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白華山. 933.4m)
산행일 : ‘13. 9. 15(일) 소재지 :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북 상주시 모동면, 모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반야교→비지정등산로→주행봉(舟行峰)→암릉지대→755봉→부들재→한성봉(漢城峰 : 백화산 정상)→헬기장→편백숲→반야교→주차장(순수 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백화산은 이곳 외에도 충남 태안읍(284.1m)과 전북 장수군(850.9m) 등 여러 곳에 있다. 그러나 이곳만큼 뛰어난 풍광(風光)을 보여주는 곳은 없다. 살이 떨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암릉 길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널려있고, 암릉 위를 오르내리는 중에 터지는 조망(眺望)도 최상급이다. 다만 암릉 위를 걷는데 따르는 위험성이 문제가 되겠지만, 조금만 주의한다면 별 탈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고, 그 어려움의 대가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멋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반야교(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경부고속도로 황간 I.C에서 내려와 4번 국도를 타고 김천·황간방면으로 달리면 황간면소재지(面所在地)에서 황간삼거리와 마주치게 된다. 삼거리에서 좌회전(상주방면)하여 황간교(橋)를 건너면 49번 지방도로 올라서게 된다. 지방도를 따라 상주방면으로 10분 쯤 달리면 만나게 되는 우매삼거리에서 좌회전(반야사 이정표 참조)한 후, 석천을 왼편에 끼고 4분쯤 더 들어가면 천년고찰(千年古刹) 반야사 인근의 반야교(橋)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반야교(橋) 건너 등산 안내도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주행봉으로 갈 수는 있으나, 855봉을 경유해서 주행봉으로 갈 계획이라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시멘트포장도로를 5분쯤 걸으면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든다. ‘산책로’ 이정표만 믿고 무작정 들어서면서 고난(苦難)의 행군(行軍)이 시작된다. 855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한 후에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는데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이곳으로 들어설 경우에는 855봉을 빼먹을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거칠고 위험한 산길에서 모험을 해야만 한다. 비지정등산로인지라 길도 희미할뿐더러 바윗길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시설(安全施設)이 전무한 것이다. 초보 등산객들은 결코 들어서서는 안 되는 코스이다.
▼ ‘산책로’로 접어들면 이정표가 말하듯이 길은 임도(林道) 수준으로 잘 닦여 있다. 경사(傾斜)는 보통 수준, 조금이라도 가파르다싶으면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만들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산책로답게 곳곳에다 장의자(長椅子)를 설치해 놓아 걷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오늘은 별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임도는 끝을 맺고 만다. 반야교를 출발한지 20분, 편했던 산행도 임도와 함께 끝을 고하고 만다.
▼ 임도가 끝나는 지점의 부근에서 오른편에 제법 널따란 길이 보인다. 길을 로프로 막아 놓았지만 진행하고 본다. 비록 막혀있지만 길의 흔적은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악회의 시그널(signal)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닐만하다는 것은 아니다. 등산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윗길로 변하는데다 길의 흔적까지 희미해져버리기 때문에 산행에 이력이 붙은 사람들이 아니고는 길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가끔 슬랩(slab)이 나타나지만 안전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등산 초보자들이 들어서서는 안 되는 코스인 것이다.
▼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찾아 바위를 오르거나, 우회(迂廻)하면서 진행하다보면 갑자기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능선의 왼편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덕분에 모처럼 조망(眺望)이 터지면서 석천(川)과 석천을 가로지르는 반야교(橋)가 또렷하게 나타난다. 하나 아쉬운 것은 짙은 안개로 인해 원거리(遠距離)의 조망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도를 벗어난 지 25분 정도가 지났다.
▼ 전망대를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거리는 길지 않다. 10분 후에는 지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본래의 등산로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나는 지점에 고맙게도 이정표(주행봉/ 석천암(입구))가 세워져 있으나, 아쉽게도 산행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거리표시가 없는 탓에 현재의 위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행봉은 이곳에서도 35분을 더 올라가야만 한다.
▼ 본래의 등산로를 만나면서 길은 흙길로 바뀌고, 흔적 또한 또렷해진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또 다시 거친 바윗길로 돌아가 버린다. 그 바윗길은 아까 길을 잘못 들은 덕분에 고생했던 바윗길보다도 더 거대하고, 경사(傾斜)가 또한 더 가파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험하다 싶으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고, 거기에다 행여나 방심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위험, 추락주의’라는 경고판까지 세워두었다. 옆으로 몸을 틀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홈통바위를 지나고, 로프에 의지하지 않고는 오르기 힘든 직벽(直壁)의 바위를 지난다. 그러나 주행봉은 이곳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만 한다. 가파른 오르막 코스에서 두어 번을 더 고생을 해야만 주행봉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 이제나저제나 정상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주행봉(舟行峰)에 이른 것이다.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의 한쪽 귀퉁이(반야사 방향) 바위무더기 위에 조그만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와! 대단한 자손(子孫)이네요’ 어느 등산객의 감탄이 이해가 간다. 이렇게 높은 주행봉의 정상에 무덤 하나가 들어 앉아 있는 것이다. 언제 무덤을 썼는지는 몰라도 옛날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오랜 가뭄이라도 들 경우에는 산봉우리 하나를 잡아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게 되는데, 이때 산봉우리에서 무덤이 발견된 경우에는 가뭄의 원인이라고 여겨 파헤쳤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행봉은 추풍령에서 황간으로 내려가며 올려다볼 때에 마치 수십 개의 돛을 활짝 편 거대한 범선(帆船)이 하늘을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행봉은 조망(眺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은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탓에 바로 옆에 있는 855봉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발아래 석천은 물론이고 멀리 황악산, 민주지산, 덕유산까지 눈에 들어올 텐데 말이다. 반야교에서 주행봉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렸다.
▼ 주행봉에서 백화산의 정상인 한성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까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이정표(주행봉/ 주차장)에서 아까 올라왔던 길이 아닌 왼편 길로 진행하면 된다. 이정표에 한상봉으로 가는 방향표시는 없지만 산길이 또렷하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성봉으로 향하는 주능선을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날카로운 겹겹의 기암괴봉(奇巖怪峰)들이 안개가 만들어낸 파도 위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동양화 개인전에서 본적이 있는 풍경화(風景畵)가 연상될 정도로 장관(壯觀)이 펼쳐지고 있다.
▼ 암릉으로 올라서면 오금부터 저려온다. 칼날처럼 허리를 곧추세운 바위들이 마치 공룡의 등허리처럼 일렬로 서있는 것이다. 그 위를 걷게 되는데 어찌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곳을 지날 때에는 최대한 자세(姿勢)를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발을 디딜 곳, 손으로 잡을 만한 바위 틈새를 먼저 확인해보고 난 후에 진행해야 한다. 누가 주의를 준 것도 아닌데도 모두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다. 하긴 왼쪽이 수백 길의 깎아지른 낭떠러지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있겠는가.
▼ 한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마중 나온다. 비록 겁은 나고 힘은 들지만, 스릴(thrill)만은 만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은 탁 트인 조망(眺望)이다. 공룡의 등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다가 잠깐 고개를 들어보면 시계(視界)는 거침없이 열린다. 오른편에는 산자락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석천이 S자로 크게 휘돌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석천 가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마 반야사일 것이다. 그리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형적인 산촌(山村)의 풍경이 펼쳐진다. 산자락 사이에 낀 손바닥만한 들판에선 노랗게 벼들이 영글어가고 있고, 그 옆에는 뉴스프링빌CC의 코스들이 아름다운 곡선(曲線)들을 그려내고 있다.
▼ 암릉은 755봉까지 1.5Km이상이 계속된다. 비록 양쪽, 아니 특히 북쪽 사면(斜面)이 까마득한 벼랑이지만 다행이도 암릉 자체의 기복(起伏)은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므로, 실족만 주의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암릉은 755봉에 가까워질수록 바위 대신에 잡목(雜木)의 밀도(密度)가 높아지다가 755봉에서 드디어 암릉은 끝을 맺는다. 주행봉에서 755봉까지는 55분이 걸렸다. 755봉을 지난 산길은 언제 바윗길이었냐는 듯이 흙길로 변하면서 급경사(急傾斜)로 내리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리막길은 길게 이어진다. 주행봉 정상을 오르느라 고도(高度)를 871.3m까지 높여놓았는데, 이렇게 길고 가파르게 내려선다면 절반 이상을 까먹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755봉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사거리(이정표 : 한성봉 정상/ 주행봉/ 반야사/ 모서)인 부들재에 이르게 된다. 왼편은 정산저수지(상주시 모서면 정산1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반야사에 이르게 된다. 백화산(한성봉) 정상은 앞으로도 한 시간 이상을 더 올라가야만 하니,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 하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ndif]-->
▼ 부들재에서 한성봉정상까지의 구간은 경사(傾斜)가 가파른 바윗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그 바윗길은 거칠기까지 하다. 마(魔)의 구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힘든 구간이다. 거친 정도로야 아까 주행봉을 오를 때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또 다시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 바윗길과 한판 씨름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중간에 두 번이나 휴식을 취한 다음에야 정상에 올라설 수가 있었다.
▼ 부들재를 나선지 15분쯤 될 즈음이면 다시 암릉이 시작된다. 이어지는 바윗길은 그다지 볼품은 없다. 기암괴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바위들은 보이지 않고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巖塊(암괴)들이 연이어서 나타날 따름이다. 주행봉에서 755봉까지의 구간에 비해 스릴이나 볼거리가 한참 뒤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조망(眺望)은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경상도와 충청도의 산하(山河)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있다. 거기에다 고개를 돌려보면 주행봉이 우뚝하다.
▼ 부들재에서 숨찬 오르막길을 1시간5분 정도 오르면 드디어 한성봉(백화산) 정상이다. 오르는 길에 가끔 우회로(迂廻路)가 보였지만, 이를 이용하지 않고 곧장 바윗길과 씨름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정상표지석이다. 그러나 정상석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두 개나 더 세워져있는 것이다. 백화산의 경계(境界)를 이루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경쟁하듯이 세워놓은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정상석에 표기된 이름도 각기 다르다. 먼저 상주시에서 세운 거대한 빗돌에는 ‘백화산 한성봉’, 그리고 영동군에서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자그마한 빗돌에는 ‘포성봉’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자그마한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봉우리 이름이 없이 그냥 ‘백화산’이라고만 적혀있을 따름이다. 한성봉에서 동쪽으로 1㎞쯤 더 가면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激戰地)이자, 고려 때 몽골 침입군을 격파한 '금돌산성'이 있다. 큰 성이 있던 곳이라 하여 예부터 한성봉(漢城峰)으로 불리던 것을, 일제가 우리 국운(國運)을 꺾을 목적으로 포성봉(捕城峯)으로 고쳐 불렸다고 한다. 포성봉은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성봉은 2007년에야 다시 제 이름을 찾았다(상주시에서 세운 정상석 뒷면을 참조).
▼ 반야교 방면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길목에 산악회의 시그널들이 마치 무당집처럼 거창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아까 주행봉을 거쳐 이곳 한성봉으로 올 때 간혹 보이던 것하고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반야사/ 봉화터 2.7Km, 1시간20분/ 한성봉정상)로 나뉜다.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에서 거리표시를 본다. 비록 봉화터 방향만 거리표시를 해 놓았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 동안 만났던 이정표들은 하나같이 거리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조금 더 내려가면 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편은 능선길을 타고 편백숲으로 가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든지 반야교에 이르게 되므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 하산 길은 ‘봉화터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급경사 내리막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산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려가는 곳곳에서 제법 그럴싸하게 생긴 바위군락(群落)들이 눈요기를 시켜준다는 것이다. 한성봉을 출발해서 40분쯤 내려서면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바윗길로 변한다. 이곳에서 잣나무 숲이 나올 때까지는 왼편이 날카로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산길이 바위벼랑에서 2~3m쯤 떨어져 나있기도 하지만, 바위벼랑임에도 불구하고 참나무숲이 짙게 우겨져 있기 때문이다.
▼ 헬기장에서 15분쯤 내려오면 갑자기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멋진 바위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눈앞에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엎드려 있고, 백화산과 이 봉우리들 사이를 흐르는 여덟 굽이 석천이 아름다운 풍경화(風景畵)를 그려낸다. 구불구불 흐르는 석천이 S자로 크게 휘돌면서 만들어낸 자그마한 땅에는 **반야사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눈요기를 실컷 즐기고 발걸음을 옮기면 5분쯤 후에 또 하나의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조금 전에 만났던 전망대에서 즐겼던 조망(眺望)과 같은 느낌이지만, 반야사의 전경(全景)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반야사(般若寺),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의상 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 스님이 창건했다. 일설에는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백화산 일대는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찰에 문수보살을 의미하는 '반야'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절집으로는 주불전인 대웅전과 극락전, 지장전, 산신각, 종루,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보물 137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전망대를 나서서 5분을 더 내려서면 ‘잣나무 숲’이 나오고, 이어서 산길이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이정표 : 편백숲 0.1Km, 반야교 0.7Km/ 한성봉 3.0Km) 능선을 벗어나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편백나무 숲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고, 나무들 또한 굵지가 않다. 그러나 벤치 등 편의시설은 제법 잘 갖추어진 편이다. 아직은 덜 알려져 있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요즘 유행인 힐링(healing) 장소로 편백나무 숲에 대한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산행날머리는 반야교 앞의 주차장(원점회귀) ‘편백나무 숲’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정자(亭子)에 이르면 오른편에 길 하나가 보인다(이정표 : 부들재 2.1Km, 한성봉 3.2Km/ 편백숲 0.1Km). 아까 정상 근처에서 헤어졌던 계곡길(이정표에는 주차장으로 표시)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자를 나서면 곧이어 계곡이다. 계곡에 이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고 본다. 물론 옷을 입은 채로다. 주저앉으면 물이 목에 차오를 정도로 멋진 소(沼)를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정자에서부터 도로 수준으로 넓진 산길은 계곡을 두어 번 가로지른 후에 석천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반야교를 건너면 조금 후에는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한성봉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1시간20분 정도가 걸렸다. 물론 목욕시간을 뺀 시간이다. 이곳 영동군은 포도의 고장,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에 이르니 동네주민들이 재배한 포도를 팔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10Kg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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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