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염구가 말하길, “선생님의 도를 즐거워(좋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서 그만두는데, 지금 너는 스스로 못한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라고 하셨다.
力不足者 欲進而不能 畫者 能進而不欲 謂之畫者 如畫地以自限也 힘이 부족한 사람은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고, 畫하는 사람은 나아갈 수 있으나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일컬어 畫이라고 한 것은 땅에 금을 그어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慶源輔氏曰 心欲進而力有所不及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마음은 나아가고자 하나 힘이 미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力能進而心有所不肯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힘은 능히 나아갈 수 있으나 마음에 하려고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胡氏曰 夫子稱顔回不改其樂 冉求聞之 故有是言 然使求說夫子之道 誠如口之說芻豢 則必將盡力以求之 何患力之不足哉 畫而不進 則日退而已矣 此冉求之所以局於藝也. 호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안회가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칭찬하였는데, 염구가 그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염구가 공자의 도를 좋아하기를 진실로 마치 입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할 수 있었다면, 반드시 장차 힘을 다하여 그것을 추구하였을 것이니, 어찌 힘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겠는가? 선을 그어놓고 나아가지 않으면, 날로 퇴보할 따름이다. 이것은 바로 염구가 기예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廢是好學而不能進之 人或是不會做工夫 或是材質不可勉者 今女畫 畫是自畫 乃自謂材質不敏 而不肯爲學者 주자가 말하길,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서 그만둔다’는 말 중의 廢(그만둠)는 배우기를 좋아하지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니, 사람들 중에 혹자는 공부를 할 줄 모르거나, 혹자는 그 재질상 힘쓸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지금 네가 선을 그은 것이다’라는 말에서 畫이란 스스로에게 선을 그어 제한하는 것이니, 곧 스스로 재질이 불민하다고 말하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力不足者 非無志否 曰 雖非志而志亦在其中 所見不明 氣質昏弱 皆力不足之故 冉求乃自畫耳 누군가 묻기를, “힘이 부족한 사람은 뜻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비록 내 의지가 아님에도 뜻이 또한 그 안에 있으니, 본 바가 밝지 못하고, 기질이 혼약한 것도 모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구는 오히려 선 그어 스스로를 제한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問自畫與自棄如何 曰 也只是一般 只自畫是就進上說 到中間自住了 自棄是全不做 누군가 묻기를, “自畫은 自棄와 더불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역시 그저 한 종류일 뿐이다. 다만 自畫은 나아가는 것 위로 나아가 말한 것으로서, 중간에 이르러 스스로 멈추어버리는 것이다. 自棄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力不足者 是氣質弱甚 天理不能勝人欲 中道而廢者 如人擔重擔 行遠路 行到中途 氣匱力竭十分 去不得 方始放下 如此方 謂之力不足 冉求未嘗用力 便說力不足 如季氏旅泰山 且須救他 便說不能 此是畫處 쌍봉요씨가 말하길,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기질이 매우 약하여 天理가 人欲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중도에서 그만둔다는 것은 예컨대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길을 가는데, 가다가 중도에 이르러 기력이 다함이 매우 심하여 더 갈 수 없자, 비로소 짐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소 이를 일컬어 힘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염구는 일찍이 힘을 쓴 적이 없으면서도 곧바로 힘이 부족하다고 말하였는데, 예컨대 계씨가 태산에 旅제사를 지낼 적에, 또한 반드시 그를 구제해야 했지만, 곧바로 할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부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語首章集註云 說之深而不已焉耳 說貴乎深 說苟深必欲罷不能 豈有自畫之患 畫而不進 說之不深 故也 求局定於藝而不能充拓 其弊原於畫以自限耳 신안진씨가 말하길, “논어 첫장의 집주에서 이르길, ‘기뻐함이 깊어서 이를 그만두지 않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는데, 기뻐함은 깊음을 귀하게 여기므로, 기뻐함이 만약 깊다면 반드시 ‘그만두고자 해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어찌 스스로를 제한하는 근심이 있겠는가? 스스로를 선 그어 제한하여 나아가지 않는 것은 기뻐함이 깊지 않기 때문이다. 염구는 기예에 국한되고 획정되어서 더 채우고 넓힐 수 없었는데, 그 병폐는 선을 그어서 스스로를 제한하였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