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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셋째 날(4월27일) 【9시경 ‘천단공원’을 가다】
천단공원은 명·청대에 황제가 하늘의 신에게 풍년을 빌던 곳이다.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세웠고 건륭제(乾隆帝) 때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둘레가 약 6km로 고궁의 3배 가량으로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보통 한국인들이 중국을 생각하면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 등을 떠올리지만 중국인들은 이 천단공원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공터만 있으면 많은 중국인들이 모여 단체로 기체조나, 경극공연 관람, 연날리기 등 우리의 생활체육 비슷한 단체들이 모여서 자기들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눈에 띈다.
【10시∼오후 1시 북경대학 의학부, 中食, 실크가공공장 겸 판매장을 가다】 우리는 천단공원을 둘러보고 나서 오늘도 어김없이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관광산업을 통한 수입증대를 위하여 여행사를 통제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2,3회의 쇼핑코스를 소화해야 함은 물론 업체에서 쇼핑시간까지도 체크한단다. (우리가 들르는 곳은 관광객만 전문으로 상대하는 국가 직영업체로 종업원들은 모두 공무원이라 할 수 있다) 【오후 2시경 ‘이화원’을 가다】
290 평방km의 면적을 가진 이화원은 북경 최대의 공원이며 원내에 인공호수인 곤명호, 인공산인 만수산, 누각, 전당, 다리, 긴 낭하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문화의 극치이다. 특히 서태후가 여름궁전으로 이용하여 더욱 유명하며, 면적이 자금성의 4배, 천안문 광장의 6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원이다. 서태후는 청나라 말기에 74세까지 살았는데 48년간 실권을 쥐고 청나라를 통치한 여걸이다. 백두산 근처에서 태어난 서태후는 궁녀로 들어가 함풍제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고 황제의 유일한 아들을 낳았다. 서태후가 27세 되던 해에 함풍제가 사망하고 6세의 어린 아들 동치제가 즉위하자 섭정을 하였다 한다. 인수문을 지나 인수전, 옥란당 등을 거치면 커다란 돌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 크기가 병풍만 하며 높이가 4m, 길이가8m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 돌은 방산(房山)에서 나왔는데, 운반할 때 백여 명의 인부가 마차 열 대를 이용하여 산에서 가져왔다고 하며 저주의 돌로 이 돌을 소유하면 최초의 소유자가 그랬듯이 패가망신하게 된다고 한다. 재수가 없으니 사진도 찍지 말라고 하였다.
【오후 3시경 진주가공공장을 가다】 또 쇼핑이다. 이화원 곤명호에서 생산되는 손바닥 크기만 한 민물조개가 진주조개란다. 처음에 전시장에 들어서자 조선족 안내원이 우리를 맞이하고 조개를 설명하면서, 조개 속에 들어 있는 진주 숫자를 알아맞히면 모두 준다고 하였다. 10개, 23개, 35개, 50개 등 다양하게 말하였는데 속을 까 보니 35개가 들어 있었다. 그 숫자를 맞힌 방명천 해설사님께 행운이 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나 많이 진주가 들어 있을 줄은 몰랐다. 호기심에 많이 불렀을 뿐인데……. 전시장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진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세팅기술이 부족한 탓에 우리 일행은 큰 구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구경만 하고 어느새 모두 나와 밖에서 서성이고 있기에 가이드에게 출발하자 하니 최소 30분은 있어야 한다며 가이드가 나오질 못하였다. 우리는 나무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소비했다. 【오후 5시경 북한식당 ‘해당화’를 가다】
우리는 북한식 냉면과 백두산들쭉술을 주문하고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식이다. 종업원들은 식사가 거의 끝나가자 홀연히 무대로 오르더니 북한노래 ‘반갑습니다’ 외 서너 곡의 가요를 불렀다. 물론 남한에서 불려지는 옛노래도 불렀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세련된 무대매너, TV에서 보던 북한의 인민배우들 못지않다.
【오후 7시 30분경 중국의 명동거리 ‘왕부정’거리를 가다】
5. 귀향 (4월28일)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아침 5시에 기상하여 6시 10분경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였다. 아침식사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버스 안에서 해결하였다. 북경 수도공항에 도착하여 3일 동안 애써준 현지 가이드 김순옥 씨와 작별을 고하고 7시 50분경 에어차이나에 탑승하였다. 중국 입국 때는 인천에서 북경까지 직항로를 운행하지만 출국할 땐 금년부터 북경발 직항로가 없어졌다고 한다. 출국 비행기는 청도에서 출발한단다. 청도에 들러 다시 한번 쇼핑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여기서도 중국 정부의 상술이 보인다.) 하지만 비행스케줄이 빡빡한 관계로 우리는 청도공항에서 출국수속만 밟고 머무를 틈도 없이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북경에서 탄 바로 그 비행기였다. 드디어 인천공항이다. 북경시간 11시 50분경인데 한국시간은 12시 50분이다. 한국에 오니 공기가 다르다. 분명히 같은 하늘이었지만 땅이 다르기 때문일까? 포근한 느낌이다. 한국의 날씨도 더 따뜻해진 것 같다. 하지만 북경보다는 계절이 좀 늦은 것 같다. 북경에 있을 때 우리는 아카시아 꽃을 이미 보았었는데 안성에서는 보름이 지난 이제야 아카시아 향이 솔솔 날아다닌다.
6. 맺는말 ○ 안성시와 시의회의 배려로 우리 문화유산해설사 일행 13명은 3박 4일간의 중국 북경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다. ○ 미국의 골드만삭스(투자은행)가 향후 50년 후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경제를 좌우할 4개국(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중 하나인 중국은 2008년북경올림픽을 계기로 국가기반시설 및 보건, 환경 분야 등 국제 수준에이르려는 부단한 노력과 동시에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빠르게 변하고 있다. ○ 우리가 생각하였던 중국은 사스발생과 사막화 현상으로 인해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대륙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은 허상이었다. 여러 석학들이 말하고 있는 중국은 21세기 주역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을 이번 견학을 통하여 어김없이 실감하였다 ○ 한국의 봄보다 20여일 앞선 기온, 확 뚫린 도로망, 대도시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린 길들을 보면서 중국발전의 원동력인 도로가 물류비용절감 효과를 나타내는 무한한 경제 산업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 우리의 이동거리는 북경 인근에서 왔다갔다 별로 많지 않아 중국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남북한 합친 면적의 44배나 되는 엄청난 국토와 15억의 인적자원, 이것만으로도 중국인의 대륙기질은 발아하기에 충분하고, 이를 밑천으로 그들의 노력이 조금만 곁들여진다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래를 위하여전통을 지키며 사회주의만의 특성을 십분 이용하여 국가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엄청난 문화유산은 머지않아 중국을 세계의 관광대국으로 만들 것이다. ○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국의 삼성, 엘지 등의 대기업이 벌써 진출하여 중국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부심이 생겼고, 우리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 또한, 오래전부터 중국인의 상술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문화관광지마다 대륙인의 기질이 엿보이는 대목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인물에 대해서는 과대 포장하여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문화유산의 많고 적음이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재미있는 해설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문화자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니 관광객들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스쳐 지날 뿐이다 . 여기서 우리 문화유산해설사들의 역활이 중요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 그리고 같이 동행하지 못한 문화유산해설사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자 하며, 우리 문화유산해설사들의 선진지 견학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안성맞춤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여야 할 것이다.
○ 끝으로, 이번 견학을 위하여 애써주신 안성시청, 시의회, 우정여행사, 하나투어 관계자 여러분과 현지 가이드 김순옥님, 불편함을 감수하고 우리와 동행하여 주신 김종렬의원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첫댓글 전부 잘 보앗습니다..언제 한번 가봐야지...
그림이 보이나요. 사무실에서는 보이는데 집에서는 안보이네.
첫번 글은 보이던데 지금은 다 안보이네요...처음엔 보였어요
언제 중국 여행하고 싶다~~~~~~~~~
그림이 안보여요. 언제다녀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