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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인 생명
나는 저들의 번민(煩悶:번뇌)에 싸인 용모에 대한 영상이, 나의 뇌리(腦裏:머리와 마음속)에 찍혀 있는 채 깨어났다. 나는 그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그 때 그 광경이 나에게 보여 진, 그대로 묘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험을 통해서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골3:3)는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자들의, 실망이 얼마나 슬픈[마음의 애틋함과 안타깝게 한] 것이었는지!(1SM 8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왕국의 일원이 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가 갈바리의 광경을 바라보고, 인성을 쓰신 수난자(受難者:죄인들을 속죄와 구원을 위한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을 볼 때, 모든 민족적인 차별과 모든 파벌의 차이는 말살될 것이며, 모든 계급의 명예와 모든 계급 제도의 교만은 사라질 것이다.(1SM 258.3)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은 인간에게 크게 가치 있는 것이다. 주님의 희생은, 그리스도를 저들의 개인적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빛을 가져다준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 아버지의 율법의 생명력과 함께, 그분에게 속한 모든 영혼의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거하실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도 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선언하였다.(1SM 299.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을, 그분의 것으로 주장하실 것이다. 죽을 육신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의 소생케 하시는 능력은, 모든 믿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묶어 놓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저들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으므로, 그분의 마음에 거룩한 존재들이다.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께서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26:19).(2SM 271.1) 은혜란 공로가 없는 호의(好意:선하신 뜻-무한하신사랑)이며, 믿는 자는 자기 자신의 아무 공로가 없이, 하나님께 올릴 아무 주장도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다.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며 주님께서는, 죄인의 대치물(代置物:대신부담)과 담보물(擔保物:죄인담보 자)로서 하늘법정에 서 계신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기는 하였으나, 불의(不義:불법적 악의)를 행할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영혼을 순결하게 한다. 믿음은 싹이 나게 하고 꽃을 피우며, 보배로운 열매의 수확물을 거두게 한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선한 열매가 맺힌다.
병자를 방문하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고아와 과부들을 도와주며 벌거벗은 자를 옷 입히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셨으며, 사람들이 주님과 연합하게 될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게 되고, 온유함과 진리가 저들의 발자취를 인도할 것이다. 얼굴의 표정은 저들의 경험을 나타내고,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 예수님에 대하여 배운 자들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는 하나가 되고, 주님의 품성의 아름다움이 능력과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자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의롭다 하심의 의와 거룩케 하시는, 은혜의 위대한 보관자이시다.(1SM 398.1) 참된 신앙인의 분위기에 젖는 모든 사람은, 그 자신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갖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감지하게 되는 바 그 까닭은, 그 감화가 그의 습관과 경향에 일치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의 빛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빛 안에서 행하기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인 것이다.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으나, 그는 이를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또,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발자취를 일심[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겸손하고 겸비한 자들을 보시고 미소하신다. 천사들은 저들에게 마음이 끌려서, 저희의 길을 배회(徘徊:곁에 함께 동행)하기를 좋아한다.
고상한 학식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저희의 선행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를 즐기는 자들은 거들떠 볼 가치가 없다고 하여, 그들을 지나쳐 버릴지 모르나 하늘천사들은, 저들을 사랑스럽게 굽어보며 불로 된 성벽처럼 그들 주위를 두른다.(CCh 52.2) 어느 시대나 기독교인이, 쾌락을 사랑하는 것은 부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이, 가까웠는데 그런 일이 더 많다. 그대의 영생의 소망의 기초는 참으로 분명하게 놓일 수 없다.
그대의 영혼의 복지와 영원한 행복은, 그대의 기초가 그리스도 위에 놓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다른 이들이 세상의 오락을 숨 가쁘게 추구할 때에, 그대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수 없는 보증을, 숨 가쁘게 추구하라. 열렬히 간절히 이렇게 외치라. 나의 부름과 택정이 확실함을 누가 내게 보일 수 있겠는가?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는 공언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대의 영혼을 참되게 하라. 자세히 살펴라.
신실한 반성 후에 “나는 그렇게 묘사된 사람 중에 들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쾌락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얼마나 적을까.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그리고 내 생명이신 분이 나타나실 때에, 나로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적을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오, 귀한 은혜! 정금보다도 귀하도다. 그것은 모든 다른 원칙들보다도, 훨씬 영[영혼]을 고양(高揚:높이 북돋음) 시키고 고상(高尙:숭고)하게 하며, 하늘에 애착을 두게 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헛되며, 쾌락을 추구하고 어리석음에 잡혀 있지만, 우리의 대화(對話: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하늘에 있고, 거기서 우리는 구세주를 찾는다. 영혼은 용서와 평안을 찾아 하나님께로 향해 나아가고, 의와 참 경건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과의 대화와 위엣 것[천국]을 명상하는 것은, 영혼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2T 144.2) 그대는 거듭거듭 말해 왔다. “나는 나의 성질을 잡을 수 없다.” “나는 말해야 한다.” 그대는 온유하고 겸손한 정신이 없다. 자아가 잔뜩 살아있다. 그대는 그것이 상하거나, 모욕을 당치 않도록 항상 지키고 있다. 사도는 말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골3:3). 자아를 죽인 사람은 그리 즉시 느끼지 않으며,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저항하려는 자세가 없다. 죽은 자는 느끼지 못한다. 그대는 죽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죽었다면, 그대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었다. 지금 그대가 보고 그대를 괴롭히는 만 가지 것도, 눈에 거슬리지 않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그대는 영원한 것을 알게 되며, 이생의 사소한 문제를 초월할 것이다.(2T 425.1)
우리는 말세의 위기 속에 살고 있으며, 자만심과 독립심을 품게 된다면, 사단의 간계에 노출되어 정복당하고 말 것이다. 거만함이 그대에게서 제거되어야 하며, 그대가 하나님 안에 숨겨진바 되어, 오로지 그분을 의지하여 힘을 얻어야 한다. 교회들은 그대의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 헌신한다면, 그대는 새로운 지역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대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심령과 생애의 정결(淨潔:그리스도 품성)을, 하나님은 가납하실 것이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려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려 한다면, 그분과 더불어 고생(苦生:고난의 십자가를 함께)해야 한다.(3T 66.2)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의 별명)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3T 372.2)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면, 고상하게 되고 높임을 받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의 동참자가 되게 할 것이다. 음식과 의복과 신분과 부[부자]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을 맺고, 그분의 신령한 본성의 동참자가 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
그리스도인 품성의 왕자 같은 위엄은 태양처럼 비췰 것이며,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선은 그분이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한 사람들에게 반사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는 특권은, 비록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생명 그 자체를 희생하고서, 그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값싸게 얻어진 것이다.(4T 357.2) 그러나 그대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비록 아무것도 그대에게 진실하고, 참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믿고자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대 자신을 이처럼 부러워할 것이 없는, 위치에 이르게 한 것이 그대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하나님을 믿는 그대의 믿음과 형제들을 신뢰하는, 그대의 신임을 회복해야 한다. 그대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에 굴복시키는 것은, 그대를 위해서이다. 그대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소유하셔서 그대 안에서,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실 것이다. 그대의 전체적인 본성은 그때에,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그대의 생각은 그분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그대의 충동과 그대의 정서를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의지를 지배할 수 있고, 그대의 생애에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과 연합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를 하나님의 능력에 굳게 붙들어 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생애 산 믿음의 새 생애가, 그대에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의지는 사단이 그대를 사로잡아 파멸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는 동료들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와 협력해야 한다.(5T 513.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4-7).(5T 730.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골3:1-3).(6T 99.2)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세상에 바로 전할 수 있게 된다. “주여, 예수께서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 지를 내게 가르쳐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그치지 않게 하라.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의 빛이 선행을 통하여 비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자. 이것이 우리 생명을 위한 크고 중요한 점이다.(6T 121.2)
진리가 실제 삶 속에 들어 올 때 표준은 더 높이 올려 져서, 성경의 요구에 합치하게 된다. 이것은 세상의 유행과 습관과 관습과 격언 등을, 반대하는 일을 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세상적 감화는 바다의 파도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거세게 때려, 그분의 온유함과 은혜의 참된 원칙에서 떨어져 내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원칙에는, 반석처럼 견고히 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도덕적 용기가 필요하다. 영원한 반석에 고정되지 아니한 영혼들은, 세파(世波:모진고난 세상풍파)에 의하여 떠내려 갈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을 때만, 우리가 든든히 서게 될 것이다. 세상을 대적하면, 도덕적 독립[마음의 진리와 믿음과 생명 길]이 제자리를 찾는다.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름으로, 우리는 고지[영광의 승리]를 차지할 수 있고, 세상의 습관과 관습으로부터, 단호히 분리되어야 할 필요를 보게 될 것이다.(6T 146.2)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을 가진 그분의 일꾼들 중 한 사람도, 큰 장애물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홀로 버려져, 정복당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춘, 각 사람을 귀중한 보석처럼 보존하신다. 그런 모든 사람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내가...너로 인[印章:도장]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선택]하였음이니.”(학2:23)라고 말씀하신다.(7T 67.3) 의는 경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과, 생명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한 의로울 수가 없다. 들에 핀 꽃이 그 뿌리를 흙 속에 박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공기와 이슬과 소나기와 햇빛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영혼의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순종할 능력을 받는 것은, 오직 그분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됨으로서 이다. 어떤 사람도 높거나 낮거나, 경험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지지 않는 한, 그의 동료 인간들 앞에서 순결하고 힘 있는 삶을, 꾸준히 지속할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활동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과의 마음의 교통은 더욱 밀접해져야 한다.(7T 194.2)
우리는 이 땅 위에 사는 몇 날을 보잘것없고, 무가치(無價値:아무런 값어치가 없이)한 일에 낭비(浪費:헛되게 소비)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접하여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진리라는 사실을 세상에 확신시켜 줄 개혁이, 생애에서 일어나도록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생애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게 하라.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찾을 때, 우리가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사업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들의, 흠(欠:실수나 잘못)을 찾는 일을 그치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과 올바르게 하고자 노력할 때에만, 그분께서는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9T 106.1)
무시(無視:업신여기고 깔보기)를 견딜 능력—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의심의 안개 위로 솟아오른다. 그는 밝고 넓으며 깊고, 살아있는 경험을 얻어, 온유하신 그리스도처럼 된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 의탁되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진다. 그는 무시와 학대와 경멸(輕蔑:낮춰보며 멸시함)의 시험을 견딜 수 있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구주께서 이 모든 것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난관들이 그를 억누를 때에, 불평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셨고, 낙담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 행위의 능력과, 공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그에게 전가(轉嫁:성령을 덮어씌우게)되는, 그리스도의 의(義) 안에서 강해질 것이다. 하늘의 왕께서 사람들 가운데 행하셨을 때, 그러하셨던 것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고,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게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2MCP 631.3)
무시를 괘념치 말라—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굴욕과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방어태세(防禦態勢:저항의 방어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우리의 생애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질 때는, 무시나 경멸을 조금도 괘념(掛念:마음에 걸려있지) 치 않게 될 것이다. 비난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되고, 조소와 모욕에 대해서는 소경이 될 것이다.(2MCP 631.4)
그대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음을 사람들로 보게 하라. 조급한 말이나 천한 말이나, 악한 말들이 나오지 않게 하라. 그대는 그대가 존경하고 있는 한 친구 되신, 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음을 나타내며, 그대로 [나의 잘못을] 인하여 그[구주]가 수치를 당치 않게 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것을 기억하라. 그 다음 행동과 말로써,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라.... 주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한 깨끗하고 정결한 그릇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회개의 능력이 매일 필요하다.
거룩한 책 성경에 또한 발견되고, 실행되어야 할 교훈이 있다. 우리의 양심은 그리스도교의, 보다 높은 표준을 인식하고 높여야 한다. 만일 그대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함을 유지한다면, 능력과 순결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증가할 것이다.(TMK 198.4) 어떤 언어로도 그것을 묘사할 수 없고, 그것은 지식 저 너머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이고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분이 나타날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Pr 12.1)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움직일 때에 우리들은, 그 성령의 변화시키는 감화와 협력하여 우리들은, 고상한 열망과 진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겸손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우리의 의무를, 겸비한 마음으로 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그대가 하나님과 더불어, 보다 더 잘 사귈 수 있는 방법이 되며 또한,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다. 그러면 그대는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며, 그리고 불신자들의 사회가 그대에게 해를 주지 못할 것은,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졌으며, 그대는 그분을 섬기도록 그들을 데려갈 목적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과 친근하게 되기 위해 찾을 것이다.(OHC 300.4)
만일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면, 우리가 우리 믿음 때문에 시련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법관들과 고관들 앞에 서서 우리 믿음에 대하여 대답하게 될 때에, 주님의 영께서 우리의 깨달음을 밝히실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능히 증거 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하여 고난 받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린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는 것처럼 그분을 신뢰하면서, 감옥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안에서 배양[늦은비 성령을 받아야] 할 때이다.(OHC 357.4)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함—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는 빛과 십자가를, 서로 일치하는 위치에다 놓으셨다. 이는 사람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 곳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얼굴에서 비춰 나오는 빛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되고, 알게 된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들은 죽기까지, 그의 영혼을 쏟아 부으신 그분을 바라본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시야는, 하나님께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증오심을 바라보는 한편 우리는, 또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그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 십자가는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은 진리요, 빛이요, 사랑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논박[논리의 반박으로] 할 수 없는 논증[논리의 확실한 증거] 이다‘(5BC 1133.3)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과, 사람들 가운데서 한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이다.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이셨다.
그 신성이 고뇌에 찬 갈바리[갈보리]의 고통 하에서 침몰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사실이다.(LHU 235.3)
우리는 어떤 인간도 모방(模倣:본받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서는 우리의 행동의 규범이 될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 우리는 의로움과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하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시다. 그분은 모범적인 인간이시다. 그분의 경험은 우리가 겪어야 할 경험의 척도(尺度:평가판단의 기준치)가 된다. 그분의 성품은 우리의 모본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이생[죄악세상]의 혼란과 어려움을 떠나 그리스도를 주목하자.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봄으로, 변화를 경험하도록 하자.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안전한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영광의 소망이 되실 것이다.(Mar 2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