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결국 하느님 / 양하영 신부
발행일2021-02-07 [제3231호, 3면]
사목활동 중,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자책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렵고 아팠던 사연들에 의해 본인의 삶을 실패작이라 여기며, 자신의 죄로 벌을 받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버린 것 같고 왜 나에게만 이런 아픔과 괴로움을 주냐는 울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하느님을 원망하고 밀어낸 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죄책감은 있어도 원망스러운 하느님과 이렇게 연을 끊고 사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일까?
고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 있다. 남편을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은 작가의 일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의 죽음…. 작가의 절규가 글에 다 담겼을까? 작가는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더 컸을 자식 잃은 고통에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자책했다. 그동안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란 죄로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다고 말이다.
세상과 삶의 의미를 잃어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아 그마저 좌절되는 엄마의 마음.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으로 묵주를 집어 던지기까지 하며 하느님을 원망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을 속으로 골백번 죽이고 또 죽였다. 작가는 처절히 절규한 뒤,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하느님을 수없이 죽였어도, 남은 것은 결국 하느님임을 고백한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세상을 잃었지만, 하느님께서 남은 가족, 지인들이라는 다른 세상으로 초대하셨고 그곳에서 더 깊이 살아갈 힘을 주심에 드린 기도다.
하느님이 너무 원망스러워 저주도 하고, 하느님을 몇 번이나 죽일 만큼의 고통이 있다. 하느님을 향한 원망, 미움… 괜찮다. 복음 속 ‘돌아온 아들’ 이야기 중, 아들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며, 유산을 챙겨 집을 버리고 떠났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다.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너 그렇게 나갈 땐 언제고 뭐 하러 돌아왔냐!”는 말도,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아들을 그저 꼭 안아준다.
우리의 슬픔이나 괴로움은 나의 선택에 따른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끄심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슬픔과 괴로움의 근원을 모두 알 수 없기에 더 답답하고 괴롭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중에도 아버지 하느님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품을 두 팔 벌려 열어두신다. “고생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니. 괜찮다. 괜찮아”하시면서 토닥여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하느님 실컷 욕해라. 실컷 원망해라. 우리가 어디 가서 속이 뻥 뚫리게 욕해보겠는가. 그렇게 실컷 쏟아낸 뒤에, 우리에게 욕먹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까지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려주는 분은 ‘결국 하느님’이심을,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양하영 신부(제1대리구 남양본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