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스토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에서 인간의 지,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반지성주의'라고 못박았다.
'반지성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생각을 하더라도 비본질적인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한다. 코넬리우스 반틸의 고백과 같이 "나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한다."는 계시의존사색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2.
성경을 거울의 기능으로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되지만, 성경은 창문으로 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모인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하게 된다.
생각과 질문이 있어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삶의 모든 새로움은 우리 바깥에서 (Extra nos) 들어온다. 새로운 개념과 생각이 들어와야 우리는 변화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하면 삶은 점점 협소해지고 의미를 잃어버린다.
3.
바울이 아테네에 전도하러 갔을 때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을 거부했다. 그들은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와 논쟁을 했는데 그들의 특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서 머무는 외국인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행 17:21)
철학을 숭상하던 그들은 왜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외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계시를 의존하여 사색하지 않을 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적 생각은 해답을 가져올 수 없고 일상의 의미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더 새로운 것, 더 맛있는 것, 더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이것은 중독적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4.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꽃을 보라 '그것을 생각해보라' 말씀하셨다. 우리의 일상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가득 하다는 것이다. 그 섭리를 보고 생각할 때 즉 하나님과 연결할 때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이는 세상 속에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꽃과 공중의 새를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생각과 묵상이 없기 때문에 일상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로이드 존스의 표현대로 '믿음은 사고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사고하지 않을 때 두렵게 되고 환경에 의해 생각이 지배당하게 된다."
5.
C.S.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가장 큰 악은 강제 수용소나 노동 수용소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악의 최종결과일 뿐이고, 보통의 악은 행정조직이나 관료조직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왜 루이스는 행정조직을 지옥에 대한 상징으로 말하는 것일까? 생각없이 살아가는 삶의 전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귀는 우리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한다. 그러면 인생의 의미는 사라지고 허무만 밀려온다.
강영안 교수는 <생각 한다는 것>에서 창의적 사고와 공동체적 사고를 강조한다. 창의적 사고란 현실을 바꾸고 새롭게 할 수 있는 사고를 말한다. 기존의 문법을 깨트리고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고할 때 이루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일반은총으로 받아들이며, 또 성경과 다른 부분을 도전하며, 세례를 주어서 바꾸어야 할 부분들을 바꾸어서 적용하는 눈이 필요하다.
6.
또 창조적 사고란 서로 연관되지 않는 두 개또는 여러개의 기존체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조수의 현상과 달의 인력이라는 두 개의 내용을 요하네스 케플러가 연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패드는 전화기와 컴퓨터의 연결이다. 이러한 생각을 '통섭'이라 부른다. 일반계시인 자연과 만물은 진리의 파편들이다.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일반계시를 바라볼 때 그 속에 숨은 원리들이 연결되고 통섭될 수 있다.
팀 켈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이유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아야 세상과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고는 비논리적이고 모순이 존재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창의적 생각이다. 그럴려면 먼저 기존의 것을 익히고 배워야 한다.
7.
창의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과 익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창업을 하려면 그 분야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예술의 문외한이 예술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수 없고, 과학에 문외한이 과학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수 없다. 그래서 복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성경적으로 연결하고 사고하는 '거듭난 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마트 폰과 넷플릭스의 세상 속에서 생각하지 않고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없으면 백성은 망하게 된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 희생을 기억하며 인생을 드리는 것이다. 지성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우리 지성의 주인이 되신다.
8.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해주신 일들을 생각하면, 내 인생을 드려서 이루고 싶은 무엇이 생기게 된다. 우리의 지성을 주님께 드려서 공부하고 생각하며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가는 것은 기독교인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해야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할 정도의 헌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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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생각해보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일들만 가득하다. 목숨을 버리시는 완전한 사랑을 기억하며 감동할 때, 우리는 인생 전체를 드리는 열정의 사람이 된다. 우리의 지성을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통치하도록 내어드려야 한다. 세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다. 힘들어하고 고통하는 세상은 여전히 복음적 혁신을 기다리고 있다.
9.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더욱 인생을 드리게 된다. 불타는 열정으로 우리의 삶을 드리는 영역중에 지성이 포함된다. 반지성주의로 흐르는 시대 속에서 우리의 지성을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