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최북단의 임자도는 제법 큰 섬이다.
제주도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모든 섬 중 25번째로 크다
임자도의 임자(荏子)는 들깨를 의미한다.
야생 들깨가 자라던 모래 사막에 500만 송이의 튤립이 피었다.
2008년 시작한 ‘튤립축제’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임자도는 다도해 신안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바다 건너 지도읍,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해 있다.
남으로는 바다 건너 자은면과 북으로는 바다 건너 영광군 낙월면과 이웃하고 있다.
임자도는 전체 면적의 30% 가량이 네덜란드처럼 해수면 아래에 있었다.
조선말부터 140년 가까운 세월 동안에 섬 주민들이 둑을 쌓아 섬으로 만들었다.
임자대교는 사업비 1766억원을 투입해 2021년 완공됐다.
신안의 12번째 다리이며, 천사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여객선으로 30분 이상 소요됐지만 임자대교가 개통되면서 차량으로 3분이면 이동이 가능해졌다.
임자도 선착장에는 예닐곱 척의 고깃배가 정박해 있었다.
튤립 모양으로 지어진 화장실이 눈길을 끌었다.
임자도의 관문인 진리에서 대광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제법 큰 염전이 있다.
해방 직후에 만들어졌다는 서울염전이다
바람의 세기나 일조량 등이 알맞아 명품 천일염이 생산된다고 한다.
튤립 축제장으로 이동하는데 네 개의 풍차가 보였다
상당히 돈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이는데 퍽 운치있었다.
임자도를 ‘한국판 네덜란드’라고 칭하는데....임자도만의 멋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신안튤립축제는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인근에 조성된 튤립공원에서 열린다.
12만㎡ 규모의 공원에 색깔과 모양이 다른 500만 송의 튤립을 심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4월이면 모래섬 임자도가 화려한 색상의 꽃섬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튤립은 관리가 까다로운 식물이다.
심어두면 매년 꽃이 피는 야생화와는 다르다.
빠른 번식과 좋은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손이 간다.
4월에 보여 주는 꽃밭의 화려함은 일 년 내내 계속되는 많은 이들의 노고 덕분이다.
대광해수욕장을 나와 섬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전장포로 이동했다.
전장포는 어선 대여섯 척이 정박해 있는 자그마한 포구다
전장포는 가을이면 새우잡이 어선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전장포의 항구식당에서 이름조차 생소한 '깡다리탕'을 먹었다.
식당 앞에서 할머니들이 깡다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농어목 민어과 어종인 '깡다리'는 강달어의 신안군 방언이다.
젓갈로도 그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지만 조림이나 탕을 하면 일품이다.
식당 사장 왈 '깡다리는 조기의 사촌'이라 하는데...맛은 담백하고 구수하였다.
할머니가 깡다리의 내장을 부어주니 갈매기들이 떼로 날아왔다.
할머니께서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였다. ㅎㅎ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
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우리나라 사랑 보았네
재원도 부남도 지나 낙월도 흐르면서
한 오천 년 떠밀려 이 바다에 쫓기운
자그맣고 슬픈 우리나라 사랑들 보았네.................................곽재구 <전장포 아리랑> 부분
대광해수욕장 입구에는 거대한 민어 조형물이 서 있었다.
임자도 민어는 신안에서 최고로 꼽는다.
6월 말에서 8월 사이에 많이 난다.
대광해수욕장은 12km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백사장이 넓은 곳이다.
1990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해변으로 여러가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쉬지 않고 걸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해변이다.
왕복 하프마라톤 코스에 가깝다.
실제로 이곳에선 해마다 7월 해변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이 다 빠지면 모래밭 폭이 200m를 넘는데, 절반쯤은 물 반 모래 반의 부드러운 수렁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차라리, 해변에 앉아
모래알의 숫자를 헤아리는 게 더 쉽겠다
많은 모래가 모여야 백사장이 되지만
내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된다............................................................................윤보영 <모래와 바다> 전문
대광해수욕장 앞바다에 작은 섬 대태이도가 있다.
섬의 형태가 큰 귀처럼 생겼다 하여 대태이도라 부른다.
이곳이 수백 년 동안 '타리파시'로 유명했던 중심 무대이다.
일본의 나이든 어부들은 전라도와 목포는 몰라도 타리섬은 알 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대태이도는 주로 타리섬이라고 더 알려져 있다.
임자도에는 항구가 3개 있다.
바로 전장포항과 하우리항, 하우리 건너편의 재원도항이다.
자칫 스쳐 지나갈 수 있는데 도로변에 큼지막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하우리항은 과거에 전국 제일의 민어 파시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다.
길게 이어진 물양장만이 제법 넓은 부두에 고깃배는 몇 척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한때 파시였던 곳임을 드러낼 뿐 별다른 것은 찾을 수가 없다
임자도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다.
‘육섬’이라 불리는 여섯 개의 섬을 간척해 하나의 섬으로 만들었다.
삽과 지게만 가지고 섬과 섬을 잇고 제방을 쌓아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임자도는 24개의 섬을 방조제를 통해 하나의 섬으로 연육되어, ‘한국판 네덜란드’라고 불린다.
이흑암리는 임자도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둔산 아래 여섯 군데에 마을이 터를 잡고 있다고 '육암', '육바구'로도 불린다.
이흑암리는 조선후기 문인화가 조희룡이 유배 와서 3년 남짓 머물던 곳이다.
조희룡이 즐겨 그렸다는 매화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룬 문인화의 대가다.
1847년 벽오시사를 결성해 문인화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1851년 논쟁에 휘말려 임자도로 유배되어 이흑암리에서 3년간 머물렀다.
그는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집필과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조희룡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매화 그림을 선물했다.
시나브로 집집마다 그의 그림이 한 점씩 걸렸다.
매화는 청빈을 지키고 불의에 저항하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흑암리에 조희룡이 살았다는 만구음관(萬鷗唫館)이 복원돼 있다
'만구음관'이란 '일만 마리의 갈매기가 울부짖는 집'이란 뜻이다.
우리가 오는 걸 본 관리인 할머니께서 힘들게 올라오셔서 안내해 주셨다.
마을 앞에 조희룡 적거지 표지석과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은동해수욕장과 어머리해변, 용난굴로 가는 길은 너무 협소해서 되돌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지도(智島)에 들러 한 바퀴 돌았다.
지도읍은 연륙교로 육지와 연결돼 섬 아닌 섬이다.
지도는 신안의 유일한 읍지역이며, 지도읍 관할구역으로 7개의 작은 섬이 있다.
지도향교, 일심사, 송도항, 거북섬 데크길, 일엽정을 거쳐 목포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