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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예수께 더욱 가까이 머무르라
우리는 하나님을 죄인을 벌하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죄인이 자기 스스로 벌[형벌]을 자초(自招:자신 스스로 불러들이게) 하는 것이다. 죄인 자신의 행동들이 분명한 결과를 가져오는, 연속적인 사건들을 돌발(突發:뜻밖의 일을 발생)시킨다. 범죄(犯罪:죄를 범함)의 모든 행위는, 죄인 자신에게 반응[선택]을 보이며, 품성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가 더욱 쉽게 또다시 죄를 짓게 만든다.
죄를 짓기로 선택(選擇:죄악의 욕망을 결정)함으로 인간은, 저들 스스로가 하나님에게서 분리(分離:나눠떨어지게)되며, 축복의 통로(通路:성령의 인도하심)에서 저들 자신을 차단(遮斷:가로막게) 시키며, 그 분명한 결과[인과응보- 행위에 대한 심판결과]는 패망(敗亡:악과의 싸움에 져서 망함)과 사망[영원한 멸망으로 완전소멸 됨]이다.(1SM 235.2)
죄가 도덕적 지각을 마비시켜 버리면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가 범한 악의 극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성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하지 않는 한, 그는 그의 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눈먼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의 고백은 진실하지도 열렬하지도 않다. 그의 범죄를 인정할 때마다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첨가하고, 만일 특수한 환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비난받고 있는, 이 일도 저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겸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예증들은 고백의 정신에는, 죄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변호에 대한, 시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5T 641.1)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그분의 말과 실제적인 모본(模本:본보기의 품성)을 통해, 우리가 모방(模倣:본보기의 행위를)해야 할 분명한 틀[절대적 규정의 율법]을 남기셨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교육하셨으며, 그분 자신의 행동으로 그분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3SM 138.4)
만일 그대가 그대의 생각까지도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시킨다면, 그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대는 결코 지체(遲滯:자꾸 미루어 나가게)하지 말아야 하며, 면밀[자세하고 깊숙]하게 그대의 마음을 살피고, 날마다 자아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대는 “어떻게 내 스스로의 행동을 다스리고, 나의 내적감정[마음의 감정과 믿음]들을 지배[성령인도]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 상당한 분량만큼 자신의 정신을 다스린다.
그들은 절제를 수련(修鍊:꾸준히 닦고 단련)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알지만, 성령님의 은혜를 나타내지 않고, 이들에게 이것은 진실로 하나의 견책(見責:책망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그분께 배우라. 그분의 모본을 모방하라.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과오가 없으셨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오른편에 앉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완전성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분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겨야 한다.(3T 336.1)
인간의 본성[태어난 성정]은 너무나 연약하고, 무지하고, 오해하기 쉬우므로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하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별반(別般:별다르게] 알지 못한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는 선악(善惡:선하고 악한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과가, 우리의 언행(言行:말과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YHH 368.2)
예절의 가치[중요]는 거의 인식(認識:분별 판단력이)되어 있지 않다. 본심(本心:근본 속마음)에는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 태도(態度:몸가짐의 자세)가 불친절한 사람이 많이 있다.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존경을 받고 있으면서도, 유감스럽게도 온화한 태도가 부족한 사람도 많이 있다. 이 결함은 자신의 행복에도 방해가 되고, 남에게 행한 봉사의 효과도 떨어뜨린다. 인생의 가장 즐겁고 유익한 생활이, 단순한 사려(思廬:깊은 생각의 배려심)의 부족으로, 무례(無禮:예의 없이)한 행동으로 희생[인정받지 못하게]되는 일이 많이 있다.(Ed 240.1)
항상 우리 변두리[주변]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部類:나눠진 무리)가 있는바 곧 자신의 독립적인 행동으로써, 스스로 멸망하게 하여 범죄를 계속하는 자들과, 진리를 인하여 궁핍(窮乏:빈궁 가난한 믿음의 결핍)에 빠진 자들의 두 부류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우리는 건전한 지혜의 지도와 권면을 받아서, 옳은 일[믿음의 길]로 행하게 될 것이다.(CCh 284.2)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감정(感情:개인적인 자신만의 욕망)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들은 품성의 기품(氣品:고상한 인격)과 안정성이 결여(缺如:모자라게)되어 있다. 원칙은 깊게 뿌리를 내려, 행동의 근원[실제교제의 언행]에 까지 닿게 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로는 진리를 높이지만, 진리를 행하는 자들은 아니다. 진리의 씨앗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성령]의 변화시키는 감화력에 의하여, 그 마음은 새롭게 함을 받지 않았다.
진리가 활동적인 남녀들을 요구(要求:요청하고 구)할 때, 진리를 위하여 희생을 요구할 때, 그들은 다른 곳[진리밖에]에 있다. 시련과 핍박이 닥쳐올 때, 그들은 땅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다.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밀접(密接:긴밀히 받아들여 접촉)한 진리는, 마음에 다가와 품성의 결함을 비추어[깨닫게 해] 준다. 어떤 이들은 이 시련[고난의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불완전에 대해 눈을 감는 적이 허다(許多:너무 자주 허용) 하다.
저들의 양심은 저들에게 그리스도인 품성에 대해, 자세하게 증거 한 하나님의 기별 자들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시켜 주지만, 저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씀을 인하여[불순종함으로] 넘어지게 되며, 진리에 굴복(屈伏:자복하고 회개)하여 성화(聖化:거룩함으로 변화)되기보다는, 진리를 포기(抛棄:믿음을 외면)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좀 더 쉽게 하늘에 갈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위안(慰安:거짓 위로와 안녕)을 삼는다.(3T 112.1)
우리 자신의 행동의 방향[순종과 불순종]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선택]을 받을 것인지, 살육(殺戮:잔인하게 베어죽게)하는 기계[영멸의 마귀와 함께 고통]에 의하여 베어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중 몇 방울은 이미 땅 위에 내렸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재앙이 그분의 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어질 때는 회개하여 피난처를 찾기에는, 영원히 너무 늦을 것이다. 그 때에는 속죄하는 피가 죄의 얼룩을 씻어 버리지 못할 것이다.(CCh 333.4)
주님을 현재와 미래의 유업(遺業하나님의 영광)으로 택하는 자들이, 오직 그분만을 의지해야 할 때가 왔다. 경건을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경험을 해야 한다. 기록하는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과 행동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은 품성의 계발을 지켜보고, 도덕적 가치를 달아 보고 있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당(正當:품성의 완성)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깨우쳐 진리로 인도하는 일에, 그들의 영향력(影響力:성령의 지도하심)을 사용해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위는 순결한 진리의 원칙과, 거룩함을 세상에 전달하는 통로[청지기]이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늘을 쳐다볼 때 빛과 평화를 보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모든 피난처가 미구에 사라지고, 모든 좋은 것이 미구에, 지나가 버릴 것을 보았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에게 도움이 없다. 이 세상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직 산 믿음의 힘을 통해서만, 침착하고 강하고 안전할 수 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릴 때에만,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
우리 [믿음의]조상들에게 비친 것보다, 더 큰 빛이 우리에게 비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한 것과 동일한 봉사를 하고, 동일한 사업을 하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가납하심과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는 그들의 성실과 열성을 본받아야 한다. 곧 그들이 그들의 빛을 이용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빛[셋째천사의 마지막 기별]을 이용하고, 그들이 오늘날 살았다면 하게 될 그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비친, 빛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빛은, 어둠으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품성과 행동을 통하여, 공언하는 거룩한 진리와 이 마지막 때에 성취되고 있는, 예언의 정신과 일치되는 연합과 일치의 정신의 정도를, 세상에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이해한 진리와 심령에 비친 빛을 등지고, 지도받기를 거부할 것 같으면, 그 진리와 빛이 우리를 심판하고 정죄할 것이다.(1T 262.1)
나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품성과 생애를 생각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의 생애는 이기심 없는, 자비로 특징지어졌다. 그분은 언제나 인간의 불행을 체휼(體恤:멸망 할 죄인들의 처지를 살피시고,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허락) 하셨다. 그분은 [지상 생애에서의 모든 인간적인 삶에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셨다. 그분의 모든 생애에는, 이기적 행동이 하나도 없어 시었다.
타락한 인류를 위한 사랑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욕망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분은 아버지의 진노를 친히 받으시고, 범죄 한 인류를 타락 가운데 빠지게 한, 그 범죄의 형벌을 [죄인들 대신] 당하기로 하셨다. 그분은 인류의 죄를, 그분 자신의 육체로 친히 담당하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1T 482.2)
말과 행동은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하게 증거 한다. 허영과 교만 자아에 대한 사랑과 의복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채우고 있으면 대화는 유행과 의복과 외모에 관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기하는 감정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이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을 핑계로 더 높은 표준을, 세우지 않는 자들은 껍질을 먹고 사는 것이며,
이와 같이 그들 자신의 헌신하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힘으로써, 사단에게 만족을 주는 한, 영적난장이로 머물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마치 세속적인 것들이, 생애의 큰 목적이요 가장 높은 목표인 것인 양, 마음 가득 품은 데서 흘러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어버린다.(1T 500.1)
모든 사람은 믿음과 기도로써, 복음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도 강제로, 범죄 하게 할 수는 없다. 그 자신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한다. 정욕이 이성을 지배하고 불의가 양심을 이기기 전에, 심령은 범죄의 행동을 의도(意圖:마음과 생각이 동의)해야 한다.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벧전3:12). 시험받는 영혼이여, 주님께 부르짖으라. 속절없고 무가치한 그대로, 그대 자신을 예수님께 던져 버리라.
그리고 바로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라. 주님께서는 들어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신적 마음의 성향[악으로 향하려는 본성과 욕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시험을 받을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5T 177.2) 지식과 지혜에 대한 사람의 주장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가 성령의 교훈 아래 있지 아니하면, 그는 영적사물[죄와 의, 진리와 심판과 회개의 믿음]에 있어서 엄청나게 무지(無知: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고 천박- 성령의 통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위험과 무능을 깨닫고, 오직 홀로 위탁받은 영혼들을 지켜 주실 수 있는 분, 그분의 영[성령]을 그들에게 불어넣어서 서로를 위한, 이기심 없는 사랑을 그들에게 채워 주실 수 있는 분, 그리하여 그들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실을 증거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에게 완전히 의지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연합으로 함께 결속(結束:한 마음 한 뜻으로 화합)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되며, 어리석은 권위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행사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온유가 모든 말과 행동에 나타나야 한다.,(9T 146.3) 참되지 않은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태초로부터 거짓말쟁이였던, 그[대적마귀]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 되지 않은 일에 대하여, 경계태세를 취하자. 불성실함은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더욱 자라나게 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말하노니, 진리가 그대의 허리띠가 되게 하라.
그대는 믿음에 진실 되라. 모든 핑계와 과장된 말을 버리라.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그대의 말이 참되도록 하라. 하나의 거짓말이라도, 말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지 말라. 진리만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확고하게 고수(固守:굳게 지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위해 긴요(緊要:굳게 꼭 필요) 한 것이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패(胸牌:가슴에 천 조각으로 제작 된 아름다운 패)를 붙이고[제사장예복]”(엡6:14).(HP 179.3)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는 살아 있고 열렬하며, 소성(蘇醒:곧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시고 각성) 시키는 믿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그를 봉사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바치는 생애를 의미한다. 이 연합이 존속하는 곳에는, 선한 행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위에 있는, 향기로운 열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계속적인 공급은 그대를 축복할 것이며, 그대를 축복으로 만들어 드디어 그대는, ‘바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수 있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TMK 132.2)
예수와 연합하라. 그리하면 그대가 요구하는, 모든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용감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예수님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더욱 의지하고 믿을 것 같으면, 그대의 믿음의 기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대는 믿음으로 서라. 다만 믿음의 실천으로서만, 자신을 정복할 수 있다. “자아”는 언제나 사단이 그가 속이고 정복하고자 하는, 자들을 만나고 지배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의 의가 그대 안에서 나타난다면, 그대는 강해진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초월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주, 그대의 중보자로써 그대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효율을 붙들 때, 그대는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OHC 126.4) 지식은 그것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의 손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강하게 되고, 더 깊이 더 충만히 더 명확하게, 사고하게 되기를 계획하신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을 그대의 상담자로 삼으라. 그러면 그대는 진보하지 않을 수 없다.(1MCP 105.2)
나는 그대를, 갈바리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그대를 대신하여 치르신, 무한한 희생을 생각하라고 요청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를 예수님께로 향하게 한다. 그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역사 하시는, 주님께 의탁함으로써 안전함을 얻을 수 있다.
주 예수께서는 그대를, 무한(無限:끝이 없는)한 값으로 사셨다. 그대는 심령을 지켜주시도록, 예수님께 의탁(依託:신뢰와 믿음으로 의지하고 완전히 바치게)할 수 있다. 그대는 예수님을, 그대의 상담자로 신뢰할 수 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도우실 것이다.(TMK 341.2)
변함없는 동반자 그리스도— 우리도 ‘에녹’처럼 그리스도를 변함없는, 동반자로 모실 수 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유혹자의 공격을 받을 때는, 그것에 관해서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그는 우리와 같이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할 성경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하늘의 동반자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상담자로 모셨고, 예수께 아주 가까이 결속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다.
마지막 때에 옮기어질 사람들 역시 땅에서, 하나님과 긴밀한 교통(交通:동행교제와 복종)을 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사람들은, 생활의 모든 습관에서 그분을 나타낼 것이다. 이기심은 그 뿌리부터 잘라져 나갈 것이다.(1BC 1087.6) 예수께서 가까이 오실 때 성가신 것들이 사라짐—“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떠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7).
시험당하는 영혼에게 이 긍정적인 [자비의]약속은, 참으로 귀한 약속이 아닌가! 만약 시험과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이 그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예수께서 그를 가까이 하실 것이며, 그가 거의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성가신[사단마귀의 죄악적인] 일들이 떠나 버린다.(7BC 937.4)
우리 모두는 매우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자. 주 예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서, 주님께 우리의 매일의 의무들을 인정[실천복종 헌신] 하자. 주님은 이 죄의 세상에서조차도, 매우 행복한 삶을 확보할 수 있게 하시고,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그분이 마련하고 계시는, [하늘] 왕국에서 끊임없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소망을 붙잡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셨다. 이런 생각들을 인하여 우리는,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MM 214.1)
마지막까지 점 없고 더럽혀지지 않음— 죄악적인 부패들! 어느 때고 얼마나 죄악 된가. 그러나 영원한 세계의 경계선(境界線:지구 종말의 심판)에 서 있는, 바로 지금 얼마나 더 그러한가! 나는 나의 백성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여러분이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서, 그대의 공언을 잘 정돈된 [거룩한]생애와 경건(敬虔:정중)한 대화[순종](으)로 장식(裝飾:존귀영광을 드리게) 하려고 애쓴다면, 그대의 발은 금지된 길[멸망의 길]로 빗나가지 않도록 보호될 것이다.
그대가 그저 깨어만 있는 다면, 끊임없이 깨어 기도한다면, 그대가 바로 하나님의 존전(尊前:보좌 앞)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한다면, 그대는 유혹에 굴복되는 일을 면할 것이며, 마지막까지 순결하고 점 없고 더럽혀지지 않게, 보존되기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TSB 107.1) 그대는 그대가 가지고 있는 신임(信任:선택함) 받는 지위[영광]에 대해 그대의 부족[영원한 은혜의 감사함]을 느끼는가?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대가 자신의 연약함[죄인 됨]을 느끼면 느낄수록, 조력자[구속주]를 찾는 경향[구원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 예수께서는 그대가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을 가지고 그대의 최선을 다한 후에, 주께서 그대를 도와주실 것과 또한. 무거운 짐을 지는 일에 그대의 조력자가 될 자들을. 길러 주실 것에 대하여 주님을 신뢰(信賴:굳은 믿음으로 고대)하기를 바라신다.(8T 128.3)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이 받아들일 때에, 거저 주시는 은사(恩賜:하나님 은혜로 내려주시는 영광의 유업)로서 상징되었다.
인간은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몹시 불쾌감을 주는 더럽고 타락한 것과, 죄로 오염(汚染:불순종의 죄악)된 것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을 통해서만,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1SM 342.4)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적(外部的:또 다른 요인) 과시(誇示:자랑해 보이기)를 수반(隨伴:더불어 따라 같이) 하여 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드러운 영감을 통하여, 성령의 내적역사(內的役事:영적 늦은 비 성령) 곧, 생명 되시는 분과의, 영혼의 교통(交通:동행교제의 완성)을 통하여 오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위대한 능력의 표현(表現:확실한 현상)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에 도달(到達:이르러 달성)한, 인간의 성품 속에 보여 진다.(YHH 2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