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과자
초등학교 1학년 때 6․25 동란이 일어났다.
학교는 거의 다 군부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는 칠판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들이나 강가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
잔디밭을 교실로 삼고 납작한 돌 하나를 책상 삼아, 하루하루의 힘든 일과를 보낸 것이다. 더울 때는 그런대로 지낼 수 있었지만, 추운 겨울에는 정말 힘이 들었다.
찬바람에 눈발이 듬성듬성 섞여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수업도 일찍 파했다. 친구 몇 사람과 철조망이 쳐진 학교 모퉁이를 돌아 한길에 나오니, 한 가로수 아래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왁자지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미군 한 사람이 총을 든 채 ‘와 와’ 소리를 치고 있고, 아이들은 나무 위에 얹힌 무언가를 내려오기 위해, 서로 다투어 나무를 오르고 있었다. 나무 위에 미군이 과자 같은 것을 높이 올려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이를 집어 먹도록 시킨 모양이었다.
굶주리고 배고픈 시절인데다가, 미국 물건이라면 ×도 좋은 것이란 말이 풍미하던 때이니, 나무 위의 과자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올라가 과자에 손이 닿을 만하면, 바로 밑에 올라간 사람이 뒷다리를 잡아 끌어내리곤 하여, 어느 누구도 쉽게 과자를 차지할 수가 없었다.
이 때 나를 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던, 세 살 맏이 덕수 형이 이에 참여하였다. 그는 육상 선수이고 힘도 세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믿었다. 덕수 형이 과자를 내려오면 나에게 나누어 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마음속으로 덕수 형을 응원하였다. 그러나 밑에서 끌어내리는 데야 아무리 힘이 센 덕수 형도 어쩔 수 없었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끌어내림을 당할 때마다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이러기를 한참이나 지났을 무렵, 어떻게 오셨는지 교장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시었다. 이것을 보신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동을 즉시 중지하고, 빨리 집에 가라고 고함을 치시었다. 우리들은 어렸지만, 모두 지금까지 벌인 짓들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임을 직감하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따랐다.
그러자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자기의 놀이터가 없어진 미군이 교장 선생님께 달려든 것이었다. 미군은 젊고 총을 든 데다, 교장 선생님은 연만하시고 맨몸이시라, 여간 걱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비록 기운은 부치셨지만, 결코 물러나시지 않았다.
‘아이들을 놀리는 그런 짓을 왜 하느냐?’며 미군에게 윽박지르며 달려들었다. 교장 선생님의 바른 가르침에 기가 꺾였는지, 그도 마침내는 스르르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순간 우리는 교장 선생님의 용기와 가르침에 감동하면서 마음으로부터의 찬사를 보냈다.
총대에 밀리면서도 겁내지 않고, 교육자의 자세를 견지한 교장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어린 가슴을 뛰게 하였다.
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 가는 오늘이다.
교실이 붕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요즘이다. 넘어지는 교실을 겁내지 않고, 붙들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교육자가 더 없이 요구되는 이 시기에, 존경스러운 그런 교장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