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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월 1일 새해맞이 기원예배
○ 로마서 15장 12-13절 소망을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시작할 때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뭔가를 이루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소망이 특별히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다 가지고 새해를 출발합니다. 종로에 있는 보신각이나 정동진에 사람들이 그렇게 해맞이를 보려도 몰리고, 성주산에도 해맞이를 보려고 몰리는 이유가 바로 2025년도의 소망을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2024년 12월 31인 어제 떠오른 태양과 오늘 2025년 1월 1일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별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 저문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새롭게 할 뿐입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소망을 마음에 담고 출발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도 새해를 소망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하는 기도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많은 영적인 진보가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계심으로 인한 영적인 성장과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올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전파하라는 표어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려고 하는 데 다음주 첫주 예배때 그 말씀을 들으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2025년 1월 첫날을 맞이하시면서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5장 12절을 보면 여러분들이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같이 12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각 나라마다 한 해가 되면 바라는 소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망의 근원은 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각 나라가 섬기는 신에게 소망을 둘 수도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대통령이나 총리는 자기 자신에게 소망을 둘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패망을 눈 앞에 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 나라가 믿고 있는 신들에게 소망을 둡니다. 강한 나라건 약한 나라건 간에 민족신이라고 믿는 신들이 있습니다. 각 나라 국민들은 그 신을 의지합니다. 물론 신이 하나가 아니라 굉장이 많은 나라들도 있습니다. 이들 나라조차도 그 신들 중에 으뜸인 신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신에게 소망을 둡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과연 누구에게 소망을 두어야할까요?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지만 주변에 자기들을 강하게 붙들어줄 거라고 믿는 많은 것들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주변 나라의 국방력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왕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의지했던 많은 것으로부터 실망을 겪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 그것들 가운데 의지할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믿고 소망을 두기에는 생명도 없었고 너무나 약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의지했던 애굽조차도 상한 갈대 지팡이처럼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유다와 이스라엘이 서로 대치하면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데다가 여러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노리면서 우리나라에 간섭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라들을 무시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나다. 우리나라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런 교류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나라를 경영하면서 강대국과의 관계를 갖는 것과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무시했던 북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수많은 전쟁과 쿠테타에 시달리다가 결국 망하고 맙니다. 국력은 급속도로 쇠약해졌고 백성들의 마음은 발기발기 찢어진 것처럼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위태합니다.
남북이 대치되어 수많은 위험한 무기들을 만들어 내어 아차하면 서로 치고받다가 자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6.25사변의 피해를 보면 엄청난 사상자와 수많은 물질적인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외국에서도 와서 전쟁을 치루는 바람에 죽은 외국군인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는 재기불능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전쟁을 막습니까? 지금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가족들로부터 시작해서 온 나라의 마음이 서로 찢고 찢기고 하면서 너덜너덜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자기만이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연설을 합니다. 하지만 해답은 결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열방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시고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다른 종교들이 크게 반발할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들 종교들도 신념이 있고 나름대로의 이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우리가 전쟁을 막으려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 만이 온 세상의 구주로서 온 세상의 전쟁을 그치게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이사야 2장 4절을 보면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이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도 예수님이 다스리셔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바로 이 구절이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모습의 일부를 비춰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로마서 15장 12절에서는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이새의 뿌리로써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의 뿌리라고 하지 않고 이새의 뿌리라고 말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새에게서 다윗 왕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새의 뿌리에서 또 하나의 왕이 나타납니다. 그는 열방을 다스리기 위해 일어나는 왕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세계 역사를 보면 수많은 황제나 왕들이나 대통령들, 총독, 또는 수장이나 총리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수장들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세계 정복의 꿈을 꾸고 일어난 황제나 왕, 그리고 총독들도 있었습니다. 세계인들이 영웅이라고 하는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이나 히틀러나 시이저같은 사람들 역시 온 세계를 다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일본천황도 마찬가지의 야심을 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야심을 품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만 실현시키고 죽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기 전에 세계 정복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세계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로인해 피바람이 수많은 나라들에 몰아쳤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만 강물같이 흐르게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폭력과 전쟁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나라를 다스리셨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진리로 다스리셨습니다. 또한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통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의 피도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 누구도 고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낮은 자리에서 섬기시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세상 왕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을 굴복시키며 힘과 능력으로 통치하며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한 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백성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자들의 무리에 합류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들과 연약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들에게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가가 강해지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전반적인 나라 살림을 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에 쇄신할 것은 쇄신하고 새로운 정책을 펼칠 것은 새롭게 펼쳐야 합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 여쭈어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다스리실 나라의 모습을 지금 이 땅에서 조금은 맛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부를 맛보게 하시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국가적으로도 역시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참된 맛의 일부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대부분은 자기 나라에 소망을 두며,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소망을 두거나 기업에 소망을 둡니다.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소망을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열방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우리 나라의 소망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소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이론적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만남과 삶을 믿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여러분들을 돌보시고 계시며 여러분들을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만남과 동행의 증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열방의 소망일 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소망이며 여러분들의 가정에 소망이십니다. 또한 이 나라의 소망이며 기업이나 조그만 가게들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게 해주시는 분으로서의 소망은 아닙니다. 그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겨우 돈이나 벌게 해주시는 분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소망을 잘못 가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지극히 작은 일부의 복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이 주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여러분들이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죄악 세상에 자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의 값주고 사신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자신이 교회와 여러분 개인의 소망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향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13절은 말씀하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는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충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들 안에서 충만하며 우리 교회 안에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인 기쁨과 평강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시고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이 세상 끝날 까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2025년도 1월 1일 첫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소망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35장 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하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2025년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영광으로 인한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이며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으면서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영광의 하나님을 뵙고 함께 예배드리며 그 영광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하고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이시며 영원히 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온 세상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보좌에서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서 세상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소망을 주시고 이루시는 주님이 여러분들의 일평생을 복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고 넘처 흘러 죄악 세상을 새롭게 함으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소망들을 다 버리고 하루 하루를 인도하시면서 사랑의 나라, 기쁨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이 주시는 임재와 즐거움으로 살게 되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