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겉만 보고 판단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질그릇 안에 담긴 보물을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귀한 보석상자 안에 있는 보석만을 얘기한다. 혹자는 진흙 속의 진주를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귀한 것은 겉이 번지르르해야만 인정하는 것이 보편적 사람들의 입장이다. 이 세상 관조를 통해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인 성경과 절간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놓고 그 가치를 평가하라고 하면 단연 팔만대장경을 드높이며 말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려의 대몽(對蒙) 항쟁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199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에서 전시되고자 상경 길에 올라 전시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보관돼 온 팔만대장경은 해인사를 떠나 성남 나라기록관을 거쳐 서울로 입성했는데 6월 1일부터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서 독일 구텐베르크 성경 초판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국보로 정해진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를 떠나기 전 대적광전에서 성공적인 전시와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고불식을 열었는데 마치 인격을 다루듯 지나치게 오버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황제를 대하듯 가마에 실은 운반과정의 모습은 조심스럽다 못해 경외하는 모습이 곧 살아있는 인격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인사 호법국장 승려 “향록”은 “내내 노심초사 해 왔습니다마는 아주 편안하게 모시고 오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저는 아마 오늘 또 다시 해인사로 들어가야 되지만 마음은 여기 놔두고 가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했는데 그의 입술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장경판”을 지칭하면서 하는 말이 “아주 편안하게 모시고 오게 돼 다행”이라고 하는 등 과잉보호 내지는 숭배행위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서울 전시회에서 선보인 팔만대장경은 ‘선행법상경(禪行法相經)’ 원본 경판 1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 동판 1권, ‘반야심경’ 인경본 1권 등 모두 3점이다. 관련 문헌에 따르면 해인사 대장경판 또는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로,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고자 고종 23년(1236) 강화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38년(1251)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이라고 한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는데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는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제1차는 거란의 침입으로 곤경에 직면했을 때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대구 부인사에 도감(都監)을 두고, “대반야경” “화엄종” “금광명경” “묘법연화경” 등 6,000여 권을 조제하였다. 현종 때 시작하여 문종 때 완성된 이 초판 고본 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의 몽골 침입 때 불타고, 일부가 일본에 전해진다. 그 후 의천이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송에서 가져온 불경과 요, 그리고 일본에서 수집한 불경의 총목록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차례로 만들었다. 이것이 이른바 속대장경으로 1,010부 4,740여 권에 달하였으나, 몽골의 방화로 거의 없어지고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대대적인 조판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동왕 23년(1236)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하여 사업에 착수, 동왕 38년(1251) 총 8만 1,137매의 대장경을 완성하니, 이것이 유명한 팔만대장경으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대장경”이 서울로 옮겨지는 데 있어서 상식을 뛰어 넘는 거창한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우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사람들이 극찬하고 높인다고 해서 비진리가 진리가 될 수는 없다. 그 옛날 이처럼 국가적 업적을 남긴 발자취에 대해서 깎아내릴 의도는 없으나 그때는 몰라서 그것이 대단한 것 인줄 알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뒤돌아 보건데 그 대장경 판이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켜준 적이 있는가?
지금은 온 세상에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지난날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지는 이때에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과장된 의식을 행함으로써 품격을 높이는 일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팔만대장경 안에는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진리는 들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절대 진리는 들어 있지 않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말할 수 없고 그것이 아무리 소중해도 그처럼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 팔만대장경 판은 세월이 흐르면 불타 없어지거나 썩고 삭아서 사라져 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은 아무리 낡아서 찢어지고, 불에 태워지고,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 자체는 일점일획도 없어질 수 없다.
그들이 절대 진리가 아닌 일개 종교 경전을 그처럼 애지중지 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개신교회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하신 살아있는 말씀을 늘 격을 낮추어 부른다는 점이다(물론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이 변개된 성서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렇게 부른다면 옳은 것이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부르는 책을 세상 사람들조차도 “성경”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한국 교계에서는 고집스럽게도 “성서”라고 부른다. 성경과 성서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이다.
성경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지칭하는 말은 헬라어로 “그라페”(γραφη)이며, 영어로는 “스크립처”(Scriptures)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칭하는 우리나라 말은 “성경”(Scriptures 또는 Bible)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 교회에서는 “성서”(Sacred Book)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성경침례교회”가 세워지기 이전에 “성서침례교회”라는 교회가 등장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격하시켜 부르는 것으로, 이는 세상의 다른 종교 경전들도 “성서”(Sacred Book)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the Scriptures)과 “성서”(Sacred Book)는 그 뜻에 있어서 엄연히 겪이 다르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반면, “성서”는 일반 종교인들이 신봉하는 그들의 경전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경을 지칭할 때 개신교회에서는 “성서”라고 부르는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이라고 올바르게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개신교회에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번에 팔만대장경과 함께 나란히 전시되는 “구텐베르크성경”(라틴 벌게이트)은 그야말로 변개된 “카톨릭 성서”이므로 “성서”라고 불려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한국 나들이를 한 구텐베르크 성경(Gutenberg Bible) 원본은 15세기에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 성경으로, 한 쪽에 42줄로 인쇄되어 42줄 성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롬이 A.D. 400년경에 기록한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 역본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원천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는 변개된 사본이다. 국가기록원 측은 “평생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에 종교인뿐만 아니라 학생, 일반인들까지도 구텐베르크 성경 원본에 대해 큰 의미와 많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대단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견지에서 팔만대장경과 성경(라틴 벌게이트 성서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이 같은 자리에서 전시됐다고 해서 같은 경전으로 생각하면 곤란할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성경에 대한 세상의 개념이 반영된 것인데, 감히 하나님의 말씀(비록 책으로 만들어졌지만)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경전들과 같이 전시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불경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결코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서 생명을 주고 지금도 왕성하게 역사하는 힘이 있는 반면, 불경은 죽은 자들이 적어놓은 죽은 자들의 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은 성장하고 번성하더라』(행 12:24).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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