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 자동물시계 부품… 땅속서 나온 ‘조선의 과학’
인사동 유적발굴 중 항아리서 발견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법 사용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 가운데 한글 활자 580여 점 중 일부. 원대연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1600점 이상 대거 쏟아져 나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와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기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포함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종 시대 과학유산의 부품들도 함께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580여 점과 한자 금속활자 1000여 점을 공개했다.
한글 활자 중에는 15세기에 사용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표기법을 따른 활자들이 포함됐다. 동국정운은 조선 한자음을 정리해 1448년 간행된 음운서로, 이번 발견은 한글 창제 연구에 주요 사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능엄경언해(1461년)에 쓰인 활자였다.
한자 금속활자 중 최소 6점은 1434년에 만든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된다. 추후 연구를 통해 1434년에 제작된 것이 최종 확인된다면 세종 재위 기간(1418∼1450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의 최초 실물이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것이 된다.
세종의 꿈 새겨진 最古 한글 금속활자 찾았다
‘ㅱ, ㅸ’ 등 초기 한글 활자 첫 발견
1434년 제작 추정 ‘갑인자’ 확인땐
구텐베르크보다 제작 시기 앞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대거 발굴된 조선시대 한글 금속활자. 순경음(ㅱ, ㅸ), 이영보래(ㅭ), 반치음(ㅿ) 등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동국정운식 활자는 인쇄된 문서로는 전해 왔지만 금속활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실물을 드러냈다. 원대연 기자
이번 발견은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수준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갑인자 추정 활자를 두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다”며 “세종, 세조 시대 문화 황금기를 이끈 데 영향이 컸던 조선 활자 인쇄술 규명에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동국정운식 표기가 실물 활자로 확인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ㅱ, ㅸ, ㆆ, ㆅ’ 등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본으로는 여러 책이 있지만 활자로는 전해진 것이 없었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현재 실물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ㅱ, ㆆ, ㆅ 글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글자는 1480년대까지만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한글 활자가 확실히 가장 오래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중에는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 ‘이고’ 등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있다.
이번 발굴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종로구 인사동 79번지)’ 발굴 조사 중에 이뤄졌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중심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출토 지역에 관한 조선 전·후기 기록을 찾아본 결과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다”며 “건물 터 형태를 보면 양반도 살았겠지만 시장에서 살았던 중인, 관아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집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가 방출해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자동 물시계의 부품 주전.
금속활자는 해당 장소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에 있는 도기 항아리 안에서 발견됐다. 항아리에는 주전(籌箭·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속품)도 함께 있었다. 문화재청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도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조선 전기 천문시계 일성정시의의 한부품. 문화재청 제공
항아리 바깥쪽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유물들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부품 형태로 출토된 것. 이는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기계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물은 전무했다. 이 외에도 동종(銅鐘), 동판(銅板), 총통(銃筒)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곳에 대거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재청 및 수도문물연구원의 입장이다. 발굴 유물 중에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승자총통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각종 동제 유물 출토에 대해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성분 분석 전이지만 색깔을 봤을 때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라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고 나중에 녹여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이곳에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