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이 있던 자리
문경자
목련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있다. 꽃이 필 때는 향기가 날렸다. 여름에는 푸른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한 마리 고양이가 앉았다가 놀라서 눈을 번득이면서 달아난다. 재활용 판자와 노란색 나일론 장판을 덧대어 만든 평상은 기술이 없어도 간단하게 만들 수가 있다. 평상이 놓여있는 자리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부채질을 하며 편안한 자세로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마치 하얀 목련 꽃이 내려와 도란도란 앉아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어릴 때 놀던 대나무 평상이 그려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부모님들도 즐거워하면서 지냈던 일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황금으로 만든 자리가 있다 하여도 내가 앉을 수 없는 자리는 필요가 없지 않은가! 평상은 누구나 쉽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 수도 있으며 편히 쉬었다 갈 수도 있다. 세상에는 평상보다 더 멋지고 푹신하게 만든 것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공원이나 놀이터 같은 곳에서도 편히 쉴 곳은 널려 있다.
내가 자란 고향에도 집집마다 평상이 놓여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평상은 가족들에게 일등 휴식공간이었다. 마루도 있지만 여름 한철은 대나무 평상이 인기를 끌었다.
평상은 고정이 되어있지 않아 필요에 따라서는 어디든지 이동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아이들도 몇 명이 달라붙어 힘을 합치면 옮겨 놓을 수가 있다. 우리는 시원한 감나무 그늘아래에다 평상을 옮겨 놓았다. 숙제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유일하게 흙을 밟지 않고 놀 수가 있는 평상이 좋았다. 말썽을 부려도 별로 혼을 내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어주는 어머니는 평상과도 같은 넓은 마음으로 대해준다. 할아버지는 귀여운 손녀들 재롱에 그저 웃음만 입가에 번졌다.
널빤지로 바닥을 데어 만든 것은 편편한 시루떡 같은 모양이지만 대나무로 만든 것은 그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대나무의 껍질은 푸른 파도가 움직이는 착각을 할 만큼 훌륭하였다. 잘 자란 대나무는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평상은 명품이었다. 할아버지의 검게 그을린 팔뚝에 푸른 힘줄은 대나무 결과 닮았다. 수작업을 하다 보니 거의 비슷한 평상이 많았다. 주인의 솜씨에 따라 매끈하다든지 아니면 울퉁불퉁한 모양도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멋이 스며들어 있었다.
평상은 상석이 없다. 누구나 쉽게 걸터앉아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는 자리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웃집 강아지도 평상 밑에 들어가서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암 닭도 병아리를 데리고 마실을 와서는 평상 주위를 맴돌며 먹이를 찾는다. 평상에 앉아 그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내가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모습과도 흡사했다. 마당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평상은 침대, 의자, 멍석, 식탁, 놀이터 등 다양한 변신을 한다.
평상이 변신을 하는 것도 주인의 손에 달렸다. 주인이 게으르면 평상은 혼자 덩그러니 할 일없이 빈둥빈둥 건달 같은 하루를 보낸다. 이웃집에 있는 평상은 부잣집 주인을 만나서 햇빛을 볼 날이 드물었다. 말리고 걷고 하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다른 집 평상은 사람 냄새도 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밤이면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박혔다.
평상 주위를 날아다니는 개똥벌레는 숨바꼭질을 한다. 그 놈을 잡아서 이마에 부치면 다이아몬드 같이 반짝인다. 손바닥에 붙이고 얼굴을 갖다 대면 환하게 비추어 졌다. 평상에 서있으면 하늘과 가까운 거리가 된다. 까치발을 하고 별과 달을 따는 시늉을 한다. 평상에서 달도 따고 별도 따고 신비의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다.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는 달과 별을 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낮에 퍼온 우물물을 복 자가 새겨진 사기대접에 찰랑찰랑 넘치게 담았다. 평상 한 가운데 놓았다. 정말 그들이 그 속에 내려와 앉아 있었다. 그릇을 살짝 건드렸더니 요정으로 변하였다.
그날 밤 꿈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평상이 날개를 달고 같이 날아갔다. 그 뿐만 아니라 평상에서 먹는 저녁밥은 달도 별도 함께 먹었다. 보리쌀을 많이 섞은 밥에다가 보글보글 된장에 호박 잎 쌈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도시에서 아무리 똑 같은 재료를 써서 만든다 하여도 엄마의 손맛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엄마는 평상에 앉아 밥을 먹는 가족들 모습에 하루의 고달픔을 잊기도 한다. 시아버지도 며느리에게 밥을 먹자고 말했다.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평상이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밥 묵자” 한 마디 거들었다. 평상에 앉아 있으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하다. 옆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주야로 술만 마시는 술주정뱅이 이웃집 아저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평상에 차려진 밥상을 날렸다.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들고 싸움 구경하다가 엄마한테 혼이 나서 쫓겨 오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이웃집 싸움 구경이나 시끄럽게 말다툼 하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본다. 밖이 보이기는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아 금방 문을 닫는다. 간밤에 부부싸움으로 인해 얼굴을 맞은 영희 어머니는 시퍼렇게 멍든 눈자위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를 다 알고 있는 평상은 그저 하루도 평범한 일상을 노래한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평상은 눈비가 맞을 세라 사랑채 뒷켠에 잘 보관해 두었는데, 평상도 오래 되어 퇴색이 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닮았다. 시원한 감촉은 아직도 내 등짝에 자리하고 있다. 평상에 앉아보았다. 지난 이야기가 귓가에 가을바람이 되어 간지럽게 했다. 그 자리에는 밤이면 달빛 별빛이 내려와 도란도란 얘기하겠지.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멋대로 뒹굴었다.
경남 합천 출생
2009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문 작가협회 이사
재경 합천문인협회 회원
합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