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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한국신화의 수수께끼 ?
주몽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역동성
이태희
고구려 벽화가 뿜어내는 활기찬 기상만큼이나 고구려 건국 신화 또한 매우 다채롭고 화려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의 건국신화가 다른 지역의 신화에 비해 다소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다른 지역 신화 특히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가 풍부한 상상력과 인간적 드라마를 보여주는 데 반해 우리 건국신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 신화에 대한 충분한 탐독이 부족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다양한 민간신화나 무속신화로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건국신화에서도 다채로운 모습과 화려한 기상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고구려 건국신화인 주몽신화가 그러하다. 주몽신화가 우리의 어느 신화보다 다채롭고 화려한 위용을 뽐내는 데에는 <동명왕편>이라는 걸출한 건국서사시를 전해준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역할이 자못 크다. 이번 회에서는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역동적인 드라마에 얽힌 수수께끼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1. 해모수와 하백의 변신 대결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그 첫 번째 수수께끼는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 즉 변신술의 숨은 의미 찾기이다. 해모수는 웅심연에 내려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난 후 하백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이에 해모수는 정식으로 혼인을 청하고, 하백의 궁전에서 변신술 대결을 펼친다. 하백이 해모수더러 과연 체제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이함이 있는가 묻고는 스스로 잉어로 변하자, 해모수는 수달이 되어 이를 잡았다. 하백이 다시 사슴이 되어 달아나자 해모수는 승냥이가 되어 이를 쫓았다. 하백이 꿩으로 변하자 해모수는 매가 되어 꿩을 잡았다. 이에 하백은 해모수를 참으로 천제의 아들이라 여기고 자신의 딸 유화와 혼례를 치르게 한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 볼 요소는 해모수와 하백의 신격이다. 해모수와 하백은 어떤 신인가? 하백河伯의 경우 그 이름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강의 신이요, 물의 신이다. 또한 하백의 궁전은 용궁으로 알려져 있다. 해모수의 경우 천제의 아들로 그려지므로 당연히 천신天神이다.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로 아침에는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고 저녁에는 하늘 궁전으로 돌아가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천왕랑이라 했다. 한 언어학자는 해모수解慕漱라는 이름의 한자가 뜻을 옮긴 훈차가 아니라, 음을 옮긴 음차라고 보았다. 즉, 해모수라는 명칭은 ‘해의 맏이 수컷’이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모수는 천신 중에서 태양신의 신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신화의 태양신인 헬리오스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두 태양신은 모두 ‘탈 것’들을 지니고 있는데, 해모수가 오룡거, 즉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닌다면, 헬리오스는 태양마차, 즉 말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태양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상상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므로 해모수와 하백의 변신 대결은 천신과 수신, 태양신과 강신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 그리고 혼인에 대한 비교되는 태도에서 혼인습속의 차이를 읽어 내기도 한다. 서대석 교수는 그의 『한국신화의 연구』에서 해모수족의 결혼습속이 하백족과는 거리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해모수가 우연히 만난 유화를 유인하여 술을 먹이고 취한 틈에 사통한 것은 원시시대 자유혼이나 약탈혼의 습속을 보여주는 것이며, 절차를 중시하는 하백족의 경우 중매혼의 습속을 지녔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가하면 변신 대결은 그 결과로 해모수의 신성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능력 검증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변신 대결을 통한 우월성 인정의 다른 사례로 김수로왕과 석탈해의 대결을 들 수 있다. 석탈해가 김수로왕에게 왕위를 요구하며, 매와 참새로 변하였는데, 김수로왕이 독수리와 새매로 변하자, 석탈해가 승복하고 물러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은 장차 장인이 될 하백이 사위가 될 해모수와 겨루는 대결이라는 점에서 보면, 장인의 사위 고르기 이야기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 대결에서 드러나는 변신 동물의 성격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읽어내기도 한다. 즉, 수달-승냥이-매로 대변되는 해모수족은 ‘자연의 세계에서 동물과 경쟁하면서 사는 원시 수렵인의 성격’을 보여준다면, 잉어-사슴-꿩으로 대변되는 하백족은 ‘자연 재해를 막고 자연을 이용하는 한 단계 수준 높은 문화’를 가졌던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문화적으로 해모수와 하백 모두 수렵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하백의 딸들이 각각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세 딸의 이름이 각각 버들꽃, 원추리꽃, 갈대꽃으로 식물명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하백족의 문화적 성격은 오히려 농경문화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은 일면적으로는 천신과 수신의 대결이며, 문화가 다른 두 종족간의 결합을 의미하고, 다른 일면으로는 장인의 사위 가격 검증 시험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해모수와 하백의 대결, 과연 무엇이 본래 숨은 뜻인가를 묻는 일은 우문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하게 읽히고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신화의 특성이고 매력이기 때문이다.
2. 해모수는 왜 홀로 승천하는가?
해모수는 우여곡절 끝에 하백의 궁전에서 유화와 혼례를 치렀는데, 혼례를 치르자마자 도망친다. 하백도 이를 예상했는지 해모수를 크게 취하게 한 다음 가죽부대에 유화와 함께 넣고 묶은 후 오룡거에 실어 하늘로 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술이 깬 해모수는 유화의 황금비녀를 뽑아 가죽부대를 찢고는 저 홀로 오룡거를 타고 하늘로 줄행랑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얽힌 의미를 풀어보는 것이 두 번째 수수께끼 풀이이다.
해모수가 죽자사자 쫓아다니던 유화를 단숨에 버리고 저 홀로 승천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러한 해모수의 행동은 약탈혼의 습속으로 이해하거나, 권력지배를 위한 남성신들의 필사적인 도주의 통과의례로 보기도 하지만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해모수의 ‘나 홀로 승천’과 단군신화 속 환웅의 ‘조용한 실종’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단군신화의 주인공은 당연 단군이지만, 업적 면에서 보면 환웅의 업적이 단군의 그것을 압도한다. 단군이 건국자요 통치자인 것은 사실이나, 건국의 이념인 홍익인간의 마음을 품고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를 열고,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과제를 주어 곰으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였으며, 사람이 된 웅녀와 결합하여 단군을 낳게 한 것은 모두 환웅이 한 일이다. 그런데, 환웅은 단군이 태어나자마자 조용히 사라진다. 이러한 환웅의 ‘조용한 실종’과 해모수의 ‘나 홀로 승천’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건국신화는 모두 건국시조의 신성성을 강조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 곧바로 지상에 나라를 세우지 않는다. 하늘의 남신과 지상의 여신, 즉 천부신과 지모신의 결합으로 건국시조가 탄생한다는 모티프가 통용되고 있다. 신화서사의 맥락에서 볼 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은 그 임무가 끝나면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단군이 태어나자마자 환웅이 사라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환웅이 사라져야 비로소 단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경우, 해모수가 승천한 후 곧바로 주몽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해모수가 사라진 후 주몽의 건국까지는 숱한 고난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해모수가 사라지자 유화에게 갖가지 시련이 닥쳐오고, 주몽 또한 탄생부터 성장과 건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해모수의 저 홀로 승천 후에 이어지는 이 숱한 고난의 서사는 역설적이지만, 주몽신화에 드라마틱한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3. 유화가 겪는 엄청난 시련의 의미는?
해모수가 떠난 후 유화에게는 온갖 시련이 닥쳐온다. 우선 아버지인 하백에게서 동정을 받기는커녕 벌을 받고 쫓겨난다. 하백은 딸의 입술을 잡아 늘리고 우발수로 추방한다. 유화는 거기서 물고기로 연명하며 살다가 금와왕의 어부에 의해 구출된다. 금와왕의 도움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거기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즉, 금와왕의 별궁에 유폐되어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러한 유화의 시련은 주몽이 탄생하기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유화의 시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해석은 유화의 시련이 주몽의 탄생과 함께 끝난다는 점에서 그녀의 시련은 건국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신모로서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웅녀가 겪는 동굴 시련의 의미를 생명의 탄생을 위한 시련으로 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주몽신화에서 유화의 역할은 주몽의 탄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화는 주몽의 성장과 건국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유화는 주몽에게 활과 화살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주몽이 금와왕으로부터 훌륭한 말을 얻을 수 있는 비법을 일러 주는가 하면, 건국을 위하여 길을 떠난 주몽에게 오곡의 종자를 전해주기도 한다.
주몽이 장차 나라를 세우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유화는 오곡의 씨앗을 싸서 주었는데, 주몽이 생이별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보리씨앗을 잃고 말았다. 주몽이 강을 건넌 후 큰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한 쌍의 비둘기가 보리씨를 물고 날아와 전해주었다. 그리곤 곧바로 주몽은 왕이 되어 임금과 신하의 위계를 정하였다. 이런 이야기의 맥락에서 보면, 유화가 주몽에게 오곡의 종자를 전해주는 일은 건국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유화는 농경신으로서의 신격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농경문화는 건국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화는 자신이 곡종과도 같은 삶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는 논의도 있다.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되고 별궁에 감금되는 것은 결국 죽고 다시 살아나는 땅 속에 묻혔다가 다시 태어나는 곡물의 재생 원리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화의 삶의 여정은 햇빛 쐬기(해모수와의 만남), 물기 머금기(하백의 세계), 땅 속에 묻힘(우발수 유폐), 지상으로 올라옴(금와왕의 구출), 결실(주몽 출산)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신이자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에게는 페르세포네라는 딸이 하나 있다. 페르세포네는 어느날 갑자기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세계의 여왕이 된다. 오랫동안 페르세포네를 찾아다니던 데메테르의 간청으로 결국 페르세포네는 지상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일정 기간을 하데스의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했다. 농업의 신인 데메테르의 딸이 지하세계와 지상세계를 반복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곧 곡물의 씨앗이 땅에 묻혔다가 싹이 나와 결실을 맺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농업 혹은 곡물 신의 수난은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의 구세주요 죽음의 신이자 생명의 신이며, 농업의 신이기도 한 오시리스는 왕권을 노리는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되어 관속에 갇힌 채로 나일강에 버려진다.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가 어렵사리 오시리스의 관을 찾아냈으나, 세트는 다시 오시리스의 시신을 열 네 토막으로 나누어 이집트 전역에 흩뿌렸다. 이시스가 다시 남편의 시신을 모았으나 물고기가 먹어버린 생식기만 찾을 수 없었다. 이시스는 어머니인 하늘의 여신 누트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를 부활시킨다. 이처럼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는 오시리스는 농업의 신이자 식물의 신으로서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이집트 벽화에서 오시리스의 몸은 식물을 상징하는 녹색으로 표현된다. 우리 신화에서도 신성한 존재의 몸이 나뉘어 흩뿌려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박혁거세 신화인데, 이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요약컨대 유화의 시련은 건국영웅을 생산하는 어머니가 겪는 고난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농경의 신 혹은 식물의 신으로써 겪는 파종과 죽음, 재생의 원리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백의 딸 유화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강가에 자라는 식물로 표상된 것이 아닌가.
4. 주몽 탄생담에 얽힌 수수께끼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주인공들, 특히 건국영웅들은 모두 신이한 탄생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주몽의 탄생담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고조선의 단군은 웅녀를 어머니로 한 태생이고,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 역시 태생이다. 반면, 신라의 박혁거세와 가락국의 김수로는 난생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주몽은 어머니 유화의 왼편 겨드랑이에서 닷되들이쯤 되는 알로 태어난다. 즉, 태생인 동시에 난생이기도 한 것이다. 주몽은 어머니의 몸에서 나오되 하필이면 알로 태어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일까? 이것이 우리가 주몽신화에서 풀어볼 네 번째 수수께끼이다.
신화 속 영웅들의 난생담은 세계적 분포를 보인다. 알 속에서 우주가 깨어나고, 생명이 탄생한다. 중국 창조신화의 주인공인 반고가 알에서 태어나 천지를 열고 있으며, 인도 베다 신화의 최고신인 브라만도 물에 떠 있는 황금의 알에서 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이집트 창조신인 아툼 라는 태양이자 황금알을 머리에 인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와 같이 신화 속에서 알은 생명과 세계의 근원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알은 모든 생명의 근원적 형태다. 겉으로 보기에 조류나 어류가 알을 낳지만, 식물의 씨앗도 결국 알이고, 동물의 난자도 알이란 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생명이 알에서 자라나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화 서사적 맥락에서 주몽이 알로 태어나는 것은 대개 두 측면의 영향으로 설명되고 있다. 하나는 아버지 해모수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해모수는 태양신인데, 주몽이 바로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해석하는 것이다. 유화가 해모수와 혼례를 치렀으므로 그녀가 자식을 낳을 때, 해모수의 자식이라 추측할 수 있지만, 신화 서사는 보다 확실하게 해모수의 자식이라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즉, 유화가 금와왕의 별궁에 있을 때, 햇빛을 받고 임신을 했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아버지 해모수의 영향보다 어머니 유화의 영향이 크다는 주장이다. 즉, 유화가 해모수를 상징하는 햇빛을 받아 임신했을 때, 그냥 아이를 낳으면 되는 것이지, 그 아이를 꼭 알로 낳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난생의 직접적인 조건으로 유화가 수신인 하백의 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주장이다. 대개 난생 유형의 신화에서 알은 용이 낳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유화가 용은 아니지만 용과 같은 물 속 동물의 계통을 잇고 있으므로, 주몽이 난생인 것은 수신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해석이다.
주몽의 난생에 끼친 천신 해모수와 수신 하백의 영향력을 따지기보다 난생의 주체인 유화 자신의 특성이 더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화가 알을 낳는 장면 즉, “왼편 겨드랑이로 한 알을 낳았는데, 크기가 닷되들이쯤 되었다”는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겨드랑이 혹은 옆구리 출산은 석가의 탄생담을 떠올리게 하는데, 조셉 캠벨의 지적에 따르면, 석가가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육체적 탄생이 아니라, 영적인 탄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로 보면, 주몽이 어머니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우선 신성한 탄생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인 유화의 이름이 버들꽃이며, 그녀가 강의 신의 딸이자 식물 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겨드랑이 출산은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형상’을 은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주몽의 난생은 천신과 수신과 식물신의 영향을 모두 종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계를 창조하려는 자는 알을 깨고 나온다’고 헤르만 헤세가 그의 『데미안』에서 멋지게 표현했듯이, 영웅의 난생은 세계 창조의 출발점이다.
5. 주몽이 물고기와 자라의 등을 밟고 강을 건넜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수신인 하백의 딸 유화의 결합으로 태어났음에도, 주몽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에 알로써 나서 상서롭지 못하다고 버려졌고,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여 유화의 보호 속에 성장하였으나, 그의 나이가 장대해지고 재능을 겸비할수록 주위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유화가 머문 곳이 금와왕의 궁전이었으니, 능력이 출중한 주몽은 금와왕의 다른 일곱 왕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윽고 건국의 뜻을 품은 주몽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준마를 얻고, 금와왕의 병사들을 피하여 오이·마리·협보 등과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어느덧 개사수에 이르렀는데 건널 배는 없고, 추격하는 금와왕의 병사들의 닥쳐오는 상황이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주몽은 이렇게 외쳤다. “나는 천제의 손이요 하백의 외손으로 지금 난을 피해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후토는 나를 불쌍히 여겨 급히 주교를 보내소서.” 이렇게 말하고 활로써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서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이 기적 같은 장면은 수수께끼 탐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배도 없고 다리도 없는 강을 물고기와 자라가 만든 이른바 ‘어별교’로 건너가는 장면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풀어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대개 ‘주몽이 신의 도움을 요청하여 신이 감응한 사례’로써 주몽의 신성성을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로 설명된다. 이 이야기를 일반화하면, 세계의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장애물 통과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기독교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의 홍해 건너기와 비교해 보자.
주몽의 강 건너기와 모세의 홍해 건너기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임에도 신화적 모티프의 차원에서 동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영웅에게 주어진 위기의 장애물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통과한다는 모티프다. 주몽의 일행과 모세의 일행은 모두 쫓기는 중이었다. 주몽 일행은 금와왕의 병사들이, 모세 일행은 이집트의 병사들이 쫓고 있다. 그들의 행로에 최대 위기의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물 앞에서 주몽은 채찍과 활로 물을 치며 하늘에 고했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몽 일행이 건너야 할 강에는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와 다리를 만들었고, 모세 일행이 건너야할 바다는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갈라졌고 그 물은 좌우의 벽이 되었다. <십계>라는 영화를 통해 인상 깊게 본 바로 그 장면이다. 주몽 일행은 강을 건너 나라를 세우고, 모세 일행도 바다를 건너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인 가나안 땅을 일군다. 강과 바다를 건너기 전에는 모두 위기의 상황이었으나, 장애물을 통과한 후 건국과 축복의 땅을 일구는 것이다.
두 이야기는 위기의 상황에서 영웅적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하고 장애물을 통과하는 이야기이지만, 세부적인 상상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세의 경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한다. 물론 이것은 그의 절대적인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반면, 주몽의 경우, 황천후토에 호소할 때 ‘채찍과 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즉, 활과 채찍으로 상징되는 군사력의 측면에서 상당한 실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비교할 것은 주몽 일행의 경우 물고기와 자라를 밟고 강을 건너는 반면, 모세 일행은 바다가 갈라져 나타난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고 있는 점이다. 주몽 일행이 건너가는 강은 비록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았으나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있다면, 모세 일행이 건너가는 바다는 일시적으로 바다가 아닌 ‘마른 땅’이 되어 사람들을 건너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몽 일행은 강의 속성을 거스르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하고 있다면, 모세 일행은 초월적인 힘으로 바다의 속성이 일시적으로 제한된 상태에서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엄청난 조력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주몽의 강 건너기는 물의 정령이랄 수 있는 물고기와 자라를 통해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6. 주몽이 사슴을 위협하여 비를 내리게 하다?
주몽은 강을 건넌 후,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비류국의 송양왕이 주몽을 찾아와 출신을 묻고는 주몽에게 속국이 되라고 요구한다. 이로 인해 주몽과 송양의 몇 차례 대결이 펼쳐진다. 첫째는 활쏘기. 송양은 사슴을 그려서 백 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의 배꼽에 들어가지 못했다. 주몽은 옥지환을 백 보 밖에 걸고 이를 쏘았는데 기와 깨지듯 부서졌다. 다음으로 주몽의 나라가 새로 세워진 탓에 북과 나팔에 위엄이 없다고 하자, 부분노라는 신하가 나서서 비류국의 북과 나팔을 훔쳐와 검게 칠하여 오래된 것으로 보이게 했다. 이를 본 송양이 감히 다투지 못했다. 다시 송양이 도읍이 세워진 선후를 따지자, 주몽은 썩은 나무로 궁실의 기둥을 세워 천년 묵은 것처럼 위장했다. 이번에도 송양이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렇다고 송양이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주몽은 흰 사슴 한 마리를 잡아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주문을 외웠다. “하늘이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지를 휩쓸어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 난관을 면하려면 네가 하늘에 호소하라.” 사슴이 슬피 우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고, 장맛비가 송양의 도읍지를 휩쓸었다. 결국 송양은 항복했다. 여기서 활쏘기 시합이나 고각 훔치기, 썩은 기둥으로 위장하기 등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라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나, 사슴을 위협하여 비를 내리게 하는 행위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어떤 동물을 위협하여 무언가 달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구지가>를 떠올리게 한다. 김수로왕을 맞이하면서 불렀다는 <구지가>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는 노랫말로 되어 있다. 주몽신화에서 사슴을 위협하는 상황과 <구지가>에서 거북을 위협하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노래의 구조는 일치한다. 즉, 두 노래는 모두 ‘호명-요구-위협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노래의 구조는 신라 순정공의 처 수로부인을 잡아간 동해 용을 향하여 부르는 <해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 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 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워서 먹을 테다.” 주몽의 사슴 위협과 <구지가>, <해가>는 각각 홍수를 불러오고, 왕을 맞이하고, 수로부인을 구출한다는 점에서 각각의 목표한 바를 달성하고 있다.
<구지가>, <해가>로 이어지는 옛 노래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어린 시절 이가 빠지면 지붕 위로 던지며 부르던 노래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이것은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쌓으면서 부르던 노래다. 이 두 노래는 비록 ‘위협’의 요소가 빠져 있으나, 그 본래적 구조는 ‘호명-요구-위협의 구조’였다고 본다. 실제로, 아이들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 부르는 노래에는 이러한 구조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까치야, 까치야, 내 눈에 티내라 안 내주면 네 새끼 발기발기 찢겠다.”
요약컨대, 주몽이 사슴을 위협하고 비를 내리게 하여 비류국의 송양을 완전히 굴복시킨 이야기는 주몽의 무속적이고 주술적 능력을 표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주몽은 어별교 이야기에서 하늘과 소통하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부족국가 시대에는 이러한 능력이 군왕의 권능이자 책무였다고 한다. 실제로 옛 부여에서는 ‘날씨가 고르지 못해 농사에 흉년이 들면 허물을 곧 왕에게 돌려 죽이거나 교체’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 당시 군왕이 ‘주술적인 신이한 능력을 지닌 제사장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슴 위협 이야기는 무당임금인 주몽의 신성성을 극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7. 유리의 아버지 찾기에 담긴 의미
송양이 항복한 그해 7월에는 검은 구름이 골령을 덮어 사람들이 그 산을 볼 수 없었는데, 오직 수천 명의 사람이 나무 베는 소리만 들렸다. 주몽이 ‘하늘이 나를 위하여 성을 쌓는다’고 말하더니, 과연 7일 만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궁실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주몽이 하늘에 절하고 나아가 살았다. 가을 9월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으니 그때 나이가 사십이었으며, 태자는 왕이 남긴 옥편으로 장사를 지냈다. 이것이 건국 영웅의 승천 장면이다. 이것으로 건국 영웅의 일대기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건국 신화는 좀더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유리 태자 이야기다. 이 부분은 덧붙여진 이야기가 분명해보이지만, 유리는 주몽의 아들로 그려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절개가 있었으나, 새 잡는 것으로 일삼던 유리는 어느 날 한 아주머니의 물동이를 쏘아 깨뜨리게 되었다. 그 여자는 ‘아비도 없는 아이가 내 동이를 깼다’며 욕을 했다. 이에 유리는 진흙 탄환으로 물동이를 다시 막아 주고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나의 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었다. 아버지 찾기를 시작하게 된, 그 동네 아주머니의 꾸지람 한 마디는 유리의 ‘영혼을 울리는 한 마디’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희롱하여 ‘너는 정해진 아버지가 없다’고 하자 유리가 죽으려 하였다. 놀란 어머니가 이를 말리며, 아버지가 떠날 때 남긴 말을 들려주었다. 주몽이 남긴 말이란, “내가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 돌 위 소나무에 물건을 감추었으니 이것을 얻은 자라야 나의 아들이다”는 것이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따라 온 산을 헤매던 유리는 집으로 돌아와 집의 기둥에서 슬픈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보니, 과연 그 기둥은 소나무였고 나무의 몸은 일곱 모였다. 그 기둥 위의 구멍에서 부러진 칼 반 조각을 얻은 유리는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간다. 주몽이 가지고 있던 반 조각과 유리가 가져온 반 조각을 맞추자 피를 흘리며 하나의 칼이 되었고, 유리는 태자로 책봉된다. 이것이 <동명왕편>의 마지막 대목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유리의 아버지 찾기에 나타난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다.
한 나라의 왕자가 수수께끼를 푸는 등의 과제를 해결하고 태자로 책봉되는 이야기는 세계의 신화 전설 속에 산재한다. 그 중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 이야기와 유리 이야기를 비교해보자.
그리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연이어 얻은 아내들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하자 델포이 신전으로 신탁을 물으러 갔다. 내려진 신탁의 내용은 <아테네에 이르기 전에는 포도주 부대를 풀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신탁의 내용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게우스는 아테네로 곧바로 가지 않고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를 찾아갔다. 그 신탁의 의미를 알아차린 피테우스는 아이게우스를 취하게 한 뒤 밤에 자신의 딸 아이트라를 그에게 들여보냈다. 테세우스는 바로 아이게우스와 아이트라의 아들이다. 아이게우스는 트로이젠을 떠나면서 칼과 신발을 커다란 바위 밑에 숨겨 놓고, 아이트라에게 태어날 아들이 성장하면 그 비밀을 알려주라고 했다. 열여섯 살이 된 테세우스에게 아이트라는 비밀을 말해 주었고, 테세우스는 칼과 신발을 찾아 아테네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게 되었다. 어머니 아이트라와 외할아버지 피테우스는 테세우스에게 덜 위험한 바닷길을 권했으나, 헤라클레스의 영광이 부러웠던 테세우스는 육로를 택하였고, 여러 괴물들과 악당들을 처치한 연후에 아테네에 입성하여 아들로 인정되었다.
유리와 테세우스 이야기는 한 왕자가 아버지 없이 성장하여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직접 아버지 슬하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왕자로 인정받을 만한 과제가 필요하다. 유리에게 부여된 일차적 과제는 <칠령 칠곡의 돌 위의 소나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었고, 테세우스에게 부여된 과제는 검과 신발을 찾아서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들이 찾아낸 부러진 검, 신발 등은 신표에 해당한다. 여러 논자들이 지적한 대로 검은 권력과 군사력의 상징으로, 신발은 신분의 기호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신표를 찾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 유리의 경우 신표를 찾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온 산을 헤맨 후에 집으로 돌아와 겨우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테세우스는 신표를 찾는 비밀을 어머니인 아이트라에게서 직접 듣는다. 그러므로 장성한 테세우스에게 신표를 찾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테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숱한 괴물과 악당들을 해치우는 과업이 난제였다. 모친과 외조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험한 길을 택한 것은 왕자로서 인정받을 평판을 쌓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표를 찾아 아버지와 상봉한 두 젊은이는 왕자로 인정되었으나, 아직 수행해야할 과제가 더 남아있다. 테세우스의 모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크레타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 왕이 포세이돈에게서 받은 황소를 돌려보내지 않아, 자신의 아내 파시파에와 포세이돈의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이다.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해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를 시켜 거대한 미궁을 짓게 했다. 이 미궁 속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제거하는 영웅이 바로 테세우스다. 테세우스가 스스로 제물을 자청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러 떠날 때, 부친 아이게우스는 아들에게 말했다. 떠날 때는 검은 돛을 달고 떠나지만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고 돌아올 때는 흰 돛으로 바꿔 달라고. 그러나 테세우스는 돌아오는 길에 흰 돛으로 바꿔 달지 않았다. 이 어이없는 일 때문에 아이게우스는 바다로 뛰어 들었고, 아테네로 돌아 온 테세우스는 신속하게 왕위에 오른다. 신화 연구자들은 아버지를 자결케 한 테세우스의 어이없는 실수는 신화 서사적 맥락에서 보면, 혁혁한 업적을 세운 영웅 테세우스가 지체 없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의의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럼 유리 태자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 주몽은 유리가 가져온 반 조각의 칼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반 조각과 피를 흘리며 이어져 하나가 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친자임을 확인한다. 여기서 ‘칼이 피를 흘리며 하나로 이어졌다’는 표현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하나의 혈통임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은유로 본다면, 그리 엉뚱한 상상력도 아니다. 아무튼 주몽은 유리가 친자임을 확인한 후, 진정 자신의 아들이라면, 어떤 신성함을 가졌는가 하고 묻는다. 이때 유리는 지체 없이 몸을 날려 하늘로 솟아올라 창을 타고 해에 닿는 신이함을 보였다. 유리의 하늘 날기는 뜬금없는 모습이 아니다. 이야기 순서가 다소 얽혔지만, 유리 이야기가 등장하기 직전에 주몽이 승천하는 장면이 있고,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는 아예 오룡거를 타고 날아다니던 태양신이었던 것이다. 해모수·주몽·유리 등이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연상한 한 학자는 고구려의 하늘은 신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로 참 소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고구려라는 고대 부족국가가 강대하였던 만큼 순수 단일 부족국가가 아니라 여러 부족들에 의해 형성된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구려의 건국신화인 주몽신화에 여러 부족들이 전승하며 숭상하던 신들과 그 이야기가 합쳐지고 재구성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각기 전승되던 해모수신화, 하백신화, 유화신화, 주몽신화, 유리신화가 고구려 건국신화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들이 합쳐진 가족이라 해도 얼마나 멋진 영웅들인가. 한 편의 고대국가 신화에서 이처럼 활달하고 기상 넘치며 역동적인 드라마를 펼치는 신화적 주인공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태희 / 196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오래 익은 사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