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 여사를 감동시킨 한국농부의 마음
1960년,장편소설 대지(大地)로1938년 노벨 문학상을 탄 펄벅 여사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우선 여행지를 농촌마을로 정하고 경주를 방문하던 그녀의 눈에 진기한 풍경이 발견됐다.
그것은 황혼 무렵,
지게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의 모습이었다.
펄벅은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실어버리면
아주 간단할 것이고, 농부도 소달구지 에 타고 가면 더욱 편할 것인데~
라고 생각하고...
펄 벅은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말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 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서양의 농부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소달구지 위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농부는 소의 짐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펄 벅 여사는 따지 않은 감이 달려있는 감나무를 보고는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고 물었다가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바로 이거에요. 내가 한국에서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라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펄 벅 여사가 감동했듯이 감이나 대추를 따더라도 '까치밥'은 남겨
두는 배려를 하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우리 선조들은 씨앗을 심어도 셋을 심었다.
하나는 하늘(새)이,
하나는 땅(벌레)이
나머지는 내가 나눠 먹겠다는 뜻에서였다.
이렇듯 씨앗 하나에도 배려하며, 소의 짐마저 덜어 주려는 선조
들의 마음과, 그것을 단순히 넘기지 않고 감동
으로 받아들인 펄 벅 여사의 시각과 마음이 아쉬운 요즘이다.
나도 홍시감을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는데 이곳에는 까치가 없으니
까마귀가 와서 먹는데 야지로 먹지않고, 흔하니 모두 한개당 한입씩만
파먹어서 구멍만 내었다.
까마귀가 배를 먹을적에는 쪼으면 여물어서 흔들리기만 하니 배꼭지를
잘라서 배를 땅에다가 안착 시킨후에 쪼아먹으니 머리가 좋은 셈이다.
농부가 소의 짐을 최소화 하려는 것은 소가 일을 너무많이하면
다음날 쇠죽을 먹지않기 때문에 염려에서 오는것인데 고된일을 시키고나면
쇠죽에다가 콩을 섞어서 끓여주는것은 짚으로 끓인 쇠죽은 영양가가 별로이기 때문이다.
펄벅(Pearl S Buck)
펄[진주, 중국명 새진주[塞珍珠]은 생후 3개월만에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사 중국으로 이사를 가서 중국의 아이들과 소녀시절을
보냈고 1910년 미국에와서 댁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14년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그후에 중국인과 결혼을 하여 살다가
돌아가지를않고 미국의 잡지사의 벅과 재혼을 하여 펄 벅이 되었다.
내가 젊을때 대지[The Good Earth]를 읽은적이 있는데
초례상에 두부를 올려놓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것을 기억한다.
홀아버지가 병이들어서 콜록콜록해도 약을 사지못하고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게 했다.
가난한 왕룽은 황부자집의 여종오란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오란은
살림을 잘하고 왕룽은 인력거를 끌어서 부자가 된다.
그러나 신해년인 1911년 10월 10일[쌍십절]청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탄생하는 신해혁명이 일어나니 왕룽도 피란을 가게되고 오란은 두아들과
걸인이 되는데 그 당시 큰 부자들은 보물을 숨기고 떠나는데 오란이
이중벽속에 감추어 둔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후에 황부자는 마약때문에 망하니 왕룽은 그의 재산을 싸게사서
부를 축적하게 되고 오란도 친구를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정도가 된다.
나중에는 왕룽이 첩을 얻게 되고 오란은 죽고 아들3형제가 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가난뱅이가 나중에 부자가 되는 성공담이 되는데
여사가 전쟁통에 죽을번한적이 있으니 마음을 조렸는데 그 느당시의
느낌때문에 글이 나와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노벨상을
받게 되며 작품활동을 하게 되는데 80세를 살았다.
그는 한국에온 후에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를 마지막 장면이1945년에
끝이나는 이야기로 쓰게 되는데 안동김씨 집안의 아들 주인공 김일한이 있으며
아마도 소염진통제 안티프라민의 유한양행[원래의 뜻은 '선을 행하라:良行]은
유일한 씨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한다.
유일한씨가 미국에 있던 시절 그의 아내 호미리가 중국인이고 중국식당에
많이쓰는 숙주나물캔을 만들어 파는데 녹두도 많이 시왔을것이며 펄벅과
유일한씨의 아내와 중국어로 대화가 가능 했을것이다.
유일한씨는 숙주나물을 병에다가 담아서 팔던 시절에 일부러
배달 추럭으로 가게를 받아서 병들이 깨어져 길거리에 나뒹구는
사진이 신문의 뉴스에 게제가 됨으로서 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어
매상이 상승했단다.
대지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노벨상을 받은 후에
찍은 사진.
한국 부천에 유한양행이 있고 펄벅 재단이 있는것은
유일한박사[1895-1971]와 펄 s 벅[1892-1973]여사는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가 알았을 것으로 풀이가 된다.
부천의 그당시 주일학교에서 펄벅여사가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조지 워싱턴의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다.
어린이 여러분,
조지 워싱턴이 어릴 때 아빠가 아끼는 벗나무를
도끼로 쳐서 죽인 일이 있었어요.
그러자 어린이가 이야기했다.
선생님 그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어요.
계속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었던 선생님이
어린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왜 아빠가 혼내지 않았지요 ?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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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조지 워싱턴이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죠 ?
학생들.ㅋㅋ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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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장군 회고록 24
***채명신장군 회고록 누락이 된 부분 3- 21번까지는 저의 블로그
blog.naver.com/gongsoolae
에서 열어 보실수가 있습니다.
남의 글을 재목으로 사용하니 북한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싫어 할 것이고
조금은 자극적이어서 아이템 제목을 바꾼답니다.
감솨요.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