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장19-21절)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먼저 사랑하셨음을 잔소리 같이 반복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노파심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주시고 또 당신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신 예수와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구주로 영접하여 그 생명이 내게 역사하는 믿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가 사랑(고전13장)에 다다르지 못한 이유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는 잘 믿었으나 그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입니다(고후13:5)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넘치므로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주님 사랑해요 하고 크게 소리칠 수 있는데 이르기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따라가는 긴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면 이웃을 사랑하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원래 사랑할 수 있는 밑천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을 사랑하기 이전에 사랑이신
하나님을 모신 자신부터 먼저 사랑하는 원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요한서신이 사랑하는 자들아 하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있느냐 미워하고 있느냐 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졌는가? 하는 사실을 역 추적하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형제 곧 한 배에서 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거짓말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입니다.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가페가 없으므로 아가페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먼저 전해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매우 긴 시간을 통하여...
그 다음부터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빛에서 생명으로 그 다음에
사랑으로 차츰 자라기 시작합니다. 각 사람에게 말씀이 이루어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 봐 하고 가르친다면 소경이며 거짓 선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받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사랑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당연하죠.
이건 살아 있는 사람이 밥 먹고 숨 쉬고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주의 계명은 밖에서 말씀하시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곧 주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이며 새 언약입니다.
사람들이 계명하면 무조건 율법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그건 본인이 법 정신 아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성경이 다 교훈이 되어
그 말씀을 행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가르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내주역사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어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므로 형제사랑에 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 오늘 오후에 브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하여 뉴욕공항을 경유하여
28일 오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그 중간에 말씀을 보낼 수 있을른지...
공항 라운지에서라도 아침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기도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