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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정에서 모이는 신약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어라연
요한계시록 21장_새 하늘과 새 땅
|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성도 여러분, 혹시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어디 어디 가 보셨습니까?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일까요? 미국 뉴욕의 맨하튼? 프랑스 파리 에펠탑,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시간이 없어서, 또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이런 아름다운 도시를 가 보고 싶지만 가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이 세상 그 어떤 도시보다도 아름답고 진짜 가 보지 못하면 영원히 후회할 만한 곳을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00평이 넘는 수백 억 대의 고급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에 살아보고 싶으십니까? 이런 분들도 잠깐만 기다리시면,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진 맨션(mansion)에서 살게 될테니 너무 슬퍼하거나 주눅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이 앞으로 가서 영원을 살아가게 될 세상, 그곳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1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천년왕국에 대하여 살펴봤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증거한 천년왕국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진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모습은 사라졌고, 바다도 없었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한 것을 보면, 요한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그곳엔 바다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바다가 70%, 육지는 30%에 불과한 세상입니다. 대부분이 바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었습니다. 바다는 참 아름답고 멋집니다. 바다가 없다면 지구는 더이상 우주에서 바라볼 때 <파란별>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있어 바다는 또한 많은 제약을 가져다줍니다. 가장 큰 제약은 바로 분리입니다. 우리들이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땅, 곧 육지이기 때문에 바다로 인해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살아갑니다. 예로부터 바다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살아갔던 그 당시에 바다는 아름다움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요한 또한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밧모라 하는 작은 섬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사도 요한의 고백은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선지서 이사야 65:17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이전 것은 대부분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물론 가끔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연스레 잊혀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게 되면, 이전 것 곧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기억 저 너머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좋든 싫든, 계속 거하고 싶든 떠나버리고 싶든 상관이 없습니다. 새로운 것이 오면, 이전 것은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라보던 사도 요한 앞에 또다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 성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오래전 예수님과 함께 보았던 예루살렘 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마태복음 24장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하시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AD 70년,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예루살렘 성은 로마 군병들의 말발굽 아래에 짓밟혀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 모습을 사도 요한도 목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한 앞에 그때의 예루살렘 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답고 웅대한 모습의 새 예루살렘 성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잠시 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계속하여 3절을 보겠습니다.
3~4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장막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보좌로부터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실 것이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원통해서 애통해하거나 슬퍼서 슬피우는 것이나 각종 질병과 사고로 아픈 것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새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바울의 외침은 실제 우리가 거듭났을 때,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자신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었고,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옛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 ‘마침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현 세상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던 것처럼 이제 그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씀이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사도 요한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6~7절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런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루었도다’라고 하시는 말씀과 아주 유사한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잠깐 비교해볼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그 말씀은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모든 것을 끝냈다’ 라는 의미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하신 모든 말씀과 하나님의 예언된 약속이 모두 성취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의 구속이 완성되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는, 그야말로 인류역사 상 가장 감격스러운 선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 또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특별히 ‘상속’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이 땅에서 거듭나서 영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친자(親子)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을 우리 몸을 생각할 때, 이는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양자의 개념’을 살펴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 여기저기에서 우리의 양자됨, 곧 입양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우리의 양자됨의 최종 단계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입양 절차를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부모 없는 아이가 있습니다. 고아원에 있겠죠. 어떤 사람이 고아원에 와서 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 합니다. 가장 먼저 누구를 입양할지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입양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입양서에 서명을 하면 비로소 입양 절차를 마무리됩니다. 그 아이는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양부모의 집에 들어가 아들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입양절차를 끝내고 나서 부모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아이들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야 입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이와 같이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18~23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양자는 상속에 대한 법적 개념으로 비록 피를 통한 출생이 아니더라도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얻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본향 집,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아들의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탄식하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8절을 보시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미 앞 장에서 살펴봤듯이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쏟아부었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말했습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새 예루살렘은 바로 신부인데, 어린 양의 아내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 양의 신부는 누구죠? 바로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그 몸된 교회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몸된 교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이 마침내 공개되었는데, 그 실체는 새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천사는 성령을 통해 사도 요한을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다고 요한은 가장 먼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직접 임재해 계신 것입니다.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았다고 합니다. 12절부터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 성에는 크고 높은 성곽이 있었고 열두 문이 있었습니다. 각 문마다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이 쓰여져 있었는데, 바로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었습니다. 이로 볼 때, 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은 성을 드나드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해야 하나님의 첫 언약에 합류할 수 있었듯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문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문은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광야에 있던 성막 주위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둘러 진치고 행진했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 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기초석은 고대에 건물을 지을 때 처음 놓는 기준이 되는 돌로 이 기초석에서부터 좌우로 돌을 쌓아 건물을 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의 열두 사도가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이라 함은 그것 없이는 시작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성을 출입하는 조건이라면, 어린 양의 열두 사도는 성 자체의 존립과 관련되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구약성도들과 신약성도들의 콜라보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천사의 손에는 새 예루살렘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가 있었고, 실제 측량을 해보니, 그 성은 네모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똑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정육면체의 모습이 새 예루살렘의 외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합니다. 측량 결과,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만 이천 스다디온이었습니다. 1스다디온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용되던 거리 단위인데 보통 운동장 한 바퀴의 거리로서 180m~192m 정도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 이천 스다디온이면 최소한으로 어림잡아도 2,160km입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2,000km가 넘는 건물을 상상해보십시오. 서울 63빌딩 높이가 249m이고, 롯데타워 높이는 555m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로, 높이가 828m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래봐야 1km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은 2,160km입니다. 비교 불가 아닙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성입니다. 그 성의 성곽 두께만도 백사십사 규빗이었습니다. 70m가 넘는 것입니다.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어머어마한 규모의 성입니다.
제가 잠깐 계산을 좀 해 봤습니다. 면적이 100평짜리 건물이라면 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몇 가구 정도 살 수 있을까? 한평이 가로×세로 3.3㎡이니까 100평이면 330㎡ 이고 새 예루살렘 성의 가로×세로가 각각 2,160km이니까 미터로 환산하면 1층에만 141억 세대가 거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거기에 또 높이가 2,160km이니 2층짜리 고급 맨션이라고 하면 높이를 10m만 잡아도 21만 6천 층입니다. 그러니 정말 계산기로도 계산하기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라고 하신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거할 곳’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맨션으로 번역한 성경이 많습니다. 이 중에 한 맨션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상속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8절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은 벽옥이라는 보석으로 쌓여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성은 정금이었습니다. 순도 100% 순금입니다.
요즘 우리가 금을 사면 순도가 얼마라고 보통 말하는지 아시지요? 순도 99.9999%라고 합니다. 100% 순수한 금, 즉 원소기호 Au라고 하는 원소로만 이루어진 물질은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주 극소량이지만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순도 100% 정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맑기가 맑은 유리 같았다고 사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100% 순금으로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 성, 그런데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160km인 거대한 성! 상상이 가십니까?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19~20절을 보시면,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양각색 보석이었습니다.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사파이어)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에메랄드)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언급된 보석을 보시기나 하셨습니까? 그야말로 진귀한 보석들이 그 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21절을 보면, 그 성의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성의 길 또한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장차 살아갈 곳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사도 요한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이상하게도 성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께서 성전이시기 때문이라고 사도 요한은 첨언합니다. 성전이란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모세에게 지으라고 하신 성막을 의미하는데 이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안에서는 더 이상의 별도 공간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어린 양께서 친히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시면, 그 성에는 해도 달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있었고 어린 양께서 등불이 되셔서 어두움을 밝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 여기서 ‘만국’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민족들’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주는 번역들도 많이 있습니다. 더 이상 성문이 닫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성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목하십시오.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오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세상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세상에 들어가 살아갈 하나님의 아들들, 그분의 백성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