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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명리학회 時流命理學會
 
 
 
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스크랩 사진으로 보는 한국100년/ 서울 1968
행복나무 추천 0 조회 99 13.06.26 13: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마포 종점(1968)

전차요금 2원50전

전차가 가는 방향이 공덕동쪽이고 오른쪽이 불교방송국, 뒤쪽이 여의도 쪽이다.

1898년 서대문-청량리 구간을 시작으로 운행하게 된 전차는 1968년 하반기 운행 중단했다.

 

 

 

시청앞 서소문로에 있던 육교

 

육교에서 바라본 시청앞 광장.

분수대는 여전하지만 프라자호텔이 건설되기 전이다.

 

육교에서 바라본 아현동쪽

왼쪽 옥상이 보이는 건물이 중앙일보 사옥이다.

 

대한항공  영업소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곳에서 항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이거나 대한민국에서 선택된 일부였다.

 

시청앞 덕수궁 담장

덕수궁 담장을 돌담으로 쌓는 공사가 한창 벌어졌다

 

 

 

지게꾼도 시내를 당당히 활보하는 직업이었다

 

태평로 중간에서 중앙청 바라보기

 

프라자호텔 뒷길 북창동

뉴서울 사장은 얼마전까지도 영업했다

 

반도호텔앞 택시정류장

내리는 곳이라는 간판이 을씨년스럽다

 

명동

예나 지금이나 사람도 많고

리모델링해주는 성형(정형)외과가 성시를 이루고 있다.

 

청계2가

퇴계로쪽으로 가는 고가도로는 보이지만 삼일빌딩은 아직 안보인다.

서울의 렌드마크 삼일빌딩은 이듬해(1969) 삼환기업에 의해 착공되었다.

 

청계3가 수표동 입구

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자동차 부속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폐차 상가의 원조.

 

장충동 족발타운의 옛날 모습

오른쪽이 체육관쪽 고개다.

 

종로5가

 

돈화문

포장공사를 하느라 콜타르를 뿌려놨다

 

서부역 소화물 취급소

당시 우리나라 소형화물 물동량의 근거지였다.

 

서울역에 대기중인 객차

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완행열차다.

 

염춘교에서 바라본 서울역

 

서울역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

오른쪽에는 아예 성조기를 꽂아놓고 미군과 대사관 관계자들의 여행 편의를 돌봐주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서울역 도동(후암동) 입구

서울 스퀘어빌딩(대우빌딩)은 물론 남대문경찰서 건물이나 게이트웨이 타워 건물이 아직 없다.

 

서울역 택시 승강장

광고회사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노른자위 광고 명당

드레스 미싱과 아이디알 미싱, 그리고 오리온은 여전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한국타이어가 등장했다.

자동차 시대를 예고하는 광고판이다.

 

1번 국도

오는 차는 시외버스이고 가는 차는 시내버스다.

좁은 2차선 도로에 인도, 차도 구분이 없고 리어카도 다녔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함께 다니고 기차길이 나란히 가는 길은 흔치 않은 길이다.

어디일까?

89번 삼양여객이 답이다.

삼양여객은 안양에서 삼양동 다니는 노선을 최초 개설했고

그 후 광화문과 시청앞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서울에서 안양역 가기 전 구길 관악역 부근이다.

당시 우리나라 1번 국도의 맨 얼굴이다.

 

안양유원지 입구

서울에서 이곳만 나가도 제법 나가서 놀다왔다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안양유원지

 

아현동

 

제2한강교(양화대교)

시내 중심가에서 김포공항 가는 길이다.

역시 군에서 불하받은 차를 개조한 ?차가 대종이다.

 

영등포역

 

한강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용산

1968년 하반기 전차운행이 종료되어 전력선은 철거되었지만 철길은 그대로 있었다.

오른쪽이 대우 트럼프월드다

 

용산시외버스 터미날에서 길을 마구 건너는 행인

 

무단횡단을 해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교통질서에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왼쪽 혁성운수 버스는 전농동에서 신길동 다니던 노선버스다.

 

한강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중지도

윗쪽 나무 심어져 있는 곳이 중지도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중지도

결빙된 한강위에 사람들이 있다.

 

노량진

오른쪽이 수원지다.

 

 

중지도(노들섬)

 

서울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섬이 하나 있다.

노들섬이다.

옛날엔 중지도라 불렀다.

한강치수사업이 벌어지기 전에는 용산쪽에서 백사장을 걸어올 수 있는 섬이었다.

 

 이 섬에는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헌병초소가 있었다.

한강에 한강인도교와 광진교만 있을 때 서울의 중요 안보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

밤 12시에 바리케이트를 쳤고 새벽 4시에 바리케이트를 치웠다.

5.16때는 이 섬에서 시내로 진입하려는 혁명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수경사 헌병들과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너편에 낙하훈련 중 순직한 이원등중사 동상이 있었다.

 

검문하는 경찰과 군인

 

중지도에서 바라본 노량진 쪽

 

중지도에는 뱃놀이 보트장이 있었다

건너편이 흑석동 명수대

 

 

 

당시 상호에는 나일강, 다뉴브강, 세느강, 나폴리, 베니스 등 외래어를 많이 붙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그 당시, 선망을 자극하는 상술이었다.

 

중지도 서쪽에는 자동차운전 교습장도 있었다.

 

중앙자동차학원

 

겨울이면 스케이트장도 있었다.

 

낮 시간의 헌병

 

헌병 초소 건너편에 있던 이원등 중사 동상

 

 

 

이 포스팅에 실린 사진은

1968년 당시 한국에 근무한 외국인이 찍은 사진이다.

 

자신의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사진 본인

 

자신의 사무실에서 바라본 남산쪽

야외음악당과 숭례문이 보인다.

 

무악재쪽

적십자병원이 보인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내려다 본 기와집

왼쪽 빌딩은 중앙일보 건물이다

 

사무실에서 내려다 본 서소문일대

택시 지나가는 길이 서소문에서 남대문 나가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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