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6.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마태 20,17-28)
복음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출세와 섬김』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마태 20,18-19).”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일인데(요한 10,11.18ㄱㄴ),
그 일은 곧 ‘사랑’입니다(요한 15,13).
예수님의 사랑은 죽는 것으로(희생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랑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이어집니다(요한 10,17).
(그래서 항상 예수님의 ‘수난 예고 말씀’은 ‘부활 예고 말씀’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우리가 받으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서,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주셨으니, 사랑으로 받아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20,20-21).”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입니다.
두 사도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요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도가 직접 예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마르 10,35).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와 왼쪽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요청은,
앞의 19장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연결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태 19,28ㄷ).”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두 옥좌’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두 자리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요청을 한 것은,
‘예수님의 나라’를 세속의 나라들과 같은 나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도가 남들보다 더 권력욕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높은 두 자리를 달라는 요청은, 다른 열 사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또는 다른 열 사도를 자기들보다 더 낮은 자리에 앉혀 달라는
요청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요청은 ‘사랑’과도 거리가 멀고,
공동체 정신과도 거리가 먼 요청입니다.
<다른 열 사도가 두 사도의 말을 듣고 불쾌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24절).>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마태 20,22-23)”
예수님의 답변은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닙니다.
두 사도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는 말씀이고,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 속에
포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라는 말씀은,
그들의 요청 자체를 부정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메시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왕정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선 먼저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메시아 왕국’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사랑으로’ 세우신 나라이고,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려면,
사랑을 거스르는 이기적인 욕망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가리키는데,
“친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랑”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또는 당신의 사랑에 참여하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두 사도의 대답은, 아직도 잘 모르면서 하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나중에는 모든 것을 깨달았고, 믿었고, 순교했습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이 지금은 잘 모르고 있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을 잘 알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은,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5-28).”
이 말씀은, “나의 나라는 세속의 나라들과는 다르다.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이고,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나라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과
“종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은,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낮춤’과 ‘섬김’만 생각하고 ‘사랑’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사랑 없는 낮춤과 섬김은 ‘비굴함’입니다.
(겸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낮춤과 섬김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모두 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서로 낮추고 서로 섬기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함께, 동시에 서로 낮추고 섬기기 때문에, 실제로는 낮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나라이고,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높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기심이나 소유욕의 반대쪽에 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주는’ 헌신과 희생입니다
.원문보기▶ Rev.S.Moyes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 멘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