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이주현
발행일2021-02-07 [제3231호, 3면]
5년 전 즈음 개명을 했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이 부르던 이름과 호적상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개명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몇 가지 서류만 준비해 가면 한 달 후엔 쉽게 허가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매년 개명하는 사람들이 16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후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유명 야구 선수들이나 연예인 중에서도 이름을 바꾼 후 더 승승장구 하게 되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나의 경우 개명보다 세례명이 생긴 뒤로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세례를 받기 전 나는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7~8년간 운영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일이라 서툰 점도 많았고, 서비스직 특성상 늘 감정 노동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매일 수백 명의 손님들을 상대하고 나니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도,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면 방에 처박혀 울면서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와 새로 집을 얻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그때 집 바로 근처의 작은 성당을 발견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당에 가서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했다.
8개월간 예비자교리를 들으며 매일 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례하고 미사 후 조용한 성전에 앉아 기도하는 일이 내 일과가 됐다. 성전에 앉아 십자고상을 바라보고 조금 전 들었던 파견 성가를 흥얼거리면 어느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묵주기도 하는 법을 배운 후에는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다.
세례식이 가까워지자 본당에서는 ‘본받고 싶은 성녀를 찾아 세례명을 정하라’ 했다. 내 생일과 가까운 축일의 성녀들 중 헬레나를 선택했고, 나는 마침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헬레나’라고 불러주셨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 깨닫게 됐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명랑한 모습으로 돌아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게 됐다. 본당 어르신들은 ‘헤레나~’, 주일학교 학생 친구들은 ‘헬쌤’,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헬레)나나’라고 나를 부른다. 호칭은 다 다르지만, 그 이름 안에 담긴 주님의 사랑이 느껴져 나는 늘 행복하다.
이주현(헬레나) (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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