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기차 이해를 위한 기본 물리가 벌써 네 번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급속충전방식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테슬라의 급속 충전방식, 수퍼차저의 충전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테슬라의 완속 충전방식인 데스티네이션 차저도 보겠습니다.
테슬라 전용 급속충전, 수퍼차저
테슬라의 충전커플러는 르노삼성의 SM3 Z.E.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차는 AC3상으로 알려진 한국의 표준형 급속충전방식 사용에 제약이 있습니다. 쓸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원래 내 줘야 할 성능의 1/3밖에 나오지 않아요. 어댑터를 써서 차데모 충전기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한국의 현행법령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해외에서 따로 구매해 와야 합니다. 표준방식을 따르는 주류 자동차 제조사와 달리 테슬라는 독자적인 급속충전방식을 따로 만들어 쓰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일부러 그러는 걸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여기에는 테슬라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테슬라가 충전 시스템을 개발하던 2000년대 말은 충전에 대한 기술표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뭘 써서 만들어야 할지도 불분명한 데다 갓 나온 기술들은 목표로 하는 성능을 내기에는 하나같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테슬라는 전기차가 매력적인 상품이 되려면 20분만에 배터리의 절반을 채울수 있고, 이걸로 100마일(약160km)은 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충전표준 중에는 이것을 만족하는 게 없었지요. 뭐, 없으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요.
또 다른 이유는 투자효과의 문제였습니다. 공용 급속충전기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던 상황에서 전기차를 팔려면 직접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이왕 자기 돈을 써서 만든 충전 네트워크니 자기들만 쓰고 싶었던 건 당연하겠지요. 테슬라만의 독자적인 충전방식, 수퍼차저(Supercharger)의 탄생배경입니다.
테슬라의 수퍼차저 충전 시스템은 최대 480볼트, 300A의 전기를 쓸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이걸 계산하면,
480V x 300A = 144,000W = 144kW
수퍼차저의 최대 충전 전류는 144kW입니다만 실제로는 이걸 다 쓰지 않습니다. 저런 대전류를 공급하다 보면 전압강하가 일어나거나 현장의 사정으로 전류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안전을 위해 수전량 대비 여유를 두는 것 또한 필수입니다. 수퍼차저의 충전포트를 통해 차가 받게 되는 최대치는 입력전류보다 낮은 120kW에 이르는 '직류'입니다. 현재의 일반적인 급속충전방식이 50kW 안팎인 것을 생각하면 두 배가 넘는 큰 전류량이니, 이걸 받는 테슬라의 전기차는 당연히 빨리 충전됩니다.
그럼 수퍼차저로 실제 충전을 하면 어떨까요? 국내에서 판매되는 테슬라 모델 중 엔트리급에 해당하는 75D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름 그대로 75kWh의 배터리를 장착한 차입니다. 수퍼차저의 경우 수동으로 설정하면 100% 충전도 가능합니다만, 배터리의 수명에 영향을 끼치므로 가능한 피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보호와 함께 급속충전의 속도가 유지되는 80%만 충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가정합니다.
75kWh x 0.80 ÷ 120kW = 0.5hour = 30min
테슬라 모델 S 75D의 빈 배터리를 80% 충전할 경우 소요되는 시간은 계산상 30분입니다만, 실제로 테스트한 바로는 45분가량 걸렸습니다. 충전이 계속 120kW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117kW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충전은 60~70kW 선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배터리의 온도나 부하량, 주변온도, 다수의 수퍼차저가 있을 경우 전기를 나눠 쓰는 전기 공급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충전 후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현재 한국에너지공단에 등재된 모델S 75D의 연비(전비)는 4.3km/kWh이므로 이를 적용하면,
75kWh x 0.80 x 4.3km/kWh = 258km
수퍼차저에서 45분간 충전 시 확보할 수 있는 주행거리입니다.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충전속도가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현재 한국에 14곳의 수퍼차저 스테이션을 운영 중이며, 지속적으로 확충할 예정입니다.
다른 급속충전방식이 50~60kW에 머물고 있을 동안 테슬라의 수퍼차저 방식은 그 빠른 속도로 다른 전기차를 뛰어넘는 우월함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요. 차데모나 DC콤보와 같은 타 표준방식들이 100kW급으로 업데이트를 하면서 수퍼차저의 장점이었던 빠른 속도는 빛이 바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수퍼차저 또한 350kW의 초급속충전을 개발 중입니다. 기존 것이 수퍼차저(Supercharger)였으니까 다음에 나오는 것은 하이퍼차저(Hypercharger)라도 되는 걸까요? 마음대로 상상해 봅니다. 하하하.
하지만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테슬라의 시판 모델들은 곧바로 초급속충전을 이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350kW급의 충전을 위해서는 차량 내 내부 전압이 800V로 올라가야 합니다. 현재의 테슬라 차의 하드웨어와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걸 테슬라만의 문제라 할 수는 없습니다. 초급속충전과 기존 전기차의 호환성 문제는 미래에 다른 전기차도 겪게 될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초급속충전은 이것을 지원하는 신형 모델이 나올 때 함께 소개되리라 예상됩니다.
테슬라 전용 완속충전, 데스티네이션 차저
그렇다면 테슬라의 충전방법은 수퍼차저밖에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테슬라도 완속충전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데스티네이션 차저(Destination Charger)라고 부릅니다.
테슬라는 원래 5핀 방식의 독자적인 충전포트를 만들어 썼습니다. 하지만 북미 시장 이후 두 번째로 진출한 유럽시장부터는 이 방식을 고수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완속충전 인프라를 쓰게 해달라는 요구를 수용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테슬라는 유럽에서 이미 사용중인 7핀짜리 J1772 type2 규격을 자신들의 차에 적용해 교류 완속 충전망을 쓸 수 있게 하는 한편, 자신들의 직류 수퍼차저 방식이 통하도록 독자적으로 개량합니다. 한국에 들어온 차들이 쓰는 방식도 이 유럽형 커넥터입니다.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 그러니까 목적지 충전이라 부르는 것은 이 소형의 충전기를 기존 전력 인프라를 이용해 설치한 뒤, 식사나 쇼핑, 심지어 수면 같은 다소 긴 시간을 보낼 동안 느긋하게 충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면 됩니다.
일반적인 완속충전기가 7kW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테슬라가 직접 공급하는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는 최대 22kW의 교류전류를 차량에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최대 충전량은 순전히 외부 전력의 공급량에 따라 달라질 뿐, 기기 자체는 동일합니다. 설치장소가 얼마나 많은 전류를 계약할 수 있느냐에 따라 충전전류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데스티네이션 충전기가 충전소에 따라 6~22kW로 달리 안내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데스티네이션 차저가 최대치인 22kW 충전을 지원하더라도 테슬라의 차가 받을 수 있는 용량은 11~16kW 사이에 머뭅니다. 교류충전은 차량에 내장된 OBC(Onboard Battery Charger)의 교류-직류 컨버팅 용량에 따라 결정되는데, 테슬라는 시판모델에 따라 이 수치가 조금씩 다릅니다. 초기의 90D는 11kW가 기본이었으며 16kW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고, 현재 판매되는 테슬라는 모두 16kW가 기본입니다. 모델 S를 가지고 계시다면 자신의 컨버터 용량을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추후에는 테슬라에서 22kW 교류충전을 지원하는 모델도 나올 것입니다. 22kW 데스티네이션 충전소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럼 16kW의 데스티네이션 차저로 배터리를 80%가량 채우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해볼까요? 대상은 동일한 모델 S 75D입니다.
75kWh x 0.8 ÷ 16kW = 3.75hours = 3hours 45min
80% 충전까지는 3시간 45분이 걸리며, 약 5시간이면 완전충전까지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그럼 일반적인 7kW 완속 전류만 가지고 데스티네이션 차저가 작동할 경우 100%의 충전은 얼마나 걸리는 걸까요? 충전은 80%가 넘으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제2편에 나왔던 충전상수를 다시 적용해 봅니다.
75kWh ÷ 7kw x 1.3(충전상수) = 13.93hours
거의 14시간이 소요됩니다. 실제로는 재충전 시 배터리가 완전히 비어있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보다는 적게 걸릴 것입니다만, 적은 량이 남은 상태에서 완전히 배터리를 채우려면 숙박은 필수일 것 같습니다. 왜 테슬라가 데스티네이션(목적지) 충전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이젠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렇게 말하니 테슬라의 완속충전은 꼭 데스티네이션 차저로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 7핀 규격을 도입한 것이 유럽의 충전망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였으니 동일 규격의 표준형 완속 충전기로도 충전이 잘 되어야 정상입니다. 르노삼성의 SM3 Z.E. 용 충전기를 테슬라 차량에 물려도 충전이 잘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국의 공용타입 완속 충전기에 달려 있는 충전 커플러는 물리규격이 테슬라의 유럽형 7핀이 아닌 5핀 규격입니다. 별도의 충전케이블을 꺼낸 뒤 충전기와 연결해야 하는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테슬라도 공용 충전기의 사용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드립니다. 테슬라의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로 SM3 Z.E.를 충전하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다음 시간에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