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찾기503호]
배금자변호사의 수행일기
내 속에 참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4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1996년 1월 나는 변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무렵 나는 동료 변호사의 소개로 대행스님을 친견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비로소 ‘참나’의 존재, 내 몸과 현재 의식은
‘가짜 나’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것을 참나에게 놓는 관법을 통해
내게 닥친 일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내 육신이 나인줄 알고, 보이는 현상계만 전부인줄
알고 살던 내가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깨닫고,
내 안의 참나를 찾는 진실된 불법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국생활 3년 동안 우리 가족은 한마음선원 워싱턴지원에 다니면서
마음공부에 매진하여 정신적인 생활의 틀을 다졌다. 내가 하바드
로스쿨을 다니느라 보스톤에서 생활하고, 남편은 워싱턴에서 파견
근무를 하면서 아들을 돌보며 있는 동안, IMF위기가 터졌다.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마음 공부로 극복했다. 우리는 정신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생활했기 때문에, 물건 사는데 관심이 없었고 골프도
안쳤다. 오직 일요일에 절에 열심히 다녔다.
또한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에도, 미워하지
않고, 내탓이려니 하며 극복하였는데, 이는 마음공부 덕분이었다.
내게 닥친 모든 경계를 나를 단련시키려는 참나의 가르침으로 알고,
모든 것을 참나에게 맡기고 의연하게 견뎌냈다.
마음공부에 열심히 정진하기 시작한 후부터, 참나가 나를 이끌고
간다는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땅 깊숙히 박힌 쓰레기를 파내며
청소를 하는 꿈을 꾸곤 했다. 쓰레기를 줍는 꿈이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화장터의 간수가 되어, 시체를 아궁이에 집어넣어 태우는 꿈을
꾸었다.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業)를 청소하는 작업을 참나가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번은 방송국의 카메라 맨이 높은 언덕에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카메라 맨이 하는 말이 촬영한
테잎은 다음에 방송으로 내 보낸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 그 모든 것은 어김없이 우주에 기록되어, 운명을
만들고, 나는 그 결과를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받는다는 인과의 법칙을
참나가 보여 주었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꿈과 현실이 둘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했다.
마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과의 무서움과 윤회의 철칙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생각 하나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안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참나에게 돌리고 좋은 생각을
나게 하는 작업을 되풀이하였다. 마음 공부의 정진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나쁜 ‘습’을 하나씩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정말로 ‘습’이란
내가 전생에 수 없는 윤회를 거듭하면서 갖고 나온 것이어서,
뿌리가 깊고 질기기가 삼줄과 같아서, 좀처럼 뿌리채 뽑아버리기
힘든 ‘업력’의 작용이 있는 것 같았다.
하바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동국대에서 교환교수로 하바드
신학대에 오신 현각스님을 만났다. 나는 학교공부에 너무 바빠
절에 갈 시간이 없어서, 혼자서 아침마다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읽고, 참선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에 현각스님이
보스톤에 오신 것은 나로서는 참나가 인도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다. 불교이론에 관한 의증이 생길 때 현각
스님께 여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부하느라 무척 바빴지만
서양세계에 불교를 널리 전파한 달라이라마가 보스톤에 왔을 때,
현각스님과 함께 그 법회에 참석했다.
이 법회에는 미국 지식층 백인들 약 7천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룬 것을 보고, 미국의 지식층 사이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나는 공양준비와 부엌설겆이, 화장실 청소 등을 열심히
하였는데, 이러한 일들은 나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즉 하심하는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3월 귀국 후, 나는 시간의 개념에 있어서 참나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3년 가까이 보낸 미국 유학생활이 내겐 무척
긴 기간이라고 느꼈다. 사실 나는 변호사업을 재개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걱정을 은근히 했다. 실제 동료 변호사 한 명도
미국에서 3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고객이 없어서
고전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참나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그런 걱정은 곧 사라졌다.
내가 아직 업무재개 광고도 내지 않고, 인사장도 보내지 못하고
업무재개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나를 아는 많은 고객들이 상담을
오고 사건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의 고객들이 느끼는 시간 개념은 3개월 정도 잠깐 비운
것으로 밖에 인식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참나가 배출하는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진심으로 회향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감사하였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여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원을 더 빨리 높여주기 위해 마음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때로는
경계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신심이 조금만 약해
지거나 절실한 관(참선)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경계에 휘둘려
중도 포기하거나 한참 미끄러지는 것을 체험했다. 지금은 경계에
약간 빨려 들어가긴 하지만, 재빨리 알아채고는 참나에게 맡기고
놓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아상을 죽이고 하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지, 나에겐
아상을 철저히 죽이기 위한 경계가 많이 찾아온다. 그때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나는 없다”라는 생각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우리 가족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절에 나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내 속의 참나가 나를 정말로 잘 이끌고 있고,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 생각하거나 마음이 해이해지면, 나를 준엄
하게 꾸짖고 혼을 내는 것을 체험한다.
참나에게 철저하게 맡기는 생활을 한 후로, 나는 걱정이나 불안
같은 것이 없다. 참나는 사량심으로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것까지
다 알아서 완벽하게 해결할 것임을 나는 철저히 믿으므로. 나는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도 마음이 풍족하다. 참나는 내가 꼭
필요한 돈이라면 줄 것이므로, 나는 내 수중에 돈이 들어와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나는 이것을 잘 보관하여 써야 할
곳에 잘 써야 하는 관리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무주상 보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철저히
알게 되었다. 나라는 이 몸뚱아리와 현재의식은 철저히 참나의
심부름꾼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눈만 뜨면 보이는
이 현상계에서의 삶도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일 인식하면서,
하루 하루를 정진의 연속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부처님께서
열반 직전에 하신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가르침이 언제나
나를 채찍질한다.
내 남편도 우리 아들도 불법에 귀의하여 참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던져버리고, 성냄도 벗어두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라는 나옹선사 게송을 좋아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미국에
가기 전에 여주 신륵사에서 보았다. 그 당시는 그 진미를 잘 몰랐는데,
마음공부가 익어 가면서 진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배금자 변호사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첫댓글 2014.11.15
감사함니다...
삼귀의(三歸依)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양족: 복덕과 지혜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欲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_()()()_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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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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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를 돌아보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_()_
좋은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안의 불성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