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당리 성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성지일까? 수원교구 ‘요당리 성지’를 찾아 나서는 길, 지명조차 생소한 곳이기에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설렌다.
성지 누리방(www.yodangshrine.kr)에서 내려 받은 지도를 따라 발안에서 안중 방향으로 39번 국도를 달리다 보니 발안산업단지(향남제약공단)를 지나면서 ‘요당리 성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안내대로 ‘고잔성농원’ 입구로 국도를 빠져나와 지하도 아래로 좌회전 한 후 2km쯤 시골길을 달리니 성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200년 넘게 우리들 기억에서 잊혔던 곳. 하지만 이곳만큼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얼과 발자취가 스며있는 곳도 드물다. ‘느지지’로 불렸던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요셉, 1803-1866년) 성인이 태어나 신앙 기반을 다지고 주위 친척과 교우들에게 신앙을 전파한 곳이다. 또 장씨 집성촌으로써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장 토마스(1815-1866년, 장주기 성인의 6촌)를 비롯해 장씨 일가의 터전이기도 하다.
장주기(요셉) 성인 신앙의 요람터
장주기 요셉 성인은 이곳에서 성장하며 세례를 받고(1826년) 가족과 일가친척에 복음을 전했다. 박해를 피해 배론 성지(원주교구)로 이주(1843년)한 후 자신의 집을 신학교로 쓰도록 봉헌하고, 신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등 신학생 및 선교사들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이후 병인박해(1866년) 때 체포돼 서울로 압송돼 1866년 3월 30일 성 금요일에 충남 보령, 현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황석두 루카 회장 등과 함께 참수치명 당했다.
이곳 출신 순교자로는 지 타대오, 림 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흥원여(가롤로)와 장주기 성인의 친인척인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있다. 또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년) 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회장을 지낸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년) 성인이 신앙을 전파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했다 체포되어 순교한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와 이를 도운 손경서(안드레아) 순교자의 얼이 서려있기도 하다.
선조들의 숨결과 얼, 박해의 피로 이룩한 요당리
특히 이곳은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하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유서 깊은 교우촌(옛 지명 : 양간공소)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바닷물이 유입돼 뱃길이 열렸던 당시에는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며,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에 일어난 두 번의 박해 때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했던 수많은 신자들의 신앙의 요람이라고 전해진다.
약 2만 500㎡(6200평) 부지에 아담한 성전과 깔끔한 조경이 참 아늑한 느낌을 주는 예쁜 성지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그 흔한 십자가나 성모상 하나 없이 허허벌판에 천막 성전과 컨테이너 사무실, 화장실이 전부이던 성지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요당리 성지 초대 전담 김대영 신부는 2006년 12월 24일 이곳에 천막을 세우고 첫 미사를 봉헌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계단을 몇 개 오르니 ‘기도의 광장’이 먼저 순례객을 맞는다. 중앙에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왼쪽으로는 묵주기도 길(로사리오 길)이 조성돼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예수님의 수난을 묘사한 ‘십자가의 길 14처’로, 조각가 이숙자(체칠리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가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많은 기도와 묵상 끝에 나온 걸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의 광장’ 중앙의 성모자상은 어딘지 낯이 많이 익다 싶더니 남양 성모성지의 성모상과 같은 것이다. 요당리 성지 개발 초기에 남양 성모성지 전담 이상각 신부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14처를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가 끝날 무렵이면 ‘성역화 광장’에 이른다. 대형 십자가 아래로 요당리와 관련된 성인과 순교자들의 묘역이 조성돼 있다. 물론 시신이 안장돼 있지 않은 의묘(擬墓)이지만 성지에서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순교선조들을 현양하고 있다.
성인과 순교자 묘역을 참배한 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넓은 잔디밭 너머로 아름다운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08년 3월에 착공해 1년 3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2009년 6월 4일 입당미사를 봉헌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 나무 기둥과 서까래에서 솟아나는 은은한 나무향기를 맡고 벽화의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성당과 소성당의 제대 벽화는 도예가 박성백(모세, 대구 신암동본당)씨 작품이다.
제대 앞 십자고상은 지금까지 본 성전 십자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힘들어 보이는 십자가상이다. 힘없이 늘어진 팔과 어깨를 보면 그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조금은 느껴진다.
관광 아닌 참 순례의 성지
소성당의 ‘십자가의 길 14처’ 역시 참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조각가 이효주(아나스타시아, 서울 중림동 본당)씨가 1998년 2월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일부 소실된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 성당의 불에 탄 목재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불에 타다 남은 목재에서 아름다운 성물을 조각해 낸 것은 모진 박해를 겪고도 굳은 신앙의 싹을 피워낸 선조들의 숨결과 닮았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허허벌판의 초라한 모습이던 요당리 성지에 이렇듯 아름다운 성당이 세워지고 각종 성물이 갖춰진 데는 방윤순(마리아, 수원교구 과천 별양동 본당)씨의 봉헌이 큰 힘이 됐다. 경제 불황의 여파로 성지에도 후원이 크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일궈낸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성지전담 신부는 “순례객들이 좀 더 경건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성지를 순례할 수 있도록 성당 건축과 조경공사를 서둘렀다”면서 “순교자들의 피와 얼이 서려있는 요당리 성지를 순례하면 공경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지순례는 관광이 아닌 말 그대로 ‘순례’입니다. 단순히 볼거리를 찾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얻어 가시면 좋을 것입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 성지미사가 봉헌된다. 단체 순례객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별도의 미사봉헌과 하루 피정(묘역 참배, 미사, 유해 친구, 영성 강의, 성시간)도 가능하다. 사무실에 미리 요청하면 식사(한식 뷔페)도 주문해 준다. 2014년 5월 6일에는 한국 103위 순교성인 시성 30주년을 기념해 대성당 앞에 장주기 요셉 성인 흉상을 제작 설치했다. [출처 : 평화신문, 2009년 9월 6일, 서영호 기자, 내용 일부 수정(최종수정 2015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