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기차 이해를 위한 기본 물리, 그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네 편을 통해 한국에서의 전기차 충전방식에 대해서 빠짐없이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퀴즈를 하나 드렸었네요. 'SM3 Z.E.가 테슬라의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데스티네이션 차저는 오직 테슬라의 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동일한 규격의 J1772 type2 커넥터를 쓰며 220V 교류 충전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안 될 것이 없습니다만, 실제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자사 고객을 위해서 만든 충전시설인 만큼, 테슬라의 전기차만 인식하도록 사용자 인증방식을 바꾸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해보았습니다. 뭐, 아직까지는 잘 되는군요. 확인만 한 뒤 바로 뽑았습니다. 현재의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는 별도의 인증 없이 차량과 연결되면 바로 충전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오너가 아닌 이상, 이렇게 사용한 전기료를 테슬라에 지불할 방법이 없습니다. 쓰면 안되겠죠.
재미있는 것은 충전 속도입니다.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는 장착된 곳의 수전용량에 따라 7~22kW로 충전이 가능합니다. 현재 테슬라의 차는 교류 충전 시 16kW까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만, SM3 Z.E.는 43kW까지 가능합니다. 만약 데스티네이션 충전기가 22kW급이라면 SM3 Z.E가 테슬라 차보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이 충전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교류와 직류, 또 너냐?
옙. 고등학교 이후에는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용어들이 또 나옵니다만, 이번에는 필요한 최소 내용만 확인할 것이니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이건 진짜로 금방 끝나요!
우리 생활의 전기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휴대폰과 보조 배터리에서 쓰는 전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벽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에요. 첫 번째 것을 직류(DC, Direct Current)라고 하고 두 번째 것은 교류(AC, Alternating Current)라고 합니다. 직류는 말 그대로 전류가 +, – 방향에 맞추어 늘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기이고, 교류는 전류의 방향이 시간에 따라 음의 방향으로 갔다가 양의 방향으로 갔다가 하며 크기와 방향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전기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다 보니, 전기를 쓰는 장치들 또한 두가지 방식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전기차의 충전방식 또한 교류방식과 직류방식이 뒤섞여 있습니다. 애시당초 터빈이나 스크류, 풍차 같이 회전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는 모두 교류입니다. 벽 콘센트까지 송전되어 온 전기도 교류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의 완속충전방식은 모두 교류를 씁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전기차에 저장되는 전기는 무조건 직류입니다. 배터리라는 물건이 담을 수 있는 전기의 형태는 오직 직류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자동차에 내장되어 있는 충전 관리 장치는 충전기가 교류를 주면 이것을 직류로 바꾸어 배터리에 넣어야 합니다.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장치, AC-DC 컨버터(Converter)가 모든 전기차에 탑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바꾸어야 할 전류의 양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컨버터는 점점 크고 무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기차에 탑재되는 컨버터는 적당한 수준에서 상한선을 정했습니다. 일반 전기차는 교류충전의 입력 상한선이 7kW이고, 테슬라도 16kW를 넘지 않습니다. 컨버터의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요. 아울러 DC 차데모나 DC 콤보 같은 주류 급속 충전방식이 모두 직류(DC)를 쓰게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50kW나 되는 대용량 컨버터를 모든 차가 짊어지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끔찍한 비효율이죠.
그렇다면 전기차의 내부는 모두 직류만 쓸까요? 배터리의 전기를 꺼내다 쓰는 모터는 효율성 면에서 당연히 직류를 쓰는 게 맞을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차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완성차로 구입하고 있는 대부분의 실용 전기차는 교류모터를 씁니다. 아니, 이건 또 왜 이런데요???
DC모터와 AC모터
엔진이 차와 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였듯 전기차 또한 용처에 따라 각양각색의 제품이 있습니다. 물론 전기가 두 가지 종류이니 모터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직류인 DC모터와 교류인 AC모터입니다.
DC모터(직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보는 소형 모터는 죄다 이것입니다. DC모터의 가장 큰 장점은 '작고' '싸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속에서도 엔진의 시동용 모터로 오랜 세월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높은 수준의 제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수많은 장비와 생활용품에서 활용 중입니다 . 예를 들어 전기 바이크나 스쿠터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경우 DC모터를 사용함으로써 제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AC모터(교류모터)
과거에는 AC모터의 장점으로 효율과 수명을, 단점으로 제어가 까다롭다는 것을 꼽았습니다만, 이제는 별 의미가 없는 분류방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AC모터의 제어가 까다로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DC처럼 정밀한 제어가 가능해졌습니다. DC모터도 매번 내구성 문제를 일으키던 브러시를 없앤 BLDC(Brushless DC)기술이 나오면서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거든요.
모터의 토크는 그대로 유지한 채 회전수만 천천히 끌어올리는 식의 제어는 예전에는 AC모터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일이였습니다만. 이제는 잘 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출발이 가능해졌지요. 큰 출력을 한번에 뿜어내는 특성에, 내구성은 거의 반영구적입니다. 차에 쓰기 딱 좋지요.
하지만 여전한 단점도 있습니다. DC모터에 비해 크고 무거우며 가격이 비쌉니다. 배터리의 전기를 가져다 써야 하니 직류를 교류로 바꿔서 넣어줘야 되고, 이걸 위해 필요한 직류-교류 인버터 (inverter)는 무게와 부피가 상당합니다. 차가 더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이걸 쓰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회생제동(Regenerative braking/回生制動) 때문입니다.
모든 자동차는 정지하기 위한 감속장치, 즉 브레이크를 사용합니다. 통상의 브레이크라는 건, 마찰을 이용하는 장치입니다.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를 꽉 잡아서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것이지요. 하지만 전기차에 이런 마찰식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배터리의 전기에너지가 그냥 열에너지로 낭비되는 결과가 생겨 버립니다. 무척 아까운 일이죠.
회생제동시스템은 이렇게 감속 시 사라져 버릴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다시 회수한 뒤 배터리로 충전하는 기술입니다. 감속이 필요할 때 바퀴의 회전력을 발전기와 연결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가 다시 배터리에 충전되는 것이지요. 앞서 말한 내용 중 발전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발전은 회전운동을 교류로 바꾸는 것입니다. DC모터방식의 전기차는별도의 발전장치가 필요해집니다만, AC모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AC모터는 그 자체가 발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류모터는 전기를 받을 때는 구동회전력을 만들지만, 반대로 회전축에 동력을 넣어주면 바로 교류전류를 만드는 발전기가 됩니다. 발전된 전기는 다시 DC-AC컨버터를 통해 직류로 바뀌어 배터리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회수된 에너지를 통해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다시 늘어납니다. 회생제동을 통해 늘어나는 거리는 최대 20%에 이릅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지요.
회생제동시스템은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철도나 하이브리드 같은 전기 구동계의 탈것에서 회생제동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지만, 전기차가 대중화 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회생제동 시스템은 초창기 전기차의 어색한 주행감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기만 해도 마치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속도를 줄이는 차의 움직임은, 통상의 엔진차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는 매우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일단 익숙해지면 무척 편합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속 페달에 얹은 오른발에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어떤 회사는 이것을 '원페달 드라이빙'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하더군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비범함입니다.