문트의 하수인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빌뉴스의 새로운 영주가 내건 조건이란 게 뭔지 궁금하군 ?”
“영주로서의 지휘 보장과 바르샤바 공격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승전보와 함께 날아든 천군부 전문에는 외교부가 지금도 폴란드 북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공격에 신중을 기하라는 명령이 쓰여져 있었다. 사령관은 전문들을 참모장에게 건 내 주며 어쩐지
이번 일은 싱겁게 끝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싱겁게 끝이 날 것 같은데. 귀족들의 안위를 보장한다면, 다 항복할 것 같단 말야.
그런데 점령지 전략이 바뀐 건가 ? 이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보참모를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예상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로서도 뜻밖입니다. 예전 같으면 귀족이란 귀족은 다 잡아들여서 시베리아나 쥬신 대륙으로
보내버렸을 텐데. 의외입니다.”
“그럼 바라노도 무혈 입성 하겠군. 5군단에 미리 통지를 넣도록 하게. 그리고 비서관 ?
모스크바에서 연락 온 것 없나 ?”
“정화사령부로 모든 자료가 넘어갔다는 특수부의 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보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정화사령부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상합니다. 정보통제도 사안에 비해
너무 강력하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알겠네…”
김상태는 입을 다물고 흔들리는 차량에 몸을 맡긴 체 눈을 감았다. 지휘부는 시속 40킬로미터의
속도로 꾸준히 움직여 앞서간 5군단을 따라갔다. 5군단의 선봉을 맡고 있는 4521 기병사단 병력이
바라노 부근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령부 통신대대가 부산해지며,
상황보고를 받느라 시끌벅쩍했졌다.
“예상대로 입니다. 4521사단이 바라노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성문은 활짝 열려있고, 백기가 성곽에 내걸려 있다는 보고입니다.”
“선두에게 진격속도를 반으로 줄이라고 하게. 1군단 병력에게도…. 바라노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후속부대와 연결이 끊어질 것을 우려한 사령관은 원정군의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기병사단은 하루에 10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던 반면 보병사단은 40킬로미터도 이동하기 버거웠다. 아울러 우측에서 기동하고 있는 1군단이 너무 뒤쳐지고 있었다.
폴란도 바라노성
민스크에서 남동쪽으로 대략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바라노에 입성한 사령부는 엄중한 엄호를 받으며
성 내로 깊숙이 들어갔다. 신임 바라노 영주인가 바르샤바에서 참살 당한 후 새롭게 영주 직을 계승한
신임영주는 김상태 대장을 비롯한 지휘부를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받아들였다.
“이분이 이번 원정군을 이끌고 있는 김상태 사령관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바라노 영주 직을
계승하신 시구르드 영주님 이십니다.”
외교부에서 나온 이영환은 통역을 겸하며 두 사람에게 서로를 소개 시켰다.
상호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만찬자리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껄끄러웠다.
특히 손님으로 초대된 원정군 일행은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세밀히 확인하며 언행을 아꼈다.
“형님이신 시그문드 전 영주님의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변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저희와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을 것을…”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조카인 볼그빌드가 너무 어려 이곳을 비울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건 그렇고, 사령관님께서는 앞으로의 일을 저에게 말씀해주실수
있으시겠습니까 ? 듣기로는 오드리강을 넘으실 거라 하시던데요 ?”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대한제국이 이번에 출병을 한 것은
과거 우크라이나 강제 침탈과 스몰렌스크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응당한 보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오드리강을 넘어 신성로마제국으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대한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지그문트처럼 아무 이유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그런 야만인들이
아니지요. 제 군대가 오드리강을 넘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대한제국을 야만인 취급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시구르드 영주는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호랑이를 안으로 들여
대접하는 자리에서 실언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던 김상태가 훈제 오리 다리를 들어 올려 한 입 물며 건배를 제의했다.
“자. 모두들 딱 한잔만 합시다. 잔을 드세요. 이영환 특사께서 좋은 말씀한마디 하시지요 ?”
“그럴까요 ?”
이영환은 모두들 잔에 술을 따르자 자신의 술잔을 가슴높이로 들어 올렸다. 잔에 반쯤 담겨진 벌건
포도주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다시 한 점으로 사라졌다. 한차례 주위를 스윽
둘러본 이영환이 폴란드어와 대한제국어로 기원을 담아 선창을 했다.
“제국의 영광, 바쟈왕에게 축복을”
“제국의 영광, 바쟈왕에게 축복을”
복창이 이어지고 모두들 잔을 높이 올렸다. 비서관과 참모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꺾어
한입에 적포도주를 털어넣고 꿀꺽 삼켰다. 다른 사람들의 목 젓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던 비서관이
잔을 기울이며 술잔을 비워나갔다.
“좋습니다.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군요. 우린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푸짐한 식사대접에 감사 드립니다.”
“성 내에서 주무시고 가시지 않구요 ?”
“지휘관인 제가 사사로이 부대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일 점심에 영주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어떠신지요 ?”
“영광입니다. 사령관님”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비무장으로 오셔야 합니다.”
만찬을 마친 사령관은 서둘러 바라노 영주의 성을 빠져나왔다. 그 뒤를 호위병들이 질서정연하게
뒤따랐고, 앞에서는 기병대가 길을 열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들녘을 아름답고 수놓은 횃불
행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루에 서 있던 시구르드는 조카의 손을 꼭 쥐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구르드는 시종과 몇몇 부하들을 대리고 성을 빠져나왔다.
대한제국군 사령관의 식사초대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던 그들은 대한제국 원정군 사령부 정문에
도착해서 검문을 위해 멈춰 섰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사령관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말은 여기에 메 두시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비서관의 안내를 받으며 영주일행은 정문을 통과해 들판을 가로질러 안쪽에 자리잡은 사령부 막사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주변으로 이동식 삼각 천막들이 사령부 막사를 감싸고 있었고,
군데 군데 급조된 참호 속에서 잡담을 하던 사병들이 비서관을 보고 경례를 올렸다.
“이쪽입니다.”
말로만 듣던 철마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영주일행이 천마-10 전차에서
눈을 떼었다. 비서관이 막사에 다가가자, 제국소총을 양손에 들고 가슴에 수류탄을 달고 있는
경비병이 막사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네”
식사보다는 대한제국군대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연신 고개를 돌려대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해댔다. 이영환이 그들의 질문공세에 완전히 질려 녹초가 될 무렵,
바쟈를 실은 소형 여객선이 대한제국 발틱함대 소형함 전대의 호위를 받으며 스톡홀롬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의 부군이 도착하는 스톡홀롬의 항구는 썰렁하기만 했다. 궁정 근위대 100기를 제외하고
부근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거리지 않았다.
“내리시지오. 전하 !”
썰렁한 부두만큼이나 찬바람이 불고있는 바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웨덴의 재상으로 지목된
한상국이 카지미에슈 바자에게 다가갔다. 혈혈단신으로 스웨덴 왕국에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마련된 자신의 결혼이 참석해야만 했던 바자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부두로 연결된 나무 판자에
첫 발을 내디뎠다. 대한제국 특수요원 100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바자의 뒤를 따라 상륙을 마치자,
스웨덴 왕국 근위 기병대의 엄호를 받으며, 물위의 떠있는 작은 섬 도시, 스톡홀롬의 중앙 광장으로
들어섰다.
사방 팔방으로 뻗어난 길의 시발점에 있는 세르겔 광장을 거친 일행이 왕궁으로 향한 길을 지나갔다.
항구의 모습과는 다르게 왕궁으로 이어진 길 양 옆에는 인파들이 길게 늘어서 17세의 폴란드 왕인
바쟈를 향해 호기심어린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마차에 오른 바자는 문을 굳게 잠그고 왕궁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때 캐플러 아저씨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었다. 캐플러가 모스크바를 떠난 직후 바자는 모스크바 정보국의
철저한 감시와 행동의 제약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끌려 스톡홀롬까지 오는 사이 수없이
탈출을 생각하고 심지어 자살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대한제국에서 던진 달콤한 사탕을
곁들인 협박에 쇠코뚜레 꿴 송아지 마냥 얌전히 이곳까지 와야만 했다.
‘어차피 폴란드는 사라진다. 왕가로도 유지하려면 내가 왕에 올라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자위와 자기 합리화를 해도 허수아비인 자신의 위치가 변하지는 않았다.
‘크리스티나도 마찬가지겠지 ? 아니 어쩌면 더 좋은 기회인지도 몰라.
이번 기회에… 하나님 왜 저를 이렇듯 고난의 길에 빠지게 하셨나이까 ?’
모스크바에 유학 와서는 교회와 담을 쌓고 지내던 바자가 하나님을 원망했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았지만 돌아온 탕아를
반겨줄 아버지나 하나님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나라다 말라가 항구
이합 에사 살라몬이 이끌고 온 2차 원정군 함대 40척이 병력과 물자를 모두 하역하고 말라가 항구에
그대로 발이 묶여 버렸다. 이제 터키제국의 유일한 함대가 되어버린 이들은 말라가 항구가 위협 받고
있는 지금 쉽사리 항구를 떠라 본국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말라가항에는 이들 이외에도 증기포함과
40척의 또 다른 함대가 있었지만, 살라몬 함대가 빠져나가면 유럽 연합함대를 막아낼 만한 전력이
되지 않았다. 각개격파를 당할 거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예측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여기서 기다릴 수 만은 없지 않습니까 ? 본국과의 연락이 단절되면 고립무원에서
사방에서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함대는 만일을 대비해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곳이라면 적들도 섣불리 들어오지는
못 할 것입니다. 본국에서 새로운 함대를 구성해서 이곳으로 보낼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지 않습니까 ?
그리고 함대가 자리를 비운사이 적함대의 공격이라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우다이 행정관은 최악의 경우 원정군의 철수를 위해 함대가 움직이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나섰지만,
살라몬은 생각이 달랐다. 지금 유럽 함대는 대부분이 중부 지중해에 있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카디즈나 발렌시아를 공격하고 나아가 바르셀로나나 리스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유럽 함대를 분산 시킬 수 있었다.
“그건……”
살라몬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최소한 상륙을 저지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 며칠만 막고 있으면 저절로 물러나던가 저희가
되돌아와서 전멸시키면 됩니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미 함대는 출항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살라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우다이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
대부분의 해군 장교들은 살라몬을 지지하고 나섰고, 육군 장교들은 우다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우다이는 1 원정군 사령관과 협의 한 이후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점은 우리끼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 사담 사령관에게 의견을 받아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살라몬 제독은 그때까지 수병들…..”
“땡땡땡땡”
우다이가 고심 끝에 내린 이야기를 다 끝마칠 무렵 비상 종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댔다.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회의실에 들어온 부관이 낭패한 모습으로 우다이에게 뭔가를 건넸다.
쪽지를 눈으로 읽던 우다이는 말을 잊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투준비를 하시오.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하오.”
“적이라니요 ? 어디서 말입니까 ?”
“바다를 가득 메우고 항구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서두르시오.”
살라몬을 비롯한 해군 장교들이 건물 밖에 메어져 있는 말에 올라타고 급히 자신의 배로 말을 몰았다.
외항에 떠있던 증기포함의 굴뚝에서는 예전과 다른 시커먼 연기가 힘차게 올라왔다.
“병력을 제 1 참호선에 투입하고, 예비대에게 예비 탄약을 더 후방으로 이동시켜라.”
말라가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아부라일 자아파리는 멀리 지평선에 나타나는 망루를 바라보던 망원경을
접으며 부하 장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부두와 가장 근접한 제 1 참호선에 병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터키 함대의 출항이 상대적으로 늦었기에, 진영을 갖추고 들어오는 유럽함대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거라는 믿음이 서지 않았다.
“부관. 후방에 있는 포대를 여기 여기에 배치하도록
그리고 남쪽 해안과 북쪽해안에 한 개 중대병력을 보내 적의 후방 상륙을 방어한다.”
오래 전에 계획된 방어 계획에 따라, 자아파리 장군은 병력을 신속히 배치하기 시작했다.
2원정군 함대와 함께 온 병력과 총포탄 중 반절 이상이 1 원정군에게 지원되었지만,
아직도 말라가에는 4천명의 수비군과 일천명의 총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라나다 최대의 항구 말라가는 항구 앞바다에서 벌어질 해전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재빠른 놈들입니다. 벌써 진영을 구축하고 나옵니다.”
프랑크 라이카르트가 말라가에서 터키 함대가 증기포함 3척을 앞세우고 일자진을 펼치며 나오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스페인의 빌바오 함대를 주축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몇몇 한자 동맹
도시들에서 파견된 함대로 구축된 새로운 연합함대 총 사령관인 클로크 백작의 얼굴에 조소가 가득
베어 나왔다. 총 130척으로 구성된 그의 함대는 모두가 1500톤 이상의 대형 범선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총 함포수만 해도 5000문이 넘었다.
“공격 신호를 보내시오 프랑크 라이카르트 부관”
“네. 사령관님. 함포를 쏴라”
“펑펑펑”
기함인 리버풀호에서 공격을 알리는 공포가 쏘아 올려지자, 연합함대가 길게 늘어서며
일제히 함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항구를 빠져나오기에 급급하던 터키 함대를 향해 수백발의
함포가 덮쳐갔다. 앞서 나오는 증기 포함 3척을 제외하고 단 한 척도 함포에 포탄을 장전하지 못 한
터키 함대는 대응 포격을 할 수 가 없었다. 사거리에서 뒤지지 않는 터키 함대가 연합함대의 초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포장들은 즉시 발포하라. 최고 속도로 적 함대를 뚫고 나간다.”
터키제국에 단 3척밖에 없는 증기포함 중 한 척인 넵누트호 함장인 무스타파 케말이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연합함대는 초 탄을 날리면서 발생한 연무에 숨어 재빨리 진영을 셋으로 나누고 다시 한번
포격을 가했다. 연합함대가 세번째 포탄을 날렸을 때, 터키함대에서 대응 포탄이 날아왔지만,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그들로서는 전세를 뒤집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적 철선을 사로 잡아야 한다. 예비대를 투입 시켜라. 배에 올라라”
클로크 백작은 해전을 관전하며 터니 해군의 자랑인 철선이 연합군 함정이 구축한 저지선을 뚫고
나오려 하자 예비 함대를 투입했다. 20척으로 구성된 예비함대는 증기포함과 맹렬한 기세로 달려와
진로를 방해하며 충돌을 유도했다.
“우현 전타”
무스타파 케말은 앞에서 불쑥 나타난 적함이 넵루트호를 막아서자 급선회하며 충돌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워낙 좁은 해역에 너무 많은 배들이 밀집해 있어서 결국 넵루트호 선수가 빌바오 함대 소속
마드리드호 옆구리와 충돌하면서 죽음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올라타라.”
“와와와와”
마드리드호와 충돌하며 속력이 급속도로 줄어든 넵루트호 주변으로 연합함대 예비함들이 에워싸며
공격을 퍼부었다. 월등한 기동력과 화력을 가지고 있던 넵루트호는 필사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근접거리에서 쏘아대는 함포에 직격당한 선체와 갑판이 형편없이 찌글어 들었다.
“기관실 ? 최고 출력을 내라”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자칫 보일러가 터 집니다.”
“뭐가 무리야. 당장 출력을 더 높여. 보일러가 터지나 안 터지나 마찬가지야”
케말은 기관실과 연결된 소리 관을 타고 소리를 질러대며 주변 함들을 둘러보았다.
불 끌 시간도 없을 만큼 급박한 지, 눈에 보이는 동료함들에게서 연기가 쏟아 오르고 있었다.
“펑. 탕탕탕”
“거점을 확보하라. 일시에 돌격한다.”
넵루트 호 갑판에 올라온 스미스 대위는 부하들을 독려하며 라이플을 쏘아댔다. 좌현과 우현에 배를
붙인 예비함대에서는 계속해서 병력을 넵루트호로 투입하며 갑판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들자, 갑판은 급속도로 연합군에게 점령되어 갔다.
“필수 기관 요원을 제외하고 모든 대원들은 갑판으로 나와 적과 싸워라. 죽기로 싸워라.”
갑판에서 함교로 들어오는 통로로 내몰린 부하들이 활과 총탄에 맞아 픽픽 쓰러지는 모습에
케말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기관장. 더 출력을 높이란 말야. 내 말 안 들리나 ?”
넵루트호는 130프로의 출력으로 앞을 막고 있는 범선을 밀어내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적함을 떨쳐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더 이상 속력이 나지 않았다.
케말 함장이 소리 관을 귀에 대기관장의 소리를 들으려 애썼지만 반대쪽에서
기관장의 고함소리와 경고음이 뒤섞여 들려와 명확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기관장. 속도를 더 내란 말이야 ?”
“픽픽픽. 피웅 퍼퍽 꽈꽈과광”
보일러와 연결된 수십 개의 관을 고정하는 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더니 끝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보일러가 터져나갔다. 뜨거운 증기가 기관실을 가득 메우며 밖으로 나갈 길을 찾아
다녔다. 기관실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덩어리로 뭉쳐진 수증기들이 연통과 통로를 향해 몰려 나갔다.
발생하는 수증기와 열기를 감당하던 기관실이 서서히 팽팽하면서 힘의 한계 치에 도달하자,
굉음을 울리며 터져 나갔다. 엄청난 압력으로 솟구친 연통이 지상 수백미터를 치솟으며 딸려 올라온
불기둥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렸다. 증기포함 연료로 사용되던 석탄과 목탄들이 시뻘건 불꽃을
만들어 내며 주변에 몰려있던 범선들에게 불벼락을 내렸다.
“꼭, 쥐새끼 떼에게 습격 당한 늙은 족제비 같군”
터키 함대가 통째로 불타면서 만들어낸 연기가 말라가 항을 가득 메웠다. 넵루트호가 폭발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대한제국 잠수함 0418함장이 망원경을 내려 놓았다. 비록 건조된 지 20년이 된 낡은 증기포함
이긴 하지만, 범선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포함 3척을 가지고도 터키 함대는 전멸을
면치 못 하고 있었다.
“불구경은 이쯤하고 귀환한다. 귀환로는 부장이 잡도록. 선회”
“부장이 지휘권을 인수합니다.”
함장이 지휘실을 나가자, 금동기 상사는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집어 올리고 이철민 대위에게로
다가갔다. 똥 씹은 표정의 이철민이 지갑에서 20원을 꺼내 모자 속에 내팽개치듯 던져 넣고
고개를 홱 돌렸다.
“침로 080. 심도 80으로 속도는 순항속도”
“침로 080. 잠수. 속도 10노트”
항해장교가 복명복창과 더불어 0418함이 말라가항 외곽을 벗어나 크레타 기지 방향으로 선수를 돌렸다.
“멍청한 놈들. 일당 백이라는 포함을 세척이나 가지고도 나무쪼가리 하나 상대 못하고 터져 나가다니,
저런 놈들에게는 100척을 줘도 소용없겠다.”
이철민 대위는 20원을 빼앗긴 분풀이를 터키 해군에게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라고 다를 바 없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황에서 기습을 당하고,
포위 공격까지 당한다면 항공모함도 침몰될 수 있어. 기습에는 장사가 없다. 넋 놓고 있다가는
개미들에게 살점이 오려지는 아픔을 당할 수 있으니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도록.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
“아무렴. 항모가 저런 조각배들에게 당하기야 하겠습니까 ?”
“또 모르지. 자카르타 해전에서 야마토 함대가 당한 일을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우리 같은 첨병이 적을 발견하지 못 하면 말이지”
이철민 대위 부장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부장의 말이 현실화 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항모 주위에는 순양함만 4척이 호위를 하고 있고, 고성능 레이더가 해상을
감시했다. 바닷속에는 잠수함들이 돌아다니며 타국 함대의 이동을 감시하고 있고, 하늘에는 가끔
제비들이 날아다니며 경계 비행을 하곤 했다. 이중 3중의 방어막을 뚫고 조각배들이 항모에
접근하더라도, 그들이 쏘아대는 포탄으로는 항모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두꺼운 강판을 뚫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네… 부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혹 저 놈들이 철갑탄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가까이 오더라도 무용지물 아닙니까 ?
자살 공격을 해오더라도 생채기 조금 남을까 말까 할 것 같습니다.”
“아까 듣고도 모르나 ? 저 들은 증기포함을 잡기 위해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감행했지 않았나 ?”
“알겠습니다. 요점은 경계를 잘 하자 이것 아닙니까 ?”
“그렇지. 알아들었으면 조용히 하자구. 그리고 가는 길에 봉 곶을 들렀다 간다. ”
부장은 봉 곶에 있는 유럽 연합 함대가 잘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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