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야산방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식물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식물들은 동물들에게 매우 많은 것을 바친다. 아니 동물들이 식물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마구 뜯어 먹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물론 육식동물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 초식동물 그리고 인간들은 식물에게서 참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식물들은 움직일 수 없다는 저주와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 내는 축복을 함께 받은 개체이다. 수많은 씨앗으로 개체를 퍼뜨리며 그런 개체들은 동물들에게 먹이가 되지만 멸종되지 않고 그 수를 늘려 나간다. 이런 저런 상황을 상정해 보아도 식물이 동물에 비해 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유전자수도 식물이 동물보다 더 많다고 하지 않던가.
식물들 가운데 나무들은 일년을 참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간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같은 나라의 나무들은 일년의 모습이 변화무쌍하다. 추운 겨울 앙상한 가지를 송두리채 드러내고 칼바람을 견디어낸다. 반듯이 봄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주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봄을 기다리다가 추위가 풀리고 훈풍이 불면 여기 저기서 꽃이 피어나고 앙증맞은 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와 잎이 먼저 돋는 나무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속에 잘 적응해 살아간다. 그러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힘겹게 버티며 세월을 견디어낸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고 씨를 퍼뜨린다. 늦가을 잎이 떨어지고 다시 추운 겨울이 오면 잎을 모두 떨구고 또 다시 겨울의 혹독함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나무 아니던가.
나무의 모든 것이 경이롭지만 그가운데 특히 잎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존경스런 존재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나무에 대한 무한의 사랑을 베풀다 일생을 끝내는 희생정신의 산 증인인 셈이다. 잎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내려놓고 오로지 나무를 위해서만 생존하는 듯이 보인다. 나무잎마다 고유의 색이 있지만 그 광합성작용 즉 나무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염록소라는 녹색으로 자신의 고유색을 감춘다.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오로지 나무의 생존을 위해 얼굴과 마음조차 감추면서 일생을 사는 것이다. 나뭇잎은 하루종일 쉬지를 않는다. 해가 뜨면 식량 마련을 위한 광합성작용에 돌입한다. 뿌리로 부터 물을 받고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흡입해서 식량을 만든다. 잎 하나 하나가 식량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소는 나무 전체로 퍼진다. 그 영양분으로 꽃은 피고 벌 나비를 끌어들이기 위해 향기도 만들어낸다. 예쁜 꽃과 그속에서 풍기는 향기는 바로 잎의 희생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꽃이 수정이 되면 나뭇잎은 더욱 바빠진다. 열매를 더 풍성하게 살찌우기 위해 식량 가동을 재촉한다. 비바람속에서 그 강하다는 태풍속에서도 나뭇잎은 나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찌는 여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열매가 완성되고 그 씨앗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뭇잎은 이제 일생을 정리한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정말 일초도 쉬지 않고 살아온 그 피곤한 생을 마감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단풍이 드는 일이다. 그동안 자신의 색을 숨기고 살았던 그 긴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나뭇잎은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그 짧은 시간에 드러나는 색이 바로 단풍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잎 두잎 낙엽은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진다고 그의 역할이 다한 것이 아니다. 낙엽은 자신이 일년동안 지냈던 나무을 위해 마지막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로 나무아래에 모여 나무가 겨울 추위를 견디도록 두툼한 이불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뭇잎이 나무아래 쌓여 혹독한 겨울추위를 막아주는 것이다. 또한 낙엽속에 있던 성분이 나와서 잡균들이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저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나뭇잎이 썪어 나무의 거름 역할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나뭇잎은 생겨나서 낡고 떨어져서도 오로지 나무의 앞날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이정도면 정말 대단한 희생정신의 소유자 아닌가. 우리네 어머니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네 어머니가 자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오로지 가족들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머니들은 그렇게 살아 오셨다. 어머니라고 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려 생각하지 않았을까. 조금 사치스럽게 살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가족들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챙기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어머니들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눌렀다. 아니 간혹 마음 저 아래에서 용솟음치는 그 생각을 짓누르고 살아온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의 생이었다.
이제 낙엽도 다 지고 들판과 야산은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만이 추위속에 긴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다. 일년 가운데 가장 황량하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계절이 바로 지금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나무를 덮었던 그 나뭇잎이 없어지니 이렇게 홀쭉한 나무만 남아버렸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집안 분위기와 흡사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나뭇잎들은 내년 봄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2023년 11월 1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