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0월 3일 새벽 3시 25분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비치호텔에서 한 중년여성이 13m 아래 호텔나이트클럽 출입구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사망자는 이날 새벽 이 호텔 3OO호 실에 투숙했던 서울 S 여대 이선경 교수(가명·47)였다. 호텔 종업원들이 이 교수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지난 93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일명 ‘S 여대 여교수 상해치사사건’이다. 실족사와 투신자살, 타살 가능성을 두고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의혹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났을까. 수사기록 속으로 들어가보자.
조사결과 이 교수는 이날 새벽 1시 50분경 내연관계에 있던 최무영 씨(가명·49)와 함께 이 호텔에 투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내연남 최 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사무부처장으로 재직하던 중 대학입시 부정사건과 관련, 구속돼 이 교수 사건이 일어나기 달포 전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후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 교수는 2년 전부터 내연관계를 맺어오던 최 씨와 호텔에 투숙한 지 불과 1시간 반 만에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도대체 그날 새벽 객실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은 쉽게 해결될 듯 보였다. 함께 투숙했던 최 씨는 “이 교수와 결혼문제로 심한 언쟁을 벌이던 중 이 교수가 베란다로 뛰어나가 몸을 던졌다”고 진술했다. 결혼문제를 놓고 시작된 말싸움 끝에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말릴 겨를도 없이 이 교수가 베란다를 통해 투신했다는 것이 최 씨의 주장이었다.
최 씨의 말대로라면 이 교수의 사망원인은 자살이었다. 하지만 이 교수의 사망을 자살로 단정짓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우선 가족 및 주변인들은 그녀의 자살 가능성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가족들은 평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던 이 교수가 자살을 선택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S 여대 설립자의 외손녀이자 당시 총장의 장녀였던 이 교수는 상당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고 학내에서 다음 세대를 끌어갈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누가 봐도 교계 실력자로 활약하며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이 교수가 내연남과 말다툼을 하다 자살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 교수는 당시 고3짜리 딸을 둔 어머니였다. 뿐만 아니라 이 교수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그녀가 쌓아온 평판으로 봐서도 외간 남자와 투숙한 호텔에서 자살을 해서 세간의 구설을 자초할 리는 만무했다. 사건 직전까지 이 교수는 국제적 전문직 여성 봉사단체에 몸담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으며 주변에서도 미모와 실력, 인격을 겸비한 교육자로 상당히 평판이 좋았다.”
당연히 수사팀 내에서는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수사결과도 적어도 이 교수가 자의적으로 투신자살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그 무렵 이 교수가 제2의 삶을 모색 중이었다는 사실이 포착됐다. 이 교수가 당시 별거 중이던 남편은 물론 내연관계에 있던 최 씨와의 관계도 모두 청산하고 미국으로 가서 집필활동에 전념하려 했다는 주변인의 진술이 나온 것이었다. 이 교수로서는 심사숙고 끝에 내린 중대한 결심이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주변정리를 위해 변호사와 법적문제를 놓고 심도깊은 논의를 했던 사실도 포착됐다.”
현장검증을 실시한 수사팀 역시 이 교수의 자살이 석연찮다고 판단했다. 우선 이 교수가 투숙했던 객실 창문 밖 베란다의 높이는 1.2m로 40대 중반이 넘은 여성이 단숨에 뛰어 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만약 이 교수가 스스로 뛰어내렸다면 베란다를 넘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베란다나 이 교수의 옷에 마찰 흔적이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어떤 흔적도 없었다. 또 심하게 다퉈 격앙돼 있었다는 이 교수가 옷걸이에 있던 겉옷까지 걸쳐 입고 뛰어내렸다는 점도 이상했다.
4일 오후 속초의료원에서는 이 교수의 부검이 실시됐다. 집도의는 “가슴에 멍이 들어 있었으며 오른쪽 갈비뼈 5개가 부러져 있다. 손목과 복부, 다리에도 멍과 찰과상이 있다. 직접적인 사인은 머리 왼쪽 부분이 심하게 부서지면서 생긴 뇌손상 때문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밝혔다. 특히 이 교수의 몸 곳곳에서 발견된 심한 피멍은 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사건 전 이 교수가 최 씨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었다.
최 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한 수사팀은 이 교수가 타살됐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최 씨는 살인혐의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최 씨는 ‘이 교수에게 결혼을 요구했으나 거절해 말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가슴을 떼밀어 벽에 부딪히게 한 적은 있다. 하지만 폭행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수사팀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 교수가 스스로 투신자살했을 가능성, 최 씨의 폭행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피하려다 실족사했을 가능성, 최 씨가 이 교수를 추락시켜 자살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안면부와 팔 다리 등 유독 왼쪽 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사체 상태로 봐서는 옆으로 눕혀진 채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수사팀은 이 교수가 옆으로 들린 상태에서 추락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투신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던 것이다.”
조사결과 연세대 선후배 사이인 최 씨와 이 교수는 이 교수가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 후부터 가깝게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연관계를 맺어오면서 줄곧 결혼문제를 두고 심한 갈등을 빚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씨는 사건 발생 당일뿐 아니라 지난 9월 29일 새벽에도 이 교수를 납치해 낙산비치호텔에 강제로 투숙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최 씨는 납치혐의에 대해선 순순히 시인했다. 2년 전부터 이 교수에게 청혼했으나 거절하는 바람에 지난달 29일에 이어 2일 새벽에도 승용차로 이 교수를 납치, 낙산비치호텔에 투숙했었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당일의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사건 당일 호텔 옆방에 투숙했던 사람들로부터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방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소리와 살려달라는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 프런트에 전화까지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최 씨는 이에 대해 “심한 언쟁을 벌이던 중 이 교수가 계속 술을 마셔서 술잔을 빼앗았는데 다시 빼앗으려해 양 손으로 가슴을 한 차례 밀쳐 뒷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한 적은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문제는 목격자나 물증이 없다는 점이었다. 수사팀은 최 씨의 폭행사실만을 밝혀냈을 뿐 이 교수의 사망을 타살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이 교수의 사망과 관련된 구체적인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었다. 1차부검과 주변인들의 증언만으로 타살로 결론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타살로 단정지으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최 씨는 5일부터 시종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진의 애를 태웠다.
‘죽였느냐’와 ‘죽었느냐’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또 ‘살인’의 증거를 찾아낸다 해도 고의성이 있었느냐를 가려내는 것도 수사팀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결국 사건 송치를 앞두고 수사팀은 타살의 증거를 밝히기 위해 재부검을 의뢰했다. 그리고 13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대 이정빈 법의학과 교수의 집도 아래 이 교수에 대한 재부검이 실시됐다. 이날 부검에서는 이 교수가 추락 전에 이미 가슴뼈와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었고 구타로 심장내출혈이 있었다는 소견이 나왔다. “뇌지주막 아래에 있는 부분출혈 상태 등으로 보아 이 교수가 추락하기 전에 이미 가사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추락사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좌측 부분의 안면부와 골반, 무릎 손목 등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던져지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재부검 결과였다. 수사팀의 타살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수사팀은 14일 부검 결과에 따라 최 씨에게 살인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살인행위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인적·물적 증거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숨진 이 교수의 상처와 사건현장, 주변인물, 옆방 투숙객과 호텔 종업원 등에 대한 정밀 수사결과 최 씨가 결혼을 거절하는 이 교수를 주먹과 발로 폭행한 후 객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게 해 실신시킨 뒤 투신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호텔 베란다 밑으로 던져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수사팀이 내린 결론이었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나천수 강릉지원장)는 1994년 3월 25일 오전 강릉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7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 교수 살해 사건에 대한 검찰과 피고인 측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교수의 성격, 사회적 위치 등을 종합해 볼 때 자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폭행 당시 이 교수가 의식을 잃었거나 빈사상태에 이르자 당황한 끝에 창밖으로 던진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씨에게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교수를 살해할 의도로 창밖으로 던졌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살인죄는 무죄이며 폭행 당시 사망했거나 빈사상태에서 이 교수를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사실은 인정되므로 상해치사죄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1심에서 7년, 2심에서 8년을 선고받은 최 씨는 상해치사죄가 적용되어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는 인정되나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