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저녁에 예정된 술자리가 파토나고나니 정해놓은 소실도 없는 주변머리에 마땅히 하릴이 없다.</P>
<P>빈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문득 김경선 소프라노가 '내마노'에 쳐놓은 번개가 번개처럼 떠오른다.</P>
<P>집구석에 간들 토끼같은 새끼가 있나,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나(있긴 하지만 야시와는 거리가...)?</P>
<P>애라이~,</P>
<P>번개치는 데 가서 소나기 구경이나 하자고 오랫만에 대구-경주 고속도로를 탔다. </P>
<P>몇년 전만 하여도 출장이다 골프다 하여 이 길을 부단히도 달렸건만?</P>
<P> </P>
<P>시간 여유가 있어서 뱃속을 채우려고 요석궁 부근으로 갔다.</P>
<P>원효대사가 파계하고 요석공주를 탐하려고 뛰어내렸다는 월정교 보수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P>
<P>휘황한 조명속에 멋떨러진 모습을 보이고, </P>
<P>최씨 밥상이라는 교동 한옥 식당에 들러 맛대가리 없는 밥상을 만 삼천원이나 주고 삼켰다.</P>
<P>안내판에는 다르게 적혀있으나, 서울대 국문과를 나온 다소 음탕한 고등학교 고문 선생님이 가르쳐준 </P>
<P>서라벌 저잣거리를 해메며 궁시렁거리던 원효행자의 글귀가 생각난다.</P>
<P> </P>
<P>我有撑天柱 하니 誰借沒柯斧 인가?</P>
<P>'하늘을 떠받힐만한 기둥을 갖고 있으니</P>
<P>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겠는가?'</P>
<P> </P>
<P>아무도 모르는 이 말을 이해한 무열왕이 마침 과수가 된 요석공주를 은밀하게 주선하여</P>
<P>해동공자 설총을 태어나게 한 비화(卑話)이다.</P>
<P> </P>
<P>"정 사장님, 어딥니까?"</P>
<P>황덕식 선생님께서 한 시간 전에 드린 전화에 빨리도 답을 하셨다.</P>
<P>'대릉원' 고분군을 돌아 불밝힌 첨성대를 따라가니 왼쪽에 '마리오 델 모나코'란 커다란 간판에</P>
<P>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부에는 정장을 한 오페라 가수의 초상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P>
<P>이리 저리 구면들과 너스레를 떨며 수인사를 나누고 김원장 맞은 자리에 앉았다.</P>
<P>"정 사장님, 오신 김에 노래 한 곡 하이소, 좀 낮은 거로.."</P>
<P>인사치레인지는 모르나 번개를 친 김경선씨가 권한다. 나의 공력을 이미 아는지라 '좀 낮은 거'라는 토를 단다.</P>
<P>옆에 앉은 부용 최정란씨에게 프로그램을 빌려서 살펴보니 채사무엘이란 분이 '내 맘의 강물'과 또 한 곡을 부르기로 했는 데,</P>
<P>유고로 불참이란 말을 듣고 안내서에 기재된 '내 맘의 강물'을 그냥 부르겠다고 했다.</P>
<P>김원장이 같잖다는 표정이나 '간 큰 놈이 널장사한다.' 는 평소 신조(?)에 따라</P>
<P>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Bb 최고 난이도 가곡을 연습도 없이 냉큼 집어삼켰다.</P>
<P>다른 사람들 연주 중에 '아,아~' 속으로 목청을 점검하니 </P>
<P>어제 새벽 두시까지 마신 술독에 성대가 경주터널 바닥보다도 더 뻣뻣하다.</P>
<P>포기하고 가사를 읊조리니 둘째 줄이 통 기억이 안 난다.</P>
<P>안 재호 교수님께 악보 갖고 있나 물어서 차에 둔 가곡집을 갖고 왔다.</P>
<P>이 노래 불러 본 지도 일 년은 좋게 넘은 듯 한데..? </P>
<P>'내가 언제 준비하고 연주한 적이 있나?'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순서를 기다렸다.</P>
<P>그래도 요즈음 Chegerida 의 High C 를 무난히 발성(노래는 모름, 오로지 스빼 에~~~ 만)하는 처지라 </P>
<P>자신을 밑기로 했다.</P>
<P>대구 박범철 테너 문하에 최고 수준의 태생적(胎生的) 음치라는 간단한 자기 소개로 </P>
<P>박교수님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초를 치고 연주를 했다.</P>
<P>연주 결과야 하늘도 알만하다.</P>
<P>진행하는 이마에 테너가 테너는 곧 죽어도 원 키로 끝까지 간다는 멘트와 </P>
<P>김 이수, 안 재호씨가 확실한 테너라는 진지한 평에 씁슬한 입맛을 다시 한 번 다시고,</P>
<P> </P>
<P>"이만한 천둥 번개에 살아남은 것이 어디냐?' 며 </P>
<P>겁 없는 강아지는 어두운 찻길에 보일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귀가를 재촉했다.</P>
<P> </P>
<!-- -->
첫댓글 장마에 맞은 번개 인줄 알았답니다~~ ㅎㅎ
제대로 번개 맞은 강아지얘기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ㅎㅎㅎㅎ 정말재미난얘길 달필로엮어내시니 입가에미소가저절로나네요 ㅎㅎ지족님의강단과열성적인노래에경의를표합니다 그래도늘생각나곤하던지족님 마리오델모나코에도착하자마자 이번번개에대구의정사장님을모시야 제격인데 불렀능교. 하고돌아보는데 호랑이도제말하면온다고 어~~어!!! 정사장님 !?!?와~~ 호랑이임니꺼 !?!?반가워서말했다. 정말반가운얼굴이었다. 나에겐반가운얼굴들이곳곳에있다 그중에한분이지족님이다 사실우리는나이차도많고 모든것이차이가나고감히함께하기엔힘들지도모른다 글치만 노래를좋아하고감동을함께나눌수있다는그것하나 로난그분을좋아한다 오래토록함께하고싶다감동을함께하는이들과 ~~~~^^
어여, 이수님 다 조은데 뭐라꼬, 나이 차가 많다고?
그라모 이수님은 20대가 30대가?
킬킬~,
원장님 없으마 어디 놀러 다니겠습니까?
경선씨가 우에 이리도 이뻐비노???!!!!@
ㅋㅋㅋ 아이쿠 미안씀데이 ~~~^^실수햇니더 반갑다는얘길허다보이 ㅋㅋ 진짜내는반가웟는디요.
청도꽃자리음악회가입시더. 날짜도좋네요 토요일저녁이지요 ?ㅎㅎㅎ
그날.. 덜컥 노래 부르겠다는 지족의 용기에 걱정이 조금되었는데... 아 ! 훌륭하게 불렀어요.. 그만하면 충분해요.. 그런데 릴력이 대단합니다 그려..!! 미처 몰라바 미안합니다.
지족님 재미난 번개팅 잘 읽었어요.
서울 내마노 행사,마산 가곡 부르기,대구 하이마트,
대구 박범철 가곡아카데미에서,제일 많이 접한 정용철 사장님!
자주 보입시더!
^=^...지족님께서는 아주 멋진 분이신 것 같네요...^^
채사무엘님과 만날 기회가 있을 낍니더.
괜히 지족님이 아니예요...
그날 제옆에 앉아서 스케치식 글 남긴다고 이미 한장을 초안 잡아서 썼는데
옆에서 보니 대단한 글솜씨.....번개 음악회에 온 용기도 모두 .... 높은 경지에 올라있어요...
ㅎㅎㅎ털털하고화기애애한분위기를잘만드시는지족님 ~~~^^어딜가시나 열정적인노래로주인공이되시고 또달필로희자되시니 우리가곡모임의보배로세 ~~ㅎㅎㅎ
지인께서 어디에 지족님의 재미난 글이 실렸다고는 하는데, 오늘 찾았습니다.
지족님의 참석기록이 있어서 비로소 이번 번개에 생명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나날이 편안해지는 연주가 매번 진화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