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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나이 50세를 비유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쉰에 천명, 즉 하늘의 명을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50의 나이에 자신의 말투를 알아채는 게 더 급하다. 대략 50이 되었을 즈음에 자신의 의견에 맞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주위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말투 때문에. 50의 말투는 50에 이르도록 살아온 과거를 보여주고, 현재의 50을 알려주고, 80에는 어떤 사람이 될지 예측하게 한다. 말투 하나만으로 매력적인 50이 될 수 있다.
1장. 말이 곧 나다
[1] 작은 말투 하나로 50의 변화는 시작된다
50에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50 즈음부터 “그땐 그랬지!”라고 자주 입에 올린다. 자신도 모르게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는 것이다. 50이 되어서까지 지위, 재산, 명예 등에 매달린다면 매력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가진 게 ‘지위 자본, 재산 자본’밖에 없다면 얼마나 얄팍한 인생인가!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길 원한다면 어렵더라도 변화해야 하는데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50의 변화는 말투부터 바꾸어 보자. 50이 되어 입과 귀, 말투만 잘 다듬어도 멋지게 살 수 있다.
[2] 관계를 망치는 말투는 버리기로 했다
과거에는 ‘나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거야!’ 하면서 냉정하고 퉁명한 말투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히는 말들을 쏟아내는 데 익숙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에 익숙하였다. ‘나만 억울한 거야. 나만 소외됐다고. 나만 꼭 이렇게 된다니까’ 하면서. 사람들이 50이 되면서 주변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관계를 만들어내는 말투 사용법이 서툴기 때문이다. 말투는 일종의 습관이고,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말투를 고친다는 것은 유전자를 바꾸려는 노력과도 같은 것이다.
[3] 말의 내용만큼 형식이 중요하다
모든 문제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순간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런데 말투를 따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50은 그냥 있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해온다. ‘지 맘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소통을 배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새로운 세상이 왔는데 구닥다리 말투로 관계를 맺으려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뭔가 잘못되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대체 내가 뭐가 문제야? 라고 방어한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이 문장 하나만 머릿속에 꼭 담아주어도 중간은 간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50은 결국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말만 듣게 될 것이고 50의 삶은 팍팍해질 것이다. 변할 것인가, 묻힐 것인가.
[4] 누군가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50의 말투는 이제 ‘잘난 체, 있는 체’와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누군가의 조언, 누군가의 미소를 받아낼 줄 아는 겸손이야말로 50이 가져야 할 지혜다. 50의 매력 있는 모습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낼 줄 알고 부족한 상대방의 말을 통해서도 자신을 성장시킬 줄 아는 것이다.
[5]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50이 되어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50의 여유는 “왜 못 해?”가 아니라 “못할 수도 있겠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용기다. 모든 것을 할 줄 안다는 욕심에서 불행이 온다. 모든 것을 잘해 내야 한다는 것은 망상이다. 망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집착이 생기고 욕심만 늘 뿐이다.
[6] 사회적 체면과 이별한다
50은 갱년기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진다. 변화가 힘들다. 변화란 지금까지의 생활양식과는 달라져야 함을 전제로 한다. ‘첫 번째 화살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을 맞아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숲에 사는 노루가 사냥꾼에게 화살을 맞았다. 도망칠 수 있다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그런데 노루는 ‘어디서 화살이 온 거지?’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첫 번째 화살을 맞을 수는 있으나 두 번째 화살이 내 몸을 관통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50 이전에 명함에 새겨진 사회적 체면과 이별해야 한다. 사회적 가면을 썼던 ‘내가 아닌 나’로부터 탈출해야 말투를 바꿀 수 있다. 과거의 나에서 벗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은 돈이나 차, 아파트가 아니라 말투 하나다. ‘말은 곧 나’이기 때문이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듯이 좋은 말투를 찾아서 배우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알아낸 괜찮은 말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2장.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1] 겸손하게 질문하고 따뜻하게 이름을 부른다
‘그게 최선입니까?’ ‘그게 다한 거야?’라고 말을 하는 것은 한심한 소통 방법이다. 질문은 괜찮은 대화의 기법이다. 그러나 질문의 방식이 잘못되면 질문은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 악화의 주범이 된다. 세상을 향한 거친 질문은 자기 자신을 고립으로 몰아내고 아무도 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50의 질문을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를 알아주고 지지하며 자신의 좋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50이라면 누군가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건 상대방에게 따뜻함을 주는 것이다.(김춘수의 꽃.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된다.)
[2] ‘왜?’라고 묻기 전에 ‘그래!’라고 말한다
‘왜 카페를 하겠다는 거니?’ ‘왜 좋은 직장 그만둔 거니?’ 젊은 세대를 향한 50의 이런 말은 최악이다.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말투다. 걱정이 된다면 커피 한 잔 더 사주라. 취조 하듯 몰아붙이는 ‘왜?’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옳다. 말투라는 망치로 누군가를 함부로 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그래!’라고 하면서 걱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게 맞다.
[3]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른 위안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50이 되면 ‘같이 가치’를 인정하는 몇 명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한편 사람 사이에 놓인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급하게 따져 묻고 성급하게 답을 주려고 애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성급한 말투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
[4] 난처한 상황에서는 깔끔한 거짓말로 대처한다
굳이 싫은 누군가를 나의 일상에 등장시킬 이유는 없다.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50이라면 적절히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기분 나쁜 내용에는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싫어하는 짓을 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응하지 않아도 된다.
[5] 나의 실수에는 엄격하게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게
말로 하는 폭력은 상대방의 용기를 함부로 짓밟아 버린다. 몽테뉴는 늙으면 얼굴보다 마음에 더 많은 주름이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은 늙으면서 얼굴보다 말투에 더 굵은 주름이 생긴다. 상대방의 실수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어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50의 말투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해 내고 상대방의 기쁜 점을 찾아내어 함께 기뻐해 주면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관계적 실수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축하 편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힘은 가득 찬 항아리가 아니라 그 안의 여백에 있다.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6] 하루에 열 번 ‘움메’만 해도 목소리가 바뀐다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변하는데, 담배 연기와 술로 찌든 50대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럽게 한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품격이 보인다. 말의 속도를 교정하고 황소의 울음소리를 하루에 열 번만 연습해 보라. “움메!”
[7] 나의 일과 나의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한다
사람들은 ‘나보다 수학도 잘 못하면서’ ‘내가 너보다 키가 더 크다고!’ 등 ‘내가 너보다’의 병이 있다. 자신의 주변의 누군가를 끌어들여 굳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자신의 소중한 일상의 시간들을 타인과의 비교에 할애하면서 신경증이 싸인다. 이제 50이라면 나의 일인 것과 나의 일이 아닌 것들을 구별할 줄 아는 말투를 가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적당한 거리두기’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매사에 타인의 업무에 간섭하고 타인을 지배하려 든다고 하였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그를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나이 50이라면 이제 자신의 말투와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정도는 한 번 더 생각할 줄 알고 상대방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8] ‘자만’의 말투가 아닌 ‘겸손’의 말투에 익숙해진다
50의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기가 ‘어깨가 무겁다’는 말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자기 생각과 다른 것과 충돌하면 화부터 낸다. 큰 소리를 치거나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는 일도 있다. 자신과 다른 세상을 향해 무작정 무시와 반대로 맞서려고 한다. 50은 건방을 떠는 나이가 아니라 겸손에 익숙해질 나이다. 노화는 몸보다는 영혼을 먼저 흉하게 만들며, 말투를 먼저 엉망으로 만든다. ‘우아한 대화 수칙’ 하나 정도는 자신에게 선물하자.
[9]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대신 타인의 존재를 존중한다
최고의 리더는 존재하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멋진 어른은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50의 품격은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 인상을 쓰지 않고, 타박을 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나의 존재감을 내세우려고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힐난과 비판으로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따뜻함으로 감싸고 소통을 끌어낸다. 리더는 아랫사람이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지 그 사람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지 누군가의 일을 대신 해주고 생색내는 모습은 유쾌하지 못하다. 50이 되어 진정한 존재감을 얻는 방법은 목소리를 깔고 인상을 쓰면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낮추는데 있다.
3장. 나를 낮출수록 품격은 올라간다
[1] 말부터라도 내가 먼저 대접한다
50이 넘어서까지 대접받는 것에 목말라 한다는 것은 유치할 뿐 아니라 어떻게 늙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직책이나 직업에서 대접에 익숙한 사람은 일이 사라지면 자신도 무너진다.
[2] 50의 말은 오직 금과 같아야 한다
퀵 아저씨를 보고 저자는 볼멘소리로(점심시간을 앞두고) ‘빨리빨리 좀 오시지’라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은 ‘조심해서 배달하세요’라고 말했다(추석 전이라 도로의 혼잡 예상하고). 퀵 기사도 누군가의 아빠, 남편, 아들일 텐데 사람을 상대하는 말을 못하고 물건을 상대하는 말을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을 그저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 보는 말투는 짐승의 언어다. 말에는 값이 있다. 나의 가치를 깎아 먹고 남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말투는 지혜롭지 못하다.
[3] 이제는 아부를 들을 때가 아니라 아부를 해야 할 때
칼 세이건은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상하고 기괴하다고 배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지적한다.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것은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아부도 잘하면 예술이다. 아부는 나와 상대방의 공통점을 칭찬하는 일이다. 아부가 멋진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대방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사전에 공부한 사람만이 아부할 수 있다.
[4] 나를 낮추면 상대방이 알아서 높여준다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품격이다. 겸손과 자기 비하는 구별해야 한다. 겸손은 자기도 보호하고 타인도 존중한다. 자신을 낮추는 말은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내 말에 토 달지 말라’가 아니라 ‘내 말에 토를 달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50이 된 사람의 말투에는 ‘내게 제일 먼저, 최연소, 나만’ 이런 방식을 버리는 것이 지혜다.
[5] 핀잔이 아닌 믿음을 주는 말이 필요하다
50인 핀잔의 말투를 버리고 믿음을 주어야 하는 나이다. 50이 되어서도 자신의 말투 속에 믿음을 넣어 말할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 정중한 인사는 그 자체로 감동의 언어다
인사는 관계의 시작과 끝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면 우선 인사부터 잘할 것. 매너는 ‘일상에서의 예의와 절차,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다. 50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강한 사람, 나이가 더 많은 사람, 윗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약한 사람, 나이가 더 적은 사람,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다. 인사를 잘해서 상대방을 감동시킬 줄 아는 어른이 품격이 있다.
[7] 말을 듣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건 어른의 모습이 아니다. 50의 말투에서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50의 말투는 누군가의 말을 듣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용기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50에게 주어진 과제다.
[8] 자기 자랑도 센스 있게
노골적인 자화자찬의 자랑은 거부감만 준다. 50의 나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는 선에서 세련되게 자기 자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칠고 지루한 자랑질을 편한 마음으로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9] ‘더 괜찮은’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덜 괜찮은’ 사람과의 말을 아낀다
만날 때마다 인상을 씨고, 돈 빌려 달라고 하고, 온갖 푸념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할 이유는 없다. 50이라는 나이는 인생 중년기라 주변 사람들을 보면 행복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아프고, 다치고, 헤어지고, 이별하고. 그런 시간을 돈 자랑, 집안 자랑, 집 자랑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이유는 없다. 더 괜찮은 사람들과 대화를 위해 덜 괜찮은 사람과의 시간을 줄여도 괜찮을 나이다.
[10] 젊은 것들? 젊은 님들! 호기심이 아니라 관심으로 다가선다
왜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이 많을까?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등. ‘젊은 것들이 말이야’ ‘젊은 놈들이 더해’ 같은 말로 젊음에 저주를 퍼부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넬 줄 아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11] 스치고 지나간 사람을 기억하고 말을 건네는 일
스치고 지나간 사람을 기억해 준다는 것, 그리고 미소와 함께 표현하는 것이 받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일까! 50에게는 그런 따뜻함이 필요하다.
4장. 더 이상, 말로 상처 주지 않는다
[1]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끝까지 하지 않을 것
나이가 들수록 입담보다 말투가 더 중요해진다.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 즉 사전적 판단은 대화에서 소통의 적이 된다. 침묵하는 상대방이 어떤 고통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지 않은 태 섣부른 판단으로 말하는 말투는 위험하다. 50이라면 첫째, 해서는 안 될 말이 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둘째, 해서는 안 될 말을 ‘끝까지’ 안 하는 말투 사용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2] 상대에게 닿을 수 있도록 좋으면 좋다고 말한다
선배들 가운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소통 방식이 아니다. 50에는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데’에도 미숙하다. 내 말은 상대방에게 ‘들려야’ 한다. 들리지 않는 말은 모두 헛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들리도록 말하는 것이 용기다. 정말로 반드시 자신의 입으로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3] 분명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진심을 전달한다
50의 도전 과제 가운데 하나가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지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해보는 것이다. 그때 첫째, 모호한 어휘 대신 분명하고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둘째, 나의 판단을 잠시 접고 긍정적인 감정만을 표현한다. “잘했어” “멋져” 이렇게 한 마디씩 하는 것이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4] 타인으로 관심이 옮겨갈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
‘말하는 것은 기술이고 듣는 건 예술이다’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듣기에 초점을 두고 잘 격려해 주는 것이 50이 갖추어야 할 말투다. 말을 들어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진정 사람다운 삶은 그저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삶에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것이다. 나의 관심이 나에게서 타인으로 옮겨갈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세상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로 꽤 괜찮은 공간이 된다.
[5] 잘못에는 사과를 할 줄 아는 50이 된다
우리는 실패를 인정하는 사과의 기술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사과 한 번 하지 못한다. 이제 잘못이 있으면 제대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사과란 ‘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진정성의 효과가 결정된다. 영화 <헬보이>에 “우리는 장점을 보고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 단점 때문이라”는 명대사가 있다.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사과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사과가 진짜 사과다.
[6] 리더의 언어는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50중에는 리더가 많다. 리더는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지고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다. 하수는 ‘해야 한다’고 말하고 중수는 ‘할 수 있다’고 말하고 고수의 언어는 ‘하고 싶다’를 입에서 떼어 놓지 않는 것이다.
[7] ‘아름다워!’ ‘멋져!’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50’하고 ‘남자’ 이 두 가지 키워드만으로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보라고 한다면 ‘문화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미술관, 연극, 독서 모임 등에 가면 모두 여자뿐이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묻고 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이 아름다울 수 없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세상이 어떻게 아름다워 보이겠는가. 돈이 가득 있어도 아름다움을 모르면 인생 침체다. ‘아름답다!’ ‘멋지다!’는 감탄사를 잃지 말아야 한다.
[8] 의도를 왜곡하는 잘못된 말투
‘50스럽다’는 말은 답답함, 고집 셈 같은 뉘앙스보다 편안함, 여유로움 등으로 사람에게 다가서면 좋겠다. 50이라면 한 마디 할 때조차 과연 그 말이 상대방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겠다는 소통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9] 믿음을 핑계로 강요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들이 부모한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로 ‘아빠는 너를 믿어’와 같은 ‘무작정 신뢰’의 대화법으로 꼽혔단다. “이번 기말고사, 지난번보다 좋겠지? 아빠는 너를 믿는다” 등.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가벼울 수 있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법이다.
[10]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반응을 섣불리 예상하지 않는다
50이 되어서 자주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하고 말을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어떤 말이 나올지는 섣불리 예상하고,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성질이나 내고, 삐치며, 반박할 거리를 찾느라 들을 줄도 모르는 50대의 모습이 많다.
[11] 의미 없는 구호로는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50이 되어서도 후배들을 향해 하는 말이 고작 ‘다 죽여버려! 싸워 이기라고!’ 정도밖에 안 된다면 서글프다. 젊은이에게 배우려면 나이 먹은 사람의 특유의 아집을 버려야 한다. 모든 채 의미 없는 감탄사나 외치고 있는(예. 파이팅! 따라서 하라고 함. 이 말은 영어가 아니고 일본식 표현으로 일제 군국주의의 유산으로 싸우자는 의미의 ‘화이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됨) 50에게는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다.
5장. 50에는 조금 힘 빼고 말하기
[1] ‘만약’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부터’를 가까이
죄수가 교도소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만약’이라는 단어라고 한다. ‘만약 내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50이 되어서도 ‘만약 …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의 그늘에 빠져 있다면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과 같다. 50은 ‘만약’이라는 단어와 헤어질 나이다. 대신 가까워질 단어가 ‘이제부터’다. 50이라면 이제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진부함에 반항도 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2] 불행을 최대한 피하면 행복은 절로 찾아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행을 최대한 피하면 행복을 알아서 찾아온다’고 믿었다. 이제부터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줄여나가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50의 나이에는 낭비할 시간도 많지 않다.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과는 이별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도 괜찮을 나이다. 나쁜 음식을 굳이 먹지 않고 원하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 나이다.
[3] 작은 한 마디 말에서 행복이 시작된다
행복은 내가 오늘 하는 한 가지 행동, 한 마디의 말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차의 선바이저에 만 원권 한 장씩 넣어둔 봉투 몇 개를 늘 비치해 둔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보면 잠시 차를 멈추고 다가가서 봉투 하나를 건넨다. 왜 주느냐고 물으면 ‘그냥이요’라고 답할 뿐이다.
[4] 중요한 사람이 아닌 소중한 사람이 되기를
50이 넘으면 인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 전성기는 35-40정도, 가정에서의 전성기는 40-45/6세. 그때는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다가 없으면 큰일이 일어날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된다. 중요한 사람이란 자기가 모두 행하고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눈에 보이는 숫자, 성과, 돈 등으로 인기를 유지한다. 소중한 사람은 다르다. 문득 떠올렸을 때 ‘곁에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5] 따라잡는 것과 따라 하는 것은 다르다
젊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생각 없이 따라 하다가는 오히려 비웃음만 살 수 있다. 젊음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은 멈춤 없이 해야 하지만 그들을 무작정 따라서 하지는 말아야 한다.
[6] 예의와 배려가 있는 ‘좋아요’
나이 50에는 ‘아득바득’이라는 욕심을 버리고 예의는 갖추며 배려에 더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좋아요’가 없다고 투덜대기 전에 ‘좋아요’를 얻어낼 만한 글과 말을 썼는지 살펴야 한다.(카톡이나 페이스북 등)
[7] 지금의 나를 그대로 긍정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 니체의 운명관으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난과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거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잡으라는 뜻이다. 인생은 지금 시작이다.
첫댓글 말이 곧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