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도란 밥 먹고 바리때 씻는 곳에 있는 것이지 특별한 데
있지 않는 법. 정진을 하다 보면 도가 익는 것이야.
그러니 도를 굳이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집현산의 풍광은 편안하고 후덕했다. 특히 내원토굴에서 바라보는 긴 골짜기는 구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그윽했다. 금오는 이곳에서 깨친 바를 보임하면서 찾아오는 젊은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일타는 응석사에서 날마다 내원토굴로 가 금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가르침이라고 해서 특별한 단계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내원토굴은 선객들이 안거를 맞이하여 정진하는 선방이 아니었다. 말없는 가운데 스스로 금오의 가풍을 훈습하는 것이 전부였다. 금오가 일타를 만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한 어린 사미가 고명한 선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사미는 선사에게 많은 가르침을 기대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선사는 그 사미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린 사미는 3년을 넘기면서 크게 실망하여 “큰스님, 왜 저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하고 항의했다. 그러자 선사가 “너는 3년 동안 물 긷고 나무 하고 도량 청소를 하지 않았느냐. 그게 나의 가르침이다”고 깨우침을 주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도란 밥 먹고 바리때 씻는 곳에 있는 것이지 특별한 데 있지 않는 법이다. 정진을 하다 보면 도가 익는 것이야. 그러니 도를 굳이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날 일타가 아침공양을 하고 난 뒤 바로 내원토굴로 올라갔을 때 금오가 들려준 다음의 설법도 일타에게는 큰 울림으로 가슴에 각인되었다.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도둑질을 하여 먹고 사는 도둑이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아들이 자라 15, 6세가 되면서부터 자신이 도둑질을 할 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자연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 뒤에 붙어서 망이나 보고 도망치는 일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들키지 않고 도둑질하는 비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래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제가 밥벌이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야 도둑질을 배울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들이 비로소 도둑질 할 마음이 있고, 도둑으로서 자질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도둑질을 집중하면서도 들키기지 않으려고 대비하는 깨어 있는 마음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대문의 빗장을 비틀어 열지 않고 담 구멍을 뚫고 창고로 갔다. 창고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을 만큼 큰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과연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금은보화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면서 상자뚜껑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상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뚜껑을 닫고는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그런 뒤 창고를 나가서는 뚫었던 담 구멍을 가시나무로 막았다. 아버지의 행동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갑자기 부자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쳤다.
이윽고 부잣집 식구들이 등불을 켜고 모두 일어나 도둑을 잡으러 돌아다녔다.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와 상자를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부잣집 식구들은 자물쇠가 채워진 상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들은 붙잡히지 않고 도망치기 위해 꾀를 냈다. 부자가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쥐가 나무를 쏘는 소리를 냈다가 멈췄다. 부자는 쥐가 그러는 줄 알고 건성으로 상자를 보더니 창고를 나갔다. 그때 도둑의 아들은 또 쥐가 나무를 쏘는 소리를 냈다. 몇 번을 반복해서 그러자 부자는 짜증을 내면서 상자 뚜껑을 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들은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뒤 부자가 들고 있는 등불을 끄고는 아버지와 함께 뚫었던 담 구멍을 찾아 뛰었다. 부자는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으므로 ‘도둑이야!’ 하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당했다.
그런데 담 구멍은 이미 가시나무로 막아져 있었다. 아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니 오줌통이 하나 보였다. 아들은 냄새나는 오줌통의 오줌을 쏟아버린 뒤, 그것을 머리에 쓰고는 쏜살같이 구멍을 빠져나와 달아났다.
“수행이란 사지(死地)에서 참으로 살아나는 법을 궁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갈 곳이 없는 낭떠러지에서도 안심입명처를 찾아내는 것이 참선공부다. 그러니 스승은 아버지 도둑 같아야 하고, 제자는 아들 도둑 같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길인지 알겠습니다.”
“7일기도를 해보니 어떠하든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득력(得力)을 체험했습니다.”
“득력이 쌓여야 사중득활(死中得活)할 수 있는 법이지.”
금오는 먼 산을 바라보며 굵은 염주를 굴렸다. 그러면서 도둑의 얘기를 다시 했다.
“일타수좌가 내원토굴에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 도둑이 되겠으니 일타수좌는 마땅히 아들 도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금오(金烏).
1896년 전남 강진군 병영면 박동리에서 정용보 씨의 차남으로 태어난 금오는 1911년 16세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금강산 마하연 선원으로 가 도암 긍현(道庵 亘玄)을 은사로 출가를 한다. 스님은 출가 이후 10여 년 동안 주로 마하연과 안변 석왕사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1921년에는 남쪽으로 내려와 오대산 월정사, 통도사 보광선원, 천성산 미타암 등에서 안거하며 여러 선지식과 탁마를 했다.
1923년 28세 되던 해는 금오에게 수행자로서 분기점이 된다. 예산 보덕사로 가 만공의 제자 보월(寶月)을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선문답을 한다. 보월이 금오의 견처를 확인하고자 물었다.
“공부한 경계를 내놓아 보시게.”
금오는 합장하고 나서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게송의 형식을 빌려 막힘없이 외웠다.
시방세계 투철하고 나니
없고 없는 게 없는 것 또한 없구나
낱낱이 모두 그러하기에
아무리 뿌리를 찾아봐도 없고 없을 뿐이네
透出十方界
無無無亦無
個個只此爾
覓本亦無無
“오늘부터 내 법제자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스님 회상에서 정진할 자리를 주신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습니다.”
“좋아, 좋아. 우리 만덕사에서 함께 살아보세.”
금오는 보월 회상에서 2년을 보냈다. 그러나 금오는 갑자기 보월이 입적함에 따라 만덕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문을 들은 만공은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가 금오가 자신이 주석하고 있는 정혜사로 오자, 금오가 보월의 법을 이었음을 증명하는 건당식을 열어주고는 자신이 보월을 대신해서 전법게를 내렸다.
덕숭산맥 아래
무늬 없는 도장을 지금 전하노라
보배로운 달은 계수나무 아래 내리고
금까마귀는 하늘 끝까지 날으네.
德崇山脈下
今付無文印
寶月下桂樹
金烏徹天飛
이때가 금오의 나이 30세였다. 보월의 법을 이은 금오는 10여 동안 운수행각에 나섰다. 그러다가 운수행각을 접고 1935년 40세에 김천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이 되어 선객들의 호랑이가 되었다. 금오가 젊은 선객들에게 한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참선하지 않는 자는 중이 아니다.’
‘선리(禪理)가 없다면 불법의 맥이 끊기는 것이다.’
‘선을 반대하는 자는 고기가 물 밖에 나간 격이다.’
‘자유를 찾아가는 길은 오직 선뿐이다.’
실제로 금오가 일타에게 한 말도 그뿐이었다. 일타는 금오에게 참선과 선지식을 찾는 만행의 절실함을 법문 때마다 들었던 것이다.
“나도 수월 도인을 만나기 위해 만주 봉천을 찾아간 적이 있다. 수행자의 일생이란 선지식을 친견하는 일과 선방의 좌복을 지키는 일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수월스님은 어떤 도인이십니까.”
“하루 종일 짚신을 삼아 길을 가는 길손들에게 나누어주는 천진도인이셨지.”
“아무에게라도 짚신을 보시했다는 말입니까.”
“스님의 짚신을 신은 사람은 도둑도 있고, 독립군도 있고, 거지도 있고 부자도 있었다고 그래. 차별 없는 마음이 바로 도인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마음에 시비분별이 한 티끌이라도 남아 있다면 도인되기 어려운 일이지.”
“수월스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참선을 하시게. 조선의 선을 중흥시킨 경허대선사의 제자가 바로 수월스님이라네. 알겠는가.”
금오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전등의 불이 경허에서 만공으로, 만공에서 보월로, 보월에서 자신에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한 법맥이었다.
일타는 문득 다시 발심을 냈다. 이번에는 단식기도를 하고 싶었다.
“큰스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7일기도를 했으면 됐네. 이제부터는 참선을 해보시게.”
“단식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왜 하필 단식기도인가.”
일타는 평소 마음에 품고 있었던 생각을 고백했다.
“큰스님,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이쪽저쪽 사람들이 죽어 구천을 떠도는 고혼이 되고 있습니다. 남의 업장을 제 업장 삼아 대신 참회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래. 천지만물이 한 몸이지. 참회하는 방법으로 단식이 좋아. 내원토굴에서 단식기도를 하게나. 공양간이 딸린 응석사에서는 맛도둑의 유혹이 심할 테니까.”
금오는 일타가 단식기도를 하겠다고 말하자 적극 배려해 주었다. 사실 큰절에서 단식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공양시간마다 경내에 음식냄새가 날 것이고, 불단에 올린 마지만 보아도 맛도둑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었다.
이번에도 기한은 7일로 정했다. 지난번에는 잠도둑을 항복받기 위한 기도였다면, 이번에는 맛도둑의 유혹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한 기도였다.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잠 한 숨 자지 않고 하는 기도가 어려울 수도 있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하는 기도가 어려울 터였다.
어쨌든 일타는 수마를 항복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맛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구나 금오가 가까이서 경책을 해줄 것이기 때문에 7일 단식기도를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곡기는 끊더라도 물은 마시게.”
단식기도 동안 금오가 바리때에 물을 떠다 주었지만 일타는 목에 물 한 방울 축이지 않았다. 밤이 되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고 허리가 접힐 만큼 속이 허했지만 견디어 냈다. 허기가 심할 때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져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천정에 쥐가 지나가고 뱀이 기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단식기도도 6일을 넘어서자 안개가 걷히듯 정신이 맑아졌다. 잠을 자는 동안 꾸는 꿈도 선명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꿈속에서 황금 같은 변을 끝없이 배설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변이었다.
이윽고 변은 응석사부터 10리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일타의 변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의 것까지 대신 보아주는 변이었다. 다른 사람의 업장까지 자신의 것으로 대신 참회한 탓인지도 몰랐다.
일타는 7일 단식기도를 마치고 나서 이상한 꿈 이야기를 금오에게 했다. 그러자 금오는 크게 웃으며 해몽을 했다.
“똥이 십리 계곡을 채운 까닭은 업장이 그만큼 두터웠다는 것일 게야. 어디 일타수좌의 업장만이겠는가. 인연 있는 남의 업장까지 모두 소멸한 것이네. 이번 두 번째 기도도 일타수좌가 중으로 살아가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네.”
금오의 해몽대로라면 응석사의 첫 번째 기도가 일타의 개인적인 것이었다면, 두 번째 내원토굴의 기도는 중생과 한 몸이 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912호 [2007-08-15]
첫댓글 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