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작품형식에 대하여
우리는 서예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서예작품의 전통적인 작품형식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예작품의 형식은 권(卷:두루마리), 축(軸:족자), 대련(對聯) 등이 있습니다.
먼저 권(卷)에 대해 말씀드리면, 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두루마리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서화작품에서 비교적 오래된 형식으로 가로가 세로보다 훨씬 길게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은 펼쳐서 볼 때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가면서 감상해야하고, 보통 40센치미터 정도이나 7미터가 넘는 긴 두루마리도 있습니다. 또한 전서나 예서, 해서 등의 글자는 가로세로의 계선을 넣어서 제작되기도 하고, 행서와 초서로 된 두루마리도 있습니다. 다만 행초서를 쓸 때는 기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축(軸)이란 어떤 형식의 작품일까요? 축은 우리 주변에서 보통 족자(簇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작품은 권과는 다르게 가로는 짧고 세로는 긴 형태의 작품입니다.
두루마리는 왼쪽으로 가면서 작품을 감상해야 하기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축은 작품의 하단이 축의 무게에 의해 전체 화면이 평편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족자는 또 세로와 가로의 비율에 따라 중당(中堂), 반절(半絶), 조폭으로 구분합니다. 보통 중당은 전지 한 장의 크기이고, 반절은 전지를 가로로 이등분하여 세로로 긴 형태이고, 조폭은 가로폭이 아주 좁고 세로로 긴 형태입니다.
족자는 서예작품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는 형태인데 한자를 쓸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가면서 쓰기 때문에 한 장안에 작품을 구성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행 가운데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심축에 흐름을 맞추면 안정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행초서 작품에서는 중심축을 맞추되 대소강약을 주어야 변화의 묘가 살아납니다.
대련(對聯). 대련은 시문 가운데 상응하는 두 구절을 각각 한 폭씩에 쓴 걸개 글씨를 말합니다. 이러한 작품은 방이나 출입구 양쪽에 나란히 걸기도 하고 양쪽에 걸기도 합니다. 보통 대련에 사용되는 시문은 대구(對句)가 되어야 하고 4,5,6,7,8자 정도의 글자수로 문장의 구조가 같고 의미가 대응되는 두 구절이어야 합니다.
대련은 구성이 단순하여 장법상 어렵기 때문에 이런 점을 주목하면서 감상하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낙관도 초기에는 뒤폭에 인장만 찍었으나 후대로 올수록 쌍관(주는사람과 받는사람의 이름을 모두 씀)하는 형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련은 중국에서는 청대에 이르러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후기에 성행하게 됩니다.
아래에서 추사 김정희의 대련작품을 실제로 감상하여 봅시다. 이 작품의 내용은 오른쪽 폭이 "옛것을 좋아하여 때때로 부서진 비석을 찾으며(好古有時搜斷碣)"이고, 왼쪽 폭은 "경전을 연구하느라 여러 날 동안 시 읊기를 그만 두었도다(硏經婁日罷吟詩)"라는 대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추사는 앞구절에서 금석문을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노래했고, 뒷구절에서 좋아하는 시를 읊는것 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경서연구에 열정적인 모습을 대련작품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관글씨의 내용은 다소 길게 하고 뒷폭 좌측에 완당이라쓰 고 음양각을 눌러 놓았다. 지루하지만 이 내용을 소개하면, "죽완 선생은 보시고 평가해 주시오. 근래에 예서 필법은 모두 등완백을 으 뜸으로 여기나 그의 장기는 전서에 있습니다. 그의 전서는 실로 <태 산각석>, <낭야대각석>으로 곧장 올라갔으니 변화로움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서는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이묵경과 같은 이가 자못 기 고한 맛은 있지만 역시 옛법에 얽매인 점이 있습니다. 고로 예서의 필법은 오봉, 황룡의 글자를 추종하고 촉의 비석을 참고해야 바른 길 을 얻게될 것입니다" 여기서 추사는 이묵경(이병수)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오봉(노효왕각석) 등의 서한예서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추사 특유의 장법과 결구가 돋보입 니다.
서예작품의 형식에는 이 밖에 서첩(書帖:남에게 첩형식으로 써 준 소품), 선면(부채에 쓴 글씨나 그림), 병장(병풍), 서간(개인 사이의 편지), 편액(건물의 명칭을 써서 걸어둔 나무판),주련(영련이라고도 하는데 건물의 기둥에 거는 글씨)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편액 두 점을 소개합니다.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서울 봉은사 <판전>과 영천 은해사 우향각의 <불광>을 소개합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북학파의 태두 박제가의 제자로 고증학과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실학자였으며 박제가의 법을 배웠으나 그 틀에 안주하지 않았던 선지적인 예술가였습니다.
추사는 여러 사찰에 편액을 썼는데 해남 대흥사 <무량수각> 편액, 서울 봉은사 <대웅전>·<판전> 편액, 영천 은해사 <대웅전>·<보화루>·<은해사>·<불광> 편액,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시경루>,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세계일화조종육엽> 편액 등이 그가 남긴 대표적인 묵흔(墨痕)입니다.
왼쪽의 봉은사 판전은 남호 영기(南湖 永奇)가 조성한 <화엄경소>목판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입니다. 이 <판전>의 편액은 추사가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돌 아와 과천에 거처를 두고 봉은사를 오가던 때인 1856 년에 쓴 것입니다.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수일 전에 쓴 것으로, 그의 마지막 글씨라고도 전합니다. 칠십 노경 에 이른 대가의 청고(淸高)한 정신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 편액의 글씨는 일체의 속진을 털어낸 고박(古 朴)함만을 액판(額板) 속에 남겨 놓았습니다.
편액은 추사가 병조참판으로 있을 때 당시 주지의 부탁 으로 처음 써 주었으나 판목(板木)이 모자라서인지 아 니면 서각자의 안목이 부족해서인지 ‘佛’자 마지막 내 려긋는 한 획의 중간을 잘라 짧게 새겨 놓았었다고 합 니다. 나중에 절에 들른 추사가 이를 보고 떼어 태워버 린 후 지금의 것을 다시 써 주었다고 합니다. 편액의 글씨는 마치 철선을 구부려 놓은 듯 금방이라도 액판 (額板)을 차고 뛰어나올듯 굳세면서도 졸박(拙朴)한 필 선(筆線)을 지니고 있습니다.
2. 감상방법에 대하여
작품은 그것을 제작한 작가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감상은 크게 직관적, 분석적 , 종합적인 감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직관적인 감상법은 작품 전체를 한 눈으로 보고 그 작품의 풍격을 직감으로 느끼는 것이고, 분석적 감상법은 작품의 장법과 글자의 결구 및 점획의 모양에 대해서 상세히 살피면서 감상하는 것이며, 종합적 감상법은 위의 두 가지 방법에 그 작품이 제작된 시기의 작가와 작가가 처한 당시의 역사적 배경까지를 더하여 모든 것을 종합하여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직관적 감상법을 말하면, 작품의 세부적인 기법이나 조형에 대해 관심을 두기보다 전체적인 역감이나 동세 등을 정서적으로 느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서 주의할 것은 감상자의 기호에 치우칠 수가 있으며 과거경험과 학습에 따라 기준이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감상자가 좋아하는 시각으로만 작품을 보지 말고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분석적 감상법을 말하면, 작품을 좀더 세부적으로 뜯어서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작품의 표현기법과 서사도구 및 조형적 처리 등 여러 사항들이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서 예작품에서는 장법, 결구, 점획의 형태 등을 중점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장법은 첫눈에 서예작품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림 에서 말하는 구도와 같고, 서예용어로는 포국 (布局) 혹은 포치(布置)라고도 합니다. 글자를 늘어놓는 방법이 똑 같이 고르게 늘어 놓으면 통일미를 느낄 수 있고, 이와 반대로 들쭉날 쭉하게 늘어 놓으면 조화미를 느낄 수 있습니 다. 핵심은 역시 여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백의 처리에 따라 변화가 있 느냐, 아니면 단조롭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장법은 또한 서체의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예컨대 예서는 납작하게 쓰고, 전서는 길쭉하게 쓰기 때문에 서체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왼쪽의 작품은 당나라 손과정의 초서인 <서보>입니다. 세로 행은 맞추었지만 가로열은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쓴 장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초서작품은 위아래의 필맥이 통하여야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유행하는 일자서(一字書)일 경우 장법은 곧 그 작품의 풍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작가는 이 점에 무척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장법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결구에 대해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결구는 결자(結字), 결체(結體)라고도 합니다. 즉 한 글자의 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글자의 짜임을 분석할 때 상하좌우가 등분되어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결구형태는 균제적 결구라고 하고, 상하좌우가 똑 같지 않지만 점획의 굵기나 여백을 조절해 균형을 이루는 것은 균형적 결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결구를 살필 때는 무엇보다 점획의 경사 정도, 글자꼴과 여백관계-여기서 여백은 글자 안에서의 여백과 글자 밖에서의 여백-를 면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글자가 균형적인지 균제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글자가 반복되거나 나란히 이어질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 눈여겨 보야야 합니다. 예컨대 왕희지의 난정서에는 갈지(之) 자가 20여 번 나와도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듯이 한글작품이나 한문작품에서도 이러한 글자의 모양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결구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점획의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점획의 표현은 붓의 사용법, 즉 용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보통 용필은 붓끝의 처리방법에 따라 노봉, 장봉, 중봉 등으로 나뉘고, 그 처리에 따라 점획은 모가나거나 둥글고, 길거나 짧고, 굵거나 가늘고, 굽거나 곧게 됩니다. 또한 서체에 따라서 전서와 초서는 곡선의 표현이 많고, 해서는 직선의 표현이 많으며, 행서는 직선과 곡선이 섞여 있습니다. 예컨대 해서인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직선이 많고, 전서인 <석고문>은 곡선이 많습니다. 그리고 점획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필속(붓의 운필 빠르기)도 중요합니다. 해서는 천천히 운필하지만 초서나 행서는 해서보다 빨리 운필합니다. 한 글자 안에서도 붓의 운필에서 빠르고 늦은 부분, 가볍고 무거운 부분, 강하고 부드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관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옛부터 선질이 굳세다 혹은 연미하다라는 등의 관념적인 표현이 사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점획에 대한 관찰이 끝나면 종이와 붓과 먹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글씨에 있어 강한 털로 만들어진 강호필(强毫筆),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유모필(柔毛筆), 아니면 두 가지 털이 섞인 겸호필(兼毫筆)에 따라 점획의 표현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종이도 먹을 잘 흡수하는 중국지인지 먹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지인지에 따라 점획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한지는 질기지만 먹이 잘 퍼지지 않는 단점이 있고, 중국지는 질기지는 않지만 먹물을 잘 흡수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먹을 잘 이용하는 이른바 용묵법에 대한 관찰도 서예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진한 농묵(濃墨)을 사용하면 흑백의 분명한 대비, 필선이 강렬하나 선질이 탁하고 두터워 질 수 있고, 연한 담묵(淡墨)을 사용하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자칫 선질이 약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행초서를 쓸 때 먹물을 한번 붓에 찍어 먹물이 나오지 않을 때 까지 서사하는데 이를 윤갈(潤渴)의 변화라고 합니다. 즉 먹물의 양이 많으면 운필이 부드럽고 윤택해져 넉넉한 분위기가 되고 먹물의 양이 적으면 운필이 껄꺼롭고 먹색이 마르게 되어 호방하고 조야(粗野)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와 같이 먹과 붓, 점획과 결구, 장법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통해 분석적인 감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인 감상법을 말하면, 위에서 말한 직관적 감상법과 분석적 감상법을 포괄하고 거기에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성격, 창작습관, 주변환경,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종합하여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한 작가 개인의 독특한 글씨풍을 서풍(書風)이라고 하고, 한 시기의 독특한 양식을 풍격이라고 합니다. 마치 미술사에서 말하는 시대양식(period style)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컨대 조선시대 우리의 서예를 보면, 초기까지 조맹부의 송설체가 풍미하여 왕희지를 공부하더라도 송설체스타일의 글씨를 구사하였고, 동국진체가 등장하면서 같은 왕희지를 공부하더라도 해석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술작품에는 이와 같이 그 시대의 공통적인 미감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서예작품을 감상할 때는 직관적인 방법, 세밀한 표현기법을 관찰하는 분석적 방법, 나아가 종합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감상하여야 바른 감상법이 될 것입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