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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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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신라(新羅)의 철문관(鐵門關) [11편]
문 무 추천 1 조회 645 22.02.13 13:37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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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2.13 13:44

    첫댓글 [제12편]에서는,
    "북정도호부 경내에 삼한(三韓)과 임(臨)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이를 해설해보고자 합니다.
    이로 보면(기록으로만 이를 바라보면)
    당시의 삼한은,
    오늘날의 "신강성 중서부로부터 대륙 중원 땅을 영토"로 했던 왕조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2.02.13 14:04

    좋은 글 올려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작성자 22.02.13 14:28

    안녕하세요. "김영주"님!
    늘 관심을 갖고, 성원을 주시는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논거가 있는,
    조선사를 찾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 22.02.14 19:21

    잘 읽었습니다.
    문무님의 글을 정독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중임을 감사드리니다.
    우선 지명이 동쪽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중국이 과연 동이만 이동시켰을까요?
    서융 북적 남만 지역을 당나라시대 확장을 하고 지명이동이 되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청말까지 積石山을 지금의 하주 약간 서북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직선거리 240km 떨어진 밑에 표시하고 있습니다.(황하 첫번째 하곡 서쪽)
    이 지역에서 동쪽으로 가면 토곡혼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고증한 문헌 역시 존재합니다.
    잘 생각하시면 지명이동의 모순이 보이실 겁니다.
    또한 임조라는 지명이 농서현 서북부에 있는데 원명이 狄道입니다. 즉 중국의 북쪽 지역에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임조 역시 임조군이 원래 있던 지역(남으로 100km)에서 여기에 상주하다 지명이 남아서 후에 임조가 되었다고 봅니다.

    다시말해 조그마한 중국이 고구려 백제의 영토를 차지하고 모든 지명을 이동시켰으며
    마치 발해 신라가 수복한 것처럼 조작하여 하상주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의 영토라고 조작했다고 봅니다.
    757년을 기점으로 군현의 개혁이 있었으며 원화군현지로 완결하고 이를 두우의 통전으로 세상에 인식시켰다고 봅니다.

  • 22.02.14 19:25

    그래도 시대에 따라 조정에 목숨이 아까워 아부하여 주석을 그들 입맛에 맞게 적은 경우도 있지만
    송 명 청 시대 목숨을 걸고 보이지 않게 진실을 후세에 전달한 분들의 고뇌에 깊은 공경심을 느낍니다.
    이 자료들이 하나씩 쌓여나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봅니다.
    (명나라가 모두 조작했다고 생각했지만 송대의 확실한 자료가 있어 이는 어렵다고 보이며
    청말에 모든 사서를 조작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하다고 보인다는 것이 제 사견입니다.)

    碣石은 오늘도 진장성유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것이 연장성이라 생각하며
    그 곳에 마치 용이 엎드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碣石山은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서쪽에 있는 두 군데를 놓고 자료조사 중입니다.

  • 22.02.14 19:16

    @탐구자 하나 더 첨언하겠습니다.
    상기 저의 주장처럼 원래 요동에 있던 지명을 현재의 보정시쪽으로 당나라가 이동하였다고 봅니다.
    이 곳에 당연히 오늘의 주제였던 철문관이 있다고 봅니다.
    명칭은 다소 다르지만 래원현 동쪽에 鐵嶺關이 있습니다.
    이 곳 근처가 명나라가 현재의 북경쪽으로 지명이전 하기 전 규주 지역입니다.
    또한 철령관 근처에 姜女關까지 지명을 만드는 치밀함까지 있습니다.

  • 22.02.16 20:41

    @탐구자 님글에 모순이 보여 말씀 드립니다.
    역사조작의 본질의 핵심 파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1.명은 역사를 조작하였으나,?
    2.송대의 기록이 명의 역사조작 반박에
    근거제시 가능하다 라는 것?과,
    3.청대의 역사기록은 조작 불가하다?
    4.님이 따로 자료를 추적한다란 것인데,?
    5.4처럼 123 모두의 오류가 있는 한,
    님의 주장에 지나지 않겟지요.
    6.서양의 역사도 조작 되었다고,
    주장하는 분의 유럽인이 있었으며,
    7.짱게 중국의 중국역사학전공 학원강사가 중국은 역사가 있긴 한가라고,유튜브같은 매체에서 말했다가,현재 근황이 궁금해 지구요.
    8.님의 관점이 종교적(자칭도인 증산계)으로 치우쳐서 해석하고 있다면,
    심히 역사왜곡의 짱게와 왜구와 별다르지 않구요.
    9.김종윤 선생님 강의https://youtu.be/Fd61w-lQWIQ
    손문에 의한 역사 조작,
    중국 25사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10.핵심 9를 전혀 이해 못하면,
    님이 어떠한 글을 올려도 퇴보된
    "님과 다른 누군가에 목적에 의한" 대륙조선사카페를
    우롱하는 것이 되겟지요.
    11.현재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역사도 찬양일색으로 왜곡되어 있는것
    또한 현재 진행중인 한국의 역사왜곡이지요.

  • 22.02.17 11:48

    @노다가세 1.한서지리지에 동북 幽州의 진산은 의무려산이요 내천은 河와 泲이고
    현토군 고구려현에는 요산에서 요수가 발원하며
    요동군에는 무려현이 있고 응소가 말하길 무려는 의무려라 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서쪽은 요주 요산에서 요수가 발원하고
    반대편은 요동군 의무려의 제수가 나오다는 말입니다.

    제수는 태행산맥에서 발원하여 高邑과 柏鄕을 걸쳐 영진현 寧晉泊으로 흘려가는 강물입니다.
    다시말해 산서성 요주 요산 반대편에 있는 강물이며
    요산과 의무려산은 같은 태행산맥에 연이어 있는 산이라는 말입니다.
    여기가 의무려산이고 오늘날 의무려산은 요령성 광령에 있습니다.
    그럼 누가 그 멀리 옮겼을까요?
    1번 답변입니다.(이건 정사에 의한 답변이며 저는 다른 장소를 검토중임을 밝힙니다.)

  • 22.02.17 12:02

    @탐구자 2.宋대 六經圖의 十五國風地理之圖로 답변을 하려다
    위의 글이 의무려산으로 답변했기에 동일한 맥락이라
    元대에 만들어진 十五國風地理之圖拓片으로 설명하겠습니다.
    拓片 내용중에 東海今鎭東省이라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에게 진동대장군이라는 봉작을 준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拓片에 장성 위로 의무려산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장성의 동단이 산해관이거나 당시 인지하던 연남장성이라고 해도
    진동성은 장성 안쪽이며 중국 동해안에 고려가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강태공의 고향이 東海上人이며 오늘날 하남성 輝현 사람입니다.
    넓게는 동해는 태행산맥 우측의 넓은 지역이고 좁게는 청주와 창주지역입니다.
    또한 고조우의 독사방여기요에 河南 > 彰德府 > 林縣 > 常山護衛가 있습니다.
    북악 항산을 지키는 군대가 왜 여기 하남성 안양시 임현 즉 임기현에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의 기록이 아닙니다. 중국의 기록이니 그들이 답변해야겠지요.
    2번의 답변은 가능하다고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 22.02.17 11:49

    @탐구자 3. 3번부터 마지막은 같은 내용의 중복이라 함께 쓰겠습니다.
    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라는 명제를 해결하려면 선결과제인
    우리가 어떻게 조선말에 한반도로 들어왔다를 증명하여야 합니다.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하나의 가설일뿐 많은 이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우적도, 대명일통지 등 많은 문헌과 유물 그리고
    조선 역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여지승람의 동람도 등 많은 기록을
    청말에 모두 조작했다는 요지가 대륙조선사 주장입니다.
    대륙조선사를 부정하는 기록이 헤아릴 수 없게 많기에 여기서 줄입니다.
    먼저 선행조건인 조선말(청말) 어떻게 한반도에 왔으며
    모든 조선인이 올 수 없다면 남은 그들은 왜 아무 기록도 안남겼으며
    중국의 90%정도는 조선인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어디로 어떻게 되었는지
    이를 증명해야 저와 같은 많은 이들이 동참하겠지요?
    저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 작성자 22.02.14 19:23

    안녕하세요. "탐구자"님!
    관심과 성원, 감사합니다.
    '동이'의 지명을 옮겼다는 것은,
    그것과 함께 주변에 있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함게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집니다.
    종족과 부족, 이민족, 하천, 산의 이름, 특이지형의 이름등등 모두가 함께 말입니다.
    갈석(渴石)과 갈석(碣石)은 같은 곳을 말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일까?
    용만(龍灣)은, 대만(大灣)과 용퇴(龍堆)의 줄인 말인가? 등등 중요지명의 이동과 그 지리적 위치 및 특이지세는,
    지명의 원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보아지는데, 그 단초를 찾는 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조선사에서는 철문관은 철령 주변에도 있다고 하며,
    안변도호부에도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명(明)은 조선의 제후였는가?
    조선의 이름을 차용한 왕조였는가? 등등
    의문점이 수없이 많습니다. 명(明)이라는 나라의 왕들을 보면,
    조선왕조의 것들을 차용, 분리시켜 만들어 놓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에서, 우리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리며, 감사드립니다.

  • 22.02.18 11:54

    어제 댓글을 쓰다 글이 지워졌고 중요한 자료를 공개한 김에 제 사견을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위에 써진 댓글은 우리역사를 전환시킬 수 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문무님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대륙조선사를 주장하는 많은 분들의 글에는 허점이 너무 많아
    반박시 답변이 곤란한 경우의 글들이 난무합니다.
    허나 문무님의 글은 사서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모습이 인상에 남아
    간혹 중요한 정보를 노출시켰습니다.
    오늘은 제가 대륙조선사에 관심을 가진 이유와 부탁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병인양요 때 수탈된 자료라고 생각되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자료 중에
    17세기 조선이 요령성 요양에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이 요양에 있을 경우 임진왜란시 서쪽 몽진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또한 서쪽 어디인가 평양일 것이고 압록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문무님이 쓰신 글의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됩니다.

  • 22.02.18 09:51

    @탐구자 또한 연경의 이동이 있어야만 한다고 느껴집니다.
    역사의 문외한이 아직 고구려 이전 옛지명 복원도 역량부족이라 부탁드립니다.
    사견으로 현 하북성 정주시 서북으로 연경에 대한 지명이 다수 남아 있어 이를 고찰하시어
    왜 우리영역이 축소되었는지 이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병자호란시 영역이 축소되었거나 일제에 의해 축소되었거나 등의 심도있는
    연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22.02.18 15:06

    안녕하세요. "탐구자"님!
    옛 조선왕조의 땅이, "반도였는가" 또는 "중원대륙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주무대를 말하는 것이고,
    반도 땅 역시 조선의 것이었고, 중원대륙 또한 조선의 것이었다는 이야깁니다.
    여기서 "반도" 땅이 옛 조선의 땅(주무대)이었는가? 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고대의 수많은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었다고 한다면, 그에 따르는 유물유적이나 그 흔적은 반도 땅에 곳곳에 존재해야 하고,
    특히 도성과 궁궐과 그외 수많은 축조된 성곽들이 즐비해야 합니다. 또 더불어 "왕릉"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칩니다.
    그 외 왕족과 제후, 대신과 장군등의 무덤등과 연결되면 한반도 땅은 국토개발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90년대 까지의 국토개발 과정을 들여다보면, 관심을 끈다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유물유적들은 단 하나의 것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일제패망이후,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그 교육과정을 100%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특히 역사교육은 아예 일제의 것을 그대로 갖다가 복사하여 의무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주입시켰습니다.

  • 작성자 22.02.18 15:40

    일제군국주의자 즉 제국주의자들은 지들 민족을 우월하다며 "천손민족"이라고 주입하고,
    조선족은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2등민족"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옛 조선왕조를 그대로 재현하여
    역사교육을 시켜겠습니까? 이 건 하나만 봐도 조선의 역사는 태반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정말로 조선왕조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무엇때문에, 왜, 옛 조선의 영토흔적이 사서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오늘날의 동구라파로부터 중앙아세아까지에 걸쳐 흔적과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요?
    특히 명나라 때의 본기나 마문승, 또 해국도지 저자는 분명 중국인이라고 했지만 그 곳에 들어있는 기록내용은,
    조선은 반도가 아닌 대륙을 터전으로 하는 옛 왕조였다는 것이며, 삼한이나 동이의 터전은 반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구이 중 "람이(藍夷)"는 "람씨(藍氏)"입니다. 이러한 "람씨는 중잉아세아" 땅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가들은 이를 두고 소무9성중의 하나라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이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이죠.
    마한의 월지국을 사가들은 "目"자의 오류라고 하면서 천안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목지국이라는 해괴망측한 역사해설을 합니다.

  • 작성자 22.02.18 15:27

    댓글이 길어집니다만,
    중원대륙의 조선이 어떻게 망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겠지요.
    이걸 해결하면, 옛 조선왕조의 역사이야기는 그대로 끝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걸 밝혀낸다면,
    더 이상의 역사왜곡이 조작은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밝힐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옛 조선의 많은 분들이 반도에서 살고 있고, 그 후예들이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주를 했던, 본시부터 살아왔던 간에, 선대는 옛 조선이었고,후예들이라는 점은 변함없습니다.
    여기서 이주문제는, 중요한 사대부가들이 대거 이주를 했다는 것은, 그 명문가들이 반도에 있기 때문이며, 어떻게, 선발하여, 어떤 방법으로이주를 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연구대상입니다. 만약 중원대륙에서 이주를 하지 않았는데도, 반도 땅에 명문가 본가들이
    존재한다면 이건 가짜, 조작된 명문가일 겁니다. 그렇치 않겠습니까?
    해방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이 땅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도 그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당사자들이 숨기고, 정권에서 숨겼기 때문이죠.

  • 작성자 22.02.18 15:38

    하물며, 옛 조선왕조와 관계되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만천하에 공개할까요?
    결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서구열강'과 '일제'와 '서남아세아'의 여러나라들이 모두 깊숙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선사 연구는, 한반도로의 이주문제, 옛 조선왕조의 해체과정등이 중점적으로 연구대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교 하죠.
    백인, 천인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듯이, 역사연구과정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반도조선이나 중원대륙 조선등 연구하는 분들마다 다소의 다툼은 필연입니다.
    모두가 '조선을 위한다'는 뜻이나 목표는 같습니다.
    의문점을 끝까지 캐보는 끈기와 용기가 필요하도 봅니다.
    앞으로의 게재글을 보시면 왜 "옛 조선은 왜 중원대륙에 있어야만 하는가!" 에 대한 논거들이 나올 것입니다.
    게재 글로 많은 의문들을 대신하겠습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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