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란을 그린 화가, 이하응, 민영익, 김응원
우리 미술상세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추사가 퍼트린 문인화가 우리 강산을 뒤덮을 때, 묵란으로 이름을 날린 화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석파 이하응
이하응은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이다. 불우한 시절을 보낼 때 추사에게 난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난을 치기 시작한 시기는 30세 때 쯤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의 작품 세계를 구축함으로, 그가 그린 난초 그림을 석파난 이리도 한다. 그의 난초 그림은 그이 정치적 생애와 맞닿아 있다고도 한다.
석파의 난 그림은 위-아래로 긴 화폭에 난이 무리지어서 절벽에 나 있는 듯이 그렸다. 붓을 길게 뻬서 가늘고, 긴 난의 잎이 바람ㅇ 나부끼는 듯이 표현하였다.
그의 난 기법은 측근이 소호 김응원, 옥경 윤영기에게로 이어지나
2. 운미 민영익
민씨 친정 조카로 막강한 권력을 누린 권신이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고종 퇴진 운동에 관여하였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친다. 중국의 화가 오창석과도 교유하면서, 중국 해파 미술의 우리나라에 들어오는데도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묵란과 묵죽을 잘 그렸다. 특히 난초는 ‘운미란’이라고 하다.
그의 화풍은 문기를 드러낸 나초 그림에서 잘 나타나나. 그림에 발문을 많이 쓴 것은 추사의 불이선란을 닮았다. 이런 것은 중국풍이다.
3. 소호 김응원
대원군의 측근으로, 대원군으로부터 석파난을 배웠다. 난 그림은 자기 나름의 난초를 그렸다고 한다. 산수화도 그리고 ---
그는 일제 강점기 등의 초기에 미술운동에 많이 관여하여 이름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