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사 대상 'S&D 거래 방식' 악용해 독점권 부여 및 마진율 강제
ADI는 재판매가격까지 지정·강제 혐의… 관련 매출액만 수조 원대 달해
공정위 심사보고서 상정, 최대 4% 과징금 부과 가능… 최종 판단 주목
[배석환 기자]=글로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유력 사업자인 NXP와 ADI가 국내 유통사들을 상대로 독점 거래를 강요하고 마진율과 재판매가격을 통제해 온 정황이 적발되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절차에 전격 착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 이하 공정위) 사무처는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사업자인 네덜란드의 NXP 세미컨덕터즈와 미국의 아날로그 디바이스(ADI)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위원회에 상정하고, 지난 7월 8일 피심인들에게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두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공식 심의 절차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차액 환급(S&D) 제도 악용… 유통사 자율성 박탈하고 마진·가격 통제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비메모리 반도체 유통 시장에서 흔히 쓰이는 'Ship & Debit(S&D)' 거래 방식을 악용해 유통사들을 철저히 통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S&D는 유통사가 제품을 표준 공급가격으로 구입한 뒤 특정 고객에게 할인 판매하면, 사후에 확인을 거쳐 본사가 차액을 환급해 주는 방식이다.
심사관은 이 과정에서 두 업체가 유통사의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NXP, 사실상 '독점 유통권' 부여 및 마진율 사전 설정 NXP는 최소 2012년부터 최근까지 S&D 방식을 이용해, 특정 유통사가 한 거래처(고객)를 확보하면 다른 유통사는 그 거래처와 아예 거래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막아 사실상 독점 유통권을 부여했다.
이와 동시에 유통사들이 가져갈 수 있는 마진율까지 사전에 일방적으로 설정해 통제했다.
ADI, 마진율 고정 및 재판매가격 강제 ADI 역시 최소 2020년부터 최근까지 유통사들의 마진율을 사전에 고정해 두는 방식으로 경영에 간섭했다.
이에 더해 유통사들이 거래처에 제품을 최종 판매할 때 가격(재판매가격)까지 직접 지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강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관련 매출액 수조 원대… 최대 4% 과징금 폭탄 예고
공정위 심사관은 이들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구속조건부 거래행위(거래상대방 제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경영간섭)',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등을 위반한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심사관이 추산한 법 위반 관련 매출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NXP의 거래상대방 제한 행위 관련 매출액은 약 8.8억 달러(약 1.3조 원), 경영간섭 행위는 약 6.6억 달러(약 1조 원)로 판단됐다. ADI의 경우 두 가지 위반 행위 각각에 대해 약 8억 달러(약 1.2조 원)의 관련 매출액이 산정되었다.
공정위는 향후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반 행위별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행위별 과징금이 각각 합산되므로, 최종 심의 결과에 따라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 공정 질서 확립할 것"
공정위는 피심인들로부터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받고 증거자료 열람·복사 등 방어권을 보장한 후, 독립된 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심사보고서의 조치 의견이 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구속하지는 않으나, 심사관이 위법성을 명백히 판단한 만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가 경제의 핵심 기반이자 미래 성장동력인 반도체 분야에서 유통사들의 자율적인 거래조건 결정 권한을 보장하고, 유통사 간 가격 경쟁이 촉진될 수 있도록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